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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ㅁㄴㅇㄹㅇㄴㄹ

천창무신(天窓武神)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매지컬백정
작품등록일 :
2024.01.31 02:41
최근연재일 :
2024.04.14 14:15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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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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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5,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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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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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일장(一章) – 12

DUMMY

신발이 완성되는 며칠 내내···.


밤부터 아침까지는 마음이 난동을 부리는지라 몸의 열기를 식히기 바빴고, 화창한 낮에는 마음이 진정되어 차분해졌다가도, 해만 졌다 하면 당장 이 집구석 딸내미의 방에 쳐들어갈까 이불을 박찼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후욱후욱.


어찌저찌 들끓는 욕정을 잠재우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양물을 얼르고 달래며 운기조식을 반복한 결과.


띠링! 촤라락.

【삼뢰호흡의 숙련도가 최대로 성장하여 상위 기술로 진화합니다. 기술의 효과로 능력치에 변동이 발생했으며 자세한 사항은 기술창···.】


삼뢰호흡(三雷呼吸) ▶ 오뢰윤전(五雷輪轉)

본격적으로 뇌정을 다스리는 심법. 중급 운기법으로 상위 기술로 연결됩니다. 기술효과 – 정기 0 추가. 숙련도 0/40


하위기술효과 – 정기 20추가


그간 지지부진하던 심법까지 진화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심법의 경지가 깊어지며 더욱 난해해진 탓일까, 오뢰윤전의 호흡법과 운기법을 행하며 명상에 잠기면 어김없이 소녀의 나신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젖가슴과 사타구니가 눈앞에 아른거려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이는 삼뢰호흡 때보다 더욱 강렬한 충동이었다.


혈기가 들끓는 이팔청춘에 아리따운 여인의 몸을 멀리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게 이토록 대단하고 끔찍하도록 어려운 일이었나···.


그런 고로 내가 내린 결론은 무조건 참기.


그래, 참고 외면하는 거다.

적어도 오뢰윤전의 숙련도를 채울 때까지는 꾹 참는 거야.


눈을 질끈 감고 심상 속의 소녀에게 손을 휘휘 휘둘렀다.


먹물에 비친 상처럼 일순 흐려졌다가도 파문이 잠잠해지면 소녀는 달뜬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젖가슴을 손으로 움켜쥐며 나를 유혹했다.


아, 미안합니다.

그냥 거절해서요.


그러니까 적당히 하고 제발 사라지세요. 미안합니다.


아닌가, 내가 왜 미안해?


내가 소녀에게 혹했던 것처럼 소녀도 나름 나를 마음에 들어 했던 눈치였지만, 부모님끼리 약혼을 한 것도 아닌 사이인데 미안할 필요는 없지. 애초에 수청 들러 온 종비라 말을 했으니 내가 내색하지 않으면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고.


이리 생각하며 다른 방향으로 사고를 이끌어나가려 했지만···.


어떻게든 생각을 돌려 소녀의 나신을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진하게 떠오르는 뽀얀 살결 탓에 주화입마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



“잘 어울리는구려.”


대문간에 선 나를 왕자운이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봤다. 튼튼한 쥐색 옷과 짱짱한 가죽신에 두건까지 두르고, 큼직한 곡괭이를 어깨에 걸친 내 모습은 영락없는 일꾼이었다.


“덕분입니다. 옷도 신발도 아주 잘 맞습니다.”

“다행이오.”


나를 보며 웃음 짓던 왕자운이 몇 번 헛기침을 하며 은근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험험, 소협.”

“예.”

“사실 밤수발을 들라 들여보냈던 아이는 사실 내 여식이라오.”

“역시 그랬습니까.”

“눈치채셨구려. 내 알량하게 속이려 했으니 참으로 미안하오.”

“대체 왜 그러셨는지.”


그것 때문에 사람 잡을 뻔했거든요?


“내 소협 같은 총각을 이리 보내기 아쉬워 손을 써봤소이다.”

“예에? 뭘 그렇게까지 해서 절 붙들려 하십니까? 귀한 딸까지 내어놓고.”


왕자운이 머쓱하게 수염을 만졌다.


“귀한 딸이라 그랬던 거요. 둘도 없을 귀한 딸이라서···.”


아쉽다는 듯 혀를 찬 그는 품에 손을 넣었다.


