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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ㅁㄴㅇㄹㅇㄴㄹ

천창무신(天窓武神)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매지컬백정
작품등록일 :
2024.01.31 02:41
최근연재일 :
2024.04.14 14:15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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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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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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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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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일장(一章) – 9

DUMMY

수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놈에게 곡괭이를 휘둘렀다.


퍼억! 우적!

【앞으로 스물두 마리 남았습니다.】


송곳날이 거칠게 파고들어 머리통을 부쉈다. 뼛조각과 뇌수, 눈알이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숲속에 핏내가 진동했다.


상처 입은 짐승이 더 사납게 울부짖는다 했던가, 나도 뱃병에 걸려 위기에 처하니 깊은 곳에서 생존을 위한 투지가 들끓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듯했지만, 정신을 다잡고 다시 포효를 내질렀다.


“우워어어어어!!”


순식간에 사람 하나가 터져 죽고, 연달아 내지른 포효에 산적들이 기겁하며 진흙밭을 굴렀다.


버둥대며 일어나 박도도 바닥에 내팽개치고 허겁지겁 산비탈을 뛰었다.


“도망, 도망쳐! 채주 불러와!”

“흐아! 요, 요괴! 살려줘어!”

“같이 가, 같이 가아아아악!!”


그런 와중, 진흙밭에 미끄러져 낙오된 놈이 먼저 떠나버린 동료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으나 애타는 손길을 잡아줄 이들은 이미 떠나버렸고, 놈에게 다가가는 건 나뿐이었다.


“흐이, 같, 같, 같이···.”


놈은 벌벌 떨며 진흙밭을 기었다. 고개를 뒤로 돌려 내가 다가오는 걸 틈틈이 확인하며.


“살, 살려, 살려줘요. 잘못했어요오. 제발 살려주세요.”


퍽! 우적.

【앞으로 스물한 마리 남았습니다.】


놈의 등골에 틀어박힌 송곳날을 뽑고, 시체들을 뒤져 수통을 찾아냈다. 물을 마셔 간절했던 해갈을 하고 나니 그제서야 바닥에 엎어져 죽은 놈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요괴인지 사람인지도 모르고, 미지의 존재에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기에 얼굴에는 지독한 공포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살려달라고 살려줄 건 아니고, 물은 고맙게 마셨수다.”


빈 대나무통을 바닥에 던지고는 곧장 초심자의 표식을 따라 백상주를 펼쳤다.


쿵, 쿵쿵쿵쿵!


여정 중에 경공의 숙련도가 꽤나 올랐다.


무게중심을 아래로 쏟아 묵직하면서도 빠르게 달리는 법을 슬슬 깨우치는 과정에서 이 경공에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됐다.


그야말로 거대한 코끼리가 앞뒤 가릴 거 없이 질주하는 기세를 품은 경공이 바로 백상주였다.


쿵쿵, 시끄러운 발소리를 내며 돌진하는 나를 목격한 산적들이 질겁했다.


“으아악! 따라온다!”

“뭐야, 뭐가 저렇게 빨라!”

“니가 시간 좀 끌어! 채주 데려올게!”

“뭐, 어어억?! 이런 개색···!”


뒤따라가던 놈이 앞에 선 놈의 옷깃을 붙들고 산비탈 아래로 끌어당겼다. 기우뚱 기울어 굴러떨어지는 놈을 그대로 발로 밟았다.


우적!


백상주로 묵직하게 달리는 중에 목울대를 제대로 밟았는지라 곧장 목뼈가 박살 나며 뒈졌다.


【앞으로 스무 마리 남았습니다.】

“우워어어어!!”


뒤로 젖힌 팔을 앞으로 휘둘러 곡괭이를 냅다 집어던졌다. 살을 빻는 차진 소리와 함께 산적이 나동그라졌다.


“히야아악! 살려줘!”


찢어지는 절규를 내지르며 흙바닥을 기어가는 놈에게 풀쩍 뛰어들었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발꿈치로 등판을 찍어눌렀다. 갈비뼈가 경쾌하게 부러지는 감촉이 발을 타고 머리끝까지 짜르르 번졌다.


