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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K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JaeK
작품등록일 :
2018.06.18 12:11
최근연재일 :
2018.11.10 10:00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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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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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07,372

작성
18.07.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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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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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19쪽

만월회(3)

DUMMY

B-45. 정확히 48시간이 지난후 인혜일행에게 배정된 거처번호였다. 일반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따로 생활해야 하지만 별도의 동의를 거치면 같이 사는것도 가능하다는 말에 여태껏 같이 생활한 그들이 헤어지는 것보다 같이 사는게 낫다는 생각에 동의를 하고 같은 곳으로 배정받은 것이다.

" 여기는 안전한거죠, 누나? "

" 응, 아까 봤잖아. 최소한 좀비들의 위협은 없을것 같네. 우리를 특별히 구속하려고 하지도 않고 말야. 이정도면 서울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야. "

" 맞아요. 언니. 아까 받은 배식권을 이용해서 언제라도 식량을 받을 수 있다던데요. "

지윤이 아까받은 배식권을 살랑살랑 흔들며 즐거워했다. 명환도 받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 그리고, 여기 가까운 곳에서 물을 끌어와서 공동이지만 샤워실도 있다던데요. 하하하. 이정도면 천국이죠. 비록 배정받은 숙소가 천막이긴 하지만 그래도 비, 바람 막아 줄 수만 있다면 그게 어디에요. "

명환의 말에 눈을 빛낸 두 여자가 물었다.

" 샤워실은 어디인데? 당장 씻고 싶다. "

" 워, 워. 진정하시고.. 일단 거처로 가서 짐을 풀고 같이 갑시다. "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B구역으로 이동하는 그들의 몸은 가벼워 보였다. 마치 희망의 빛이 어깨에 내려앉은 듯 한 뒷모습이었다.

" 여기.. 맞아요? "

멀리서 본 광경은 초록빛으로 둘러싸인 공터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예쁜 천막들의 모임과 같이 보였지만 가까이에서 본 현실은 어디서 징발해왔는지 맨땅에 대형 천막하나만 딸랑 쳐져있는 이곳이 자신들의 거처라고 번호가 적혀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간이침대가 놓여있어 다행히 맨땅에 자리를 깔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그외에는 어떠한 가구나 제품도 없었다. 예전 노부부의 화려한 집에 비하면 길바닥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나은 점은 좀비등 안전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점과 배식등 먹을거리, 생필품등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명환이는 현실을 깨닫자마자 자신들이 가져온 것들을 이용해 여기저기 꾸미기 시작했다. 지윤과 인혜도 그를 도와 내부를 꾸미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같던 텐트도 사람의 손길이 닿자 어느새 그럴싸한 사람이 사는 곳처럼 바뀌어 갔다.

마지막으로 한쪽에 배낭을 쌓고 그 위에 라디오를 올려다 둔 명환은 꾸민 텐트를 돌아다보며 만족스럽게 웃으며 인혜와 지윤을 보며 말했다.

" 뭐, 이정도면 살만하겠는데요. 하하하. 그럼 이곳 지리도 익힐 겸 나가볼까요? "

텐트를 나서자 오후의 햇살이 그들을 비춰주었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일행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B섹터는 주거용 텐트가 모인곳으로 빼곡히 자리한 텐트들의 숫자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나마 계획적으로 지어졌는지 인도가 확보되어 있어 다행히 거리를 걷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A섹터는 물건을 사고파는 자율적인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거래되는 화폐단위는 배식표라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있어 놀란 일행은 다시 걸음을 옮겨 외곽지역으로 나갔다.

외곽, 정확히는 중앙에 있는 3층 본부건물의 뒷편에는 식당, 샤워장, 화장실등 공공건물들이 들어서 있었고 공터가 널찍히 확보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무슨 훈련을 한다고 하는데 지금은 비워져 있었다.

샤워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여자들이 흥분하며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어쩔수 없다는 표정으로 명환이 뒤따라 갔다. 하지만 예전에 캠핑장 공용 샤워장이었던 이 시설은 일정시간동안만 운영한다는 말에 고개를 푹 숙이며 돌아서야 했다.

" 에효.. 어쩔수 없지. 그것도 규칙이니까. 내일까지 기다려보자. "

" 네, 언니. 근데 그 대원들은 여기에 안사나봐요? 이제껏 한번도 눈에 보였어요. "

" 그러네. 뭐 그들은 다른 곳에 있나보지. 고급인력이니 말야. "

명환의 단순한 대꾸에 인혜는 끄덕이며 말했다.

