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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이세계를 걷는 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잭키
작품등록일 :
2018.04.09 11:57
최근연재일 :
2018.07.09 19:0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12,608
추천수 :
208
글자수 :
121,560

작성
18.05.14 18:28
조회
195
추천
3
글자
7쪽

28화

DUMMY

도시의 거리를 지나 숲을 걸어 저택에 도착했다. 정문에 가까워지자 요란하게 들리는 소리로 추측해 보건대 아마 무언가 놀랄만한 일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대감에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번졌다.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 그 순간.


‘펑!’


파티용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며 종이로 된 내용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발장 양옆에는 엄마와 집사장님이 맨 앞에 서있었고, 그 뒤로 요리사 아저씨, 라잔과 다른 사용인들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고생했어, 상위야!”


“고생하셨습니다! 도련님!”


“표정 좀 봐! 많이 놀라셨습니까, 도련님? 하하핫!”


가족들의 성대한 환호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가자, 부엌을 시작으로 부엌과 연결되는 손님들을 맞이할 때 사용하는 특실까지, 마치 중세 판타지에서 나올 법한 분위기의 연회장처럼 꾸며져 있었다.


고작 시험하나 치고 온 건데 이정도로 환대해주는 것도 우습지만, 이 나라에서는 그 시험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큰 시험이었다.


아직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라니, 실소가 나오긴 했지만 지금의 해방감을 놓치고 싶진 않았다.


“다들 감사합니다.”


“자자, 서 계시지 마시고 앉으시죠!”


연회는 즐겁게 흘러갔다. 실컷 먹고 떠들면서 그간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더 이상 밤을 새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곧 아버지가 돌아오신다는 사실이었다.


“하아, 잘 먹었다.”


간만에 제대로 솜씨를 발휘한 요리사 아저씨 덕에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침대에 누웠다. 텅 빈 천장에서 잔잔하게 빛나는 형광등을 보며 스르륵 잠에 들었다.


수능이 끝나고 3주 정도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수능 점수가 발표되는 날이 왔다. 공교롭게도 그토록 기다리던 아버지가 오는 날도 오늘인지라, 기대는 배가되어 들뜬 마음을 가라 앉힐 수 없도록 만들었다.


“어? 이상!”


멀리서 현진이가 손을 흔들며 내 쪽으로 뛰어왔다. 눈밑을 보니 어제도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린 모양이다.


“많이 피곤해 보인다?”


“으, 죽겠다 진짜, 그래도 다음 주에 실기니까 이번 주만 참으면 돼.”


솔직히 현진이의 실력이라면 입시 미술 정도야 쉽게 합격하고도 남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그림만 그렸으니 오죽할까. 그럼에도 녀석이 손에서 연필을 놓지 않는 것은 그만큼 기대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는 거겠지.


내 표정을 보고 눈치 챘는지, 녀석이 피식 웃으며 내 등짝을 가볍게 치며 씨익 웃었다.


“얌마, 니 점수 걱정이나 해라, 오늘 나오잖아.”


“신이 장난이라도 치지 않는 이상은 잘 나오겠지.”


남은 출석일수를 채우기 위해 가는 학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1교시부터 4교시 까지 잠만 자는 아이들, 스마트폰에 영화를 넣어서 실컷 보는 아이들과 아예 노트북을 가져와 온라인 게임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오늘 발표되는 수능 점수에 대한 압박은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무의미한 시간이 흐르고, 4교시가 끝나 모두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현진이는 곧장 미술학원으로 가며 점수 나오면 바로 전화하라는 말과 함께 가버렸다.


“가볼까.”


발걸음이 가벼웠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당일 컨디션도 최상이었고, 문제를 풀 때 시간이 모자라는 과목도 한 개도 없었으니, 당연히 3등급도 안 나올 리가 없으니까······, 였을 터였다.


“······뭐야 이게.”