“혹여라도 부담 갖지 마시오. 이미 떠나간 말을 잡을 생각은 없소이다.”

“옙,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부담 없으니 걱정 마시죠.”

“······아, 음. 그렇구려.”


품에서 손을 꺼낸 그가 은조각 세 개를 내밀었다. 엊그제 호패 값으로 내가 지불했던 것이었다.


“이걸 왜?”

“내 옹서의 연을 맺지는 못했으나 앞으로 좋은 사이로 지내고자 수를 좀 써보겠소. 받아 주시오. 어흠!”


은조각을 든 손이 민망하다는 듯 헛기침을 뱉으니 받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손을 뻗어 은조각을 챙겨 품에 넣었다.


“감사합니다. 신세는 잊지 않으니 차후에 더욱 귀한 금은보화로 갚겠습니다.”


사흘 내내 포근한 잠자리에 기름진 고기와 술을 대접받고, 아껴둔 구승포와 사슴가죽으로 옷과 신발을 지어주고, 심지어 딸까지 내어주려 했으니 정말 큰 신세이긴 했다.


나중에 재물이 많이 모이면 황금에 귀한 진주나 벽옥을 더해 돌려줄 생각이었건만, 왕자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세는 무슨, 금으로 되돌려줄 필요는 없소이다. 그보다 혹여 세를 키우고자 한다면 나를 찾아주시구려.”

“예?”

“호패로 장난질하는 걸 봐서 알겠지만 대대로 이 일대를 다스린 세월이 쌓여 백성들과 관리들도 무시를 못 한다오. 때가 되면 꼭 찾아주시오.”

“옙, 그리하죠.”

“내 조만간 사일노사를 찾아뵐 터이니 소협의 안부도 전해드리겠소.”

“아무쪼록 무탈히 다녀오십쇼.”

“내 무슨 일이 있겠소. 소협이나 무탈하길 빌겠소이다.”


그리하여 발길을 돌렸을 때, 뒤에서 조금 볼멘 듯한 작별인사가 들렸다.


“그런데 말이외다! 소협도 잘났지만 내 딸내미도 어디 가서 자색으로 빠지는 녀석은 아니올시다. 잘 가시오!”


역시, 딸내미 무시당한 일로 앙금이 남긴 남았었나 보군.



***




곤명현의 성시에 근접하니 인파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이 봇짐을 이고 수레를 끌며 오가는 모습을 마주했다.


“자자, 줄을 서시오!”

“똑바로들 서시오! 호패 검사가 필요한 사람은 이쪽, 이미 확인된 사람은 저쪽으로!”


왕자운에게 들었던 것처럼 성문 앞에 성내출입을 하기 위해 호패를 검사받는 사람들이 줄줄 늘어서 있었다. 이들 대부분 관아에 가서 관문통과에 필요한 통행증인 노인(路引)을 발급받기 위해 줄을 선 장사꾼들이었다.


하지만 내겐 왕자운이 발급한 노인이 있었다. 굳이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이 곧장 성문으로 다가갔다.


“음? 처음 보는 얼굴인데? 뉘쇼?”

“저건 또 무슨 곡괭이야. 뭐가 저렇게 생겼어?”


창을 든 군병이 내 앞을 가로막고 눈알을 굴렸다. 이것들을 마주하고 있자니 속에서 천불이 끓어올라 당장이라도 곡괭이를 휘두르고 싶었으나 꾸욱 참아냈다.


“받으쇼.”


가죽봉투 안의 비단종이와 호패를 내밀었다. 그를 받아든 군병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통행증이 상급인데?”

“곤명현 태석촌의 강연이라, 조금만 기다리쇼. 외지인은 통행증이 있어도 이것저것 봐야 하는지라.”

“뭐, 더 빨리 가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이것들은 호패와 상급의 통행증이 있음에도 모르는 얼굴이라고 일부러 지체하고 있었다. 돈을 내놓으면 안으로 보내주겠다는 심산이었다.


대놓고 뒷돈을 뜯어내려는 꼬라지가 산적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변방 수자리들의 기강이 완전히 해이해져선 언제 오랑캐가 들이닥쳐도 이상하지 않을 꼴이었다.


이 일은 나만이 겪은 게 아니라 옆줄도 마찬가지였다.