" 그럴지도.. 거기에 비해 경비인력이 좀 허술하지 않아? "

인혜가 철조망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철조망 근처에 높은 곳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보초용 건물도 없고.. 좀비가 들어오면 어떻게 막는거지? 저 철조망이 아무리 튼튼하다고 해도 말야.. "

그녀의 말대로 철조망을 지키는 인원은 출입구에서 본 그 대원들밖에 없는듯 했다. 본부에 몇몇이 더 있다고 가정하면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었다. 실제로 본 이곳에 거주하는 일반인들의 숫자는 최소 몇천명이 넘어 보였기에 무책임하게 관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허술했다.

" 혹시 한번도 이곳에 좀비가 침입한 적이 없는건가? 사람들의 표정에는 좀비에 대한 걱정은 없는것 같던에요. 누나. "

명환이 보기에는 이곳의 사람들은 생활이 팍팍해 인상이 어두운 사람은 있지만 두려움이나 좌절을 느끼는 사람은 본적이 없었기에 이상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에 동의하듯 지윤도 말했다.

" 맞아요. 아까 광장에서 소리치던 아줌마도 그렇고..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도.. 단순히 좀비에 대한 공포때문이 아닌것 같았어요. "

" 그렇다면··· 아마 여기를 만든 사람들은 좀비무리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경로를 다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겠지? 그렇다면 말이 돼. 경로를 알고 미리 좀비무리를 잡는다면.. 그것이 우리가 본 그 장면이었다는 말이지. "

인혜는 가장 그럴듯한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하늘에서 드론으로 좀비무리의 모든 경로를 파악하고 있는 만월회 전략팀은 북한산 쉘터로 이동하는 좀비무리를 사전에 모조리 잡거나 이동경로를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저런 질문과 결론을 내리며 다시 B섹터 자신들의 거처로 돌아온 그들의 눈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집안에 도둑놈이 든 것과 같았다.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 뭐,뭐야. 이거··· "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는 가운데 명환이 달려가 자신들의 소지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 하, 씨발.. 다 가져갔네. 젠장할.. "

" 후우. 우리가 너무 방심했네. 평상시 나갈때 집안에 모든걸 두고 나가는 습관이 이런 결과를 불러올 줄이야. "

인혜가 자책을 했다. 일행은 평상시 자신들의 거처에 모든걸 두고 나가서 포획품을 가져오는 일이 익숙해져 이런 방심을 한 것이다. 당연히 난민이 모여있는 쉘터에 자신 스스로가 지키지 못한다면 빼앗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지만 상황에 따라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하루였다.

" 당장 본부로 가서, 신고해야 겠어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

명환은 분기를 참지 못하고 신고를 위해 본부로 달려나갔고 인혜와 지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남아 있는 배낭과 곳곳에 흩뿌려진 물건을 하나씩 챙기기 시작했다.

" 먹을거리는 당연히 없고.. 생필품도 싸그리 긁어 갔네요. 아.. 언니 그날이 언제에요? 생리대가 하나도 없어요. "

" 난 괜찮아. 손수건을 사용하면 돼. 물도 나온다고 하니까 말야. "

" .. 네. 그나마 안전한 곳을 왔는데, 산넘어 산이네요. "

" 이정도는 위기도 아냐. 우리가 어떤 길을 헤치며 왔는데.. 기운내. 언젠가는 희망이 있겠지. "

서로 위로해주고 있는 가운데 텐트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 계세요? "

" 누구시죠? "

" 아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

여자 목소리였다. 조금은 안심하며 밖으로 나간 그들은 커다란 성경책을 가슴에 앉고 눈웃음지으며 그녀들을 반기는 중년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 안녕하세요. 하느님 말씀을 전하러 왔어요. 이번에 새로 오신분들 맞으시죠? 처음에는 많이 어려워 하시고 당황하시는 분이 많아요. 그럴때 일수록 믿음으로... "

오랜만에 들어보는 종교 설파에 오히려 긴장이 줄어들며 중년여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 ···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교에서 교인을 모집하고 있어요. 여기 이것 받으세요. 언제나 열려 있으니 편안할때 방문부탁해요. 그럼 이만. "

그녀가 작은 사탕을 하나씩 건내며 기나긴 설교를 마치고 몸을 돌려 나갔다. 중간에 뭐라고 대꾸를 하거나 질문을 하게되면 더욱더 길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녀들이었기에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 그래도 시간을 투자해서 사탕이라도 건졌네. "

피식 웃으며 말하는 인혜의 눈에 다른 인물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완장을 찬 남성 몇명과 젊은 여자 한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안녕하세요. 오늘 들어온 새로운 주민이시죠? "

도대체 어떻게 자신들이 오늘 왔는지 방방곳곳에 소문이 났는지 의아해 하며 질문을 해오는 젊은 여자를 살펴봤다. 검정색 투피스차림에 안경까지 쓴 여자는 비서포스를 풍기며 꼿꼿한 자세로 질문을 했다.

" 거주 인원은 몇명이시죠? 성비는? 관계는 가족이신가요? "

신상명세를 조사하듯 질문을 던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인혜가 대꾸했다.

