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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ㅁㄴㅇㄹㅇㄴㄹ

천창무신(天窓武神)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매지컬백정
작품등록일 :
2024.01.31 02:41
최근연재일 :
2024.04.14 14:15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3,995
추천수 :
42
글자수 :
215,581

작성
24.02.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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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나락굴(奈落窟) – 2

DUMMY

“손 치워!”


방장 형이 곡괭이를 휘둘렀지만 봉씨삼촌은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몸을 움직였다. 목표를 잃은 곡괭이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카아앙!


새부리처럼 구부러진 송곳날이 돌바닥을 찍으며 불꽃이 튀었다.


“이 새끼가 방장 노릇 한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내가 누군지 알면서 이 지랄을 떨어?”

“단전도 망가진 병신새끼가···.”

“허허, 폐단(廢丹)을 당하고 사지가 병신이 됐어도 너 하나는 충분해. 용을 써봐라, 내가 그거에 맞겠나.”


봉씨삼촌의 말대로 방장 형이 휘두르는 곡괭이는 연달아 헛방을 날렸다.


카앙! 캉!


송곳날이 허무하게 갱도를 두들기며 불꽃을 튀기는 동안, 봉씨삼촌은 불쾌하게 웃으며 이죽거렸다.


“이 적사회주(赤蛇會主)가 이런 애송이한테 우습게 보였다니, 세상 말세로다.”

“이익, 씹!”

“씹? 씹?? 씹구녕은 밖에 나가서 찾고, 좆만아.”


봉씨삼촌이 특이하게 걸으며 상체를 뒤틀었다가, 곧장 몸을 펼쳐 주먹을 내질렀다.


뻐어억!


방장 형의 배에 주먹이 틀어박혔다. 형의 입이 찢어지게 벌어지며 침을 줄줄 쏟았다. 떨리는 손은 더 이상 움켜쥘 힘이 없는지 곡괭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꺼어어어. 꺼억.”

“씨발, 용케 서있네?

“······끄으.”

“아프지? 그러게 왜 사람한테 곡괭이를 들이대고 지랄이야. 니가 뭐 간수라도 돼? 이래라 저래라 지랄 좀 하지 마라. 신물나니까.”


봉씨삼촌은 방장 형의 상투를 틀어쥐고 주먹을 세웠다.


훅! 뻐억!

방장 형의 배에 주먹이 틀어박혔다.


“끄어어억!!”

“어디 그딴 실력으로 곡괭이를 들이대. 내가 암만 내공을 다 잃었어도 강호무림에서 칼밥 처먹은 짬이 있어 새끼야.”


봉씨삼촌이 방장 형의 머리를 돌벽에 찧으려는 때였다. 어둠 속에서 절름발이 아저씨가 다급하게 튀어나와 망치를 휘둘렀다.


“짐승 같은 놈!”

“이건 또 뭐야.”


하지만 다리를 심각하게 절었기에 그나마 몸이 온전한 봉씨삼촌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망치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갱도의 암벽을 후려쳤다.


따앙!


“오늘 무슨 날인가? 이것들이 쌍으로 지랄이네?”


봉씨삼촌은 여유롭게 발을 내질렀다. 절름발이 아저씨의 멀쩡한 발을 걸고 이마를 밀어 바닥에 패대기 쳐버렸다.


퍽!


“끄윽!”

“이 병신새끼가, 그간 신세 불쌍해서 봐줬더니 이젠 뵈는 게 없나. 나 적사회주야, 적사회주!”


한껏 성질을 내며 바닥에 엎어진 두 사람을 마구잡이로 짓밟았다. 목울대를 짓이기고 옆구리를 후려차다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바닥에 떨어진 망치를 집어들었다.


“이 적사회주에게 지랄 했으면 뒈질 것도 알았겠지.”


이러다 방장 형과 절름발이 아저씨가 봉씨삼촌에게 맞아서 죽는 건 아닐까, 그리고 삼촌이 저들을 죽인 후에는 내게 무슨 짓을 할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왠지 모르게 봉씨삼촌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허전하디 허전해서 빈틈 가득한 등과 폭행을 당하며 내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방장 형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슬그머니 움직여 곡괭이를 잡고, 있는 힘을 모조리 쥐어짜내어 몸을 움직였다. 묵직한 송곳날이 수직으로 떨어졌다.


“으아아!”