“헤헤, 나으리. 잘 좀 부탁드립니다요.”

“고작 이거야?”

“사정이 여의치 않은지라···.”


저게 무슨 뒷돈인가, 앞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네.


성문을 통과하겠다고 일개 병사 나부랭이에게 얼마 없는 푼돈이라도 찔러주는 이들의 처지가 참 딱했다.


그 모습을 빤히 보고 있으니 앞에 선 군병이 나를 불렀다.


“어이 덩치 좋은 형씨, 우리 고생하는데 뭐라도 좀 챙겨주쇼. 그럼 빨리 보내주겠수다.”

“사람이 거 눈치가 없어. 새파란 형씨가 말이야.”


곡괭이를 쥔 손에 힘을 줬다 풀었다 반복하다가, 이곳의 군병을 모조리 적으로 돌릴 수는 없는지라 결국 배낭에서 돈주머니를 꺼냈다.


이는 일전에 무너진 성보에서 흑도들을 죄다 죽이고 얻은 동전이었다.


자그락, 짤랑.


군병들의 손 위에 동전을 넉넉하게 쌓아줬다. 무슨 달달한 엿을 기다리던 아이들처럼 너도 나도 손을 내미는 통에 금세 주머니가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이거 젊은 친구가 잘 배웠네.”

“참 예의 바르구만.”

“호패도 통행증도 이상 없으니 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시구려.”


이놈들의 작태가 굉장히 불쾌하고 짜증났지만 겨우 눌러 참고 성문 안으로 들었다.


성내의 시전과 약방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한 뒤에 반관에 앉아 밥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둥둥둥!!

두—웅, 두—웅!


갑작스레 성루의 북과 징이 울리더니 무장을 한 군병이 저자를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성문을 닫아라!”

“출입을 통제하라! 신원이 불분명한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성내로 들어왔더니 출입통제라, 이게 뭔 황당한 일이야.


창밖으로 고개를 빼고 저자를 구경하고 있으니 반관의 주인이 달려와 창문을 홱 닫았다.


“총각, 저런 거 보는 거 아냐. 외지인이면 눈 마주치지도 말어.”

“무슨 일인지 아세요?”

“아니, 모르는데 군병들이 성문 걸어 잠그라는 거 보면 보통 일이 아닌 거 같어. 괜히 눈 마주쳤다가 사달 나는 수가 있으니 관심 끄고 밥이나 먹어.”


주인장은 내 앞에 음식을 내려놓곤 황급히 달려가 곳곳의 창을 죄다 닫아 가게를 단속했다.


“이런 큰일이구먼.”

“왜 저래, 오랑캐라도 쳐들어왔나?”


거친 기장죽에 푸성귀 나물을 먹으며 반관의 손님들이 뭐라 떠드는지 귀를 기울였다.


“자네는 무슨 일인지 아나?”

“낸들 알겠나? 좀 기다리면 슬슬 말이 돌겠지. 괜히 설치지 말고 얌전히 있자고.”

“난리는 아니어야 할 텐데···.”


그들도 지금 상황에 관해 별다른 내용을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알게 된 건 그릇을 치우고서도 한참 지났을 때였다.


덜컹!


반관의 문이 활짝 열리며 창칼을 든 군병들이 들이닥쳤다.


“다들 호패를 꺼내시오!”

“수상한 행동을 하면 즉시 칼맛을 보게 될 테니 경거망동 말고 얌전히 지시에 따르시오!”


손님들의 절반은 이곳 사람인지라 병사들과 안면이 있어 그다지 꼼꼼하게 검사하지 않았으나, 나머지 절반은 외지인인지라 호패며 소지품 등을 아주 꼼꼼하게 검사했다.


“배낭에 뭐가 들었소?”

“별거 아닙니다요. 그냥 이런저런 약초랑 잡다구리한 것들인데···.”

“바닥에 쏟아 보시오.”


군병들은 짐짝의 모든 걸 확인하고서야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풀어줬다. 물론 거기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 내 배낭 안에는 온갖 금은보화가 가득한 상황, 저것들이 이를 확인한다면 일이 몹시 귀찮아질 터였다.


군병을 이끄는 대정이 다가와 나를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노려봤다.


“······뭐냐, 무슨 덩치가 이렇게 커. 몹시 의심스럽군.”

