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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조회수 :
45,309
추천수 :
659
글자수 :
649,521

작성
23.10.10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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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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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6쪽

악인곡(惡人谷)(9)

DUMMY

혼돈, 궁기, 도올, 도철 이렇게 넷은 과거 천마를 지근거리에서 수호하던 4대 호법들이었다.

30년 전, 마교척살단과의 교전에서 인간의 육체를 잃은 녀석들은 밀교의 주문으로 부활할 수 있게 되었고, 부활의 대가로 사흉(四凶)이라 불리는 괴물의 형상을 띠게 되었다.

때문에 그들은 단순히 물리적인 힘만 강한 게 아니라 무공 또한 정상급 수준에 올라 있었다.


사람일 때부터 박치기로 적의 머리를 터뜨리는 걸 좋아했던 두뢰신(頭轠神) 도철이 급히 발굽을 들어 올려 지상의 검세로부터 급소를 보호했다.

덕분에 치명상은 면했지만, 검날에 두꺼운 발굽 각질이 잘려나가고 얼굴에도 지울 수 없는 자상이 새겨졌다.


“이런 제기랄, 뭐야? 어디서 나타난 거야?”


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쌍두사가 정신없이 몰아쳤다.

지상의 평온하면서도 거스를 수 없는 공세를 막아내기 바빴던 도철이 요시를 방패 삼아 뒷걸음질로 지상의 간격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가 일생의 비기 파극두해공(破極頭解功)의 공력을 7성까지 끌어올려 혼미해진 정신을 다잡으려던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핏빛 섬광이 녀석의 뒷덜미를 덮쳤다.

도철이 우뢰와 같은 반응 속도로 근처 요시의 갈기를 잡아채 홍사검의 월아(月牙)를 간신히 막아냈다.

요시의 몸통이 두 동강 나고 도철의 뿔 일부가 썰렸다.

대노한 도철이 발굽으로 가슴팍을 쾅, 쾅쾅 때려댔다.

그가 네 발로 엎드리더니 요시들과 함께 지상을 향해 돌진했다.

지상이 쌍두사를 거머쥔 채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가 순간적으로 도철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철 바로 옆에서 달리던 요시의 그림자를 밟고 나타난 지상이 쌍두사의 검날로 도철의 태양혈을 내리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얼굴 가죽이 한 움큼 잘려나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상이 쌍두사 칼등으로 도철의 등짝을 후려쳤다.

지상의 완력에 밀려 날아간 도철이 한 무리의 강시들을 덮쳤다.

도철과 강시들이 쓰러진 곳 바로 옆 석굴에서 두 개의 뼈낫에 각각 사람의 몸을 꿰어낸 도올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도올이 얼굴에 メ 표시가 생긴 채 비척이고 있는 도철을 황당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너 뭐하냐?”


순간 날아든 지상의 그림자가 도올의 뼈낫의 밑동을 자르고 사라졌다.

낫에 꿰어 있던 조진과 악법웅이 바닥에 떨어져 신음했다.

조진이 인사불성 상태의 악법웅을 붙든 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땅을 기었다.

자신을 공격한 상대를 찾아 사방을 살피던 도올이 조진의 등을 지그시 밟고 올라섰다.

녀석이 조진을 오시하며 발로 목을 부러뜨려 마무리하려던 순간 다시 나타난 지상이 도올을 들이받았다.

뒤로 몇 걸음 밀려난 투신(鬪神) 도올이 히죽 웃으며 공중으로 솟구쳤다.

녀석이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리며 손날을 검처럼 휘둘렀다.

손날과 검날이 만들어낸 강렬한 금속성이 동굴 곳곳에 메아리쳤다.


한편 지상의 출현으로 전세를 회복한 추문강 일행은 동굴 바닥을 굴러다니는 무기를 주워 다시 괴물들에게 맞섰다.

혈투 도중 추문강이 내지른 천둥 같은 함성에 동굴 곳곳에 웅기중기 흩어져 있던 제갈세가와 상관세가의 생존 무사들이 일행 쪽으로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속엔 하후현도 껴있었다.

하후현이 팔이 부러진 채로 이주의 등에 업혀 있는 정청하를 발견했다.

녀석이 이주를 공격하는 강시의 양팔을 베어낸 뒤 청하에게 물었다.


“사매, 괜찮아?”

“···그럭저럭요. 사형, 이 사람들과 힘을 합쳐 괴물들을 물리치고 함께 이곳을 탈출해요.”