뻑, 우적!


곡괭이 자루를 타고 둔탁한 충격과 경쾌한 무언가가 전해졌다. 짜르르한 손맛이 손끝에서부터 머리까지 번지며 바지에 오줌을 지려버렸다.


“···꺼어? 꺽, 꺼어어??”


눈을 부릅뜬 봉씨삼촌이 뒤로 돌았다. 등판에 박힌 송곳날이 뱃가죽까지 뚫고 튀어나왔다.


“꺼억, 꺽.”


자신의 배에 튀어나온 송곳날을 부여잡고 남은 손을 허우적거렸다. 어떻게든 내 머리채를 잡겠다는 것처럼 비틀대면서도 뒷걸음질 치는 나를 따라왔다.


“끄어억···.”

“꺅! 저리 가!”


하지만 달아날 길이 없는지라 벽에 등이 가로막혔다. 입에서 피를 흘리고 눈에 핏발이 선 봉씨삼촌이 내게 손을 뻗는 찰나.


퍽!

“끄륵···.”


방장 형이 곡괭이를 발로 차서 배에 박힌 송곳날을 뒤틀어버렸다. 둔탁한 소리가 나며 봉씨삼촌의 몸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혹시 다시 일어나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그대로 엎어져 경련을 일으키다가 멈췄다.


봉씨삼촌의 죽음을 확인한 후, 방장 형이 내게 다가와 숨을 씨근거렸다.


“야이 씨발, 무슨 아홉 살 힘이 이렇게 세냐. 저 곡괭이를 회초리 휘두르듯 휘두르네?”

“워, 워, 원래. 원래 그랬어요···.”

“뭐 그거야 됐고. 잘해주는 새끼 믿지 말라 했었잖아.”


피범벅이 된 형의 얼굴이 악귀처럼 보여서, 또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주르륵.


아까 오줌을 죄다 지린 줄 알았는데 아직도 오줌보에 남아있는 게 있었던 모양이었다. 축축해진 바지를 허벅지에서 떼어내며 대답했다.


“······아, 앞으로는 안 믿을게요.”



***



그 일이 있고 방장 형에게 들었다.


이곳에는 바깥에서 커다란 죄를 지은 흑도의 두령이라는 놈들이 종종 잡혀들어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놈들은 폐단(廢丹)을 당하지만 몸을 박살 내는 방법으로 하는 게 아닌지라 병신은 병신인데 생각보다 내부는 멀쩡한 병신이 된다고 했다.


적사회주였다는 봉씨새끼도 그런 병신새끼였다.


새로 잡혀온 애들을 보면 사족을 못쓰는 미친놈으로 다들 내심 싫어했으나 화를 입을까 두려워 손을 쓰지 못하던 차에 참다참다 폭발한 방장 형이 나를 뒤따라 온 거였다.


이거야 그렇다 치고,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었다.


방장 형의 말대로 우리가 살인을 저지르건 말건 간수들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물어보고 송장을 깨끗하게 치우라는 지시가 사후처리의 전부였다.


되려 내가 적사회주를 죽였다는 말을 듣고 굉장한 흥미를 보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 일을 곰곰이 생각하며 돌을 줍다가, 옆에서 곡괭이질을 하던 방장 형에게 물었다.


“저기요, 형.”

“어, 왜?”

“형 이름이 뭐예요? 저는 도백연이라고 하는데···.”


이미 옥방에서 이름을 말했기에 다 알고 있겠지만 형의 이름을 몰랐기에 다시 소개했다. 형은 잠시 망설이더니 나지막이 대답했다.


“최용(崔龍).”

“아아, 그럼 앞으로 용이형이라고 부르면 돼요?”

“그러든지 말든지. 너 알아서 해라.”

“네엡, 잘 부탁드려요.”


곡괭이질을 하던 형이 피식 웃었다.


“이제와서 잘 부탁드릴 것 까진 아니고, 적사회주처럼 병신짓 하다가 죽지나 말아라.”

“넵.”


그렇게 용이형과 시답잖은 일로 웃음을 터뜨릴 때였다.


“작업중지! 다들 광장으로 집합!”


나팔을 부는 것처럼 커다란 목소리가 갱도를 우렁우렁 울렸다. 간수의 명령을 들은 죄수들은 일제히 복창하며 연장을 챙겼다.


