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ㄴㅁㄴㅇㄹㅇㄴㄹ

천창무신(天窓武神)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매지컬백정
작품등록일 :
2024.01.31 02:41
최근연재일 :
2024.04.14 14:15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4,019
추천수 :
42
글자수 :
215,581

작성
24.04.03 14:05
조회
61
추천
1
글자
17쪽

일장(一章) – 8

DUMMY

도착한 토번족 소굴에는 의외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부락의 토번족들 모두가 겁에 질려 무릎을 꿇었고 광장 한가운데에는 족장에 버금가는 신분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로 죽었다.


그런데 놈의 뒤로 오 장 길이의 아주 깊은 검흔이 남아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찔렀기에 땅속으로 파고든 부분이 얼마나 길지는 알 수 없었다.


설마 찌르기로 땅을 갈라버린 건가, 부락의 토번족들이 죄다 항복한 이유가 이거였나?


중원의 무인들도 그렇지만 오랑캐들도 전장의 명예를 굉장히 중시한다고 했었는데, 사일검객이 어떤 신기를 선보였기에 전의를 상실한 걸까?


“이 썩을 놈들, 하도 패악을 부려대서 언제 한 번 손봐주려 했는데 오늘이 그날이구만.”

“노인장, 살려주십쇼. 착하게 살겠습니다.”

“살려주십쇼. 말썽 안 부리겠습니다.”


사일검객이 나를 돌아봤다.


“총각, 살려달라는데 어떡할까?”

“글쎄요, 귀찮게 다 죽여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아까는 기를 쓰고 찾아 죽이더니 이제는 귀찮아서 살린다고?”


필요한 만큼 죽이고 임무조건 달성했는데 굳이 몰살할 필요까지야, 철천지원수나 나를 적대한 놈들도 아닌데 말이야.


“됐습니다. 어차피 죽일 만큼 죽였는데 적당히 혼만 내고 돌아가시죠.”

“어떻게 혼을 내라는 말이야?”

“뭐, 손을 자르던지 정강이를 으깨던지? 아니면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서로 뭐? 거 빌어먹을 곳에서 대체 뭘 배워 온 거야.”


머쓱하게 콧잔등을 긁고는 빛기둥이 세워진 곳을 향해 휘적휘적 걸었다.


“어차피 다 제압된 상황인데 알아서 하십쇼. 저는 보물이나 챙기러 가렵니다.”

“그래, 알았으이.”


나무로 지은 오랑캐 가옥으로 들어가자 빛기둥이 솟구치는 가죽부대가 보였다. 아가리를 풀어 내용물을 확인하니 도굴 당시에 봤었던 금관과 허리띠 등의 보물이 확실했다.


띠링! 촤라락.

【임무완료.】

「······을 완료. 보상으로 경험치 300획득. 수령 시에는 하단의 수령이라 적힌 단추를 눌러주세요.」


자루를 챙겨 바깥으로 나왔다. 너른 공터에는 아까보다 더 많아진 토번족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중 기골이 좋은 중년인은 하반신이 으깨져 내장을 질질 쏟아낸 족장의 시체를 앞에 두고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복수를 천명하고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나 싶었지만···.


“전 족장의 주검 앞에 맹세합니다. 앞으로 패악질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패악질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패악질을···!”


사일검객은 대검으로 오랑캐들을 한 바퀴 주욱 가리켰다.


“앞으로는 괜히 조용히 살아가는 이민족들 건드리지 말고, 말 타고 노략질해서 여인들 보쌈하지 말고, 정 싸우고 싶거든 토번족끼리 고향에 돌아가서 죽을 때까지 치고받아라. 거기서 승리를 쟁취하고 왕이나 해먹으란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짤막한 훈계가 끝나자 미리 준비했던 것처럼 토번족 하나가 작은 목함을 들고나왔다. 놈이 열어 속을 내보인 목함 안에는 자잘한 은조각과 금조각이 꽤나 들어있었다.


재물을 확인한 사일검객이 가소롭다는 듯 입매를 구겼다.


“이놈! 내가 네놈들처럼 노략질이나 하러 온 줄 아냐? 이건 뒈진 놈들 장사 치를 때나 써라. 괜히 이런 거 받았다가 나중에 네놈들 혼낼 일 있을 때에 면피용으로 말 꺼낼까 무섭다.”


토번족들이 뭐라 꿍얼꿍얼 말했지만 사일검객은 귓등으로도 듣는 척을 하지 않았다. 대검을 칼집에 꽂고는 곧장 등을 돌렸다.


“총각, 다 챙겼어?”

“네.”

