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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K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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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JaeK
작품등록일 :
2018.06.18 12:11
최근연재일 :
2018.11.10 10:00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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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69
추천수 :
2,769
글자수 :
1,307,372

작성
18.06.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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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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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
22쪽

사이퍼(3)

DUMMY

꽈드득! 스르륵! 휘익! 팡!

아파트단지 오른쪽 측면에 위치한 쓰레기 소각장, 그 옆에 마련된 공터에서 네명의 사이퍼가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 받고 있었다. 정확히는 세명의 사이퍼가 한명을 몰아붙이고 있는 실정이었다.

" 일우, 꽉 잡아! 이쪽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란 말야. "

꽈앙!

일우가 급하게 일으킨 토벽이 바위의 주먹에 먼지처럼 흩날리며 시야를 방해하자 근접해서 몸을 이리저리 회피하며 바위를 타격하고 있던 두미가 소리질렀다. 먼지구름 사이로 진녹색 줄기들이 바위의 발밑에서 파고들며 소리없이 그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카가각! 파앙!

또 다른 흙벽이 솟구치며 그대로 바위의 온몸을 덮치자 커다란 봉분이 생겨났다. 그것을 확인하고 뒤로 물러선 세명은 잠시 가쁜 숨을 고르며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퍼억!

봉분의 위부분이 터져나가며 바위의 거대한 몸체가 떠오르자 두미가 같이 몸을 띄우며 이번에 새로 구한 마체테를 목부위를 향해 휘둘렀다. 그리고 바위 아래에서 따라오는 가시줄기와 뾰족한 창모양의 흙더미가 동시에 바위를 노리고 치솟았다.

막 공격을 가하고 있던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완벽한 합격이었다. 수많은 실전같은 대련을 하면서 그들 나름대로 노하우와 전략이 쌓여 만들어진 합격술이었다.

" 잡았다! 커억! "

두미의 마체테가 막 바위의 목에 닿으려는 순간 바위가 어깨를 튕기듯 올려 마체테의 궤도를 바꾸는 동시에 손을 뻗어 두미의 목을 움켜쥐는 바위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파리잡듯이 손을 휘둘러 두미를 일우에게 던져버리고선 다리를 감싸는 줄기와 흙창을 가볍게 반바퀴 돌며 로우킥으로 바스러뜨렸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반응하지 못했다.

꽈당! 꺄악!

던져진 두미가 다희와 엉켜 볼썽사납게 바닥에 나뒹굴 무렵 바위는 이미 일우의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일우가 바닥에서 손을 떼고 번쩍 들더니 외쳤다.

" 항복! 졌어! 그ㅁ··· 케엑! "

일우의 항복선언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허공을 날라 한쪽 구석으로 쳐박히며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에 어짜피 항복을 해도 저꼴이 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다희와 두미가 서둘러 자세를 잡으며 힘을 모았다.

" 바위형, 제비형이 지금 보자는데요! 급한 일이라고.. "

막 바위가 주먹을 들어오리려는 순간 소각장을 돌아 주몽이 모습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요 몇일새 주몽은 큰변화를 겪었다. 직접 마주친 죽음의 순간들을 보며 스스로 변한 것이다.

주몽은 죽은 야나가 쓰던 활과 화살을 챙겼다. 예전에 국궁을 배웠다며 자신의 무기로 쓴다는 말에 흔쾌히 승낙하며 쥐어줬다. 그 후 본인 스스로 피나는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주몽의 외침에 슬그머니 주먹을 내린 바위가 말했다.

" 오늘 여기까지 하자. "

바위의 선언에 일시에 긴장에 풀린 두 여자는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주몽을 따라 가는 바위의 늠름한 뒷모습을 흘기며 대화를 나누었다.

" 휴우, 언제쯤 한방을 먹일 수 있을까? 그러면 소원이 없겠네. "

" 흥, 어,어려운.. 일이야. 오빠는.. "

" 야, 유다희. 너 그러면 매력없어. 이년아, 매달리는 여자만큼 비참한 년은 없는거야. "

" 너도.. 쓰레기나 다름없어. "

다희가 예고없이 가시줄기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지금처럼 완벽한 기회는 없다고 생각을 한 듯 했다. 평소 눈에 거슬리는 존재를 치워버리기에 말이다.