바로 주먹을 내리쳐 놈의 관자놀이를 몇 번 빻아주자 온몸을 바르륵 떨더니 피눈물을 쏟아냈다.


“돌림빵은 씨발, 확 뒤질라고.”

【앞으로 열아홉 마리 남았습니다.】

“아, 이미 뒤졌구만?”


그럼 이제 나머지를 처리할 차례.

거대 곡괭이를 붕붕 휘두르며 백상주를 펼쳤다.



***



그저 그런 산적들이었다.


중원인과 오랑캐가 뒤섞인 무리로 도적이 되기 전에는 밭이나 갈던 촌부였을 자들에 불과했다.


기습으로 파심뢰정을 떨어뜨리니 피와 살점을 뒤집어쓰고 혼백이 쏙 빠졌지 뭔가. 애초에 기강도 없던 놈들이 공포에 질리기까지 하니 지리멸렬하게 와해된 덕에 차근차근 쪼개 죽일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비다르나아!!!”

【앞으로 한 마리 남았습니다.】


파심뢰정의 뇌성과 함께 산적의 몸뚱이가 터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맨발로 피와 살쪼가리를 밟으며 채주의 움막으로 들어섰다.


쩌걱, 쩌억.


성성이 발이라는 굉장히 모욕적인 말을 들어서 그런 걸까, 바닥에 찍힌 새빨갛고 커다란 발자국이 오늘따라 도드라져 보였다.


뻘건 흙과 살점 투성이의 발로 채주의 허리를 지그시 밟았다.


“이제 아저씨 하나 남았네?”


바닥에 엎어진 채주가 덜덜 떨며 오줌을 지렸다.


“대체 왜, 우리를···.”

“뭐 이유 있어? 니들도 길가는 사람 보면 신나게 죽여댔을 거 아냐. 나도 그냥 지나가다가 산적 만나서 죽이는 거니까 깊게 생각하지 마.”


채주는 구슬 같은 눈물을 똑 떨어뜨리곤 앞마당에 널린 부하들의 시체를 훑었다.


파심뢰정에 육편이 된 놈, 머리가 쪼개진 놈, 가슴과 배가 터진 놈, 관절이 꺾인 놈, 갖가지 방법으로 죽은 놈들을 보다가 허탈하게 웃었다.


“억울하다. 어쩌다 이 마귀 같···.”

“마귀는 아니고.”


퍽! 으적.


채주의 등골 사이로 틀어박힌 송곳날을 뽑았다. 놈은 파들파들 떨더니 일순에 푹 퍼졌다.


띠링! 촤라락.

【임무완료.】

「······을 완료. 보상으로 경험치 100획득. 수령 시에는 하단의 수령이라 적힌 단추를 눌러주세요.」


채주의 시체를 대충 발로 밀치고 움막 구석에 있는 큼직한 고리짝으로 다가갔다. 아까부터 이 고리짝 안에서 작은 빛조각이 뿜어져 몹시도 신경 쓰였다.


뾰로롱 소리를 낼 것만 같은 작은 빛조각과 아른한 빛무리, 황동반지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광경이었기에 몹시도 설렜다.


스윽.


고리짝의 뚜껑을 열자 정체불명의 풀뿌리 무더기 위에 무명천으로 감싼 작은 보통이가 있었다. 천을 풀어헤치자 웬 도라지처럼 생긴 오동통한 뿌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빛조각은 이놈이 흩뿌리고 있었다.


“뭐야 이게?”

【오십년길경근(五十年桔梗根) 획득.】

“도라지 맞네.”

【이는 삼품영약(三品靈藥)으로 정기 증진의 효능이 있습니다.】

“오···.”


오십년길경근을 챙기고 산채 곳곳을 둘러봤다.


말린 나물이나 기장 같은 식량, 흙을 가라앉히고 걸러낸 식수, 소금과 엿, 갖가지 살림살이 등은 기본이었다.


이것만 보면 그저 산골에 살아가는 작은 부락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 산채 한 편에는 행인들을 털어먹고 모은 재물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었다. 개중 몇몇은 검붉은 피가 눌러붙은 것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짐작게 했다.