처음 성적을 확인 했을 때는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3등급을 받은 과목은 단 하나, 그것도 가장 자신 있었던 국어 단 한 과목 뿐, 나머지들은 4등급, 최악은 6등급까지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단순히 전산 오류라고 생각하면서 현실을 부정했으니까. 재차 눈을 비비고 다시 점수를 확인 했을 때는 그제야 전신에 다가온 차가운 현실에 온몸에 덜덜 떨리며, 극도의 불안감에 식은땀이 흘렀다.


무너져 내린 정신으로 한동안 멍하게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봤다. 늦어버린 수시기간, 정시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내 꿈과 관련된 대학은 전부 다 다른 사람들이 비꼬아 지잡대라고 말하는 기준 미달의 대학들만 존재했다.


“하, 하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소설을 쓰면서 단 한 번도 공부를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모의고사도 항상 대부분 2등급에서 낮아야 3등급, 그 이하로는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수능 점수는 이렇게 나온 거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음이 가라앉을수록 처음에는 내 자신에게 실망감이 들었지만, 이후로는 부모님께 대한 죄책감이 들었다.


소설가라는 수입이 정해지지 않은 힘든 가시밭 길을 제발로 걷는 아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신 두 분, 집안의 재산을 믿고 까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루에 네 시간 씩 잠을 자면서 쓴 소설, 동시에 병행한 수능 공부, 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진정 신이 존재한다면 이것은 신이 나를 미워해서, 나를 저주해서, 또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괴롭힘을 줬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저택에 들어온 후로 극도로 침울한 기운을 뿌리는 내 주변에는 그 어떤 사용인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들도 자신들이 무엇을 하던 내 마음을 치료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아들이 수능 보느라 고생했다며 5년 만에 타국에서 돌아오시는 아버지께는 뭐라 말씀 드려야 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똑똑똑.’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방안에 울려 퍼지는 노크 소리를 듣긴 했지만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은 자괴감에 빠져 멍청하게 침대 속에 웅크려 있고 싶었다.


‘똑똑똑.’


또 한 번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갑작스럽게 화가 치밀어 올라 눈치 없이 문을 두드린 사람이 누구인지 보기위해 침대에서 뛰쳐나가 신경질적으로 방문을 벌컥 열었다.


덜컹 소리를 내며 열린 문 뒤편에는 라잔과 다른 두 명의 사용인이 슬픈 얼굴로 서있었다. 비록 좋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더라도 그들의 감정을 생각할 기분이 전혀 아니었기에, 다짜고짜 화를 내며 소리쳤다.


“시끄럽게 자는데 왜 자꾸 방문을 두드리는 건데!”


씩씩거리는 내 앞으로 라잔이 천천히 자세를 낮춰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때부터 무언가 좋지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뒤에 있는 두 사용인도 라잔과 같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라잔?”


작가의말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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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39화 - 마지막 화 18.07.09 132 1 5쪽
42 38화 - 마지막 이야기(3) 18.07.04 104 1 3쪽
41 38화 - 마지막 이야기(2) 18.07.03 124 2 4쪽
40 38화 - 마지막 이야기(1) 18.07.02 128 1 3쪽
39 37화(2) 18.06.12 147 1 4쪽
38 37화(1) 18.06.08 126 3 4쪽
37 36화(2) 18.05.31 137 4 4쪽
36 36화(1) 18.05.25 142 4 4쪽
35 35화 18.05.21 153 3 7쪽
34 34화 18.05.18 186 4 7쪽
33 33화 18.05.17 180 5 7쪽
32 32화 18.05.17 180 3 7쪽
31 31화 18.05.17 168 4 7쪽
30 30화 18.05.16 184 4 7쪽
29 29화 18.05.15 202 3 7쪽
» 28화 18.05.14 196 3 7쪽
27 27화 18.05.12 197 3 7쪽
26 26화 18.05.11 191 3 7쪽
25 25화 18.05.10 202 4 7쪽
24 24화 18.05.09 226 5 7쪽
23 23화 18.05.08 216 4 7쪽
22 22화 18.05.07 215 5 7쪽
21 21화 18.05.04 242 5 7쪽
20 20화 18.05.03 250 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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