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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이세계를 걷는 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잭키
작품등록일 :
2018.04.09 11:57
최근연재일 :
2018.07.09 19:0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12,690
추천수 :
208
글자수 :
121,560

작성
18.05.17 19:12
조회
182
추천
3
글자
7쪽

32화

DUMMY

수없이 다짐했지만 막상 입으로 꺼내려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것도 제국의 실제를 입증하는 존재인 길리안을 눈앞에 두고서 지금부터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니, 차마 입술이 열어지질 않았다.


무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는 평소보다 더욱 굳건하게 대답했다.


“말씀하시옵소서.”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춘 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래가는 갑옷과 변해버린 머리는 단순히 상상이라고 여기기엔 우리와 너무나도 똑같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비록 지금은 환상으로 보일 뿐이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많은 일들을 함께 해오며 수백 년의 시간을 함께 보낼 때, 늘 봐왔던 그의 모습이, 정말로, 환상이란 건가.


시선을 아래로 내려 그의 눈을 피했다. 그러고 나서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무겁게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바라스 제국 아니, 와이즈 대륙은 내 소설 속에나 존재하는 망상에 불과한가?”


깨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의심해오며 살아왔던 나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진심어린 한 마디의 질문, 정체성을 위한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그러나, 길리안은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절대적으로 제국의 실존을 주장하며 나를 황제라고 부르는 유일한 사람, 하지만 지금은 그의 말이 진정 진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거짓이라는 생각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기억 속의 황제는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고, 파괴를 일삼으며 서부 대륙이라는 와이즈 대륙의 서부를 다스리며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던 인간이지만 신과 동격의 존재였다.


편안한 삶,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영역에서 살아가는 불로불사의 존재라는 사실이 지금의 몸에는 그 시절의 기억만이 남아있을 뿐, 감각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설령 내가 진정 황제라면 육체를 잃었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격투술은 구사할 줄 알아야 정상이지만, 그것은 모두 머릿속에 구상해놓은 설정 값으로만 존재할 뿐, 직접 몸으로 선보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반면에 지금은? 이상위로서 살아가는 삶도 충분한 부귀영화 속에서 편안함을 누리고, 피가 섞인 유일한 혈족은 물론, 사용인들 모두에게서 가식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스스로를 황제라 속이며 살아온 8년 전의 불행은, 그로 인해 극복하여 수년간 쌓아온 소설가로서의 명성 또한 지금 이 시점에서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동시에 '황제'이자 '소설가'로서의 삶은 지금의 내가 현재진행형으로 직접 체험하고 있는 생생한 현실이다.


두 가지를 비교해서 결과를 도출해낸다면 어떤 것이 거짓인지는 확실하지 않은가.


복잡한 심경에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를 붙잡았다.


“······그간 내 옆을 지키느라 고생이 많았구나.”


“아니옵나이다. 폐하께서 무사하신 것만으로도 저희에게는 큰 힘이 되옵나이다.”


정말로, 길리안의 존재가 거짓이라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리게 될 것보다 잃게 될 것이 더욱 많을 것이다.


그래, 여기서 확실히 정리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환상 속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불행을 극복했을 때, 같이 두고 왔어야할 존재를 지금까지 끌고 왔으니 이제는 그만 놓아줄 때가 된 것이다.


생각이 정리되어 가자, 심란한 감정이 들었지만 그 속에는 그간 내 곁을 지킨 상상 속의 존재에 대한 미안한 감정도 섞여있었다. 떠오르는 수많은 감정들을 뒤로하고 지그시 눈을 감고서 마음을 다잡기 위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로서 마지막 명령이다. 이제 그만 나를 떠나 그대의 세계로 돌아가도록 하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있던 길리안이 고개를 번쩍 들며 처음으로 동요한 모습을 보였다.


허상이라 여기기에는 너무 감쪽같아 놀랄 정도였지만, 이미 마음을 먹었으니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시선을 피해 등을 돌렸다. 철그럭 거리는 갑옷소리가 어깨너머에서 들렸다.


“황제시여, 어찌, 어찌 저희를 떠나려 하시나이까. 제국에는 폐하의 존재가 절실하옵나이다.”


애처로운 목소리로 부르짖는 길리안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순간 황금빛의 찬란한 황궁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현혹되지 않기 위해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한때의 나는 황제였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진정한 내가 아냐. 한순간의 불행에 무서워서, 싸우고 싶지 않아서 도망친 겁쟁이가 만든 허상이라고!”


“아니옵나이다! 폐하께서는 신성 바라스 제국의 절대 황제이시자, 4대 황제이신 제라루드 바라스의 아들이요, 제국의 무한한 번영을 영원불멸까지 이끌어 나가실 분입니다!”


“그마아아아안!!”


눈을 감은 채로 손을 휘두르며 잡히는 것을 아무렇게나 길리안이 있는 방향으로 집어 던졌다. 부딪히고, 깨지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아래층에서 계단을 타고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양 팔을 붙잡는 느낌에 천천히 눈을 뜨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양팔을 잡고 있는 라잔이 눈앞에 있었다. 심호흡을 하며 주변을 돌아보자, 침대 옆에 영체의 형상으로 존재했던 길리안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하아······.”


머리를 감싸 쥐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는 내 옆에는 아무 말 없이 바닥에 앉아 묵묵하게 곁을 지키는 라잔이 있었다.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쭈그려 앉아 얼굴을 파묻고 있던 내게 그가 어깨를 두드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옛날 일을 말씀드려서 도련님께 이런 심려를······,”


그가 자조적인 언행을 내뱉자 고개를 들고서 손을 뻗어 손바닥을 펼쳐 흔드는 것으로 말을 잘랐다.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는 못했지만, 나로 인해 라잔이 슬퍼하는 것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몇 번 숨을 들이쉬고 나서 애써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기억도 되찾고, 내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으니, 저로서는 감사하죠. 자책하지마세요.”


당연히도 그는 내 감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여전히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내게 차마 티를 내고싶지 않았는지, 그도 애써 표정을 바꾸며 대답했다.


“······예, 도련님.”


작가의말

곧 공모전도 끝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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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38화 - 마지막 이야기(2) 18.07.03 127 2 4쪽
40 38화 - 마지막 이야기(1) 18.07.02 131 1 3쪽
39 37화(2) 18.06.12 150 1 4쪽
38 37화(1) 18.06.08 130 3 4쪽
37 36화(2) 18.05.31 140 4 4쪽
36 36화(1) 18.05.25 145 4 4쪽
35 35화 18.05.21 156 3 7쪽
34 34화 18.05.18 189 4 7쪽
33 33화 18.05.17 184 5 7쪽
» 32화 18.05.17 183 3 7쪽
31 31화 18.05.17 171 4 7쪽
30 30화 18.05.16 187 4 7쪽
29 29화 18.05.15 206 3 7쪽
28 28화 18.05.14 198 3 7쪽
27 27화 18.05.12 200 3 7쪽
26 26화 18.05.11 194 3 7쪽
25 25화 18.05.10 205 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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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18.05.08 219 4 7쪽
22 22화 18.05.07 218 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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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화 18.05.03 253 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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