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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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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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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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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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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7화 논하여 정하라 하다

DUMMY

97화 논하여 정하라 하다


“전하, 신풍 부원군의 뜻을 받아 이루어주소서!”

“절개를 잃은 여인이 모시다니, 죽은 이가 바라지 않는 일은 물론이오 도의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전하, 신풍 부원군의 뜻을 끝까지 물리셔야 합니다!”

“이미 정한 것을 사사로이 바꾸려고 하다니, 이는 농단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궐 밖에 모인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니 질세라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양측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서로가 말을 하면 그 소리를 지우듯 소리를 높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더럽혀진 여인을 들여서 우리도 오랑캐와 같이 되고자 함인가! 그대들도 사대부라면 부끄러움을 아시오!”


이윽고 신풍 부원군 장유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반대하는 자들에게 목소리를 높여 호통쳤다.


그 강렬한 말과 기세에 기가 약한 자라면 찍소리도 못하고 눌릴 터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이들 가운데 그렇게 기가 약한 이는 하나도 없었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는 건 그대들이오! 이미 어쩔 수 없음을 알아 이 일에 그렇지 않음을 주상 전하와 대소신료들이 정했소이다!”


바로 한 사람이 나서서 질세라 큰 목소리로 따지니 먼저 그들을 탓하였던 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법이라 함은 한때의 방편보다 위에 있소이다!”

“한때의 방편? 그대들이 그렇게 높이는 신풍 부원군의 청이야말로 그 한때의 방편이오!”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반박하니 다시 반박이 돌아왔다.


“정도를 가고자 함이지! 옳은 것을 따름에 무슨 방편은 방편이오!”

“하, 제가 부끄럽게 여겨 국법을 무시하고 주상을 능멸하는 신풍 부원군이 정도? 하늘이 알고 있소이다!”


하늘이 알고 있다.


그 말에 신풍 부원군의 뜻을 따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 하나 같이 노기가 서렸다.


저잣거리에서 은근히 도는 소문을 그들도 들어서 알고 있었던 탓이었다.


-신풍 부원군이 죽은 것은 천리를 어겼기 때문이다.


이미 오십을 넘었으니 사실상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오래 사는 이들도 많으니 말하길 좋아하는 이들은 장유가 천벌을 받은 것이 아니겠느냐 심심치 않게 수군거렸다.


그리고 당연히 장유를 위해 모인 이들은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감히 그런 중상모략을 하다니!”

“신풍 부원군께서는 이 시대 최고의 유학자 가운데 하나요! 어찌 그런 망발을 한단 말이오!”

“당장 사과하시오!”


성난 사람들이 당장에 달려들듯이 다가오니 그들을 반대하기 위해 모인 자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풍문이 도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오!”

“부덕하게 처신하여 소문이 도는 것을 어찌 중상모략이라 한단 말이오!”

“당장에 내어 보내고자 하는 한씨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여 상을 치르고 있소!”


정작 말을 꺼낸 사람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말이 좀 과했나 싶어서 눈치를 살피는데, 오히려 주변에서 나서서 따지고 들었다.


이에 말할 기회를 놓치니 아예 강하게 가고자 함인지 그는 큰마음 먹고 외쳤다.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 하나 그르지 않은 사람은 없소이다! 안타깝지만 신풍 부원군께서는 말년이 그러신 것이오!”


그의 말은 기름과 장작을 쌓고 쌓던 자리에 불씨를 가져다 대는 말이었다.


신풍 부원군을 옹호하는 무리가 일제히 낯빛을 굳혔다.


이에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게 지켜보던 포졸이나 시위들은 저도 모르게 손을 꽉 쥐었다.


만일의 사태가 터지면 그들이 나서서 이들을 말려야 한다. 그러나 상대는 사대부들이고 이들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중이니 진압은 할 수 없다.


그런 명령도 없었고 말이다.


여기에 더해 누구 하나 잘못 상하면 덤터기를 쓸 게 뻔했다.


이러니 사대부들을 지켜보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누구 하나 물리적인 충돌이 벌어지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이미 상황은 일촉즉발, 그들이 바라지 않던 일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어명이오!”


그렇기에 그때 들린 선전관의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살았다!’

‘제발 뭐든 해주십쇼!’


기대를 담긴 시선은 물론이요 두 무리의 흉흉한 시선이 오니 선전관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왕명을 전하는 자로서 이런 일에 기죽을 수 없다 여긴 그는 이내에 마음을 가다듬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상전하께서 이번 일에 옳고 그름을 온전히 보이기 위해 공개 논의를 진행하겠다 하셨소!”