“작업중지! 광장으로 집합하랍신다!!”

“집합하시랍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조금 겁을 집어먹은 내게 용이형이 다가와 어깨를 움켜쥐었다.


“본보기다. 본보기야.”

“본보기요?”

“그래, 저번에 말했지. 좀 지나면 탈출하려는 놈 생길 거라고.”


그리 말하는 용이형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대체 어떤 본보기를 보이기에 저렇게 질겁을 하나 의문이 들었다.



***



귀 뒤쪽에 작은 상처를 내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묶어 거꾸로 매달아두는 형벌, 겉보기에는 아주 단순하여 이게 그렇게나 힘든 걸까 싶었다.


하지만 한 시진이 지나기도 전에 고통 가득한 신음이 시작되고, 한나절이 지나니 처절한 절규가 끊이지 않았었다.


그리고 오늘로 고작 이틀 만에 비명이 잦아들었다.


“살려줘, 형아 살려줘어. 아파아···.”

“사, 살려주세요. 말 잘 들을게요. 살려주세요···.”


이 매달기를 당하는 죄수는 나와 함께 끌려왔던 형제였다.


감시가 느슨해진 틈에 형이 동생을 데리고 달아나려다가 으슥한 곳에 숨어있던 간수에게 잡혀 본보기가 되어버렸다.


물도 밥도 주지 않는 건 물론이요, 계속 매달아 둔 채라 오물을 찔끔찔끔 지리는 몰골이 참혹하기 그지없었으나 사람들은 혀를 차면서도 누구 하나 도울 생각이 없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지금 괜히 나서서 화를 자초할 생각은 없었다. 울부짖는 형제를 보고 있으니 내 마음이 미어지는 듯하여 귀를 막고 고개를 돌렸다.


“경고를 그리했는데도, 지들이 화를 자초한 거니까 맘에 담아두지 마.”

“···네, 형.”


내 어깨를 움켜쥔 용이형은 말과 다르게 눈에서 불꽃이 튀고 있었다. 우리들의 처지가 얼마나 분하고 억울한지, 그 노여움이 표정에 여실히 드러났다.


“다들 주목!”

“주목!”


광장 한가운데, 형제가 매달린 형틀 옆에 선 간수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둥글게 포진한 죄수들을 둘러본 간수는 고개를 끄덕이곤 형제를 묶은 밧줄을 잘라냈다.


툭.


이틀 만에 바닥을 구른 형제는 숨을 꺽꺽거리면서도 이에 대한 인사를 잊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으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간수는 뻣뻣한 얼굴을 하고 손을 내밀었다. 양손에 하나씩 들린 돌칼을 두 형제가 각각 받아들었다.


“···네? 이걸 왜···?”

“끄으으. 형아, 나 이거 풀어줘. 너무 아파아.”


일어나지도 못하고 바닥을 기는 형제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서로 죽여라. 살아남은 놈에게는 기름진 고깃국에 쌀밥을 주겠지만, 둘 다 싸움을 거부한다면 죽을 때까지 매달아 두겠다.”


일곱 살이나 되어 보이는 동생은 몸의 마디마디가 끊어지게 아픈지 간수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으나, 형은 간수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했는지 턱이 빠지도록 입을 벌렸다.


“실시!!”


망연자실한 표정의 형은 돌칼을 보며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대체 왜?”

“형아아. 나 너무 아파아. 이것 쪼옴.”

“동화야···.”

“으으응, 형아 나 아파.”


지켜야 할 동생이 있는 형이라서 그랬을까, 망설임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뾰족한 돌칼을 양손으로 쥔 형은 몸을 구물구물 움직여 동생을 묶은 밧줄을 힘겹게 끊어냈다.


이어 동생이 결박에서 풀려나 후련한 표정을 지었을 때, 몸을 날려 동생을 덮어버렸다.


“···미안해. 형아가 미안해.”

“형···아악?! 끄흑!!”


돌칼이 동생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저항도 못한 동생은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자신의 형을 바라봤다.


“미안해! 미안해!!”

“끄륵, 꺽!”


돌칼을 뽑아내자 동생의 목에서 피가 흥건하게 솟구쳤다. 이미 이틀 동안 매달린 채로 탈진했던 몸에는 죽음이 빠르게 찾아왔다.


