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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ㅁㄴㅇㄹㅇㄴㄹ

천창무신(天窓武神)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매지컬백정
작품등록일 :
2024.01.31 02:41
최근연재일 :
2024.04.14 14:15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3,988
추천수 :
42
글자수 :
215,581

작성
24.04.0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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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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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일장(一章) – 11

DUMMY

“예?”


깜짝 놀라 노복을 쳐다봤다. 노복은 비시시 웃으며 내 손목에 줄자를 둘렀다.


“왜 그리 놀라십니까? 이놈이 많은 사람들을 봐왔지만 나으리 같은 분은 처음이라 그렇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나으리의 허벅지랑 볼기가 군마 같습니다. 또 허리 심줄은 어떻구요. 질기기가 백 년 묵은 칡넝쿨보다도 질겨 보입니다.”

“아아, 옙.”

“가슴판이 대문간이고 등판은 마당이로다. 여기서 애들 뛰어놀아도 되겠습니다.”


팔을 재던 노복이 물었다.


“뭇 여인들이 사모했을 법한데, 혹시 숨겨둔 애인이 있으십니까?”

“그런 거 없어요.”

“설마요, 그럼 아직 숫총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답 없이 시선을 슬쩍 피하자 노복이 음흉하게 웃었다.


“그럼 어떻습니까. 그게 꼭 흉은 아니지요.”

“···네, 뭐.”

“물론 나이를 더 먹고서도 숫총각이라면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겠지만 말입니다. 열여덟이면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어서 장가를 드셔야지요.”


노복은 그 후로 말없이 내 몸을 이리저리 재고 줄자를 접었다.


“이제 다 됐습니다. 좀 작긴 하겠지만 당분간 입을 옷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예에.”

“그리고 말입니다. 주인어른께서 나으리 대접하신다고 돼지랑 닭도 잡았으니 모쪼록 즐겁게 잡수셨으면 합니다요.”


그리 말을 한 노복은 종종걸음으로 욕탕을 빠져나갔다.



***



“자자, 어서 쭈욱 들이켜시구려.”


집주인이 권하는 술은 그간 맛봤던 술과 달리 굉장히 향이 좋았다. 귀한 가축을 잡아 만든 음식들 또한 정성을 가득 들였기에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그야말로 나를 위한 잔치였다.


내가 지불했던 금액이 굉장히 컸기에 돈값을 한다 볼 수 있기도 한데, 무슨 일인지 이 환대가 영 껄끄럽게 다가왔다.


어찌 됐건 간만의 식사였으니 배부르게 먹고 술잔을 슬쩍 밀었다.


“이제 충분히 먹었습니다.”

“참 맛있게 드시더구려. 입에 맞는 듯하니 다행이올시다.”

“예, 빈말이 아니라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리 말해주니 내가 다 기쁘오.”


집주인은 웃는 중에 또다시 내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


왜 자꾸 뚫어지게 쳐다볼까.


혹여 우리 부모님에 관해 알고 있다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내 진짜 정체를 눈치챘나 싶어 보관함에서 곡괭이를 꺼낼까 고민될 정도였다.


“주인어른, 완성됐습니다.”

“오, 마침 잘 됐군. 이리 가져오게.”


늙수레한 노복은 담긴 쟁반을 내밀었다. 위에는 호패와 비단종이를 곱게 접어넣은 가죽봉투가 놓여있었다.


호패에 흙과 기름을 발라 일부러 지저분한 꼴로 만들어 놨는지라 유심히 들여다봐도 몇 년은 묵은 모양새였다. 파낸 각자(刻字)도 일부러 모서리를 뭉개고 조금 손상시켜 그럴싸하게 해놨다.


“새 호패면 의심을 사는 수가 있소. 적당히 손때 탄 외관을 해야 그냥 넘어가는 법이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군요.”

“자, 받으시구려. 앞으로 총각은 이 곤명현 태석촌의 강연이라는 사내가 됐소이다. 구구절절한 사연은 대충 뭉개고 조실부모하여 우리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문무를 닦던 걸로 합시다.”

“감사합니다.”

“뭘, 돈값 한 거지.”


술을 홀짝 들이켠 집주인이 나를 은근한 눈으로 훑었다. 아까부터 사람 긴장되게 자꾸 왜 저러는 건가.