“그럼 가자고. 가서 어죽에 술이나 좀 들이켜야겠어.”

“아직 날이 저물지도 않았는데요?”


내 물음에 사일검객은 인상을 찡그리며 코를 틀어막았다.


“사람 죽인 날에는 코에서 피비린내가 진동을 해, 자네는 아무렇지도 않아? 빨리 가서 씻고 술로 입 좀 헹구자고.”



***



토번족이 몰려와 말을 끌고 가고 송장을 치웠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인육시장이 될 뻔했던 어시장은 사람들이 몰려 물을 뿌리고 벅벅 닦아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막손파의 세 소년도 식탁에 박힌 화살을 뽑고 물동이를 나르다가 우리를 보고 반색을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요.”

“대협, 정말 감사합니다.”

“우와아, 이걸 어떻게 찾아오셨지?”


얼굴이 퉁퉁 부은 셋은 자루 안의 보물을 보며 헤벌쭉 웃었다. 한데 대장 격인 막손은 금세 표정이 어두워져선 나를 보고 쭈뼛거렸다.


“저기, 대협···.”

“형씨, 무슨 일인데.”


막손은 자루 안에서 황금허리띠를 꺼내 내 앞으로 밀었다.


“이건 보답입니다.”

“안 줘도 되는데.”

“아녜요, 받으십쇼.”


내가 받나 안 받나 눈치를 슬슬 보다가 또 자루에서 금관을 꺼내 내 앞으로 내려놓았다.


“이것도 받으십쇼.”

“그럼 남는 게 뭐가 있어?”

“목걸이도 있고, 아직 몇몇 있잖습니까.”

“됐어. 이렇게까진 필요 없어.”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에 경악과 탐욕이 번들거렸다. 아까까진 사일검객이 두려워 벌벌 떨던 주인장도 갖가지 보옥으로 장식한 황금덩어리들을 보고는 허리를 굽히고 다가와 방긋 웃었다.


“어르신, 안주는 뭘로 준비할깝쇼?”

“죽은 좀 지겨우니까, 혹시 쌀밥 있어?”

“시간 좀 걸리기는 해도 있긴 합니다요.”

“그럼 쌀밥에 생선탕이랑 앞다리구이, 여기에 다른 요리 셋 정도는 주인장 알아서 내어.”

“예이, 그럼 술부터 내겠습니다!”


주인장이 주방으로 향한 뒤, 막손이는 나를 간절하게 바라봤다.


“대협, 그냥 다 드릴 테니까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요?”

“아니아니, 부탁은 하지 말고.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기 쉽게 설명을 해.”


갈 길이 먼데 언제까지 이곳에서 돌발임무에 묶여있어야 하나, 부탁이라는 말에 난색을 표하니 막손이 시무룩해졌다.


“그게, 보셨다시피 보물이 있어도 지킬 힘이 없습니다. 어디 몸 의탁할 곳도 없구요···.”

“비빌 곳 찾다가 내가 적당해 보여서 보물 바치고 나를 따라다니고 싶었다. 이 말이야?”

“옙···.”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사일검객이 묻고, 밥버러지가 대답했다.


“얘들아, 너희 집이 없냐?”

“할아버지, 저희들 전부 고아 출신이라 집이 없습니다. 장가갈 나이가 다 됐는데도 밭뙈기 하나가 없어 자리를 못 잡았습죠.”

“그럼 막일이라도 하면서 자리를 잡아야지, 뭐 잘났다고 보물을 찾아 들쑤시고 다니는 거야.”

“마음 붙일 곳이 있어야 자리를 잡지요.”

“허어, 어디 출신인데 마음을 붙이니 마니 하는 거냐?”


무슨 일인지 밥버러지가 동무들의 눈치를 봤다. 영 내키지 않는 둘의 표정을 살피곤 곧장 입을 열었다.


“저는 엄마가 아빠한테 납치당해서 태어났는데 여섯 살 때 엄마가 도망쳤습니다. 아빠는 돌궐 출신이었는데 아홉 살 때 칼 맞고 죽었습죠. 얘는 푼돈에 팔려왔다가···.”

“야잇, 그만! 그만 좀 떠들어 이 멍청한 새끼야! 니 얘기만 씨불였으면 됐지, 뭘 우리 이야기까지 다 나불나불 늘어놔!”

“이 븅신이 눈치를 봤으면 하질 말아야지, 눈치는 눈치대로 보고 떠들 건 다 떠드네??”


투닥대는 막손파를 앞에 두고 눈꺼풀을 내린 사일검객은 술이 상에 깔리고서야 눈을 떴다.