두미 역시 그런 기색을 느끼고 있었지만 갑작스런 기습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뒷구르기로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두미가 가시가 스치며 찢어진 상처를 혀로 햝으며 다희를 보고 미소지었다.

" 크큭, 미친년. 너도 나하고 비슷한 과인지 눈치챘지만 이미 늦었어. 예전의 나라면 몰라도 말야. "

양손으로 자신의 팔뚝보다 긴 마체테를 꺼내 들어올리며 흥분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 어짜피 바위를 차지하려면 너를 넘어야겠지. 생각보다 일찍 기회가 왔네. 대가리를 잘라 정문에 걸어두마. 차앗! "

1번 계열의 강화계. 스피드 특화인 그녀의 몸놀림은 이미 일반인의 범주를 한참 벗어나고 있었다. 거기에 특유의 체술과 망설임없는 움직임은 그녀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두미의 신형이 땅을 박차고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다희에게 접근을 시도하자 거기에 대응해 가시줄기가 그녀를 잡기 위해 사방에서 자라났다.

콰드득! 드드득!

두미는 그런 가시줄기들을 바위처럼 뚫고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시줄기 범위를 피해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뛰어 다녔다. 워낙 순식간에 가시줄기가 자라고 없어지는 와중에 두미의 신형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광경이 이어졌다.

" 이거나 먹어라! "

두미는 이렇게 해서는 자신의 에너지가 먼저 고갈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승부수를 띄웠다. 어디서 나왔는지 수리검을 꺼내들고 다희를 향해 뿌린것이다. 하지만 바위와 대련을 통해 원거리 무기에 대한 경험이 있는 다희는 그것을 보자마자 자신의 정면에 뒤엉키며 자라는 줄기들을 소환했다.

그 잠시동안 두미의 위치를 놓친 다희는 급히 시선을 돌려 찾았지만 이미 두미는 자신의 사각, 오른쪽에서 마체테를 휘두르고 있었다. 마체테가 자신의 목을 노리고 정확하게 날아오는 모습에 급히 옆으로 구르며 범위를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노련한 두미는 마체테의 방향을 꺽으며 다희의 발목을 끊어내려고 내리쳤다.

파팍!

하지만 이미 자라난 가시줄기가 그녀의 마체테를 막아섰고 거기에 박힌 마체테를 회수하며 다시 거리를 벌리는 두미는 바닥을 굴러 먼지투성이가 된 다희를 살폈다. 다음 공격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런 다희는 바닥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두미를 무감정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다음 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두미의 살기에 가까운 뜨겁운 눈빛과 다희의 무감정에 가까운 차가운 눈빛이 부딪히고 서로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한쪽 구석에서 기절해 있던 일우가 소리쳤다.

" 그만! 미친년들아. 적당히 좀 해. 아우 씨발 아파죽겠네. 바위에게 이르기 전에 그만들 해라. "

얻어맞은 죽빵을 감싸쥐며 장내의 상황을 살펴본 일우가 외치자, 두 여자는 움찔하며 멈춰섰다. 그녀들도 바위는 무서웠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놓치기 싫었는지 두 여자는 눈빛을 마주하며 뭔가의 의견을 나누었다.

그런 두 여자를 보며 등골이 서늘해진 일우가 급히 말했다.

" 야, 나 도끼랑 친해. 그리고 바위가 시킨 일이 얼마나 많은데.. 여기서 사라지면 니들이 곤란할껄? 잘 생각해라. "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두 여자의 눈치를 보던 일우는 뭔가를 생각하던 그녀들이 발걸음을 돌리는 것을 보고서야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 여자들이 얼마나 미쳤는지 깜빡한 것이다. 쓸데없이 놀린 자신의 입이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이제부터는 조심해야 한다. 저 여자들이 언제 자신의 뒷통수를 노릴지 모르니 말이다.