몇 번 경련을 일으킨 아이는 미동도 없었다. 동생을 죽이고 망연자실한 형 또한 줄 끊긴 꼭두각시처럼 움직임이 멎어버렸다.


그를 지켜보는 간수들은 제각각 휴대용 지필묵을 꺼내어 뭔가를 기록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저러는지는 몰라도 간수들이 우리를 고의적으로 학대하고 관찰하려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드는 모습이었다.


“···아, 아으으아.”


굳어있던 형이 기괴한 소리를 냈다.


원망과 분노 가득한 눈으로 간수들을 노려보고 죄수들 전부를 훑고는 타들어가는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지옥에도 못 갈 마귀 새끼들. 저주할 거야. 내가 죽어서도 저주할 거야!!”


말을 마친 형은 동생의 손에 들린 돌칼에 자신의 목을 뭉개듯 눌렀다.


“끄르륵! 꺽!”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나도 덩달아 머리가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지러워 비틀거리니 용이형이 내 어깨를 흔들었다.


“백연아, 이게 우리가 당하는 일이다.”


부름을 따라 고개를 들어올렸다. 용이형이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고 있었다.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우리가 그렇게 잘못했어요?”

“몰라, 나도 모르겠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서 이렇게 괴롭히는지 모르겠어.”


정말 지독하게 원한을 품어 두고두고 괴롭힐 작정이 아니면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돌을 캐려면 죄수들이 상하지 않아야 옳은 일인데, 용이형의 말대로 무슨 의미가 있어 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렇게 고통을 주는지 모를 일이었다.


“황제인지 승상인지 하는 것들이 우리의 가문을 멸하고 이런 짓을 저질렀다. 죽어서도 잊지 마라.”


멍한 머리로 대답을 하기 위해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눈에 맺혀있던 뜨거운 게 뚝 떨어지고 나서야 내가 울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쳐냈다.


“···아뇨, 반드시 나가서 복수할 거예요. 살아서 반드시요.”



***



한······백 번?

아마도 백 번 정도였을 거다.


살해와 강간의 위협을 겪었던 게 백 번은 됐을 거다. 그때마다 필사의 힘을 쥐어짜 내 위기를 헤쳐나가고, 그런 나날이 반복되자 어느덧 내가 굉장히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걸 알게 됐다.


‘도둑질하면 안 되는데?’


이러던 꼬맹이가 노역장에 제대로 적응해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인 거다. 나도 참 개새끼 다 됐지 뭔가.


그렇게 내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음을 받아들이며 이전의 평화로운 일상은 신기루처럼 아스라이 느껴질 무렵, 나는 열두 살이 되어 모두와 함께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어어이, 하!”

“어어이, 하!”


용이형의 박자에 맞춰 곡괭이를 휘둘렀다. 자루를 움켜쥔 손이 덜덜 떨렸지만 잠시라도 멈출 겨를이 없었다.


“어어이, 하!”


쾅, 쩌엉!


갱도의 끝자락에서 곡괭이를 휘둘러 암벽을 쪼개고 정과 망치로 돌덩이를 두들기니 옛날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보다 작은 아이들이 돌을 주워 담고, 덩치가 큰 어른들이 철수레를 갱도 바깥으로 밀었다.


흥건하게 땀을 쏟아내며 일을 하던 중, 용이형이 손을 멈췄다.


“자자, 좀 쉬었다가 합시다.”

“그러지. 갈증나서 죽겠구만.”


곡괭이와 망치 등의 연장도 가볍게 손보고, 목도 축일 겸 같은 옥방의 사람들과 둘러앉았다. 그런데 며칠 전에 들어온 신입 아저씨들이 저들끼리 빠져서는 곡괭이를 발로 차며 툴툴거렸다.


“이런 씨발, 죽을 때까지 여기서 곡괭이질이나 해야 하나.”

“좆같은 소리 말아. 나갈 구멍이 하나는 있겠지.”

“나가면 뭘 해, 내공을 잃었는데···.”


곡괭이를 닦던 중, 그들의 말에 손을 멈췄다.


이 나락을 벗어난다고?

여기를 벗어날 구멍이 있을 거라고?


내가 여기서 짬밥을 먹을 만큼 먹는 동안 지금껏 탈출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누구보다도 탈출하고 싶었던 내가 몇 년을 찾아봤으나, 용이형 말대로 개구멍 하나가 없는 곳이었다.