" 이미 들어올때 본부에 다 작성해줬는데요? 지금 무슨 조사를 하시는 거죠? "

" 아, 아직 북한산 자치구에 대해 잘 모르시는구나. 일단 설명부터 드리죠. 이곳 자치구는 주민 만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고 자율적으로 자치구를 형성하고 있어요. 우리는 자치구역을 통제하는 저 만월회의 견제를 위해 주민대표로 나서고 있는 서울자치당 소속이에요. 아까 보셨죠? 우리 당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말이에요. 그곳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희연여사님을 따라 자발적인 모임을 형성해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저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중이죠. "

무슨 말이지 알겠냐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여자를 전혀 모르겠다는 시선으로 바라본 인혜가 대꾸했다.

"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이 자치를 한다고요? 무슨 힘으로? 당장 좀비들이 여길 공격하면 저들의 힘없이 막을 수 있나요? "

자치란 스스로 다스린다는 말이다. 그건 최소한 외부의 침략, 내부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말이다. 근데 저 완장을 차고 어깨에 힘을 주고 있는 청년들이나 이 비서역할에 심취해 있는 여자나 인혜가 보기에는 좀비 한마리도 상대하지 못할 듯 보였다.

" 뭐? 이런···! "

인혜의 말에 발끈하며 나서는 완장남을 손짓으로 말리는 안경비서녀가 빈정상한듯 말문을 열었다.

" 고작 좀비들 따위는 우리 자경대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요. 저들이 장비만 제공해준다면 말이죠. 그런데 만월회에서 그걸 막고 우리들을 통제하려고만 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 정도 수준의 장비만 있다면 우리 스스로 밖으로 나가 더 많은 사람들을 구조하고 어쩌면 서울까지도 수복할 수 있을지 몰라요. 단순히 저들이 주는 밥만 받아먹는 돼지가 되고 싶은건가요? "

안경비서의 말은 논리적으로 틀린곳이 없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이 쉘터의 주민들을 설득해 하나의 여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혜일행이 느낀 밖은 단순히 장비를 가진다고 해서 살아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러면 왜 총기, 화기가 넘치는 군대에서 밀고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들은 지금 자기논리에 빠져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면 충분히 무언가를 할 수 있다. 혹은 세상까지 구할지도.. 라는 비이상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일종의 세뇌이자 선동의 결과물이다. 몇마디의 옳은 말과 그럴듯한 현실을 보여주면 인간은 쉽게 세뇌되고 그 프레임에 자신을 맞혀가기 시작한다. 군중심리까지 더한다면 금상첨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인혜가 다시 물었다.

" 굳이 그 서울자치당에 들어가야 하나요? 이곳에는 그 당 하나만 있는건가요? "

" 흥! 가입하지 싫다면 막지 않아요. 하지만 그 이후에 불이익은 본인들이 감당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저희들의 세력이 가장 크고 그 이념이 옳은 곳은 없어요. "

세력이 가장 크다는 말은 다른 세력도 있다는 말이었다. 인혜는 똑부리지는 어투로 거절을 말했다. 그에 냉정하게 돌아서며 안경비서녀가 마지막 말을 남겼다.

" 후회하실꺼에요. 우리는 이 좁은 쉘터에 만족하지 않고 이상적인 국가건설에 한 기둥이 될 예정이니까, 그때가서 매달리지 마시길. "

그녀를 따라 돌아서는 완장을 찬 남자들은 아쉽다는 듯이 인혜와 지윤이를 훑어보고는 시선을 돌려 따라 나갔다. 결코 좋은 의미의 시선은 아니었다.

" 뭐야? 왜 밖에 다 나와있어? "

본부에 항의하러 갔던 명환이 멀뚱이 서 있는 그녀들을 발견하고 달려오며 물었다.

" 아, 별거 아냐. 생각보다 여기 심각하게 썩었는데.. 큰일이네. "

" 그치. 본부 민원실에 항의해봐도 개인물품은 개인이 관리하라는 말밖에 안해. 지가 무슨 공무원이야? 했던 말 또하고 규정이나 찾고 있고 말야. 도대체 여길 어떻게 관리한 건지··· "

" 휴우. 그래, 그건 확실히 우리 잘못이지. 그런 세상이니까. 그만하고 들어가서 좀 쉬자. 너무 피곤하다. "

자신들의 보금자리, 텐트로 들어서는 그들의 얼굴은 또 다른 피곤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예전의 생존을 위한 피곤함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날 밤, 낮에 당한 기억이 선명한 인혜의 제안으로 텐트 입구에 트랩을 설치해 놓은 일행은 편안히 각자의 침대에 누워 단잠에 취해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입구에 설치해놓은 트랩에서 소리가 울렸다. 크기 않은 소리였지만 사방이 조용한 밤시간대로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그 소리에 선잠에서 깬 인혜는 급히 자신의 손에 익은 몽둥이를 찾아들고 건너편에 나가떨어져 자고 있는 명환이를 푹푹 찔러 깨웠다.