" 하, 씨발.. 당분간 사람들이 많은 곳만 다녀야겠네. 이게 뭔 꼴이냐. 진짜··· "

언제 어느장소에서 가시줄기가 자라나 온몸을 찢을지 어디서 마체테가 날라와 목을 댕강하고 자를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기가 막힌지 한참을 하늘을 보며 원망하던 일우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도 같은 사이퍼이고 노력한 만큼 강해지고 있다. 저 두년보다 강해져서 바위처럼 때려잡으면 되지 하는 생각과 마음을 먹은 것이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말이다.


아예 이 아파트단지 쉘터 작전회의실로 쓰이고 있는 주민센터 회의실에는 간부라고 할 수 있는 인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뭔가를 쑥덕거리며 회의를 하고 있는 와중에 바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 어, 왔어. 지금 말이야... "

이젠 제법 사람을 이끄는 태가 나는 제비가 바위를 보며 반색하며 말을 걸었다. 제비와 사장, 으뜸은 지금 쉘터의 구조와 조직을 정비한 핵심인물이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큰돌모임의 조직개편이었다. 회주로는 바위가 임원 및 각부의 부장들은 제비, 사장, 으뜸, 원장님, 도끼, 일우, 은혜가 맡았다. 그리고 지원부, 기술부, 무력부, 운영부, 채집부로 역할을 나누어 관리했다. 그외 회주 직속 능력부가 있었지만 인원이 얼마 없어 아직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공시했던 모임에 가입하고자 하는 주민들과 기존의 조직원들, 고아원 고등학생 이상의 아이들을 적절히 나누어 부서에 편입시키고 운영하기 시작한게 몇일전이었다. 생각보다 주민들의 가입률이 저조했다. 아무래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그들의 결정을 미루게 한 듯 했다.

그 와중에 제니가 자신의 동생을 찾았다는 기쁜 소식이 있었지만 금세 시들해졌다. 여기 대부분의 인원들은 아직 가족들이 어디에 있는지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 그렇게 된거야. 이제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해. "

제비가 꽤나 길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 말인 즉슨, 은혜가 얘기한 곳에 위치한 소규모 공장단지가 있었고 그곳에 정찰나간 지원부 산하 정찰팀이 보고한 것이었다.

제법 넓은 곳에 위치한 그곳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나름의 질서가 유지되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무장도 나쁘지 않아 어디서 구했는지 소총까지 있다는 정보였다.

" 그리고 최근까지 공장을 돌린 흔적이 보였어. 그 말은 아직까지 그곳의 식량사정이 나쁘지 않다는 말이지. "

" 먼저 대화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

은혜가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 이런 회의가 익숙하지 않는듯 했다.

" 흠, 나는 먼저 그들의 현황을 파악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래야 만나서 무슨 대화를 하던, 협상을 하던 우리가 우위를 가져올 수 있어. "

정보수집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장의 말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의 말에 도끼가 입을 열었다.

" 근데, 주변으로 철조망과 담으로 사방을 막아놨다던데요? 어떻게 들어가서 정보를 빼올 생각이세요? "

" 흠, 정찰팀을 보내는 것이 어떤가? "

" 걔들 그런 훈련도 안되어 있고 들어갔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휴.. "

바위의 반문에 모두가 침묵을 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럼 그들을 보며 제비가 입을 열었다.

" 지금 도심의 상황까지 설명을 드려야 겠네요. 정부의 쉘터구축이 늦어지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 조직화되고 있어요. 스스로 살아남으려고요. 그만큼 안전에 민감하고 지키기위해 잔인해지고 있다는 거죠. 벌써 사태가 벌어지고 한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어요. 그 사이에 전기, 수도, 가스, 통신등이 끊어졌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불법과 범죄를 저지르고 있죠. 이젠 정부 쉘터가 구축된다고 하더라도 쉽게 들어갈 인원은 없을꺼에요. 아니, 정확히는 각 조직들의 수장들은 이미 그 권력의 맛을 봤기때문에 그 기득권을 놓지 못할꺼에요. 먹을 것을 무기로, 혹은 안전한 울타리로··· 그렇게 사람들을 길들이고 있을꺼에요. "

" 하지만, 그것도 단기적일때나 그렇지 장기적으로 가면.. 문제가 많을텐데.. "

으뜸의 우려는 맞았다. 지금은 도심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물품으로 생활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과연 그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까? 당장 아파트 주민들만 봐도 각 가정, 혹은 비어있는 집에 어느정도 물품은 있을 것이다. 그걸 믿고 여길 지키고 있는 자신들을 배척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이 한달, 아니 몇일만 지나도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흐음, 일단은 시간을 가지고 정탐을 하는게 어떠냐? 당장 이 아파트 주민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야. "

가만히 회의를 지켜보던 원장님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바위도 그런 원장님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이어지는 제비의 말에 다시 고민에 빠졌다.