“이 형은 먼 길을 가야 해서 너희들 보살필 여력이 없는 사람이다. 다들 갈 곳이 없으면 내 수발이나 들면서 살아라. 그럼 무공 한 자라도 가르쳐 줄 테니.”

“저희 글 모르는뎁쇼.”

“글월이라고 안 가르치겠냐. 헛짓거리하지 말고 이 할애비 따라가자.”


막손은 육척대검을 유심히 관찰했다.


“···할아버지께 배우면 저도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낚아채고 그럴 수 있는 겁니까요?”


아까 사일검객이 지척지간에서 쏜 화살을 일수에 낚아채던 모습이 꽤나 감명 깊었던 모양이었다.


“화살만 낚아채겠냐? 평생 정진하면 저 하늘의 해도 찌를 수 있다. 내 검법이 그리 우스운 검법이 아니야.”

“정말···인가요?”

“내가 왜 너한테 거짓말을 하겠어. 믿기 싫다면 믿지 않아도 된다만, 그럼 이대로 보물을 들고 너희들끼리 떠나야 할 거야.”


눈빛을 교환한 막손파의 셋은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할아버지 따라가겠습니다요.”

“글이랑 무공 가르쳐 주시면 제 몫 보물을 드립죠.”

“헤헤, 저도···.”


사일검객은 수염을 근엄하게 쓸어내렸다. 술을 홀짝 마시고는 더욱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따라가기로 했으니 오늘부터는 이 근처의 객점에서 한동안 지내자. 보물을 팔아 점창산에 집과 사당을 짓기 전까지는 여기 머물면서 글공부부터 시작하자꾸나. 뭔가를 배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사내라면······.”


그 후로도 구구절절 잔소리가 이어졌다.


근데 뭐, 그러건 말건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나는 따끈한 쌀밥을 먹다가 또 눈물이 터지는 바람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



동이 트지도 않은 새벽녘.


배웅을 나온 사일검객은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한 보퉁이나 꾸려 내게 건넸다.


“내가 한 이야기는 잘 기억했겠지?”

“예, 물론이죠.”

“그 친구한테 가서 돈 좀 쥐여주면 호패를 만들어주니 성내 출입도 가능할 거야. 잊지 말도록 해.”

“옙, 감사합니다.”

“그래, 다음에 또 보자고. 나는 여기서 의천맹 놈들 있나 없나 감시하면서 터를 닦고 있을 테니 주기적으로 연락해.”

“그럴까요?”


사일검객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네도 알다시피 혼자서 거사를 치를 수는 없잖아. 나도 대의니 뭐니를 떠나서 내 친구 복수에 동참은 해야지. 힘든 길 혼자 가기보다는 같이 가는 게 낫고.”

“알겠습니다. 앞으로 종종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신발도 맞추고 옷도 새로 맞춰서 깔끔하게 하고 다녀. 그래야 사람들이 얕보지 않는 거야. 또 아무한테나 반말 찍찍 지껄이지 말고, 훌륭한 부모님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예의 지키겠다고 약속해.”

“옙,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몸 건강히 지내고 계십쇼.”


손을 모아 작별인사를 건네고 몸을 돌렸다.


“아, 총각 잠깐. 잠깐잠깐.”

“예?”


뒤를 돌아보자 사일검객이 어느새 육척대검을 뽑아 나를 겨누고 있었다.


“그 파심뢰정이라는 초식 좀 보자. 덤벼 봐.”

“예? 노사한테 파심뢰정을 후려갈기라는 말인가요?”

“그래, 나한테 시원하게 곡괭이 휘둘러.”

“···위험한데.”


그러자 사일검객이 피식 웃었다.


“우선 해 봐. 나를 믿고 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뭐, 알겠습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곡괭이를 들어올렸다.


“그럼 갑니다.”

“응, 그래.”

“비다르나아!!!”


우렁찬 기합과 동시에 풀쩍 뛰었다. 뇌기가 서린 송곳날이 사일검객의 코앞으로 떨어졌다. 혹여라도 죽을까 싶어 빗겨 휘둘렀으나 이는 내 기우에 불과했다.


떠어어엉!


사일검객의 검첨이 정확하게 송곳날의 부리를 찔렀다. 귀가 먹먹해지는 금속음이 터지며 내 몸이 뒤로 튕겨나갔다.


허공에서 한 바퀴 공중제비를 넘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착지했다. 곡괭이를 쥔 왼손이 얼얼했다.


“···어떻게?”

“총각, 파심뢰정이라는 초식이 매섭기는 한데, 아직 진짜 고수들을 상대하기에는 속도가 부족해. 더 단련해야겠어.”


