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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ㅁㄴㅇㄹㅇㄴㄹ

천창무신(天窓武神)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매지컬백정
작품등록일 :
2024.01.31 02:41
최근연재일 :
2024.04.14 14:15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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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4
추천수 :
42
글자수 :
215,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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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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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일장(一章) – 6

DUMMY

“딸꾹, 끅.”


석양을 품은 호수는 뜨거웠다.


짙은 주황빛 가득한 수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점창산의 바람을 머금고 새빨간 파도를 넘실댔다.


알딸딸해서 그런가, 저걸 보고 있자니 뜬금없이 앵두가 떠올랐다.


내 고향에선 봄끝에 발갛게 즙이 오른 앵두가 잔뜩 열렸더랬다. 가지가지마다 다닥다닥 붙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빨간 열매, 그걸 잔뜩 으깬 듯이 참으로 붉었다.


문득 손에 든 술잔을 보니, 이 안에도 앵두처럼 붉은빛이 가득 넘실거렸다.


찰랑이는 한 줌의 술과 하늘을 담은 호수라, 의천맹을 피해 운남으로 도망친 사일검객이 이곳에 자리를 잡으려 한 이유를 알법했다.


저물녘의 하늘이 깃든 잔을 들이켰다.


앵두를 닮아 새콤하지 않을까, 그런 내 기대를 무참히 밟듯 찝찌름한 맛이 혀를 움켜쥐고 비릿한 냄새가 코를 스쳤다.


황혼의 맛은 참 빨갛기도 했다. 진득한 쇠비린내처럼 마음을 긁는 맛이었다.


애써 늦봄의 앵두를 그려봤지만 닫힌 눈꺼풀 사이로 아른하게 떠오른 것은 늦겨울에 마주했던 고향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끅.”

“이봐, 총각.”


풍광을 감상하던 사일검객이 나를 돌아봤다.


“앞으로 만나는 놈들한테는 가급적이면 강천종이니 노역장이니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말어. 재수없으면 걸려서 좆되는 수가 있어.”

“그래야죠.”

“조만간 신분세탁을 해야겠구만. 자네는 이미 죽은 사람이니 말이야.”

“방법이 있으신가요?”

“물론이지, 내가 무림에 평생 몸담았고 강호를 일생 누볐는데 그것도 못할까.”


뜨겁게 달아오른 콧김을 풍풍 내뿜으며 사일검객에게 선언했다.


“도와주신다면 나도 도와드려야지.”


곧장 배낭 안에서 족장의 보도를 꺼내 화통하게 내밀었다. 술기운 탓인지 이 귀한 보배가 아깝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끅, 이거 밑천으로 쓰십쇼.”

“으으응?”


사일검객도 보옥과 황금으로 치장한 보도를 내밀 줄은 몰랐는지 입을 쩍 벌렸다.


“세상에, 이게 뭔가?”

“땅 파다가 주웠어요. 끅.”

“이걸 밑천으로 삼으라는 말이 참인가?”

“맞습니다. 이제 노인장 겁니다.”


상당히 감격한 사일검객이 보도를 꽉 움켜쥐었다.


“정말 고마우이. 내 이 보답은 꼭 하겠어. 내가 못하면 제자를 들여서라도 갚을 것이고, 내 제자가 갚지 못하면 이를 후세에 전해서라도 반드시 갚을 것이야.”

“뭐, 알아서 하십쇼.”


띠링! 촤라락.

【임무완료.】

「······을 완료. 보상으로 경험치 50획득. 수령 시에는 하단의 수령이라 적힌 단추를 눌러주세요.」


“오오, 임무완료? 끅.”


손가락을 뻗을 필요 없이 생각만으로 해도 되지만, 굳이 손가락을 뻗어 족자를 꾹꾹 누르자 사일검객이 나를 몹시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자네, 취했나?”

“조금? 술 이렇게 많이 마셔본 건 처음이라서요.”