공개 논의.


그 말에 사대부들의 눈이 너나 할 거 없이 빛났다.


공적인 자리에서 이기면 그 승자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터였다.


법적인 구속력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이 시대 사론이라 함은 그 자체로 힘을 가진다.


이번 논의에서 이기는 쪽은 그 사론을 등에 업고 상대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할 수 있었다.


따르지 않는다?


그러면 지금 손이 나가려던 것이 낫게 보일 정도로 험한 일이 있을 뿐이다.


이미 양측의 골은 깊어서 말로는 해결되기 힘들었다.


그러니 상께서 아예 한쪽을 옳다고 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하셨다 여겼다.


그리고 양측은 모두 이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여겼다.


“논의하는 날은 보름 후로 정해졌소이다! 그러니 이 일에 소리를 높여 주장하고픈 분이 계신다면 오늘부터 세어 보름 후 정오에 이 자리로 오시오!”


보름 후.


그 말에 사람들이 각각 서로에게 눈을 부라렸다.


“어디 두고 봅시다!”

“하, 누가 할 소리를!”


서로가 체면도 잊고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흉흉하여 지난날 전쟁에서 이런 이들이 있었다면 일당백은 너끈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또한 인수에 맞추어서 자리를 준비할 예정이니 가능하면 미리 이곳에 이름을 올리시길 권유하는 바요!”


선전관은 외치는 소리에 그들 모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들의 눈에 선전관의 옆에 다가와서 탁자를 펴는 관리들이 보였다.


“크흠.”

“에헴.”


각각 쓰라고 하듯 양측에 마련된 탁자에 사람들은 누가 말하지 않았음에도 따로 줄을 서서 이름을 써넣었다.


이윽고 모두가 이름 쓰기를 마친 후 그들은 잠시 더 서로를 보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서 각각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미 양측은 서로를 인정할 수 없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광경이었다.



***



일이 한양 전체에 퍼지는 것은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양반들끼리 입씨름해서 결판내기로 했다?”

“그렇지.”

“......되게 재밌을 거 같은데?”


저잣거리 주먹다짐이나 욕설 싸움도 보고 있으면 질리지 않는데 양반들이 서로 삿대질하며 말다툼하는 광경이라니, 놓치면 꽤나 후회할 거 같았다.


“보러 갈 수야 있긴 한데, 그러다가 애먼 불똥 튀면?”

“그게 또 그런가?”

“아서라. 목숨이 아까운 줄 알아야지. 전쟁 두 번 겪고 살아서 양반네들 다툼에 말려들어서 허무하게 가다니, 먼저 간 친구들이 비웃겠다.”

“허긴.”


전장에서 죽었으면 차라리 나라 위해 싸웠다 자부하기라도 하지, 이런 일로 고래 싸움에 낀 새우마냥 죽으면 그게 무슨 허망한 죽음인가 싶었다.


이렇듯 그 자리에 없었던 이들의 반응은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 그러나 멀리하고 싶은 이야기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자리에 없었음에도 이렇게 넘길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



“어,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다니, 마땅히 나가서 네 아버지가 마치시지 못한 일을 마저 해야지.”


상주임을 뜻하는 상복을 입은 장유의 아들, 장선징의 곤혹스러운 물음에 그의 어미 김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리 상중이라고 하나 더할 나위 없는 기회다. 주상전하께 간청하여 대표로 나가도록 해라.”

“그것이 가당하겠습니까?”

“청하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들어주실 거다.”

김씨는 그렇게 말하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장선징은 그 얼굴을 보며 그의 어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쉬이 알았다.


그의 어미는 기왕이면 전에 그의 아비가 상소를 올렸을 때 그냥 들어주면 좋지 않았나 여기고 있었다.


‘그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장선징은 그게 불가함을 잘 알고 있었다.


조정에서 정한 일은 쉬이 변개할 수 없다.


그것이 아무리 잘못된 것이어도 그렇다.


하물며 이처럼 첨예한 대립이 있는 일이라면 오히려 적당한 잘못이나 제대로 된 일보다 변하기 어렵다.


그 순간 한쪽이 쓸려나가던가, 그렇지 않더라도 반쯤 목에 올가미를 걸고 사는 신세가 될 테니 말이다.


비록 그가 아비처럼 대단하다고는 못하나 그 정도 생리는 알았다.


“설마 그 아이에게 미련이 생긴 것이냐?”

“.......”


추상과 같이 다그치는 어머니의 물음에 장선징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장선징은 지금 제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주저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쩔 수 없었음과 흠으로 여기지 않을 거라 판결하였음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다독여주고 함께 해로해 가야 한다 여기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껄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가 며느리를 내보내겠다고 상소를 올리니 마음이 그리로 기울었다.