한 줌에 들어오는 금조각과 은조각을 모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해쳤던 걸까. 이곳이 아무리 변방이라지만 관에서는 대체 뭘 하기에 손을 놓고 수수방관하는 걸까.


“···쯥, 황제 개새끼. 죄다 개새끼들이야.”


하지만 지금 개새끼를 따지기에는 내 상황이 좋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내가 한 마리의 강아지가 될 판이었다.


급히 움직이느라 싸르르 아픈 배를 부여잡고 잠시 엉덩이를 붙였다.



***



천년고도 장안(長安).


거대한 성벽 안에 살아가는 이들만 기십만이며 일대에 사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워 관리들이 붓을 내려놓는다 할 정도로 인구가 과밀한 곳이었다.


또, 장안은 나라의 경사(京師)이기에 황제가 거하는 황궁이 있음은 물론이고 조정대사를 책임진 문무대신들과 서역과 구주의 물자를 교역하는 거부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곳에 의천맹 본부를 세워 성의 내외를 표리로 감시하고 음양으로 경계하여 천하 만물의 지존인 황제와 억조창생보다 존귀한 피가 흐르는 황실의 일족,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경사의 귀족들을 수호하고 있었다.


금군이 황궁을 둘러싸고 의천맹의 고수들이 천지와 십육방을 감시하니 말 그대로 철옹성이라, 이 장안에서 난동을 부릴 자 누가 있으랴.


“위정단장, 무슨 고민이 그리 깊으시외까?”


누군가의 질문에 정위천이 무겁게 감겼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정위천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회의실의 탁자 주변으로 앉은 노고수들의 모습이었다. 그들 모두 내로라하는 명문대파와 고문대벌 출신으로 일류고수의 끝자락, 사람의 한계를 깨고 초인의 영역이라는 극정(極頂)의 경계를 한참이나 건너간 이들이었다.


“······아니올시다. 다들 의견이 있다면 개진해 보도록 하시오.”


정위천의 말에 노고수들이 하나씩 입을 열었다.


그중 가장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옛 기주(岐周)의 난신십인 남궁괄로부터 시작된 하북의 유서 깊은 가문이었던 남궁가의 남궁찬이었다.


“이 노부의 생각으로는 별일이 있을까 싶소이다. 오는 사월초파일에 법회를 크게 연다 하지만, 이전과 동일한 인원으로 편성해야 한다 생각하오. 경계병력의 증원에 관한 건은 이제 마무리 지읍시다.”

“그리 생각하신다라, 이 졸로의 생각은 좀 다르오이다.”


남궁찬의 뜻에 반대 의견을 꺼낸 것은 융중의 명문이었던 제갈가의 제갈경이었다.


“그간 조용했으니 올해에는 더욱 경계를 해야 한다 보오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올해 갑작스레 국사에 오른 강천국사(降天國師)의 대법회 아니오이까? 언제 신풍도귀나 사일검객 같은 이들이 나타나 암살을 꾀할지 모를 일이오.”

“흥, 모르는 소리. 사일검객 그 졸렬한 노인네야 그렇다 치고 신풍도귀가 아직도 살아있으리라 보시오?”


이번은 광성자(廣成子)로부터 시작된 명문대파인 공동파의 고석자(孤石子)였다.


“안타깝지만 신풍도귀는 분명 죽었소. 내 장담하리다.”

“목격한 이가 아무도 없잖소이까.”

“아니올시다. 그치 성격이라면 육 년이 넘도록 얌전히 있을 리가 없잖소. 분명 신변에 흉액이 닥친 것이 분명하오. 어떤 썩을 놈이 죽였는지는 몰라도 흉계를 꾸며 끔찍하게 죽였을 거요.”


고석자의 말에 정위천의 미간에 주름이 패였다. 본인이 신풍도귀를 함정에 빠뜨려 노역장으로 보내 산제물로 만들기도 했거니와, 고석자가 신풍도귀를 애석하게 여기는 발언에 심기가 상한 탓이었다.


“고석자.”