“그런데 총각, 우리집에서 이 일을 해준다는 사실은 어디서 듣고 오셨소? 저자에서 귀동냥했을 리는 없고.”

“강호를 누비는 어느 고수에게 듣고 찾아왔습니다.”

“나를 아는 이가 얼마 없거늘,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그 고수가 누구인지 물어도 되겠소?”


딱히 사일검객이 말을 해라 마라 그런 조건은 걸지 않았다. 그저 내가 찾아가서 재물을 넉넉하게 꺼내면 호패를 만들어 줄 거라 했었다.


자신의 지인에게 싸가지없게 굴지 말고 예의 갖추라는 말은 덤이었고.


“그게···.”


주변을 슥 둘러보자 집주인이 손을 들어 비복들에게 물러나라는 신호를 보냈다. 주변의 눈이 물러났을 때, 술을 찍어 집주인 앞에 넉 자를 적었다.


사일검객.


집주인의 눈이 부릅 뜨이며 숨을 멈췄다. 술을 들이부어 멈춘 숨통을 트고는 가슴을 크게 들썩였다.


“허어, 내 눈은 틀리지 않았구먼.”

“무슨 말입니까?”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리다.”


집주인은 한쪽으로 밀어낸 내 술잔에 굳이 술을 채웠다. 그를 들자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총각, 아니 소협.”

“예, 말씀하세요.”

“당분간 우리집에서 머물다 가시는 건 어떻겠소?”

“예?”

“사일노사를 알고 지내는 것도 그렇고, 행색을 보아하니 참 고된 길을 가려는 사람 같은데 잠시나마 짐은 내려두고 일 년이라도 한곳에 머무르며 앞날을 준비하는 게 어떻겠냐 이 말이오.”


아니 이게 뭔 소리야 갑자기, 뜬금없이 왜 여기서 살아. 갈 길이 구만리인데.


“너무 갑작스럽습니다. 제게 왜 이러는지 이유라도 말씀을 해주셔야죠.”

“사실 내가 사람의 상을 좀 본다오.”

“관상이요?”


집주인은 손가락을 내밀어 내 이목구비를 가리켰다. 이어 손가락을 내려 내 어깨를 비롯한 몸뚱이를 가리켰다.


“옥면도 옥면이나 참으로 상서롭구려, 귀인이 될 상이니 내 어찌 놓칠 수 있겠소. 그 이른 나이에 사일노사와 함께 뜻을 모은 것만 봐도 명세지웅(命世之雄)의 재목 아니겠소.”


눈 뒤집혀서 사람 도륙하는 놈이 무슨 명세지웅의 인재, 아무리 내 칭찬이라지만 이건 좀 아니지.


왠지 머쓱해져 배부른데도 술잔을 싹 비워버렸다. 집주인은 빈 잔에 술을 채우며 물었다.


“나와 뜻을 함께 함이 어떻겠소? 내 적극적으로 도와주리다.”

“···서로 통성명도 하지 않은 사이에 과한 일입니다. 그저 술자리의 지나가는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아! 실례했소이다.”


집주인은 술병을 거두고 내게 손을 모아 인사를 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소생의 이름은 왕자운이라 하오. 소협의 성명은 굳이 묻지 않을 테니 천천히 술을 즐기며 생각해 보시구려. 편히 들도록 이만 가보리다.”

“배려 감사합니다.”


나가던 집주인이 문간에서 발을 잠시 멈췄다.


“잠자리는 미리 봐두겠소. 편히 쉬시구려.”



***



몸을 다시 씻고 객청의 침실로 들어섰다.


오래됐지만 깨끗하고 반지르르한 마룻바닥 위, 푹신한 침요와 보드라운 이불을 깔아 이부자리를 봐놨다.


그리고 그 위에는 무슨 일인지 과년의 소녀가 비단옷을 입고 앉아있었다. 끽해봐야 나와 두 살이나 차이 날 법한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발그레한 홍분을 바르고 연지를 칠한 입술에 먹으로 날렵하고 진하게 그린 눈썹이 아래위로 강렬하게 어우러졌으며, 미간에는 새빨갛게 화전을 그려 눈길이 절로 끌렸다.


“엇?”


