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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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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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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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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13화 충신으로 죽게 하소서

DUMMY

113화 충신으로 죽게 하소서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생각지 못한 사람들의 말에 임경업은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었다.


만약 이것이 꿈이라면 매우 나쁜 악몽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더 나쁘게도, 지금 그는 꿈을 꾸는 게 아니었다.


“노상승이 너무 빠르다?”

“그러합니다. 물론 황상과 북경의 위협에 저리 기민하게 대응함은 칭찬하기 마땅하나, 그 저의가 온전한지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혹여 반란군 토벌하는 일도 내팽개치고 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부서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노상승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며 임경업은 몇 번이고 눈과 귀를 의심했으나 아쉽게도 그는 매우 정상이었다.


“허나 설령 그랬다고 한들 그의 저의를 의심할 이유가 어디에 있지? 북경이 위험하다고 전하지 않았는가. 그러면 서둘러서 오는 게 당연하지.”


당장 버티면 되고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고 들었으나 불안함이 완전히 떨어진 것은 아닌지라 주유검은 이들의 말을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그는 마음이 슬쩍 움직이는 걸 느꼈다.


“분명 그러하오나 황상의 명령은 반란군을 토벌하고 북경으로 오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랬지.”

“그러면 혹여 그가 반란군 토벌을 마저 마치지 않고 온다함은 황상의 명을 어긴 것이고, 또한 다른 마음을 품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흐음.”


신하들이 입을 모아 의심을 말하고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니 주유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고질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색을 읽었는지 임경업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저 말뿐인 이야기에 확신도 없이 추측만 가득합니다. 이런 말에 귀를 기울이시면 아니 되옵니다.”

“그대는 노상승을 아는가?”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 다른 분들은 그저 의심스럽다, 의심스럽다 하는 데 지금 걱정할 것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우려하는 게 아니라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임경업의 굳은 심지가 담긴 말에 다시금 주유검의 마음이 동했다.


“폐하, 모든 것이 드러나길 기다려서는 늦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일 역시 그러길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기에 사태가 이리 흐른 것이 아닙니까!”


이에 몇몇 신료들이 급히 목소리를 높였는데, 이에 임경업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따로 말하진 못했다.


전에 병부에서 그 혼자 소리 높여 다른 침공로를 예비함이 옳다고 외친 게 수개월은 족히 되었다.


그런데 이유가 빈약하다며 물리친 게 지난날의 병부였고, 다른 신하들이었다.


그러니 자신의 말과 일을 금과옥조 삼음이라는 말이니 나서기 애매한 면이 있었다.


“그래, 그랬지.”


하지만 주유검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임경업은 불길함은 느끼고 당장 말을 하는 것이 옳다 여기며 급히 입을 열었다.


“방비함에 있어서 과함은 부족하다 하지 않겠으나 인사에 있어서 과함은 곧 일어나지 않을 일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혹여 그런 뜻이 없다고 하는데 과히 몰면 억울함에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그런 일을 품은 순간 그놈은 원래부터 그럴 놈인 거다.”


임경업의 말에 주유검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불쾌함을 드러냈다.


이윽고 그는 마음을 굳혔는지 결정을 내렸다.


“노상승에게 사신을 보내겠다.”



***



“지금 뭘 어떻게 하라고?”

“.....군을 둘로 나누어서 반은 북경 수비에 보태고 반은 주변 지역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장군께서는 주변 지역을 구하는 일에 전념하라 명하셨습니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으니 사자는 머뭇거리면서도 조심스럽게 한 말을 반복했다.


이에 잘못 들은 게 아님을 안 노상승은 한탄했다.


“황상께서......하아. 아니다. 그대는 잠시 물러가게.”


노상승의 말에 사자는 급히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하고는 불똥이 튈까 싶어서 재빨리 바깥으로 나갔다.


‘성급하다. 성급해. 눈앞에 있는 적도 치우고, 사방에 흩어진 떼도 치우려고 하다니.’


여러 일을 한 번에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노상승은 지금 대명의 힘으로 그렇게 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다.


응당 북경에 들어가서 방비를 굳히던, 아니면 자신들에게 오지 말고 사방에 있는 오랑캐를 토벌하라고 하던 한쪽으로 전력을 집중함이 옳았다.


노상승이 생각하기에 가장 최선은 북경은 자체적으로 버티면서 그가 군을 이끌고 사방을 휘젓는 청나라 놈들을 박살 내는 거였다.


그러고 나면 더는 두려워할 일이 없었다.


외적이 없으니 남은 건 내부를 다스리는 것.