" 흐음.. 뭐야.. 왜 그래? "

" 아무래도 손님이 온것 같아. 일어나봐. "

인혜의 차가운 목소리에 참이 달아난 명환은 급히 자신의 무기를 찾아 손을 더듬었다. 그 사이에 깬 지윤이도 급히 정신을 차리며 사방을 둘러봤다. 아직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밤이라 컴컴한 실내에 서로의 숨소리만 들려왔다.

밖에 누군가가 침입하려다 트랩에 걸려 들리는 소리에 잠시 몸을 뺐는지 별다른 소음이 들려오지는 않았다. 명환이를 필두로 천천히 텐트를 열고 밖으로 나선 일행은 고요한 천막들만 보이는 주변을 조심스레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 아무도 없어. 잘못 들은거 아냐? "

" 아냐, 분명히 트랩에서 나는 소리였어. 희미하게 발자국 소리도 들렸고.. "

" 하아, 이러면 예전이나 다를게 뭐야. 언니, 우리도 어딘가에 몸을 의탁해야 하지 않을까요? "

차라리 예전에는 잠이라도 편히 잘 수 있었는데, 여기는 그런 모든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새로운 위험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한 일행들이었다.

" 도대체, 뭐가 있다고 여기를 오려고 하는거에요? "

" 뭐가 있긴, 너랑 인혜누나가 있잖아. "

그 말의 담긴 의미를 읽은 지윤이 하얗게 질리며 몸을 떨었다. 그런 그녀를 다독이며 명환이를 째려본 인혜가 속삭였다.

" 아무래도 내일 이곳의 세력구도와 정세를 탐문해봐야 겠어.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한거 같아. "

" 네, 누나. 그래야 할것 같아요. 휴우.. 이젠 인간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라니.. 쯧. "

그렇게 다시 텐트안으로 들어서는 일행들을 멀리서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하지만 곧 그 두눈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불안한 밤이 흘러 날이 밝아왔다. 인혜와 지윤이 가장 먼저 한일은 아침에 잠간 문을 여는 샤워장으로 향한 것이었다. 어제의 일을 교훈삼아 명환이는 차후에 교대하기로 하고 남아 있었다.

샤워장에 도착한 인혜와 지윤은 그 길다란 줄에 놀라 몸을 멈추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을 섰는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기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 이거.. 시간내에 못 씻겠는데 말야. 이거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정말.. "

그 긴 줄을 멍하니 바라보던 지윤도 수긍하며 중얼거렸다.

" 쉬운일이 하나도 없네요. 진짜.. 그냥 화장실부터··· 하아, 그것도 힘들겠네요. "

샤워실 옆에 위치한 화장실에도 줄이 길게 늘어선 것을 본 지윤이 한탄을 했다. 뒤늦게 도착한 쉘터주민들 중 많은 숫자가 철책과 가까운 곳으로 삼삼오오 모여서 이동하는 것을 본 지윤이 속삭였다.

" 저기. 저 사람들.. 볼일 보러 가는거죠? "

" 아마도.. 기다리다 날새니 말야. 그나마 다행인건가? 바닥이 흙이라서 말야. "

만약 여기가 아스팔트나 시멘트재질이었으면 이 근방은 온통 똥밭이었을 것이란 생각에 진저리를 쳤다. 그런 그녀들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샤워실 줄을 서고 있는 주민들의 앞줄 쯤에 누군가 접근해서 뭔가를 흥정하더니 표쪼가리, 배식표로 추정되는 것을 받은 사람이 비켜주고 다른 인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배식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깨달았다.

" 그나마 다행이네요. 어제 받은 배식표를 가지고 있어서.. "

조그만한 표는 주머니에 언제든지 가지고 다닐 수 있기에 텐트에 놔두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저 사람처럼 배식표를 주고 샤워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쉬웠을 뿐이었다.

" 일단 돌아가자. 여기서 마냥 기다린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

돌아서서 텐트로 오는 그녀들의 눈에 어제 자신들이 타고온 바이크가 정문을 통과해 본부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그들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지윤은 그들의 모습이 처음만난 그날처럼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 찢어진 슈트, 깨진 헬멧 사이로 보이는 핏자국들.

마치 전쟁에서 진 패잔병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녀들이 만난 그 대원들이니 확신할 수 없지만 좀비들을 개미잡듯이 때려잡는 모습을 상상할때 지금의 모습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 언니, 무슨일 일까요? "

" 글쎄.. 알 수 없지. 단하나, 저들이 무너지면 우리도 같이 쓰러진다는 것은 확실해. "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스레 바이크를 타고 들어오는 그들의 행진을 마냥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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