" 우리도 비슷한 생각이었는데요. 예전에 말했던 뭉쳐다니는 좀비들의 이동경로에 그 공장들이 들어갈 듯 보여요. 대략 삼사일정도가 지나면 소규모 한무리가 지나고 그 뒤로 대규모 무리가 근처를 지나칠 예정이에요. 아마도 그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꺼에요. "

소규모 무리, 몇백단위의 좀비무리라면 벽을 이용해 어찌어찌 막을 수야 있겠지만 대규모의 몇만단위는 사단급 정규병력이라도 막기 힘들었다. 솔직히 소규모도 무리일 가능성이 컸다. 더군다나 높은 건물이 있는것도 아니고 좀비가 들이닥칠때 피할 수 있는 장소가 한정적일게 뻔했다.

" 그리고 그들과 접선을 시도해 봤는데.. 반발이 너무 심해요. 아무 우리같이 그들에게 다가온 무리들이 몇이 있었나 봐요. 대화로 그들을 설득시키기에는 현재로써는 불가능해요. "

" 제가, 제가 가볼께요. 얼마전까지 거기서 일한 제가 가보면 분명히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

은혜가 나섰다. 하지만 바위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 위험해. 그들이 어떻게 변했을지 아무도 몰라. 거기에 예전에 네가 일하던 곳의 사람들이라는 것도 장담할 수 없고 말야. "

바위가 차분히 은혜를 설득했지만 은혜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녀는 왠지 필사적이었다.

" 제발요.. 혹시 모르잖아요. 그들을 그대로 죽게 버려둘 수 없어요. 오빠.. "

그런 그녀의 행동에 뭔가를 눈치 챈 원장이 말을 걸었다.

" 혹시, 거기에 가까운 사람이 있는거냐? 혹시 남자친구? 허허허, 네가 벌써 나이가··· "

원장의 말에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은혜를 보며 바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진짜 위험한 그 곳에 가려고? 은혜야··· "

말리려던 바위가 은혜의 단호한 눈빛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고아원 아이들은 누구나 한번씩 버림을 받아본 기억들이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그 반발심리로 그 누구보다 버림받거나 버리는걸 싫어했다. 그 마음을 바위도 이해했기에 그녀의 눈빛에 진심을 알았다.

" 그래.. 그럼 이건은 제가 맡죠. 그 사람들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 경각심을 심어주고 될 수 있으면 이곳으로 이주시키면 되는건가요? "

" 휴우, 바위야. 넌 니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자각할 필요가 있어. 물론 막겠다는 건 아니지만··· 하긴, 뭐가 걱정이겠냐. 총도 안통하는 놈인데. 쯪. 그럼 같이 갈 인원이랑 계획을 짜야겠네.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혼잣말하듯 결정을 지은 제비가 좌중을 둘러보며 결론을 냈다.

" 결국 이리 됐네요. 먼저 그 동네 지도부터 확보하고··· "

그들도 바위가 나선다는 말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향후 대책에 대해 논의를 계속이어 나갔다. 아까도 말했지만 무엇보다 이 아파트단지의 안정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 학! 학! 지윤아, 이제 다왔어. 힘내자. "

골목을 돌아 뛰던 인혜가 숨을 몰아쉬며 겨우 따라붙은 지윤이를 돌아봤다. 촌스러워 보이는 몸빼바지에 헐렁한 티를 걸친 지윤의 손에는 봉지 두개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 인혜의 손에도 커다란 시장바구니가 들려있었다.

그 안에 담겨 있던 식료품들이 쏟아질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 바구니를 품에 꼭 안은채로 다시 서둘러 발길을 옮기는 그들의 뒤편으로 발소리가 들려왔다.