왠지 허술해 보이는 곳은 모두 누군가가 숨어서 감시하는 함정으로 그곳에 발을 들였다가는 노역장의 광장에 끌려와 처참한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이는 두 형제 사건 이후로도 숱한 본보기를 보며 깨닫게 된 사실이다.


“······.”


떨겅! 컹!


상념에 잠긴 내 앞으로 웬 곡괭이가 날아들었다. 그에 이어 또 하나가 나동그라지며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애새끼. 이것도 닦아 놔.”

“내 것도 잘 닦아라.”


고개를 들어 위를 보자, 신입 아저씨들이 우리를 깔아보고 있었기에 나도 눈만 위로 치켜뜨고 놈들을 쳐다봤다.


“요 새끼 이거 눈깔 좀 봐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냐?”

“이 씹새끼가 어디서 눈을 부라려, 확!”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절름발이 춘석삼촌이 두툼한 손을 내밀었다.


“거 싸우지들 맙시다. 앞으로 같이 돌가루 먹으며 지낼 사이에.”

“이 다리병신 새끼가 뭐라고 씨불이는 거야. 뒈지고 싶어?”

“확 씹, 자다가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뒈지는 수가 있어.”


물론 저렇게 말하는 놈들도 손이나 발이 병신이었다만, 춘석삼촌처럼 과한 절름발이는 아니었기에 꽤나 자신만만했다.


놈들이 기세 좋게 위협하자 춘석삼촌이 나를 보며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허허, 참. 미안하게 됐수다. 알아서들 하쇼.”

“븅신새끼, 불쌍해서 봐주는 줄 알어.”

“씨발, 쫄기는. 클클클.”


지금 거하게 지랄을 하는 이것들도 바깥에서는 흑도의 흉적들이었다 한다.


첫날부터 우리 옥방의 사람들에게 무공으로도 이름을 날렸지만 악행으로 더 큰 이름을 날렸다고 으스댔었던 것만 봐도 죽어 마땅한 놈들 맞을 거다.


근데 뭐···.


사실 대죄를 지었건 아니건, 밖에서 마귀였건 생불 소리를 들었건 간에 나를 위협한 시점부터는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긴 하다만.


“어이 아저씨들, 자기 연장은 자기가 관리해야 하는 거 몰라? 지랄 말고 니가 닦아. 여기선 그게 목숨줄이니까.”

“···뭐?”

“뭐는 아니고, 니가 쳐 닦으라니까? 니 양물도 남한테 닦아달라 해? 느이 집구석에선 그리 가르치디?”


내 과격한 행동에 머쓱하게 웃는 춘석삼촌과 잠자코 지켜보는 용이형, 그리고 옥방의 다른 이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슬슬 시작하겠다는 암묵적인 신호를 나누고 다시 눈깔을 부라렸다.


“거 아저씨, 지 마누라 가랭이도 남한테 닦아 달라 할 새끼네 이거?”


열두 살 먹은 나의 깜찍한 언사에 놈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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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일장(一章) – 8 24.04.03 61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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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일장(一章) – 6 24.04.01 68 1 17쪽
18 일장(一章) – 5 24.03.31 70 1 16쪽
17 일장(一章) – 4 24.03.30 77 1 14쪽
16 일장(一章) – 3 24.03.29 75 1 16쪽
15 일장(一章) – 2 24.03.28 89 1 13쪽
14 일장(一章) – 1 24.03.27 110 1 14쪽
13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3 24.03.26 120 1 14쪽
12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2 24.03.25 120 1 14쪽
11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1 24.03.24 144 1 12쪽
10 나락굴(奈落窟) – 10 24.03.23 123 1 15쪽
9 나락굴(奈落窟) – 9 24.03.22 131 1 13쪽
8 나락굴(奈落窟) – 8 24.03.21 138 1 16쪽
7 나락굴(奈落窟) – 7 24.03.20 143 1 13쪽
6 나락굴(奈落窟) – 6 24.03.19 162 1 14쪽
5 나락굴(奈落窟) – 5 24.03.18 180 2 11쪽
4 나락굴(奈落窟) – 4 24.02.02 307 4 14쪽
3 나락굴(奈落窟) – 3 24.02.01 348 3 12쪽
» 나락굴(奈落窟) – 2 24.02.01 390 3 17쪽
1 나락굴(奈落窟) – 1 24.02.01 560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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