육척대검을 납검한 사일검객은 내게 손을 휘휘 저었다.


“어서 가, 시간 날 때마다 꾸준히 수련하는 거 잊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그럼 진짜 갑니다.”

“그래, 조심히 가.”


등을 돌려 발을 내디뎠다.


띠링! 촤라락.

【조원이탈로 패거리 해체.】


여명이 밝지 않아 어둑한 세상이었으나 걷는 데엔 어려움이 없었다. 내 주변으로 두둥실 떠오른 족자들이 시원하도록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기에 먼 곳까지 훤히 보였다.


삿갓을 들어올리며 자신만만하게 혼잣말을 했다.


“좋아, 그럼 가볼까.”


저 아득한 너머에 세워진 빛기둥을 향해 해와 달이 자리를 바꾸는 동안에도, 비가 내리건 바람이 불건 걷고 걸어 구불구불한 산길을 나아갔다.



***



영창군을 떠난지 벌써 닷새, 백상주를 연습하며 무식하게 달렸지만 제대로 된 길이 없는 지역인지라 곤명현까지는 아직 사흘 정도가 더 소요될 상황이었다.


“···끄윽.”


원래라면 며칠 더 걷고 달리는 일이야 큰 문제가 없어야 했지만 지금 내 몸뚱이는 여정을 버틸 여력이 없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비를 맞아 몸이 말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나만 비를 맞은 게 아니라 말린밥과 육포도 비를 맞았다. 서늘한 날씨지만 젖은 식량에 곰팡이가 피었고, 나는 배가 고파 어쩔 수 없이 곰팡이 핀 식량이라도 먹어야 했다.


누군가가 봤다면 무식한 새끼라 욕을 했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덩치가 워낙에 큰지라 양도 많고, 배 터지게 밥을 먹어도 뒤돌아서면 배고픈 나이라 그랬다. 체력 수치가 높으면 독에 대한 저항력도 높다 했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근데 이틀이나 곰팡이 슬어버린 음식을 먹으니 심각한 배앓이에 시달리게 됐다. 체력 칠십이고 나발이고 썩은 음식을 먹으면 답도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지금, 내게 무엇보다도 급한 건 목을 축일 깨끗한 물이었다.


몸의 물기가 좍좍 빠져나가는 통에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지도창을 보며 밝혀진 지역에 개울이 있는지 찾던 중, 지도 저쪽에서 한 무리의 점이 다가오는 걸 보았다.


지도상의 빨간점들은 산비탈을 아주 능숙하게 누볐다. 그럼 이 일대를 잘 아는 사람들일 테고, 멀지 않은 곳에 이들이 살아가는 부락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 뱃병으로 지쳐버린 몸, 놈들이 내가 가진 막대한 재물을 알게 되면 눈이 뒤집혀 나를 죽이려 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모를 일이 아니라 반드시 죽이려 하겠지. 지도상에 표시된 것부터가 내게 위협적이며 적대적이라는 의미의 빨간점이었으니까.


곡괭이를 움켜쥐고 수풀이 우거진 우묵한 곳에 몸을 감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비탈을 타고 봉두난발한 시커먼 사내들이 내려왔다.


“채주 병신새끼, 왜 이렇게 사람을 쪼아.”

“그러게, 지가 나서서 돈 벌 것이지 우리가 뭔 죄가 있다고.”


채주 운운하는 걸 보면 산적이 분명했다. 놈들은 지루하다는 듯이 박도로 나뭇가지를 쳐내며 느긋하게 걸었다.


“봄인데 돌아다니는 놈 하나가 없네. 이쁜 기집애 하나 돌림빵 놓고 싶은데.”

“이상한데, 이맘때면 항상 많았는데 말이야. 다 딴 데로 가버렸나?”

“먹고살기 참 힘들구만, 어디 금덩이 들고 다니는 놈 하나만 찾······어?”


한 사내가 질척한 진흙 위에 찍힌 내 발자국을 가리켰다.


“발자국이다.”

“어, 그러게. 이 주변에 쫙 깔려있는데.”

“잠깐, 잠깐잠깐. 이거 이상하지 않아?”


다른 놈이 고개를 기울여 발자국을 유심히 살폈다.


“이상해 이거.”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무슨 발자국이 이래. 이런 발자국 본 적 있어?”

“뭔 소린지 모르겠네?”


다른 산적들도 모여 고개를 숙였다.


“······저기, 이거 사람 발자국 맞아? 맨발에다가 발이 엄청 크잖냐. 진흙 패인 깊이만 봐도 사람 몸무게가 아닌 거 같어.”