“예, 위정단장. 말씀하시구려.”

“지금의 발언은 꽤 듣기 거북하군. 역적을 비호하는 것이오?”


고석자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빈도가 언제 역적을 비호했소이까? 그런 발언을 한 적은 없소만.”

“다시 묻겠소. 역적을 비호하고 싶소?”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지 않았소!”

“본관의 귀가 잘못된 것인가? 공동파가 분명 역적을 비호하려는 마음을 품은 듯한데?”


정위천의 언사에 고석자가 결국 탁자를 내리쳤다.


“흠차사신(欽差死神)! 말이 너무 과하군!”

“···뭐라?”


황제의 명으로 벼슬아치를 감독하고 백성의 민생을 돌보는 관리가 아닌 황제의 명으로 사람의 목숨을 거두러 다니는 저승사자라는 말, 이는 정위천의 충심을 비꼬는 멸칭이었다.


“고석자! 감히 황상을 능멸했는가!”

“내 언제 황상을 능멸했단 말이오!”

“네놈, 말에 역심이 있구나!”

“어디다 대고 이놈저놈 경박한 언사를 지껄이며 사람을 역적으로 몰아가시오!”


회의장이 소란스러워지자 노인들이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막강한 세와 무력을 지닌 공동파는 제자들로 하여금 공동산 일대를 수비하고 감시하기에 황실의 입장에서도 없어선 안될 방벽 중의 하나였다. 그 공동산의 최고장로인 고석자의 성격이 드세어 매번 언쟁을 일삼으니 의천맹의 일이 제대로 풀릴 리가 없었다.


“빈도의 낯을 보아서라도 그만들 하시구려. 지금 대법회의 경계에 관해 회의를 하러 모인 마당에 어찌 우리끼리 말싸움을 일삼는단 말입니까.”


종남산 천둔파(天遁派)의 장로, 소순자(素淳子)가 두 사람을 제지하고 나섰다.


소순자는 그의 도호 대로 사람이 담백하고 순박하여 어지간한 일에도 화를 내는 일 없이 차분한 노인이었다. 하지만 성격과 달리 일신의 무력은 능히 일기당천을 해냈으니, 세간에서는 소순자를 이리 일컬었다.


비천우사(飛天羽士).


흠차사신, 신풍도귀, 사일검객, 흑공작 등과 같은 구주십걸의 일원으로 천둔파의 그 누구보다도 천둔검법(天遁劍法)에 통달하여 두 자루의 검으로 어검술을 펼치는 신기막측한 경지에 다다른 고수였다.


“다들 진정 좀 하시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십시다. 어찌 매 회의마다 열을 내십니까.”

“소순자께서 이리 말씀하시니 싸움은 그만하십시다그려.”

“고석자, 적당히 넘어가시오 하루이틀도 아니고.”

“정 대인께서도 말씀에 너무 날이 섰습니다. 역심이라니요, 그리하시면 이 노인네들이 겁나서 어찌 의견을 꺼내겠습니까.”


소순자의 뒤를 따라 노인들이 한참이나 중재를 하고서야 둘의 싸움이 가라앉게 됐다.


그럼에도 노기를 감추지 못하는 고석자와 살기 어린 눈매로 노려보는 정위천이 만들어 낸 어색함 속, 찻사발을 연신 주무르던 노인들은 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제각각 의견을 꺼내기 시작했다.


“허험, 졸로가 먼저 운을 떼도 되겠소?”

“그리하시지요.”

“내 아까도 말했듯, 올해에는 더욱 경계를 해야 하오. 황상께옵서 고대하시던 대법회이니 개미구멍만 한 빈틈도 있어선 아니 될 것이외다.”

“제갈공, 지금 가용인원을 알고 말씀하시는 게요? 북방도 문제지만 저 남방의 주애(朱崖)에서 해적이 대규모로 창궐하여 광주 일대까지 그 세를 넓혔다 하잖소. 광주의 무리가 놈들과 호응이라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오. 황상께옵서 남부의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계시잖소.”

“그 때문에 더더욱 그렇소이다.”