“그럼 주독을 몰아내야지. 딸꾹질 그만하고.”


멍한 눈으로 이해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요? 기분도 삼삼한데.”

“내일 할 일이 많으니 그렇지, 너무 취한 채로 자면 고수들도 숙취로 고생하는 법이야.”

“그런가···.”

“자네 사문에도 해독과 피독을 하는 수법이 있을 게 아냐. 그걸로 주독을 몰아내봐.”

“끅, 그럼 저쪽으로 떨어지십쇼. 뇌공인지라 좀 위험해서.”

“알았으이.”


훌쩍 물러난 사일검객은 나를 아주 주의깊게 살폈다. 그 눈에는 꽤나 짙은 호기심이 어려있었다.


“뇌공이라, 뇌공 같은 자연의 힘을 구체화하는 무공은 아주 고대의 무공인데 말이야. 옛 제례에 쓰였다는 기록도 있어.”

“궁금하십니까?”

“아암, 궁금하고 말고. 오래된 문파라면 그런 것들이 한둘은 있는 법이나 위험하고 심오하여 대성하는 이들이 꽤 드문 편이거든.”


마하금강신공.


상태창 대협이 중원의 학문을 배운 나를 위해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수정했기에 원본에 비하자면 굉장히 쉬울 거라 했었다.


목정은 곧 벼락과 바람이요, 뭇별의 으뜸이자 벼락의 왕을 상징하는 동방의 세성이니.


이를 몸으로 보자면 간목(肝木)으로 나무처럼 치솟는 극양의 힘을 바탕으로 육신의 모든 부정을 씻어내는 장기다.


상생에 따라 간목이 성하면 하늘에 닿은 목정이 천화가 되어 심화가 맥동하니 붉은 피를 타고 불이 번지며, 목정을 불사른 화정이 침잠하여 그 티끌 속에서 토정이 태어난다. 토정은 곧 비토이니 혈육을 포근하게 감싸 화합을 이루어내···어쩌고저쩌고.


딱히 쉬운 내용은 아니었으나 상태창 대협이 그렇다 했으니 그러려니 해야지. 어쨌건 간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마하금강신공으로 독에 저항하는 수법은 아주 간단했다.


“마하.”

“···마하??”


파짓!


주먹에서 튄 번개가 전신으로 번지며 자그르르 끓어올랐다.


흔히 번갯불과 부싯불을 몹시 빠른 것에 비유하지 않나, 내 몸에서 끓어오르는 번갯불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 형상을 유지하기 위해 단전에 담긴 정기를 사정없이 쥐어짰다.


“바즈라아아!!!”


온몸을 내달리는 뇌정이 순행과 역행을 뒤섞으며 마구잡이로 날뛰었다. 장기가 들썩이고 주독이 소멸하며 눈알에서 시퍼런 안광이 뿜어졌다.


기겁한 사일검객이 뒤로 풀쩍 뛰어 뇌정의 줄기를 피했다.


“설마 천축의 무공인가!”


쩌엉, 쩌어엉!


몸에서 번개가 마구 튀기는 와중, 익숙한 소리가 울렸다.


【경고, 정기가 급속도로 고갈되는 중입니다.】

【경고, 정기가 급속도로 고갈되어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경고! 정기가 완전히 고갈되었습니다!】


쩡!


마지막 뇌정이 몸을 휘돌고 단전이 텅 비었을 때, 청록색 섬광이 눈을 스치며 의식이 까무룩해졌다.


【삼뢰호흡의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삼뢰호흡(三雷呼吸)

기초단계를 벗어나 호흡으로 뇌기를 일깨우는 심법. 하급 운기법으로 상위 기술로 연결됩니다. 기술효과 - 정기 19추가. 숙련도 19/20


정기 : 23/23 ▶ 24/24



***



이른 아침부터 점창산을 내려와 사일검객을 따라 갖가지 일을 보고 세상의 풍문을 귀동냥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하여 지금은 이해호로 나간 어부들이 돌아오고 낮 어시장이 열리는 시각, 어제 들렀던 어죽집에 앉아 칼칼한 어죽을 한 대접 먹는 중이었다.


