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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이세계를 걷는 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잭키
작품등록일 :
2018.04.09 11:57
최근연재일 :
2018.07.09 19:0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12,640
추천수 :
208
글자수 :
121,560

작성
18.05.15 18:48
조회
204
추천
3
글자
7쪽

29화

DUMMY

“죄송합니다, 도련님.”


그는 어떠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었지만, 내게 사과를 하며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들의 태도는 단순히 수능 점수를 망친 내 기분을 떠나서 무언가 매우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본능적으로 느끼도록 만들었다.


불안함이 엄습하자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뭐야, 무슨 일인데요.”


정상적이진 않지만 목소리가 변한 나를 보며 고개를 든 라잔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회장님께서······,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뭐?”


질 나쁜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대체 누가 이 따위 장난질을 벌이는 건지, 부정하고 싶은 끔찍한 소식은 변하지 않는 이미 진행된 현실이었다.


불행은 혼자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렇지 않아도 수능 결과로 깊은 좌절감에 빠져있는 상태에서 아버지의 죽음은 견디기 힘든 충격이었다. 라잔의 입으로 직접 전해들은 사실은 나를 혼이 나간 벙어리로 만들기에 충분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말도 안돼,······그럴 리···.'


눈앞이 흐려지며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힘없이 쓰러짐과 동시에 라잔이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마저도 서서히 작아져 곧,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지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내 방의 천장이었다. 두세 번 눈을 깜빡이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자, 밤이 찾아와 있었다.


힘겹게 침대에서 벗어나 방문을 열고 나오자, 복도와 아래층의 모든 불이 꺼져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음을 깨닫고 방으로 다시 들어가 폰의 화면을 켜자, 시간은 무려 이틀이나 지나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 급히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라잔의 번호를 눌렀다.


짧은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전화 너머에서 복잡한 감정이 섞인 라잔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아버지, 아버지는?”


“······죄송합니다, 도련님.”


혹시나, 만에 하나라는 기적에 희망을 품고 물었던 질문에는 변하지 않은 사실만이 남아 정해진 대답으로 돌아왔다. 곧, 어머니가 보낸 라잔과 사용인들이 나를 데리고 아버지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아직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를 라잔과 다른 사용인이 부축해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자, 산처럼 쌓인 국화들과 무수한 관계로 얽혀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상위 왔니.”


고작 며칠이 지난 것뿐인데, 어머니의 얼굴은 수십 년이 지난 사람처럼 변해있었다. 부축에서 벗어나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앞으로 걸어 나가, 아버지의 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무 말 없이 무릎을 꿇은 채로 있기를 몇 분, 온몸으로 맞이한 현실을 느끼며 나도 모르는 새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고 다리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함께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보다 못한 라잔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내 어깨를 붙잡으며 귀에 속삭였다.


“도련님, 이러다가 또 쓰러지십니다, 도련님께서 느끼시는 슬픔의 깊이를 저 따위가 감히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부디 몸을 생각하셔서 이만 일어나시죠.”


그 말이 맞다. 하지만, 그리 자신했던 수능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부끄러움과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마음에 족쇄를 채워 자괴감이라는 감옥에 갇혀 앞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곁을 차마 떠날 수 없게 만들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쳐서 휘청거리며, 전혀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나를 보던 어머니가 슬픔을 감추고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라잔 씨, 상위를 부탁할게요.”


“예, 사모님.”


어머니의 명을 받은 라잔은 몇몇 사용인들과 기절 직전까지 갔던 나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옮겼다. 지친 육신은 또 정신을 잃고 나서 시간이 흘러 눈을 떴을 때, 아버지의 장례는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납골당에 모셔진 후였다.


그 뒤로 나는 방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학교는 어머니가 손을 써두었는지, 선생님에게서 몇 번의 문자가 온 것을 끝으로,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현진이가 전화와 문자가 되지 않자 직접 찾아왔지만, 지금은 녀석을 보고 싶지 않았다. 녀석이 '힘내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며 말하는 라잔에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쓰고 있던 소설이 생각났다. 공모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조회수와 호평을 받았던 작품, 상을 타지 못해도 출판 가능성이 높다던 내 야심작인 ‘바라스 제국사’.


초췌해진 몸으로 폰을 집어 들어 문자를 확인했다. 쌓이고 쌓인 문자들 속에서 낯선 번호로 온 문자를 발견해 확인했다.


『황제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OO문학사입니다.』


『우선 이번 공모전에 도전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앞서 저희는 작가님께서 참여하신 공모전에 관련해 전해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연재하시고 계신 ‘바라스 제국사’는 저와 여러 심사위원들이 검토한 결과, 아쉽게 수상작에는 들지 못하여 책으로 출판하는 것은 어렵다는 결과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공모전 참여에 대한 소정의 상품은 지급되나, 출판은 어려운 점을 알려드리고자 연락을 드렸으며, 부디 이러한 결과가 실망보다는 작가님께 성장의 발판이 되어 더욱 좋은 작품으로 다시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


이미 겹쳐서 온 불행은 또 한 번 나를 엄습했다. 불행의 연속은 전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수능보다 더욱 자신했던 공모전마저 수상하지 못했다.


이쯤 되면 정말 신의 장난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놓이자, 미쳐버릴 것 같은 감정을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주먹으로 책상을 연달아 내리쳤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는 슬픔을 넘어서서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는 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소리를 듣고 달려온 라잔과 사용인들이 내 팔다리를 붙잡고 말렸지만, 폭주한 감정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만일 진정 신이 존재한다면, 내 인생을 이렇게 비틀어버리고 내려다보는 그 개자식의 이죽거리는 얼굴을 짓이겨주겠노라고 맹세하며 저주가 담긴 말들을 내뱉었다.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한참 동안 광기를 사방으로 뿌리고 나서야 지쳐서 잠들 수 있었다.


작가의말

반갑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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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39화 - 마지막 화 18.07.09 133 1 5쪽
42 38화 - 마지막 이야기(3) 18.07.04 105 1 3쪽
41 38화 - 마지막 이야기(2) 18.07.03 125 2 4쪽
40 38화 - 마지막 이야기(1) 18.07.02 129 1 3쪽
39 37화(2) 18.06.12 148 1 4쪽
38 37화(1) 18.06.08 128 3 4쪽
37 36화(2) 18.05.31 138 4 4쪽
36 36화(1) 18.05.25 143 4 4쪽
35 35화 18.05.21 155 3 7쪽
34 34화 18.05.18 187 4 7쪽
33 33화 18.05.17 181 5 7쪽
32 32화 18.05.17 181 3 7쪽
31 31화 18.05.17 169 4 7쪽
30 30화 18.05.16 185 4 7쪽
» 29화 18.05.15 205 3 7쪽
28 28화 18.05.14 197 3 7쪽
27 27화 18.05.12 198 3 7쪽
26 26화 18.05.11 192 3 7쪽
25 25화 18.05.10 203 4 7쪽
24 24화 18.05.09 227 5 7쪽
23 23화 18.05.08 218 4 7쪽
22 22화 18.05.07 216 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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