사매의 말에 하후현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로서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추문강 옆에 서서 괴물들에 맞서 싸웠다.

잠시 후 소 씨와 마상춘이 조진과 악법웅을 구출해서 일행에게로 돌아왔다.

생존 무사들이 그들에게 길을 터주었다.

추문강과 하후현 그리고 생존자들은 동굴 벽을 등지고 끝도 없이 밀려드는 괴수들을 막아냈다.


이제 동굴 속 혈전은 세 곳으로 압축됐다.


하나는 양측 다 공력을 모두 소진할 정도로 지루한 장기전을 이어가고 있는 상관금천과 나효의 공방이었고, 두 번째는 도올과 도철에게 협공을 당하고 있는 이지상이었다.

세 번째는 말할 것도 없이 생존자들과 괴수들의 악전고투였는 데 놀랍게도 이 세 번째 공방전에서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빛을 가져온 이는 다름 아닌 제갈승이었다.

일행의 우측으로 뚫린 좁은 통로 저 너머에서 제갈승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쯤이었다.


“출구는 이쪽이다! 모두 이곳으로 전력을 집중하라!”


추문강이 돌아보자, 정청하가 다급히 외쳤다.


“하후 사형, 저 사람이랑 둘이서 후방을 맡아줘요! 나머지 무사들이 통로에 있는 괴수들을 물리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찰나 지간 청하의 말대로 전력이 재편성됐다.

지옥에서 생환할 수 있다는 소식에 생존 무사들과 마상춘, 소 씨는 젖먹던 힘을 다 짜내 통로를 메운 강시들과 요시들을 맹렬히 공격해 나갔다.

혈혈단신의 제갈승도 맞은편에서 괴수들을 물리치며 일행 쪽으로 전진해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면약하기 그지없던 그가 두 개의 판관필을 휘두를 때마다 괴수들이 추풍낙엽으로 쓰러졌다.

약 일주향(一炷香)의 시간이 지나자 일행은 드디어 제갈승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출구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추문강이 동굴 속 어딘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지상아, 이쪽이다. 탈출구를 확보했다. 기다릴게, 빨리 와라!”


제갈승도 추문강 옆에서 멀리 보이는 상관금천과 혹시 있을지 모르는 동굴 속 마지막 생존자들을 향해 목청 높여 외쳤다.


“출구는 이쪽이다. 앞으로 일각 동안 이곳을 사수할 테니 생존자들은 어떻게든 지금 있는 곳을 탈출해 이곳으로 달려오길 바란다!”


두 사람의 외침은 생존자들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목소리에 자극받은 요시들이 동굴 사방에서 튀어나와 성난 파도처럼 그들을 향해 재차 들이닥쳤다.

근처 석굴에 숨어있던 몇몇 무사들이 용기를 내서 출구 방향으로 달려왔지만, 중도에 매복해 있던 괴수들에게 붙잡혀 산채로 뜯어먹혔다.

그때 한 줄기 핏빛 강기가 요시들을 덮쳤다.

세로로 된 일직선의 강기는 탈출로를 틀어막은 요시들을 모조리 도륙 내고 출구 앞에서 사라졌다.

동굴과 출구 사이에 홍해와 같은 길이 열렸다.

지상이 요시들에게 붙잡혀 뜯어먹히고 있던 무사 몇 사람을 구출해 그 길로 내던졌다.

지상을 쫓던 도올과 도철이 미칠 듯 포효하며 지상을 몰아붙였지만, 지상은 흔들림 없는 일관된 모습으로 그들의 공격을 완벽히 씹어 먹었다.

생존자를 더는 찾지 못한 지상이 저 멀리 상관금천을 향해 외쳤다.


“금천 가주! 금천 가주! 서두르시오!”


평생 처음으로 나효라는 마인을 만나 수백 합을 겨루고도 승부를 보지 못한 상관금천이 얼굴 가득 흐르는 비지땀 속에서 지상의 목소리를 잡아냈다.

그가 나효의 송곳 같은 조수(爪手)를 피한 뒤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일별했다.

결심한 금천이 순간적으로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가 얼마 남지 않은 공력을 모두 끌어모아 금철초신강(金鐵超神鋼)을 몸 밖으로 펼쳐냈다.

빈틈을 발견한 나효가 네 개의 팔로 동시에 금천의 몸을 강타했지만, 초신강의 반탄력에 되레 삼 장이나 뒤로 밀려났다.