“아으, 시원하구만.”


어죽을 훌훌 들이켜는 내게 사일검객의 잔소리가 날아들었다.


“총각, 진짜 속 괜찮아?”

“괜찮습니다. 그냥 기절한 것뿐이라.”

“에구구, 뇌공은 순식간에 단전을 잡아먹는다더니 그게 틀린 말이 아니었구먼. 자연력을 흉내내는 무공은 그 강력함에 심취해 힘을 발현하는 쾌감에 중독되고 급기야는 더욱 강력한 힘을 갈구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하니 항상 주의해.”

“옙.”

“그리고···.”


사일검객이 잔소리를 이어가려던 때, 내 눈에 익숙한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죽집 근처에서 피투성이 거지꼴을 하고 빌빌거리는 세 소년, 몰골이 엉망인지라 한눈에 알아보지는 못했으나 그들은 막손이와 두 동무였다.


머리는 상투를 잘려 산발, 바지에는 피칠갑, 상의는 죄다 찢어져 가슴과 배꼽을 다 드러냈고 얼굴은 실컷 맞았는지 이목구비가 다 터져 퉁퉁 부어있었다.


그 추레한 꼬락서니로 손님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어째서 황금허리띠와 금관 등의 보물을 잔뜩 가지고 나섰던 놈들이 어죽 한 그릇 사 먹지도 못하는 거지가 되어 배회하는 걸까?


“···뭐야.”

“응? 아는 녀석들이야?”

“일단은 그렇습니다.”


사일검객도 내 시선을 따라 막손파를 살폈다. 그리곤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토번족에게 제대로 걸렸나보구먼. 상투 잘린 걸 보니.”

“예?”

“여기 자리잡은 토번족 놈들은 무슨 심보인지 싸움에서 이기면 상투를 잘라가더라고. 싸가지없는 놈들, 언제 한 번 손봐줘야겠어.”


사일검객은 뒤로 돌아앉아 막손파에게 손짓했다.


“얘들아! 이리 와서 앉아라. 어죽 한 그릇씩 먹고 가!”

“옛? 저희요?”

“이 형아가 사준단다! 어서 와서 앉아라!”

“사준다고 한 적 없는데···.”

“주인장! 여기 푸짐하게 세 그릇!”


막손이 퉁퉁 부은 눈으로 우리를 살피다가 깜짝 놀랐다.


“엇, 대협!”

“어어, 대협이다!”


어제 사일검객이 육척대검을 뽑아들었던 일로 우리 주변의 식탁은 역신이라도 붙은 것처럼 텅텅 비어있었다. 막손파의 세 소년은 잽싸게 빈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흐윽. 대협을 이런 곳에서 뵙다니, 하늘이 도우신 게 분명합니다.”

“대협, 제발 도와주십쇼. 억울합니다!”

“말(馬)도 뺏기고 허리띠고 뭐고 다 뺏겼습니다. 그것들 좀 때려 죽여주십쇼!”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이야기 좀 해.”


두서없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어죽이 나오고, 어죽을 먹는 동안 이곳으로의 여정 중 벌어졌던 이야기가 끝을 고했다.


간단하게 축약하자면 힘도 없는 것들이 영창군에 와서 보물을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금은으로 바꾸려고 하다가 되려 토번족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보물을 빼앗겼다는 말, 지킬 힘이 없는 이에게 과한 재물은 되려 횡액을 부른다더니 분수에 맞지 않는 복이 화가 된 것이었다.


“대협, 제발 보물 좀 찾아주십쇼. 찾아만 주신다면 그 절반을 드리겠습니다요!”

“거참···.”