“어어, 모양도 사람이 아니라 무슨 원숭이 발자국 같은데? 이렇게 큰 원숭이가 세상에 어디 있어.”

“진짜네, 뭐야 이거?”

“설마 성성이(猩猩) 아냐? 짐승 몸에 사람 얼굴 달렸다는 요괴.”

“헛, 성성이?”


어른들이 말하기를, 귀한 이들은 손발이 작고 아름다우며 천한 것들은 손발이 크고 못났다고 했다.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지며 나도 모르게 손발을 가렸다.


지금은 역적의 자식이지만 원래는 사족의 후계였는데, 빈말로라도 손발이 곧고 시원하다고는 못할망정 요괴 발이라고 사람을 모욕하면 쓰나.


사아아아.


심산궁곡을 훑고 멀리 떠난 바람이 산적들의 목소리를 훔쳐갔는지 산중에는 스산한 침묵만이 가득했다.


고요한 가운데, 눈알을 굴려 발자취를 쫓던 산적들의 시선이 결국 내가 숨은 수풀로 닿았다.


“···꿀꺽.”

“···저거.”

“···설마.”


침을 삼키는 소리가 원래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덜덜 떠는 산적들이 뻣뻣하게 굳은 손으로 박도를 움켜쥐었다.


한 발짝을 더 다가오며 수풀 안에 뭔가가 있는지 보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어?”


결국 어느 산적 놈과 내 시선이 얽혀버렸다. 공포에 질려 뻣뻣하게 굳은 놈이 입술을 벙긋대며 뭔가를 말하려 할 때였다.


띠링! 촤라락.

【돌발임무 발생. 거절 불가한 임무로 강제진행됩니다.】

「사용자 도백연을 적대하는 산적들을 해치우세요. 임무를 완료하면 경험치와 함께 뭔가 좋은 걸 줄지도?」


익숙한 알림음을 듣는 동시에 놈들의 머리 위에 초심자의 표식이 떠올랐다.


곡괭이를 꼬나쥐고 벌떡 일어났다. 하늘을 향해 가슴을 활짝 펼치고 전의를 불태우는 포효를 내질렀다.


“쿠흐, 우워어어어어어!!”

“으아아악! 성성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창무신(天窓武神)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수련하고 돌아오겠습니다 24.04.16 31 0 -
32 일장(一章) – 19 24.04.14 38 1 17쪽
31 일장(一章) – 18 24.04.13 39 1 14쪽
30 일장(一章) – 17 24.04.12 41 1 17쪽
29 일장(一章) – 16 24.04.11 44 1 15쪽
28 일장(一章) – 15 24.04.10 50 1 16쪽
27 일장(一章) – 14 24.04.09 49 1 16쪽
26 일장(一章) – 13 24.04.08 47 1 17쪽
25 일장(一章) – 12 24.04.07 51 1 16쪽
24 일장(一章) – 11 24.04.06 51 1 16쪽
23 일장(一章) – 10 24.04.05 52 1 14쪽
22 일장(一章) – 9 24.04.04 61 1 19쪽
» 일장(一章) – 8 24.04.03 62 1 17쪽
20 일장(一章) – 7 24.04.02 62 1 17쪽
19 일장(一章) – 6 24.04.01 68 1 17쪽
18 일장(一章) – 5 24.03.31 70 1 16쪽
17 일장(一章) – 4 24.03.30 77 1 14쪽
16 일장(一章) – 3 24.03.29 75 1 16쪽
15 일장(一章) – 2 24.03.28 89 1 13쪽
14 일장(一章) – 1 24.03.27 110 1 14쪽
13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3 24.03.26 120 1 14쪽
12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2 24.03.25 122 1 14쪽
11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1 24.03.24 145 1 12쪽
10 나락굴(奈落窟) – 10 24.03.23 124 1 15쪽
9 나락굴(奈落窟) – 9 24.03.22 133 1 13쪽
8 나락굴(奈落窟) – 8 24.03.21 139 1 16쪽
7 나락굴(奈落窟) – 7 24.03.20 145 1 13쪽
6 나락굴(奈落窟) – 6 24.03.19 164 1 14쪽
5 나락굴(奈落窟) – 5 24.03.18 182 2 11쪽
4 나락굴(奈落窟) – 4 24.02.02 308 4 14쪽
3 나락굴(奈落窟) – 3 24.02.01 349 3 12쪽
2 나락굴(奈落窟) – 2 24.02.01 391 3 17쪽
1 나락굴(奈落窟) – 1 24.02.01 561 3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