때를 놓치지 않고 금천이 지상과 제갈승이 있는 곳으로 번개처럼 몸을 굴렸다.

도중에 있던 괴수들이 몸을 공처럼 말아 굴러오는 금천과 부닥치자 마치 부서진 바위 파편처럼 사방으로 튕겨 날아갔다.

상관금천이 요시들을 뚫고 일행 속으로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제갈승이 즉시 퇴각을 명령했다.

금천과 지상이 밀려드는 요시들을 향해 강기와 권풍을 닥치는 대로 뿌려댔다.

그 맹렬한 위세에도 요시들의 질주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한데 그때였다.

일행이 동굴에 진입했을 때 들었던 요령 소리가 동굴 전체에 울려 퍼졌다.

요시들이 공격을 멈추고 가만히 그 자리에 멈춰섰다.

도올과 도철, 나효가 요시들의 뒤편에 내려섰다.

녀석들은 단조로운 표정으로 도망치는 생존자들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지상과 상관금천이 마지막으로 출구를 빠져나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호법들 옆으로 두 사람이 다가와 섰다.

그들의 정체는 백의서생과 늙은 비구니였다.

두 호법과 나효가 교주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천마가 부하들에게 입을 열려던 순간, 잿빛 영기 하나가 날아와 동료들 옆에 멈춰섰다.

궁기(窮奇)가 서둘러 교주에게 아뢨다.


“교주님, 죄송하오나 혼돈 녀석이 보이지 않습니다.”


천마가 엷게 미소하며 궁기에게 말했다.


“혼돈 녀석은 내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러 갔으니 개의치 말아라.”

“하면 혼돈 녀석도 그릇을 찾아낸 겁니까?”

“그렇다.”

“아, 다행입니다. 저는 또···.”


천마가 웃으며 궁기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내가 말을 해도 되겠느냐?”


궁기가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하고 옅은 영기를 파르르 떨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교주님. 제가 주제도 모르고···.”

“그만해라. 한마디만 더 하면 널 보신용 단약으로 만들어 개한테 먹이겠다.”

“······.”


천마가 나효를 돌아보며 물었다.


“내가 분명 시하한테 가 있으라 했거늘, 왜 아직도 이곳에 있는 것이냐?”


나효가 말하기도 전에 늙은 비구니가 입을 열었다.


“교주님, 그건 나효의 잘못이 아닙니다. 제가 보름 전 점을 쳐서 적들의 습격을 알아낸 뒤 나효에게 남아 저를 도우라 요청했습니다.”


천마가 싸늘한 눈으로 늙은 비구니를 돌아봤다.

그가 비구니를 향해 말했다.


“정화야, 언제부터 네 말이 내 명령에 우선하게 되었느냐?”

“···아, 죄송합니다. 교주님. 저는 수련동 사수가 매우 중요한 임무라는 생각에···.”


순간 천마의 손이 정화의 얼굴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너도 아는 그걸 내가 모르고 일을 배분했을 성싶으냐?”

“자, 잘못했습니다. 교주님! 부디 용서를······.”


정화의 비쩍 마른 볼살을 뚫어버릴 것처럼 짓누르던 천마의 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정화에게 얼굴을 바싹 붙인 채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효다. 저 녀석이 만일 적들에게 넘어갔다면 나는 결코 네년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

“나효! 궁기!”

“네, 주군!”

“네, 교주님!”

“당장 시하에게 가라. 암암리에 그 아이를 돕되 절대 밖으로 너희들 모습을 드러내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주군!”


나효와 궁기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모두의 앞에서 사라졌다.

천마가 정화의 뺨을 톡톡 친 뒤 그녀에게 나직이 말했다.


“너는 가서 잠자리나 준비해라.”


순간 늙은 비구니의 뺨에 엷은 홍조가 그려졌다.

정화가 눈을 들어 천마를 지그시 바라보자, 천마가 미소하더니 고개를 가볍게 주억거렸다.

그러자 늙은 비구니의 모습이 아리따운 스무 살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녀의 몸을 두르고 있던 근천스런 잿빛 옷가지도 화사한 봄날의 그것으로 변했다.

소녀가 천마의 백색 옷자락을 한번 잡았다가 놓은 뒤 수줍은 몸짓으로 동굴 어딘가로 사라졌다.

천마가 도올과 도철에게 명령했다.


“너희는 당장 요시와 강시들을 데리고 십만대산으로 향해라. 밤에만 산을 타고 이동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해라. 묘강에 도착하면 장족 마을을 습격해 강시와 요시의 수를 최대한으로 불려라.”