조금만 더 있으면 화기를 이용한 군대 조련도 쉬워져서 민란은 눈에 차지도 않을 터였다.


허나 이렇게 어중간하게 일을 하라 명하니 노상승이 보기에 이는 아끼려다가 더 크게 수고하는 일로 보였다.


“......어렵고 마음에 차지 않으나 그래도 황명. 따라야지.”


복잡한 마음을 애써 충절로 달랜 노상승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득 노상승은 이게 어쩌면 최악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절반은 주시니 다행이구나.”


당금 황상의 성정과 벌인 일을 생각하니 그가 자신을 고운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음이 확실했다.


최악 당장 죽은 원숭환 장군처럼 취급당해도 이상하지 않건만 그래도 반절은 남겨주니 다행이지 않나 싶었다.


그러나 다행이다 아무리 자신을 위안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하나가 그를 괴롭혔으니, 바로 그가 의심을 사기 시작했다는 현실이었다.


“......하늘이여, 부디 바라건대 충신으로 죽게 하소서.”



***



“그, 내가 할 말은 아니나 이번 일은 참 대단하시더이다.”

“?”


같은 병부시랑임에도 썩 관계가 좋지 않은 진신갑이 돌연 눈치를 살피며 다가오더니 대뜸 꺼낸 말에 임경업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 진신갑은 그가 모른다는 생각에 말을 덧붙였다.


“노상승 장군에 대한 일 말이오. 그거, 환관들이 사주한 거요.”

“......왕승은이 말이오?”

“왕승은? 아니, 그자 말고. 다른 떨거지 같은 욕심쟁이들이지.”


경멸을 숨기지 않은 진신갑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솔직히 그 잘난 위충현이가 죽기 전에 환관 놈들 기세가 어지간했어야지. 그놈들 좋아하는 사람들이 누가 있겠는가마는 그 가운데서도 노상승 장군은 그게 유독 심했지. 감춤이 없다고나 할까.”

“잠깐만.”


진신갑의 말을 듣던 중 임경업은 그의 잘 돌지 않는 정치 머리로도 보이기 시작한 어처구니없는 전말을 깨달았다.


“지금 설마 노상승 장군이 싫어서 환관들이 이 시국에 다른 신료들을 충동질하였다는 말이오? 그리고 신료들은 그걸 좋다고 받아들였고?”

“아주 눈치가 없진 않으시구려.”

“이게 무슨......”


어이가 없다 못해 그런 게 원래 없던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 심정을 이해한다고 하듯 진신갑을 고개를 끄덕였다.


“북경은, 황궁은 그대가 살던 그 어느 곳보다 마경이지.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건 환관들이고.”

“허, 허허.”

“솔직히 말해 나는 그대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소. 헌데 우리 병부를 뭉개서라도 그치들이 뜻을 이루려는 걸 그대가 막았으니 말이나 해주는 게 좋겠다 싶어서.”


진신갑은 그리 말하더니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다요. 난 여전히 그대가 싫고, 편도 들어주지 않아. 하지만 그래도 이런 일에 어리둥절하다가 환관놈들에게 쓰러지는 건 조금 그래서.”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진신갑은 자리를 떠났다.


자리에 남은 임경업은 사자를 보내기 전에 신료들이 주장했던 바를 떠올리며 안색을 딱딱하게 굳혔다.


“오천.”


주유검이 노상승에게 사신을 보내서 그 군대 일부를 나누어서 들이라고 할 때에는 그런가 보다 했다.


아주 나쁜 생각은 아니다 싶었으니 말이다.


여유 병력이 있다면 북경 방어에만 쓰는 게 아니라 바깥에 북경 포위를 위해 남은 적 병력을 건드리는 수도 써볼 수 있으니 아주 나쁘게 보진 않았다.


하지만 이어진 말, 노상승에게 병력 오천 명만 남기면 충분하다는 말에 임경업은 기겁했었다.


사실상 그에게 가서 죽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가 보유한 병력 절반, 이게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지.”


병사라는 건 단순한 병기나 무기가 아니다.


그들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예로부터 병가의 전법은 그들이 사람임을 고려하고 움직였다.


적을 기만하건, 혹은 아군이 잘 싸우게 하는 법이든 모두 병사들이 사람이라는 걸 고려하여 제시된 일이었다.


가령, 대의가 있음을 외친다거나.


가령, 이쪽이 많아 보이게 해서 혹은 준비가 단단함을 보여서 적들을 기죽게 한다거나.



이렇듯 사람의 정신이 전장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았다.


그런데 노상승에게서 병사 오천을 제하고 모두 빼앗으면 병사들도 바보가 아니라서 상황을 읽고 사기가 떨어질 게 분명했다.