영 탐탁치 않았으나, 누군가의 간절한 부탁을 받자 어김없이 익숙한 알림음이 들렸다.


띠링! 촤라락.

【돌발임무 발생.】

「영창군의 토번족에게 수모를 당하고 재물을 빼앗긴 막손이 도움을 요청합니다. 임무를 완료하면 경험치와 함께 뭔가 좋은 걸 줄지도? 수락하시겠습니까?」


“와, 또 임무인가?”


상태창 대협의 묵직한 목소리를 곱씹으며 손가락을 뻗었다. 임무수락과 동시에 하늘에서 내려온 초심자의 표식이 수십 개나 된다는 사실에 기함을 토했다.


“미치겠네···.”

“총각, 또 허공에 대고 손가락질하네. 대체 뭐 하는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화입마로 헛소리 듣고 헛것 보는 거 아냐?”


혀를 찬 사일검객은 막손파의 셋을 요리조리 훑다가 밥버러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영악해 보이는 막손이를 제외하고 가장 멍청해 보이는 녀석을 골랐다.


“이놈, 이 할애비가 하나 묻자. 보물이라고 하는데 그 보물이 대체 어디서 난 거냐?”

“저 대협이랑 옛날 무덤 파고 꺼냈는데요.”

“뭐라, 남의 묘를 도굴했다는 말이야?”

“네, 보물이 엄청 많더라구요. 금관도 있고 보도도 있고 허리띠도 있고 목걸이도 있고···.”


사일검객은 자신의 배낭을 어루만졌다. 안에 감춰둔 보도를 주무르며 나를 쏘아봤다.


“땅 파다 주웠다더니 도굴했다는 말이었구먼.”

“뭐, 그리됐습니다.”

“남의 묘를 함부로 파헤치면 쓰나, 앞으로는 그러지 말어. 사소한 행동도 나중에 꼬리처럼 따라붙는 법인데 이런 큰 죄를 저지르면 필시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되니까.”

“흠.”


사람도 떼로 죽인 마당에 도굴이 별건가 싶으면서도 나름 일리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고, 앞으로는 조심 좀 하죠.”

“총각, 조심하겠다는 말이 안 들키게 조심하겠다는 말은 아니지?”

“그거야 뭐, 알아서 생각하실 일이고. 잠시 이것 좀 빌리겠습니다.”


사일검객의 배낭에서 보도를 꺼냈다.


보옥과 황금으로 치장한 집과 칼자루에 사람들의 시선이 절로 쏠렸다.


“세상에나, 저게 무슨 보물인가.”

“노인도 총각도 심상치 않더라니. 어마어마한 부자였구먼?”


사람들이 웅성이는 중, 머리띠를 두르고 토번족 특유의 차림새를 한 몇몇 사내들이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들을 주시하던 사일검객이 슬쩍 웃었다.


“거 성격 화통하구먼. 도귀한테 배웠나?”

“아뇨, 아버지 닮아서 원래 그랬습니다. 신풍노사도 혀를 내둘렀죠.”

“껄껄껄껄! 호걸이 호걸을 낳았구나! 도귀 그놈이 말년에 재미있게 살다 갔겠어!”


사일검객은 내 손에 들린 보도를 가져갔다. 보란듯이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고는 육척대검을 탁자 위에 올렸다.


척, 덜걱.


“기다리는 동안 재미난 이야기나 할까? 내 검이 왜 이리 긴지 짐작은 가나?”

“갑자기요?”

“검객이 검을 논하는 게 이상한가?”

“그렇진 않습니다만···.”


뜬금없는 질문.


이는 곧 토번족이 몰려와 보물을 두고 피를 볼 텐데 내 식견을 확인하려는 심산인 듯했다. 어차피 신풍노사와 흑도두령들에게 강호무림의 이야기를 잔뜩 들었기에 대답은 어렵지 않았다.