장선징은 자신이 아버지보다 못하여 반절도 따라가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다.


해서 장선징은 그를 따르기로 마음을 정했었다.


그러나 주상께서 아버지를 혹독하게 대하고 물리심을 보고 다시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장유가 세상을 떠나 상을 치르던 중 들려온 궐 앞에서 사대부들이 소란하고 한양에 있는 사람이라면 귀천을 막론하고 이 일에 입방아를 찧고 있다는 말에 그 혼란은 한층 강해졌다.


장선징은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알 수 없었다.


아침에 생각이 다르고 점심에 생각이 다르며 저녁에 또 다르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이 바뀐다.


어찌나 고민하였던지 어느 날은 강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숙부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 아이가 참하고 바르며 옳은 아이였음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생겼으니 더는 며느리로 보기 힘들구나.”


어미 김씨의 말이 재촉하니 장선징은 그제야 무거운 마음으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저는 솔직히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네 아버님은 그 학문으로 나라에서 손꼽는 분이시다. 그러니 네 아버지가 주장한 것이 옳다.”

“......예.”


장선징은 간신히 그리 대답하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단호하게 말하였으나 아들의 심란함을 이해하지 못함도 아니었던 김씨는 측은한 눈빛으로 일렀다.


“그간 상주로서 고생하지 않았느냐. 가서 잠시 쉬고 오거라.”

“그리하겠습니다.”


공손히 대답한 장선징은 그대로 바깥으로 나갔다.


홀로 남아있던 김씨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 혼자서는 버겁겠지.”


못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좋게 보아주어도 평범보다 윗줄인 아들 장선징이 한양 사대부 절반과 논의하여 좋은 결과를 얻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하물며 최근에는 상으로 인해 심신을 상하였으니 더욱 쉽지 않을 터, 도움이 필요했다.


“마님, 연산에서 오신 신독이라는 분이 조문 오셨다고 합니다.”

“신독?”


결심하는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김씨는 기억에 있는 이름이다 여겼다.


이윽고 그것이 누구를 뜻하는 것인지 깨달은 김씨는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이, 아니 부군께서 도우시는구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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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65 ageha19
    작성일
    23.01.10 23:34
    No. 1

    연산, 신독 등의 키워드로 찾아보니 그 시절 예학을 집대성해 계승했다는 김집 얘기인 것 같네요. 예학을 빙자한 인습을 만들 위험성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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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119화 걱정하며 숙인다고 하여 나아지진 않는다 +5 23.02.01 772 39 12쪽
119 118화 겨울 바람을 타고 오는 사람들 +3 23.01.31 771 39 14쪽
118 117화 위대하지 않은 상인 +2 23.01.30 776 41 16쪽
117 116화 그 나라는 어디인가 +5 23.01.29 775 39 13쪽
116 115화 불운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2 23.01.28 736 36 13쪽
115 114화 방심은 불운을 부른다 +1 23.01.27 781 33 13쪽
114 113화 충신으로 죽게 하소서 +3 23.01.26 814 41 11쪽
113 112화 사람은 각기 달리 생각한다 +1 23.01.25 767 33 11쪽
112 111화 1년이면 충분하다 +3 23.01.24 796 37 12쪽
111 110화 남겨진 불씨 +3 23.01.23 832 35 13쪽
110 109화 다가온 역사 +2 23.01.22 821 40 12쪽
109 108화 저 너머 +5 23.01.21 834 38 12쪽
108 107화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 +2 23.01.20 825 32 13쪽
107 106화 의심하고 계획하고 +2 23.01.19 834 33 12쪽
106 105화 가까이하며 경계하라 +2 23.01.18 841 32 12쪽
105 104화 북으로 남으로 +2 23.01.17 928 33 12쪽
104 103화 더 넓은 곳으로 +5 23.01.16 911 43 12쪽
103 102화 국사에 시작과 끝은 있되 쉼은 없다 +3 23.01.15 893 41 12쪽
102 101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3 23.01.14 924 39 12쪽
101 100화 이 또한 유학입니다 +17 23.01.13 948 64 16쪽
100 99화 스승과 제자 +4 23.01.12 919 43 12쪽
99 98화 상앙의 추종자 +9 23.01.11 928 48 15쪽
» 97화 논하여 정하라 하다 +1 23.01.10 884 38 12쪽
97 96화 이것이 제 답입니다 +5 23.01.09 917 39 15쪽
96 95화 고하러 가겠다 +7 23.01.08 937 5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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