" 이쪽으로 갔지? 빨리 쫒아, 쌍년들.. 잡히기만 하면.. "

타타탁 거리는 소리와 함께 건장한 청년들이 그들이 숨어있는 골목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늘지고 어두운 골목이라 숨기 좋은 곳인 것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어두운 곳을 피했다. 언제 어디서 좀비가 튀어나와 목을 물어뜯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깔려 있어서였다.

" 지금이야. 조금만 더 가면 우리 집이니까. 힘내자. 지윤아. "

" 헉,헉.. 네. 언니.. "

인혜는 얼마전 자리잡은 오층 주인집을 떠올렸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렇게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지 몰랐다. 얼마남지 않은 주인집 식량과 밑층 건설회사 사무실을 어떻게든 들어가 털었지만 커피믹스나 이것저것 물품은 구했지만 먹을거리는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나선 인혜는 다리를 다친 명환이를 집에 남겨두고 나와 여기저기 살펴봤다. 그 많던 좀비들이 어디로 갔는지 휑해진 거리에는 시체와 썩어들어가는 핏덩이, 내장조각들만 즐비했다.

처음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살아남은 사람들과의 전쟁이었다.

이미 국가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사람들은 오직 한가지만 남았다. 바로 살아남는 것이었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편의점은 이미 싹 털려 먼지한톨도 남지 않았고 길거리에 위치해 있는 가게들은 누군가의 침입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그러던 중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발견했고 반가워 뛰쳐나가려는 순간 그녀의 눈에 비친 광경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이제 막 대학생이나 되었을까 하는 여자 둘을 머리채를 잡고 끌고가는 일련의 남자무리. 그 여자들의 옷은 여기저기 찢겨져 있었고 얼굴은 구타의 흔적마저 보였다.

결코 일반적인 사람들 무리가 아니었다. 곧 이어지는 폭행과 강간, 그리고 비명소리까지. 길거리 속옷가게에 들어간 그들이 저지른 짓이었다. 그 비명소리도 곧 신음소리로 바뀌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여자들을 끌고 나와 어디론가 향하는 그들을 인혜는 마냥 숨어서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이미 도시는 무법지대였고 인권은 사라지고 없는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직 힘만이 모든것을 지배하는 사회. 그 일면을 본 인혜는 소름끼치는 현실에 적응해야만 했다. 그렇게 시작된 먹을거리 찾기는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되었다.

결국 이 곳 어딘가에 자리를 잡은 그 남자 패거리들과 마주친 인혜와 지윤이는 그들에게 쫒겨 겨우 도망나올 수 있었고 그 이후에는 먹을거리를 구하는게 더욱더 어려워졌다. 가끔 지나가는 엄청난 숫자의 좀비들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던 중 제법 멀리 떨어진 곳 편의점에서 많은 물품이 창고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인혜와 지윤이 그것을 챙기던 도중 자신들이 함정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사방에서 달려들던 남자들을 손을 가까스로 피해 도망치고 있는 와중이었다.

다행히 사전에 이곳 지리를 완벽하게 외워놓은 덕분에 골목골목으로 빠져들며 남자들의 마수에서 가까스로 피했지만 그것도 그리 멀지 않아 위험할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움직여 자신들이 머물고 있던 거처근처에 도착한 인혜와 지윤은 그제야 한숨을 쉬며 터벅터벅 걸어 건물로 다가갔다. 그때 한 골목길을 돌아 나타난 남자 한명.

" 크큭, 여기가 니들 거처야? 내가 운이 좋네, 나머지놈들은 눈깔이 삐어서 말야. 흐흐흐. "

아까전부터 그녀들을 발견하고 여기까지 따라온 듯 했다. 그렇게 혼자 나타난 남자의 손에는 야구배트가 쥐어져 있었다. 그 배트를 이리저리 흔들며 놀리듯이 말했다.

