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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이세계를 걷는 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잭키
작품등록일 :
2018.04.09 11:57
최근연재일 :
2018.07.09 19:0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12,641
추천수 :
208
글자수 :
121,560

작성
18.05.12 12:02
조회
198
추천
3
글자
7쪽

27화

DUMMY

종이 위를 펜으로 끄적거리는 소리, 사각거리는 연필의 소리가 들려왔다. 두 팔이 저려오는 것을 보니 책상에 엎드린 채로 잠이 든 것 같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음?’


이상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정면의 중앙에 놓인 칠판을 중심으로 기다란 교탁과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책상들,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자, 왼쪽에 뚫려있는 창문에서 중천에 뜬 태양이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멍청하게 앉아있던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치며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이상! 이 새끼 이거 고삼됐다고 집에서 공부만하나, 학교 잠자러 왔냐?”


분명, 젊긴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반가움에 뭐라 대답하려고 했으나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 순간, 놀랍게도 내 의지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의지로 움직이는 몸은 장난을 능숙하게 받아쳤다.


“니랑은 다르게 내신 잘 떠서 수능은 3등급만 따면 돼, 그러는 넌 그림 그린다고 공부는 아예 손 놨냐?”


받아친 질문에 익숙한 얼굴을 한 소년은 손사래를 치며 질색했다.


“말도마라, 차라리 공부하는 게 낫지, 형은 실기 100퍼센트로 들어가서 하루 8시간씩 학원에서 그림 그린다.”


그의 한탄에 '몸'은 킥킥 웃으며 시답잖은 대화를 이어갔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또 다른 익숙한 얼굴을 보는 것으로 내 시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 깨달았다.


‘그렇군, 이것은 꿈, 이상위의 과거로 들어온 것인가.’


확실히. 통제를 벗어난 몸에 무언가 붕 떠있는 느낌, 본인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이곳은 꿈 속이 확실했다.


더군다나 눈에 보이는 두 사람은 어린 시절의 이상위와 김현진이었다. 처지를 깨닫자 그다음부터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화면의 전환과 몸의 움직임을 따라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듯 자연스레 꿈속에 혼을 맡겼다.


고등학교라는 곳에 모인 아이들 중 같은 나이를 가진 이들은 모두 ‘고삼’이라는 직위를 가지고 공부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물론 현진이처럼 미술 대학이나, 체육 대학을 준비하는 아이들은 공부보다는 해당 특기에 힘쓰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분류는 내신을 미리 준비해두고 그것으로만 진학을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수능 최저 등급을 받아서 더 높은 대학을 노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저마다의 조용한 전쟁을 펼치고 있었다.


“아, 떨린다.”


어느덧 수능 날이 다가와 함께 현진이와 함께 시험장으로 향했다. 그동안 공부해왔던 만큼만 나온다면 3등급은 당연하고 잘하면 2등급까지도 노려볼만한 상태였다. 컨디션도 하늘을 찌를 만큼이나 좋았으니 말이다.


어젯밤 공부한 내용을 상기하며 걷던 중, 곁에서 함께 걷던 현진이가 내 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야, 긴장했냐?”


장난스럽게 옆구리를 툭툭치며 경박스러운 몸짓을 보이는 녀석을 보니, 피식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긴장은 무슨, 황제가 가는 길에 막을 자가 있겠냐!”


기세등등한 대답에 녀석은 낄낄 웃으며 내시처럼 굽신거리는 시늉을 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폐하.”


사실 실기만 보는 미술 대학을 지원한 현진이는 굳이 수능을 치러 오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수험생 할인을 받으려면 수험표가 필요하다며 신청하긴 했지만, 실은 내 긴장을 풀어주려는 배려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맙다.”


“오글거리게 왜이래, 아참, 지금 쓰고 있는 소설, 잘돼서 책으로 나오면 싸인해서 그거나 줘라. 비싸게 팔아먹게.”


“그래, 시험 잘보고, 이따가 보자.”


교문을 통과하기 전에, 학교 후배가 가져다주는 커피를 한 잔 받았다. 언제부터 이런 문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능이 진행되는 학교의 교문 앞에는 다양한 학교에서 수험생들을 응원하러 온 후배들과 여러 지인들이 모여있었다.


작년에는 나도 알지도 못하는 선배들을 챙기러 나왔었으니, 참 신기한 문화다.