“이건 전장의 검입니다. 요즘의 군병은 도를 위주로 쓴다지만 옛날에는 이런 장검을 썼다고 들었거든요.”

“그리고?”

“전장의 실전적인 군검은 길고 견고하죠. 그중에서도 커다란 것은 군졸의 검이 아니라 장수의 검이라 하더군요.”

“그래, 맞네. 요즘의 군졸들은 거의 도를 패용하지만 옛적에는 극과 모를 들거나 장검을 들었다고 하더구먼.”

“하지만 이 육척대검은 실전에서 쓰기엔 실용적이지 못하다 봅니다. 물론 재량이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래, 도귀 그 친구가 그리 가르쳤는가?”

“옙, 그렇습니다.”


사일검객이 히죽 웃으며 육척대검의 날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쩌으으응···.


마치 종을 친 것처럼 깨끗하고 묵직하게 울었다. 희미하게 진동하며 검명을 길게 뽑아내는 육척대검을 따라 내 앞에 놓인 물그릇에서도 자잘한 파문이 일고 있었다.


“이리 커다란 검으로 검법을 펼친다면 어떤 느낌이겠나? 이제 자네의 소감을 바탕으로 말해보게.”


어제 일격에 아홉 번을 찔렀던 검법을 복기하며 대답했다.


“전서체(篆書體)처럼 웅장하고 예스러우나 실용성이 없어 장식에 불과해야 했지만, 노사가 다루는 육척대검에서는 힘이 넘치면서도 실용적인 예서체(隸書體)와 비슷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껄껄껄! 유사의 아들이라 하더니 말도 그럴싸하게 하는구먼. 맞네, 총각 말대로 필법에 비유하자면 예서체와 비슷할 거야.”


사일검객의 검법은 황당할 정도로 커다란 대검으로 펼치는 일격필살의 검법.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기에 필살을 목적으로 했으며, 전장에서의 실전성만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의 실전성까지 갖췄다 했다.


“···또, 어찌 보면 자객의 검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신풍노사께 들은 바도 있고.”

“어째서, 자객이 이런 커다란 검을 들고 다닌다고? 그리 생각하는 연유는?”


사일검객이 눈을 빛냈다.


“고대의 제후들, 그들로 인해 동귀어진도 두려워 않는 일격필살의 검공이 나왔다 배웠습니다. 멀리서 달려들어 단박에 숨통을 끊어야 하기에 가벼우면서도 맹렬한 경공을 중시하며, 그에 반해 검법은 무겁고 거대한 힘을 품었다 들었습니다.”

“호, 그리고?”

“상대를 파죽지세로 꿰뚫어 치명상을 입혀야 하기에 근골육성의 비중을 높여 전신의 힘을 일기에 끌어낸다죠. 해를 쏘듯 날카로운 검법의 바탕에는 어좌의 제후를 필살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허, 나이도 어리고 타고난 성정이 호걸이라 띄엄띄엄 볼 줄 알았건만 꽤 치밀하구만. 아주 인물이야.”

“뭐 띄엄띄엄 보는 건 아니고, 인물이긴 인물이죠.”


사일검객이 나를 잠시 쏘아보곤 말을 이어갔다.


“요즘 중원에서 도사들 사이에 유행하는 낭창한 검과 다르게 검 자체에 살기가 가득하지. 그것들은 계도를 한답시고 낭창낭창 흔들리는 검으로 파리 쫓듯 춤을 추는데 영 꼴불견이야, 사내라면 이런 묵직한 무기를 써야 제맛이거늘.”

“낭창한 검이요?”

“그래, 짧고 낭창한 검. 그런 검을 쓴다면 무슨 이점과 특징이 있겠나?”

“그야 무게중심이 비교적 자유로우니 신법이 세밀할 테고, 권장을 섞어 사용하겠죠. 검법의 특징은 손목과 팔의 기교에 치중하여 초서체처럼 빠르고 날렵할 테고.”