" 어쩔까나? 여기서 부르면 친구들이 여기로 금방 달려올테데 말야? 흐흐흐.. "

당장 소리쳐 일행을 부르지 않는 그를 보며 인혜는 그가 자신들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뭐,뭐죠? 왜.. 이러는 거에요. "

" 뭐가 왜이래? 난 욕심이 많아. 너희를 잡아가면 분명히 딴 놈부터 맛보겠지. 그런 더러운 구멍을 써야한다는게 얼마나 기분 더러운지 알아? 크큭. "

인혜와 지윤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았다. 소름끼치게 싫었다. 언제 이빨을 닦았는지 이빨사이에 누런것이 끼어있고 목욕을 언제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떡진 머리카락과 옷사이로 보이는 땟국물이 말라 있는 자리등. 보는 것만 해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일그러진 그녀들의 얼굴을 보면서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입을 벌려 웃음짓는 그 남자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것에 반응해 뒤로 똑같이 물러서는 그녀들은 뭔가를 보고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 당신들 패거리는 어디에 있는거죠? "

" 응? 그게 궁금해? 조금 있다 같이 가면 알 수 있을꺼야. 크크크.. 너희를 많이 귀여워해줄 사람들이 많아. 걱정하지마. "

" 몇명이나 되는 거죠? "

" 허, 이 쌍년들이 겁도 없이.. 너희는 그냥 가랑이나 벌리고 우릴 즐겁게 해주면 돼. 그럼 먹을것도 주고 잠자리도 챙겨주니까. 알았어? "

" 몰랐다, 이 개새끼야! "

더 이상 듣지 못하고 지윤이가 들고 있던 봉지를 그 남자에게 던져버렸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배트를 휘둘러 날아오는 봉지를 간단히 쳐냈다. 하긴 이런 현실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도 많다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 남자도 자신의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오는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인혜가 계속 말을 걸었고 마지막으로 지윤이가 봉지를 던져 주의를 끌었기 때문이었다.

쉭! 퍼억!

" 명환아! 잘했어! 빨리 들어가자. "

명환이가 소란을 듣고 아픈 다리를 끌고 내려와 뒤에서 기습한 것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나무몽둥이에 살짝 피가 맺혔다. 바닥에 쓰러져 기절한 남자의 뒷통수에서 흐르는 피였다.

" 일단 이 남자도 챙겨야 해. 4층 건설회사 비품실에 묶어두자. "

인혜는 이 남자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명환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렇게 여자둘이 힘을 합쳐 쓰러진 남자를 끌고 계단을 겨우 올라 4층 비품실에 묶고 입을 막아두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지만 이대로 죽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내심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 큰 상처는 아니어서 꼼꼼하게 묶었다.

" 휴우, 일단 당분간 밖으로 안나가도 될 것같네. 그 이후가 문제지만.. "

그런 지윤의 한탄섞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인혜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지옥같은 생활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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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과거사(5) +3 18.07.18 941 21 22쪽
45 과거사(4) 18.07.17 930 17 19쪽
44 과거사(3) 18.07.16 906 16 22쪽
43 과거사(2) 18.07.14 916 18 18쪽
42 과거사(1) 18.07.13 934 21 23쪽
41 만월회(6) 18.07.12 922 16 21쪽
40 만월회(5) +1 18.07.11 956 15 21쪽
39 만월회(4) 18.07.10 964 16 21쪽
38 만월회(3) 18.07.09 978 17 19쪽
37 만월회(2) 18.07.06 991 18 20쪽
36 만월회(1) 18.07.05 1,031 15 21쪽
35 사이퍼(7) 18.07.04 1,028 19 21쪽
34 사이퍼(6) 18.07.03 1,009 18 19쪽
33 사이퍼(5) 18.07.02 995 20 21쪽
32 사이퍼(4) 18.06.29 1,001 20 20쪽
» 사이퍼(3) 18.06.27 1,046 21 22쪽
30 사이퍼(2) 18.06.27 1,081 24 21쪽
29 사이퍼(1) 18.06.26 1,083 22 20쪽
28 쉘터(7) 18.06.25 1,071 27 20쪽
27 쉘터(6) +2 18.06.24 1,192 24 20쪽
26 쉘터(5) 18.06.23 1,067 22 22쪽
25 쉘터(4) 18.06.22 1,068 21 21쪽
24 쉘터(3) +1 18.06.21 1,111 2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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