“덩치는 부모님께 받은 내 덩치니 신경 끄시고, 이거나 확인해 보쇼.”

“음.”


대정은 식탁 위에 늘어놓은 호패와 통행증을 확인하곤 내 배낭으로 눈을 돌렸다.


“신분은 정확하구만. 그럼 그 짐짝 안의 물건을 바닥에 다 풀어놓으시오.”

“흠, 꼭 그래야 하우?”

“다른 이들도 죄다 확인했소. 잔말 말고 어서 하시오.”


일이 틀어질 걸 각오하고 곡괭이를 꼬나쥐려 할 때, 대정의 뒤에 있던 놈이 주둥이를 나불거렸다.


“대정 나리, 이 총각은 아까 한 시진 전에 성내로 들어왔습니다.”

“그래?”

“별다른 거 없었으니 굳이 털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저 새끼는 아까 돈을 두둑하게 받아 챙겼는지라 돈값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만약 여기서 배낭을 풀었다가 안에서 수상한 거라도 나오면 자신이 추궁을 당할 일이었기에 좋게좋게 넘어가려는 속셈도 있었을 것이고.


입맛을 쩝 다신 대정은 손을 가볍게 저었다.


“뭐, 그럼 그런 거겠지. 전부 확인했으니 다음으로 이동한다.”

“옙!”


대정이 군병을 이끌고 반관을 나가는 중에 주인장이 병사 하나를 붙들고 물었다.


“이봐, 이게 무슨 일인가?”

“그게 말이오···.”


병사는 고개를 들이밀어 나지막이 말했다.


“간밤에 낭장(郎將) 나으리의 목이 달아났답디다. 그래서 흉수를 찾는 중이올시다.”

“···흡?!”


주인장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병사는 눈알을 굴려 주변을 살피곤 나머지 말을 했다.


“혹시 옛날에 대리시경을 참수하고 목을 이부자리 위에 늘어놓았던 무림고수 이야기 들어보셨소? 꼭 그 이야기처럼 해놨다 하니 수상한 놈을 보면 바로 알려주시구랴.”

“아, 알겠소.”


그를 엿듣던 나도 흠칫 놀랐다.


‘본좌는 일참파천절대무극도(一斬破天絶對武極刀)의 전승자로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요사스런 축생을 도축했느니라. 하지만 고작 열 마리 밖에 죽이지 못했으니 저승에서 스승님을 뵐 낯도 없는 소인배에 불과하다.’


대리시경을 습격해 목을 쳐낸 무림고수라면 신풍노사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새 새로운 협객이 나타나 부패한 관리를 썰고 다니나, 노사와 지내던 세월이 스쳐지나갔다.


‘노사, 제자가 어떤 사람인데?’

‘동방태호(東方太虎), 이제 스물다섯이나 됐겠구먼. 그동안 나 없이 어떻게 지내고 있었으려나 모르겠다···.’


이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정수리에 벼락이 꽂힌 것처럼 몸을 튕겼다.


동방태호!


설마 신풍노사의 제자가 나타났다는 건가, 사건의 범인이 동방태호라 확정 지을 수는 없지만 왠지 그럴 거라는 예감이 강렬하게 밀려들었다.


“총각, 총각 왜 그래. 체했어? 배 아파?”

“···아뇨, 아무것도 아녜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깜짝 놀랐잖아. 아픈 거 아냐? 안색이 안 좋은데.”

“아뇨아뇨,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자리에 앉았다.


지금 동방태호는 어디에 있을까, 지도창을 들여다보며 찾아봤으나 그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



다음날.


대정에게 손마디만 한 은조각을 먹였더니 의외로 쉽게 성문을 열어줬다.


정식으로 나온 호패와 통행증도 소지했겠다, 낭장의 목을 일격에 쳐낸 것이 날붙이였기에 곡괭이를 들고 다니는 나를 크게 의심하지 않은 덕도 있었다.


내 행색은 영락없는 일꾼으로 어디 밭 갈러 가는 건장한 청년에 불과했으니까.


“상태창 대협, 혹시 동방태호를 찾을 길이 있을까?”

【감지범위 안에 들어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래.”


몹시 아쉽기는 해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동방태호를 찾기 위해 산을 들쑤시고 다닐 여유가 어디에 있겠나.