소녀는 내 살갗을 보고 흠칫 놀랐지만 이내 숨결을 고르고는 나를 불렀다.


“나으리.”


황급히 몸을 가리고 답했다.


“···누구···세요?”

“···이름 없는 종년입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이년, 나으리의 밤수발을 들게 되었으니 부디 내치지 마시기를 간청 드립니다.”


과년의 종비가 내 총각딱지를 가져가기 위해 들이닥친 상황, 이런 와중에 더욱 황당하게도 익숙한 알림음이 울렸다.


띠링! 촤라락.

【돌발임무 발생.】

「주인집의 여식이 수청 들기를 요청합니다. 임무를 완료하면 경험치와 함께 뭔가 좋은 걸 줄지도? 수락하시겠습니까?」


뭐라, 종비가 아니라 이집 딸내미?

어째 곱게 화장을 하고 비단옷을 입었더라.


소녀는 뻣뻣하게 굳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참 듬직하고 아름다우십니다.”


소녀는 그리 말을 하며 옷고름을 풀었다.


꽉 조인 옷이 사르르 벗겨지며 봉긋 솟은 젖가슴이 보드랍고 뽀얀 살결과 발그레하게 고운 자태를 고스란히 내보였다.


“추우니 어서 이리 오시어요.”


춥긴, 날이 더워서 땀이 나는데 뭐가 추워.

지금 내 몸이 펄펄 끓는데 대체 뭐가 춥단 말입니까···.


이부자리 위에 정좌한 소녀가 허리춤까지 풀었다. 고운 찰떡처럼 윤이 흐르는 허벅지 사이로 비처를 감싼 검은 휘장이 드러났다.


급히 눈을 돌리자 소녀가 보드랍고 촉촉한 웃음소리를 냈다.


“관옥만큼이나 몸도 참으로 아름다우십니다. 그리고 어쩜 이리···.”

“저기, 아름다운 건 알겠고.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러면 곤란하죠.”

“···예?”


고개를 돌린 채로 뒤로 물러나자 소녀의 달뜬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잠깐의 틈을 두고 이어진 소녀의 말투에는 달뜬 열기가 아닌 늪바닥처럼 차갑고 질척한 감정이 엉겨있었다.


“혹시 이년이 맘에 차지 않으십니까?”

“이년 저년 가릴 처지는 아니고, 그냥······.”

“···그냥?”


뭐라 답을 해야 좋을지 몰라 궁색한 변명이나 떠올리는 나를 채근하듯 임무창이 명멸했다.


「주인집의 여식이 수청 들기를 요청합···.」


어쩌지, 이 임무를 받으면 집주인 딸내미랑 동침해야 한다는 말이잖아.


나 도백연, 한창나이인 십팔 세.


알만큼 알고 배울 만큼 배워서 모를 게 없지만 겪은 적이 없었을 뿐, 마음 깊은 곳에서 혹하여 소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낚아채고픈 충동이 일었다. 당장 달려들어 서로를 희롱하며 뒹굴까 싶다가도 아니다 싶어 주저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고민에 또 고민해 봐도 이건 아무래도 아닌 듯했다.


“거절.”


띠링.

【사용자 도백연의 명령 확인. 임무거절.】

“아아, 그냥 거절······.”


고개를 숙인 채로 일어서는 소녀의 얼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새빨갛게 달궈졌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살짝 떨기까지 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예, 나으리. 참으로 민망하고 송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물러가 보겠습니다.”

“아니. 그게 그 뜻이 아니라.”

“후, 그냥 거절. 그냥 거절이래···.”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주인집 딸내미는 이미 침실 바깥으로 나가 문짝을 닫은 후였다.


“젠장, 그러든지 말든지.”


주인집 딸내미라는 걸 내색하지 않아 다행이었지, 일부러 과객의 수청을 드는 종비처럼 행세한 소녀에게 그걸 내색했다면 커다란 치욕이 됐을 터였다.


대체 무슨 연유로 이런 모욕까지 감내하며 갑작스레 딸내미를 왜 들였는지, 주인장이 무슨 꿍꿍이를 품었기에 이런 방법을 동원해서까지 내 발을 잡으려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쨌건 그건 그거고.


“상태창 대협, 혹시 임무 거절했다고 불이익 생기는 건 아니지?”