제갈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대법회의 의미가 천하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잖소. 작은 일이라도 발생한다면 황상께옵서 크게 질책하실 것이오. 몹시도 괴이시는 강천국사의 법회를 망치면 어떤 벌을 받게 될지 모를 일이외다.”

“흥, 강천국사라니. 그 강천종이 어떤 놈들인데···.”


강천종, 이곳에 모인 노인들은 그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기에 몹시도 떨떠름했다.


하지만 강천종 사건은 거의 팔구십 년 전, 조금 과하게 말하자면 백 년 전의 일화이며 지금의 나라가 세워지기도 전의 전설이었으니 이제 와서 진실을 밝히라 하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황제가 갑작스레 나타난 강천국사와 그가 몸을 담은 강천종을 몹시도 총애하고 비호했기에 섣불리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쯧···.”


결국 자리에 모인 몇몇 노인들이 성질을 못 참고 마뜩잖은 소리를 뱉어냈다.


“그 옛날의 요승이 맞겠지? 백오십 년을 넘게 살다니, 참으로 요물이로다.”

“모를 일이외다. 실제로 마주한 이가 없으니 본인인지 아니면 그 후계자인지 누가 알겠소.”

“뭐가 됐건 하필이면 그런 요사스러운 마교를···.”

“어이쿠, 말조심하시오. 마교라니, 그럼 황상께옵서 마교를 총애한다는 말이오이까?”


황제를 능멸하거나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말을 하면 역심을 품었다며 발작을 일으키던 정위천은 별다른 제지가 없었다. 되려 그의 얼굴에는 희미한 웃음이 어렸다.


금광신혈을 바친 공로로 강천승통이 국사의 자리에 오른 이후, 정위천에 대한 황제의 총애가 예전만 하지 못해 심기가 몹시도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자자, 강천국사 이야기는 그쯤으로 접어두고 앞으로 어찌하면 좋을지 생각이나 해봅시다.”

“손이 부족하니 아쉽구려. 저 운남 서쪽의 오랑캐들에게 잠입했던 일급 맹원들은 어찌 된 것인가?”

“그들 전부 실종됐잖소. 아마 불귀의 객이 되었을 것이오.”


남궁찬이 혀를 찼다.


“백이십 명가량의 많은 인원이었건만, 어찌 일순에 사라졌단 말인가.”

“몇 년이 지났지만 참으로 이상하단 말이지, 토번족에게 당했다기엔 석연치 않아···.”


지금껏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정위천이 탁자 위에 손을 올렸다.


텅.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정위천은 공동파의 고석자와 천둔파의 소순자에게 말했다.


“두 문파는 인원을 추려 보내시오. 금군과 경기군에서 충원될 인원을 계산하자면 각 오십 명 정도로 선발하면 충분할 듯하군.”

“뭐라, 오십 명이나?”

“허허허허, 그 오십 명 모두 일급 맹원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이오.”


정위천의 일방적인 통보에 고석자의 관자놀이에 굵은 핏대가 섰다. 시뻘게진 얼굴로 씨근거리고 있자니 정위천이 태연자약하게 고석자를 흘겼다.


“무슨 문제라도 있소?”

“이보시오, 일급으로 오십 명이면 본산의 일정에 차질이 생기오.”

“남은 인원이 바빠질 뿐, 전력의 구멍은 크지 않을 텐데?”

“도저히 못 참겠군, 그 무슨 망바···!”


정위천은 품에서 옥패를 꺼내들었다.


용봉을 조각한 녹옥에 금테를 두르고 금술을 길게 늘어뜨린 보물이었다. 이는 지존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신물로 그 대리자에게 권력의 행사와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하여 면책을 보장한다는 증표였으나, 때로는 가진 자의 성향에 따라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 악용할 수도 있는 물건이었다.


용봉옥패를 내보인 정위천은 묵직한 눈길로 좌중을 훑었다.


그에 남궁이건 제갈이건, 방금까지 핏대를 세우던 고석자를 포함한 모두가 의자에서 내려와 옷자락을 펼치고 무릎을 꿇어 머리를 조아렸다.


“만세 만세 만만세!”