“선배님들! 수능 대박나세요!”


“그래, 고마워, 추운데 고생이 많네.”


“엥? 현진 오빠? 오빠도 수능봐요?”


싱긋거리는 미소로 나와 현진이를 번갈아보던 미술부의 여자 후배 하나가 의외라는 얼굴로 눈을 크게 뜨고 현진이를 쳐다봤다.


그러자 현진이가 실없이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수험표 받아서 네버랜드 꽁짜로 갈라고, 부럽지?”


“아~뭐에요 진짜, 암튼 기왕 보는거 잘보고 나와요, 아, 오늘 미술학원 올거죠?”


솔직히 나와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은 수능을 보면 그 뒤로 해방이지만, 현진이처럼 미술이나 예체능 계열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은 수능이 끝난 뒤부터 입시가 시작이라고 할 정도로 긴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현진이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가야지, 응원 고맙고, 이따 학원에서 보자.”


“네, 상위 선배님도 시험 잘보세요!”


“응, 고마워.”


응원을 뒤로 하고 수험 학교로 들어갔다. 오는 길은 같았지만 배정된 교실이 달라 현진이와 갈라서서 수험장으로 들어가자, 조심스럽게 문을 연 것에도 불구하고 일 순간, 모두의 시선이 꽂혔다가 뽑혔다.


‘윽, 살벌해라.’


수험장의 분위기는 엄숙했다. 기침소리 한 번이라도 내면 모두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잔뜩 움츠러들게 만들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는 그간 공부를 하면서 서로에게 보낸 경쟁의 눈빛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전쟁터 같았다.


‘후우······.’


호흡을 내쉬며 긴장을 가라 앉혔다. 눈을 감고, 평소대로 마음을 안정시켰다. 황제답게, 반드시 승리해서 돌아가리라. 1분, 10분, 시간이 지나고 시험장의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가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차가운 겨울의 수호자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두 명의 감독은 천천히 교실을 한 번 둘러보고 나서 주의사항을 알려준 뒤, 부정행위에 대해서 서너 번 강조를 마치고 나서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시험, 시작합니다.”


‘공부했던대로, 공부했던대로······.’


온몸의 신경세포 하나까지 자극하여 두뇌를 가동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하는 이 순간, 백색소음만이 교실 안을 가득 채웠다.


1교시는 무난하게 끝났다. 아무래도 국어다보니 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3등급은 확실하다.’


안도감이 밀려오자 그다음 시간부터는 좀 더 여유롭게 문제를 풀어낼 수 있었다. 오후가 다되어서 드디어 수능이 끝났다. 아, 이 압도적 해방감!


“이상! 잘 봤냐?”


“나름, 3등급은 충분할 것 같다.”


“올~, 이제 나만 합격하면 되는 각이냐?”


그렇게 모든 과목을 끝마치고 웃는 모습으로 현진이와 함께 시험장을 나왔다. 밀려오는 해방감에 놀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지금은 빨리 집에가서 쉬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직 입시가 끝나지 않은 현진이는 미술 학원으로 향하고, 기분좋게 홀로 집으로 돌아가던 그때의 나는 앞으로 닥쳐올 일들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작가의말

즐거운 주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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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38화 - 마지막 이야기(2) 18.07.03 125 2 4쪽
40 38화 - 마지막 이야기(1) 18.07.02 129 1 3쪽
39 37화(2) 18.06.12 148 1 4쪽
38 37화(1) 18.06.08 128 3 4쪽
37 36화(2) 18.05.31 138 4 4쪽
36 36화(1) 18.05.25 143 4 4쪽
35 35화 18.05.21 155 3 7쪽
34 34화 18.05.18 187 4 7쪽
33 33화 18.05.17 181 5 7쪽
32 32화 18.05.17 181 3 7쪽
31 31화 18.05.17 169 4 7쪽
30 30화 18.05.16 185 4 7쪽
29 29화 18.05.15 205 3 7쪽
28 28화 18.05.14 197 3 7쪽
» 27화 18.05.12 199 3 7쪽
26 26화 18.05.11 192 3 7쪽
25 25화 18.05.10 203 4 7쪽
24 24화 18.05.09 227 5 7쪽
23 23화 18.05.08 218 4 7쪽
22 22화 18.05.07 216 5 7쪽
21 21화 18.05.04 243 5 7쪽
20 20화 18.05.03 251 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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