【거절로 인한 불이익이 생기는 임무가 아닙니다.】

“그렇구만.”


소녀의 일은 당혹스러웠으나 애초에 내가 하자고 한 것도 아니었으니 알 바는 아니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더럽게 아쉽기는 아쉬웠다. 나도 나이가 있는데 여인의 손도 못 잡아보고 나이만 먹지 않았나.


조금 전 봤던 소녀의 뽀얀 젖가슴과 허벅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미간에 피가 차올라 콧속이 찡해질 정도로.


“후우, 뭔 일이래 이게.”


이부자리로 가려다가 몸이 불편하여 발치를 내려다봤다.


“···시벌, 뭔 일이래 이게. 언제부터 이랬어.”


잽싸게 이불 위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질끈 감았다. 손에 단전을 담아 깊고 고른 호흡으로 바짝 끓어오른 열기를 한 김 식혔다.


“후우우우우, 잠이나 자자.”


숯의 빛이 사그라들었다고 어디 그 뜨거운 불이 죽던가. 바람만 불면 살아나는 게 불이고 스치기만 해도 솟구치는 게 이팔청춘이라.


김을 뺐지만 여전히 뜨거워 단전까지 요동치는 마당에 잘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베개에 머리를 뉘었다.



***



야심한 시각, 안채의 대청에서 한바탕 난리가 일었다.


“여보, 이게 무슨 망신이랍니까. 대체 얘가 뭐가 부족해서 그런 수모를 당해야 합니까.”

“아버지, 그냥 거절이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이유도 없이 그냥, 그냥 거절이라잖아요!”


집주인인 왕자운은 딸과 부인의 날선 추궁에 눈을 부릅뜨곤 회초리를 치켜들어 마룻바닥을 내리쳤다.


“그 입 다물라! 우리 집안의 명운이 걸린 일이거늘!”

“헛, 여보?”

“아버지?”


평소 어지간한 일로는 화를 내지도 않는 위인이 회초리를 치켜든 모습에 딸과 부인이 당황했다. 왕자운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라 호통을 쳤다.


“이토록 하 수상한 시절에 그런 사내가 나타났으면 어떻게 해서든 잡아 연을 맺을 생각을 해야지, 당장의 체면을 따지고 있어!”

“여보, 그럼 대체 그 총각 관상이 어떤지나 말을 해주세요. 나는 관상을 모르니 뭘 안답니까.”


옆에 앉은 딸이 부인의 손등을 꼭 움켜쥐었다.


“관상 좋던데?”

“관상을 알아? 아버지한테 배웠니?”


딸은 고개를 슬슬 저으며 오묘한 눈빛을 품었다.


“잘생겼잖아. 잘생긴 관상.”

“이년아, 잘생겼다고 다 좋은 줄 아니. 얼굴 뜯어먹고 살래?”

“아니, 물고 빨아야지. 그 잘생긴 얼굴 뜯으면 어떡해.”


딸의 말에 부인이 뒷목을 잡고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이년이 못하는 소리가 없어! 잘생기면 다 되는 줄 알아!”

“아 왜애. 다 되는 거 아냐?”

“계집년이고 사내놈이고 못생기면 꼴값을 떨고 고우면 얼굴값을 받아먹는 게 사람이다. 번질번질한 낯거죽 아래에 무슨 마음을 품었을지 모를 일이야.”

“근데 몸도 그렇고 다 엄청엄청 그랬어. 저기 장안이랑 낙양에도 그런 사내는 없을 거야.”

“이놈의 기집애가 뭘 안다고? 어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아버지 앞에서 사내 몸에 대해 떠들어.”

“근데 진짜 엄청났단 말이야.”


곰곰이 생각하던 부인은 왕자운을 흘끗 살피곤 딸내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얼마나?”

“···이만큼.”

“···거짓말!?”


두 모녀가 밀담을 나누는 동안 왕자운은 회초리를 들어 마룻바닥에 도백연의 가명과 생년월일을 휘휘 써 내려갔다.


“가짜라 하더라도 본인이 남들에게 드러내려 만들었으니 이것도 효력이 있는 법이야. 애초에 궁합이 완전히 맞는 건 아니나 어긋남은 없었어. 이럴 리가 없는데.”