이건 신풍노사를 막아섰던 정위천을 보고 떠올린 부분이었다. 놈은 특이하게도 낭창한 검을 재빠르게 휘둘러 신풍노사의 묵직한 공격을 흘려내고 빈틈으로 파고들어 장타를 내질렀더랬다.


“아주 잘 봤구먼. 그 파해법에 대해서도 틈틈이 복기하며 구상하도록 해. 그게 절명의 순간에 자네를 살릴 길이 될 게야.”

“옙, 그럼 본론으로 좀 들어가시죠. 이제 시간도 얼마 없을 텐데.”

“허허, 그럴까?”


사일검객은 고개를 돌려 토번족들이 떠난 길을 바라봤다.


“토번족들은 말을 타고 활을 쏘더군, 직도도 쓰지만 그보다는 마상창법으로 상대하는 편이고.”

“말을 타고 오리라 생각합니까?”

“그렇겠지, 어제 내가 난동을 부렸던 이야기를 들었을 테니 대비하겠지. 오랑캐 놈들이 점잖게 오지는 않을 거야. 자네는 토번족의 공격을 어찌 파해할 생각인가?”


말 위에서 활을 쏘고 창을 내지르는 무리를 상대한다라, 처음 겪는 일이기에 쉬이 상상할 수 없었다.


팔짱을 끼고 깊은 고민에 빠진 사이, 저쪽 멀리에서 묵직한 말발굽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엄청 많네.”

“그래서 수적 열세를 어찌 극복할 생각인가?”

“그야,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쏴야죠.”


사일검객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총각 실력 어떤지 이 노인네한테 한 번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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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일장(一章) – 19 24.04.14 38 1 17쪽
31 일장(一章) – 18 24.04.13 38 1 14쪽
30 일장(一章) – 17 24.04.12 40 1 17쪽
29 일장(一章) – 16 24.04.11 43 1 15쪽
28 일장(一章) – 15 24.04.10 49 1 16쪽
27 일장(一章) – 14 24.04.09 49 1 16쪽
26 일장(一章) – 13 24.04.08 46 1 17쪽
25 일장(一章) – 12 24.04.07 50 1 16쪽
24 일장(一章) – 11 24.04.06 50 1 16쪽
23 일장(一章) – 10 24.04.05 50 1 14쪽
22 일장(一章) – 9 24.04.04 60 1 19쪽
21 일장(一章) – 8 24.04.03 61 1 17쪽
20 일장(一章) – 7 24.04.02 61 1 17쪽
» 일장(一章) – 6 24.04.01 67 1 17쪽
18 일장(一章) – 5 24.03.31 69 1 16쪽
17 일장(一章) – 4 24.03.30 76 1 14쪽
16 일장(一章) – 3 24.03.29 74 1 16쪽
15 일장(一章) – 2 24.03.28 88 1 13쪽
14 일장(一章) – 1 24.03.27 110 1 14쪽
13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3 24.03.26 119 1 14쪽
12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2 24.03.25 119 1 14쪽
11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1 24.03.24 143 1 12쪽
10 나락굴(奈落窟) – 10 24.03.23 122 1 15쪽
9 나락굴(奈落窟) – 9 24.03.22 129 1 13쪽
8 나락굴(奈落窟) – 8 24.03.21 136 1 16쪽
7 나락굴(奈落窟) – 7 24.03.20 142 1 13쪽
6 나락굴(奈落窟) – 6 24.03.19 161 1 14쪽
5 나락굴(奈落窟) – 5 24.03.18 180 2 11쪽
4 나락굴(奈落窟) – 4 24.02.02 306 4 14쪽
3 나락굴(奈落窟) – 3 24.02.01 348 3 12쪽
2 나락굴(奈落窟) – 2 24.02.01 389 3 17쪽
1 나락굴(奈落窟) – 1 24.02.01 560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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