노상승이 황상에게 의심을 받아 버림받았다는 극한 상황.


이러한 상황을 알고도 잘 싸울 수 있는 이들이 있다면 임경업은 그 병사들을 진심으로 칭송해줄 마음이 있었다.


하물며 남겨진 오천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천이 아닌 쪽도 이 처사에 당황하여 영향을 받을 게 분명했다.


이러한 영향은 절대로 좋은 쪽이 아닐 게 분명했고, 이는 최악 북경에 식충이 수만을 들이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게 뻔했다.


임경업은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물러서지 않았다.


그 노력의 결과가 절반이었다.


여기에 북경 방비와 주변 지역 구원이라는,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를 붙이는 것도 성공했다.


그렇게 한숨을 돌리고 업무를 보던 중 이상하게 평소와 달리 적극적이던 신료들의 어리석은 행태가 어디서 기원한 지 알게 되었다.


“......머리가 중요하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사람은 살 수 없다.”


말한 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형상을 이룬다 싶더니 곧장 이리저리 형태를 바꾸었다.


고민하던 임경업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했다.


그런 그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전에 그가 조선에서 임금에게 말했던 내용이었다.


“중요한 것은 머리, 중요한 것은 중화가 사방을 아울러 다스림.”


머리라는 것은 보통 수도이자 지고한 이를 가리킨다.


허나 임경업은 이 순간 토목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머리가, 황제가 잡혔어도 명나라는 살아남았다. 이는 중화를 지키려 하는 충신이 대신할 이를 세웠음이다. 머리가 달라졌으나 살았으니 나라와 천하 평안은 머리는 언제고 바뀔 수 있다.’


임경업은 숭정제를 보조하여 명나라가 다시금 안정을 찾으면 그것이 최선이라 여겼다.


지금까지는 그 생각에 추호도 의심이 없었으나 오늘 대전에서 환관들에게 사주받았다고 하는 신료들의 행태를 보았다.


그리고 그에 영향을 받아 주유검이 내린 결정을 생각하니 아무래도 최선은 힘들어 보였다.


‘살려야 한다. 어렵다면 바꾸어야 한다. 여의치 않다면 남겨야 한다.’


이 순간 임경업의 머릿속에서 살려야 할 머리는 숭정제 주유검에서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그가 새로이 살리고자 마음먹은 머리, 그것은 명나라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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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121화 보는 곳은 모두 같다 23.02.03 698 34 13쪽
121 120화 이단아는 달린다 +3 23.02.02 761 34 11쪽
120 119화 걱정하며 숙인다고 하여 나아지진 않는다 +5 23.02.01 772 39 12쪽
119 118화 겨울 바람을 타고 오는 사람들 +3 23.01.31 771 39 14쪽
118 117화 위대하지 않은 상인 +2 23.01.30 776 41 16쪽
117 116화 그 나라는 어디인가 +5 23.01.29 775 39 13쪽
116 115화 불운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2 23.01.28 735 36 13쪽
115 114화 방심은 불운을 부른다 +1 23.01.27 781 33 13쪽
» 113화 충신으로 죽게 하소서 +3 23.01.26 814 41 11쪽
113 112화 사람은 각기 달리 생각한다 +1 23.01.25 767 33 11쪽
112 111화 1년이면 충분하다 +3 23.01.24 796 37 12쪽
111 110화 남겨진 불씨 +3 23.01.23 832 35 13쪽
110 109화 다가온 역사 +2 23.01.22 821 40 12쪽
109 108화 저 너머 +5 23.01.21 834 38 12쪽
108 107화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 +2 23.01.20 825 32 13쪽
107 106화 의심하고 계획하고 +2 23.01.19 834 33 12쪽
106 105화 가까이하며 경계하라 +2 23.01.18 841 32 12쪽
105 104화 북으로 남으로 +2 23.01.17 928 33 12쪽
104 103화 더 넓은 곳으로 +5 23.01.16 911 43 12쪽
103 102화 국사에 시작과 끝은 있되 쉼은 없다 +3 23.01.15 893 41 12쪽
102 101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3 23.01.14 924 39 12쪽
101 100화 이 또한 유학입니다 +17 23.01.13 948 64 16쪽
100 99화 스승과 제자 +4 23.01.12 919 43 12쪽
99 98화 상앙의 추종자 +9 23.01.11 928 48 15쪽
98 97화 논하여 정하라 하다 +1 23.01.10 883 38 12쪽
97 96화 이것이 제 답입니다 +5 23.01.09 916 39 15쪽
96 95화 고하러 가겠다 +7 23.01.08 937 5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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