정위천이 옥패를 내밀고 재차 물었다.


“공동파의 고석자, 어째서 그대는 의천맹의 행사에 대해 사사건건 방해를 하는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감히···.”

“또 어째서 대역죄인을 비호하며 그 죽음을 애통해 하는가? 지금 모든 정황이 그대가 역도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거늘, 공동파에 역심이 없다는 것을 어찌 증명하면 좋겠는가?”

“위름하고 황공하여 이 늙은이가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조정의 녹으로 구차하게 연명하는 늙은 몸 따위가 어찌 역심을 품으리이까. 감히 청컨대, 부디 황공무지한 말씀 거두어 주시옵···.”


고석자가 말을 하려 할 때마다 정위천이 흐름을 끊었다.


“이번 행사에 공동파의 충원 따위는 필요 없다. 고석자는 본산으로 돌아가 파촉(巴蜀)의 일에 대비하도록 하라.”

“파촉이라 하면···.”


장강의 시원이 있으며 물산이 풍부하고 산맥으로 둘러싸여 외적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 파촉, 많은 영웅들이 그를 이용하여 파촉에 자리를 잡고 할거했으니 능히 천부지국이라 이를 만했다.


전란의 시기가 끝나고 천하가 통일된 지금은 파촉 역시 황제의 통치와 조정의 통제를 받고 있었으나, 외부와 격리된 지형 특성상 그곳의 사람들은 꽤나 폐쇄적인 면이 있어 외지에서 온 관리들마저 은근하게 배척하기도 했다.


또한 이 파촉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토호들이 있었으니, 그 구성원 중에는 절대고수 중에서도 입신(入神)에 다다른 사해삼절(四海三絶)의 두 사람이 버티고 있었다.


폐쇄적이고 외지인의 통제를 껄끄럽게 생각하는 파촉인 중에 천하제일을 논할 사해삼절이 둘이나 있었기에 장안의 조정에서는 이를 굉장히 마뜩잖게 여기고 있었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공동파의 충심이 변함없음을 증명하고 싶다면 지금 바로 본산으로 떠나도록.”

“···성지를 받자옵나이다.”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창백하게 변한 고석자의 코에서 진득한 코피 두 줄기가 주르륵 쏟아졌다.


정위천은 그 모습을 싸늘하게 쏘아보곤 소순자를 향해 옥패를 내밀었다.


“그리고 종남산의 천둔파는 남부 토벌을 위해 제자들을 추려 떠나도록 하라. 형산파가 남부의 방파를 규합하고 있으니 그들과 합류하여 일을 처리하도록.”

“노신, 성지를 받자옵나이다.”

“남부에 도사리는 역적 하나라도 놓쳐선 아니 될 것이니.”


온갖 소란에도 시종일관 조용히 앉아있던 구석의 노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라 꼴 참으로 잘도 돌아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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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일장(一章) – 18 24.04.13 39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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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일장(一章) – 4 24.03.30 77 1 14쪽
16 일장(一章) – 3 24.03.29 75 1 16쪽
15 일장(一章) – 2 24.03.28 89 1 13쪽
14 일장(一章) – 1 24.03.27 110 1 14쪽
13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3 24.03.26 120 1 14쪽
12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2 24.03.25 122 1 14쪽
11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1 24.03.24 145 1 12쪽
10 나락굴(奈落窟) – 10 24.03.23 124 1 15쪽
9 나락굴(奈落窟) – 9 24.03.22 133 1 13쪽
8 나락굴(奈落窟) – 8 24.03.21 139 1 16쪽
7 나락굴(奈落窟) – 7 24.03.20 145 1 13쪽
6 나락굴(奈落窟) – 6 24.03.19 164 1 14쪽
5 나락굴(奈落窟) – 5 24.03.18 182 2 11쪽
4 나락굴(奈落窟) – 4 24.02.02 308 4 14쪽
3 나락굴(奈落窟) – 3 24.02.01 349 3 12쪽
2 나락굴(奈落窟) – 2 24.02.01 391 3 17쪽
1 나락굴(奈落窟) – 1 24.02.01 561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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