“그렇습니까? 여보, 상이 어땠는지 말이나 좀 해봐요.”

“매서운 눈가에 정광이 맺히고 우뚝한 코에 서기가 맺혀 용호(龍虎)의 강맹함을 품고 있으나 살기가 짙어 봉린(鳳麟)의 인덕이 없으니 살성이 될 것이오. 하지만 아무리 못해도 한 산마루의 우두머리가 될 웅재로다.”

“그리고요?”


딸과 부인이 왕자운의 입만 빤히 바라봤다.


“몸이야 태산같이 웅장하니 거력이 하늘을 찌를 게 분명하여 상을 볼 필요가 없으나 굳이 상을 보자면 근골이 동철(銅鐵)이요 양기가 참으로 후대(厚大)하니 그를 따르는 여인은 긴 기쁨과 복을 얻을 것이요, 그 자식은 아비를 닮아 서기를 품을 것이라. 이는 필시 하늘의 상서로운 기운이 내려온 것이오.”

“그럼 성정이 잔혹하나 왕후(王侯)에 오를 관상이라는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회초리로 마룻바닥에 글월을 쓰던 왕자운이 허리를 세웠다. 문득 떠오른 게 있어 부인에게 물었다.


“며칠 전 서녘에 오색구름이 보이기에 뒷마당의 마른 우물을 다시 파고 물을 부어두라 했잖소. 그건 어찌 됐소?”

“물을 스무 말을 부어도 죽죽 흘러나가 손바닥만큼만 고입디다. 다시 스무 말을 부어놨는데도 밑바닥이 젖어만 있어 뚜껑을 덮어놨었죠.”

“뭐라?! 이러니 천룡이 내려와도 쉴 곳을 못 찾아 떠나가고, 목마른 코끼리가 왔다가 발을 돌리지!”


회초리를 패대기친 왕자운이 탄식했다.


“나 왕자운이 어리석었도다! 하늘만 보다가 하늘을 맞이할 땅을 보지 못해 천기가 내 손을 빠져나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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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일장(一章) – 19 24.04.14 38 1 17쪽
31 일장(一章) – 18 24.04.13 39 1 14쪽
30 일장(一章) – 17 24.04.12 41 1 17쪽
29 일장(一章) – 16 24.04.11 43 1 15쪽
28 일장(一章) – 15 24.04.10 49 1 16쪽
27 일장(一章) – 14 24.04.09 49 1 16쪽
26 일장(一章) – 13 24.04.08 46 1 17쪽
25 일장(一章) – 12 24.04.07 50 1 16쪽
» 일장(一章) – 11 24.04.06 51 1 16쪽
23 일장(一章) – 10 24.04.05 50 1 14쪽
22 일장(一章) – 9 24.04.04 60 1 19쪽
21 일장(一章) – 8 24.04.03 61 1 17쪽
20 일장(一章) – 7 24.04.02 61 1 17쪽
19 일장(一章) – 6 24.04.01 68 1 17쪽
18 일장(一章) – 5 24.03.31 69 1 16쪽
17 일장(一章) – 4 24.03.30 76 1 14쪽
16 일장(一章) – 3 24.03.29 75 1 16쪽
15 일장(一章) – 2 24.03.28 88 1 13쪽
14 일장(一章) – 1 24.03.27 110 1 14쪽
13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3 24.03.26 120 1 14쪽
12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2 24.03.25 120 1 14쪽
11 상태창 대협을 주웠다 - 1 24.03.24 144 1 12쪽
10 나락굴(奈落窟) – 10 24.03.23 123 1 15쪽
9 나락굴(奈落窟) – 9 24.03.22 131 1 13쪽
8 나락굴(奈落窟) – 8 24.03.21 138 1 16쪽
7 나락굴(奈落窟) – 7 24.03.20 143 1 13쪽
6 나락굴(奈落窟) – 6 24.03.19 162 1 14쪽
5 나락굴(奈落窟) – 5 24.03.18 180 2 11쪽
4 나락굴(奈落窟) – 4 24.02.02 306 4 14쪽
3 나락굴(奈落窟) – 3 24.02.01 348 3 12쪽
2 나락굴(奈落窟) – 2 24.02.01 389 3 17쪽
1 나락굴(奈落窟) – 1 24.02.01 560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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