「지상임무 제 일 장, 혈육을 찾아서.」


• 도하

• 도균

• 도찬

• 도지화

• 도석재


내 형제들이 서로의 생사도 모르고 죽을 고생을 하고 있으니 어서 구만리 머나먼 여정을 속행해야 했다.


우선 가야 할 곳은 광주(廣州)의 반우현(番禺縣), 목록 중 가장 가까운 곳이라 하나 걸어서 얼마나 걸릴지 짐작도 못할 머나먼 땅이었다.


“덩치 큰 총각, 자네 덕에 같이 나왔구먼.”

“고마우이, 행색을 보아하니 일꾼 같은데 어디로 가려 하나?”


같이 성문을 나온 사람들의 질문이었다.


“광주로 갑니다. 광주 반우.”

“광주? 광주가 어디였더라?”

“모르지. 내가 고향 벗어난 적도 없는데.”


볕에 바짝 마른 나무처럼 주름 자글자글한 노인들에게 제각각 떠들었다.


“거기 있잖어. 예전에 남해군이라고 불렀어.”

“아아, 저 멀리 남해군? 언제부터 그랬나?”

“이십 년도 넘었잖어. 왜 이래 이 노인네가, 벌써 노망이 났는가?”

“아직 팔팔햐.”


서로 저마다 이야기를 꺼내며 떠드느라 정신이 없어 이미 나는 뒷전이었다.


이윽고 함께 길을 걷던 노인들이 하나둘 떠나고, 나와 동행하는 건 지팡이를 짚은 호호할머니 한 분이었다.


“저기 총가악.”

“예?”

“광주로 간다고 했지이?”


할머니는 움푹 팬 눈으로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내 이야기를 들어서 아는데, 거기 아주 흉흉한 곳이야. 사내고 계집이고 죄다 해적질하는 것들이라 하더구머언? 그 먼 곳까지 가는 길도 화적떼가 나타나서 난리고 말이야···.”

“그런가요?”

“조심해애, 여기서 며칠 가면 관에서 손 놔버린 산적이랑 수적이 노략질한다고 하니까는.”


그리 말한 할머니는 작은 촌으로 이어진 샛길로 들어섰다.


“···해적에 수적에 산적이라. 뭔 하늘 아래에 도적떼가 이리도 많나?”


혼자 남은 나는 할머니의 말을 곱씹으며 산길을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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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일장(一章) – 16 24.04.11 43 1 15쪽
28 일장(一章) – 15 24.04.10 50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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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일장(一章) – 13 24.04.08 47 1 17쪽
» 일장(一章) – 12 24.04.07 51 1 16쪽
24 일장(一章) – 11 24.04.06 51 1 16쪽
23 일장(一章) – 10 24.04.05 52 1 14쪽
22 일장(一章) – 9 24.04.04 60 1 19쪽
21 일장(一章) – 8 24.04.03 61 1 17쪽
20 일장(一章) – 7 24.04.02 62 1 17쪽
19 일장(一章) – 6 24.04.01 68 1 17쪽
18 일장(一章) – 5 24.03.31 70 1 16쪽
17 일장(一章) – 4 24.03.30 77 1 14쪽
16 일장(一章) – 3 24.03.29 75 1 16쪽
15 일장(一章) – 2 24.03.28 89 1 13쪽
14 일장(一章) – 1 24.03.27 110 1 14쪽
13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3 24.03.26 120 1 14쪽
12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2 24.03.25 121 1 14쪽
11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1 24.03.24 145 1 12쪽
10 나락굴(奈落窟) – 10 24.03.23 124 1 15쪽
9 나락굴(奈落窟) – 9 24.03.22 133 1 13쪽
8 나락굴(奈落窟) – 8 24.03.21 139 1 16쪽
7 나락굴(奈落窟) – 7 24.03.20 145 1 13쪽
6 나락굴(奈落窟) – 6 24.03.19 164 1 14쪽
5 나락굴(奈落窟) – 5 24.03.18 182 2 11쪽
4 나락굴(奈落窟) – 4 24.02.02 308 4 14쪽
3 나락굴(奈落窟) – 3 24.02.01 349 3 12쪽
2 나락굴(奈落窟) – 2 24.02.01 391 3 17쪽
1 나락굴(奈落窟) – 1 24.02.01 561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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