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를 걷는 황제

37화(1)

서고로 들어가자, 꽤 오랫동안 발길이 끊겼는지 책 위에 쌓인 회색빛의 먼지가 보였다. 책장마다 붙어있는 라벨을 확인하며, 벽에 붙어있는 책장에서 가족 앨범을 하나 꺼냈다.

‘어디 볼까.’

장을 넘기며 사진들을 봤다. 앨범에는 갓난아기 시절부터, 청소년 시절 까지, 온통 내 사진으로 가득했다. 가끔씩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있는 사진이 있었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8년 전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시절에 관련된 기억을 완전히 날려버렸는지, 아버지의 얼굴을 봐도 이상하게 처음 보는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마치 이세계로 돌아온 그날, 병원에서 어머니를 처음 본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자, 곧바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뭐,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

더 이상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 앨범을 닫아 책장에 도로 꽂았다. 그때, 뒤편에서 흐릿하게 공간의 일렁거림이 보였다.

근 몇 달간 보지 못했던 공간의 뒤틀림에 고개를 돌리자, 느리지만 확실히 두 개의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 가운데의 빈 공간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일렁거리며 무언가가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설마, 그럴 리가······!’

그 동안 불러내진 않았지만 기억 속에 확실하게 존재하는 존재, 영원히 잊지 못할 존재하지 말아야 할 존재인 ‘그’가 영체로 이곳에 나타나고 있었다.

“황, 제······시여.”

사람이라고 구분 할 수 있을 정도의 영체가 형상화 되자, 끊기는 듯한 목소리로 그가 나를 불렀다.

아무런 대답 없이 마른 침을 삼키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며 양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완전한 영체의 모습으로 내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황제시여, 어찌하여 저를 피하시나이까.”

붉은 갑옷과 갈색의 머리카락, 늘 그랬던 것처럼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예를 갖추며 말하는 사내.

길리안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네가 여기에······?”

“신 길리안, 더 이상 스스로의 힘으로 제국을 지키기 버거워 폐하를 찾아왔나이다.”

그의 몰골을 살피니, 확실히 갑옷은 이전보다 더욱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고, 영체이긴 하지만 피곤에 절어있는 얼굴은 내전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아니, 내전이 끝나건 끝나지 않건 더 이상 내게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네가 있을 곳으로 돌아가라, 나는 더 이상 황제가 아니야.”

“아닙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바라스 제국의 절대 황제 이십니다, 주변의 허상에 현혹되지 마소서.”

그간 보이지 않았던 허상은 다시금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강렬한 두통이 머리를 찌르며, 속이 타오르는 듯이 뜨거우면서도 돌덩어리가 가득 한 것처럼 답답함이 느껴졌다.

“제발, 제발 그만! 나는 소설가고 넌 소설 속에 등장하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알아들었으면 어서 꺼져!”

손을 휘저으며 그에게 고함을 쳤다. 헐떡거리며 숨을 고르는 동안, 길리안은 내가 진정하는 것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아무런 대답 없이 가만히 무릎을 꿇은 채로 방안에 정적을 가져왔다.

정적이 가져온 평온 속에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를 보던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작가의말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