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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이세계를 걷는 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잭키
작품등록일 :
2018.04.09 11:57
최근연재일 :
2018.07.09 19:0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12,656
추천수 :
208
글자수 :
121,560

작성
18.05.18 12:56
조회
187
추천
4
글자
7쪽

34화

DUMMY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꿈이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던 이상할 것이 없지만, 이상하게도 현실같은 감각이 느껴지는 지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내가······보이는가?’


역시나 대답이 돌아오진 않았다. 다만 내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꿈의 이야기가 움직인 건지,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끝으로 그는 땅에 밖아 놓은 검을 뽑아들고 적진으로 뛰어갔다.


붉은 갑옷은 피에 뒤덮여 더욱 붉어졌고, 그의 손과 머리카락도 피를 뒤집어 쓴 산송장같은 모습이었지만, 한 순간도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 그를 보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이 전신으로 퍼졌다.


하지만 꿈은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다른 곳으로 전환되며 익숙한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게헤리스, 길리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려 해봤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만히 꿈을 관람하기로 마음을 먹자, 얼핏 보면 사자가 서있는 듯한 모습을 한 사내가 말에서 내려 길리안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길리안, 자네라면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내는 아쉽다는 목소리로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려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길리안은 조롱이 섞인 코웃음을 치며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응수했다.


“황제 폐하의 은혜를 배신한 네놈 따위가, 내게 이해를 바라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게헤리스.”


전장을 누비며 피를 뒤집어 쓴 길리안은 누가 봐도 송장에 가까운 상태인 반면, 게헤리스는 단 한 번의 싸움도 치루지 않고 ‘권능’의 힘을 피한 후에 그의 앞에 나타났으니,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리안은 기세를 몰아 강렬한 살기를 뿜으며 결코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크아아!”


우렁찬 포효와 함께 게헤리스가 돌진하며 검으로 길리안을 내리쳤다. 단두대처럼 날아드는 검을 정확하게 보고 길리안이 검을 들어올려 자신을 방어하자, 두 검이 부딪히며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이은 격돌은 사방으로 불꽃을 튀기며 한 쌍의 나비가 춤을 추듯 유연하면서도, 때로는 사자와 피투성이의 야수가 겨루는 것처럼 날카롭게 서로의 숨통을 노리며 검을 주고받았다.


마치 현실처럼 생생한 두 사람의 결투는 처음에는 비슷하게 흘러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 면에서 불리했던 길리안이 밀리기 시작했다.


‘카아앙!’


양손으로 검을 쥔 게헤리스가 강력한 일격을 가하자, 요란한 쇳소리가 불꽃을 사방으로 튀겼다. 힘을 잃기 전의 그였다면 가볍게 쳐내고 숨통을 끊었겠지만, 모든 것을 잃은 지금의 그는 막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크흠!”


검의 중압감이 전신을 눌러오자, 힘에 밀린 길리안의 두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게헤리스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번졌다.


“잘못된 주인을 섬긴 개가 어떻게 되는지 볼 수 있겠군.”


그 순간, 길리안은 오른편의 허공을 바라보더니 승리를 확신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친 소리, 황제께선 두 눈을 시퍼렇게 뜨시고 지금 네놈의 옆에 서계시는데 그 따위 헛소릴 지껄이느냐?”


온힘을 다해 검을 밀어낸 그는 정확하게 내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양손으로 쥔 검을 바닥에 꽂으며 무릎을 꿇어 예를 갖췄다. 돌발행동에 당황한 게헤리스가 내가 있는 방향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크게 뜨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놀라울 정도로 신기한 꿈, 마치 그의 눈에는 내가 보이는 것처럼 행동했기에 한순간 내 자신이 다시 황제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적을 속이기 위한 행동이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찰나의 순간, 길리안은 도박에 가까운 시도로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게헤리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가자마자 곧장 바닥을 차고 양손으로 쥔 검을 머리부터 바닥까지 전신의 힘을 실어 내리쳤다.


“이 비겁······!”


미처 막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허공을 보던 게헤리스는 급히 자세를 고치려 들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일격을 정통으로 허락한 그는 이어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사자 형상의 투구를 그대로 잘라내며 두개골부터 정확하게 세로로 나눠진 육신은 두 덩어리의 고기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기사로서 비열한 방법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만한 일이지만, 그는 반격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에 지친 몸을 이끌고 모든 힘을 쥐어짜내 소리쳤다.


“적장을 베었다! 모두 돌격하라!”


길리안이 손에 든 게헤리스의 머리를 높이 치켜들자, 사기를 되찾은 병사들이 대지를 박차고 앞으로 달렸다. 꿈의 끝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는 비황파의 잔존 병력들과 끝까지 저항하는 칼란인들이 보였다.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꿈이 끝나가자, 천천히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곧 어두움만이 가득해졌다.


어두움 속에서 빛이 얼굴을 강타하자,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움직였다. 눈을 뜨니 환하게 빛나는 천장을 덮은 눈부신 햇살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끄으응.”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비록 꿈이지만, 그리운 기분과 동시에 안도했다. 존재하지는 않지만 한 때는 정말 존재했다고 믿었던 환상이 무사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봐서 그런 것 일까,······복잡한 생각은 접어두고 곧 끝날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야겠다.


제국사 마지막에는 내전에는 승리하지만 결국 길리안의 죽음이 확정된 상태로, 오늘 꾼 꿈과는 다르게 진행될 예정이다. 물론 몇 달간 나타났던 허상이 말했던 역사와도 다르게 흘러가게 될 것이다.


‘어차피 그것도 내 상상이었으니, 다르다고 볼 수는 없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펜을 잡고 하루에 수천, 수만 자를 적었지만, 요즘에는 완결에 가까워져서 최대한 신중하고 온 정신을 집중하여 한 자, 한 자를 새기는지라 진행속도가 더뎌졌다. 물론 그만큼 만족스러운 작품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제국사가 끝나면 황제로서 살아왔던 내 삶도 함께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와이즈 대륙, 바라스 제국, 기사 길리안······, 모두 불행을 겪으며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상상 속에서 탄생한 존재들, 그렇지만 그들의 존재가, 내게 구원을 줬다.


망상도 내 자신이 한 행동이니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섰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망상에 불과한 존재들은 자신을 황제라 칭하며 살아온 한순간에는 정말로 실존했던 것들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제는 떨쳐낸 불행과 함께,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고 싶다.


작가의말

끄응... 분량 맞추기가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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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38화 - 마지막 이야기(2) 18.07.03 125 2 4쪽
40 38화 - 마지막 이야기(1) 18.07.02 130 1 3쪽
39 37화(2) 18.06.12 149 1 4쪽
38 37화(1) 18.06.08 128 3 4쪽
37 36화(2) 18.05.31 139 4 4쪽
36 36화(1) 18.05.25 144 4 4쪽
35 35화 18.05.21 155 3 7쪽
» 34화 18.05.18 188 4 7쪽
33 33화 18.05.17 182 5 7쪽
32 32화 18.05.17 181 3 7쪽
31 31화 18.05.17 170 4 7쪽
30 30화 18.05.16 185 4 7쪽
29 29화 18.05.15 205 3 7쪽
28 28화 18.05.14 197 3 7쪽
27 27화 18.05.12 199 3 7쪽
26 26화 18.05.11 193 3 7쪽
25 25화 18.05.10 204 4 7쪽
24 24화 18.05.09 227 5 7쪽
23 23화 18.05.08 218 4 7쪽
22 22화 18.05.07 217 5 7쪽
21 21화 18.05.04 244 5 7쪽
20 20화 18.05.03 252 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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