“존명!”


녀석들이 휘파람을 불며 전방으로 달려나갔다.

수천의 괴수들이 두 사람을 따라 동굴 밖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천마가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로 동굴 어딘가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



이번 전투에서 제갈세가와 상관세가는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었지만, 웬일인지 제갈승의 얼굴에선 침울한 기색을 일체 찾아볼 수 없었다.

샛길을 타고 이동해 야야장과 소중원으로 나뉘는 갈림길에 도착했을 때, 제갈승이 선뜻 지상 일행에게 악법웅을 양보하며 말했다.


“지상 문주, 우리는 이만 여기서 헤어지는 게 좋겠습니다.”


순간 하후현이 제갈승을 사납게 노려보며 그의 도 넘은 행동을 막아서려 했지만, 상관금천이 아우의 팔을 억세게 붙들고 그의 입까지 틀어막았다.

지상이 소란스러운 상관금천과 하후현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가 제갈승에게 고개를 딱딱하게 끄덕인 후 일행과 함께 야야장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조금 전 탈골된 어깨와 부러진 팔을 겨우 접골한 정청하가 한쪽에 비켜 서 있다가 앞서가는 이주를 붙잡았다.

청하가 이주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또 봐요.”


이주가 활짝 웃으며 청하에게 응답했다.


“청하야, 담에 만나면 내가 술 한 잔 거하게 살게. 우리 멋진 남자도 꼬셔서 밤새 실컷 놀아보자. 하하하.”


청하가 이주를 미소로 떠나보낸 뒤 연이어 나타난 추문강과 시선을 교환했다.

추문강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자 청하가 머뭇머뭇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무슨 일인지 추문강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로 청하를 내려다보며 말을 더듬었다.


“고, 고생하셨소.”

“···그쪽도요.”

“나는 추, 추, 추문강이요.”

“저는 정청하에요.”


그때 다친 악법웅을 등에 업은 마상춘이 길을 막고 서 있는 추문강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추문강이 아쉬운 표정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마상춘이 정청하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추문강을 뒤따랐다.

마지막으로 지상이 싸늘한 표정을 유지한 채 정청하를 지나쳤다.

그렇게 상관금천 일행과 헤어져 한 반 마장 정도를 걸었을 때 지상이 잠깐 모두에게 걸음을 멈추라 지시했다.

지상이 소 씨를 데리고 길옆 숲으로 들어가 조용히 물었다.


“혹시 노민방이···.”


소 씨가 고개를 저으며 지상의 말을 막았다.


“아무것도 묻지 마. 아내는 영원히 내 마음속에서 나랑 함께 살아갈 테니까.”


지상이 숨죽여 끄덕인 뒤 소 씨를 토닥여주었다.

잠시 뒤 일행과 작별 인사를 마친 소 씨가 악인곡 방향으로 사라졌다.

지상 일행이 다 함께 악인곡 방향으로 절을 올리고 죽은 양건과 소 씨의 아내 노민방의 명복을 빌었다.



*



늦은 밤, 혈화문 장원에서 꽝―! 하는 폭음과 함께 시뻘건 화염이 솟구쳐 올랐다.

마심아의 처소가 있는 유향각(幽香閣) 방향이었다.

마침 의방에서 중상을 입은 몽일천의 상태를 살피고 있던 육손이 굉음 소리에 놀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가 황급히 밤하늘을 향해 폭죽을 쏘아 올린 뒤 무사들과 함께 유향각으로 내달렸다.

서하강 인근에서 지상을 대신해 황건명과 비밀 회동을 하고 있던 철두와 하선의 시야에도 하늘에 수 놓인 붉은 혈화가 들어왔다.

두 사람이 황건명에게 사정을 설명한 뒤 다급히 말에 올라탔다.


지상의 집무실에서 늦게까지 일을 보고 있던 휘 노인이 가장 먼저 유향각에 도착했다.

그가 허둥지둥 심아의 이름을 부르며 불길에 휩싸인 그녀의 침소로 뛰어드는데,


“마심아님! 마심아님!”


병풍 뒤에서 나타난 누군가가 그의 품을 벼락같이 파고들었다.

휘 노인이 흑의 차림에 복면을 쓴 적이 내지른 단검에 배를 찔렸다.

장지문을 부수며 쓰러지던 휘 노인이 도망치는 적을 향해 손에 들고 있던 철주판을 내던졌다.

철주판이 흑의인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머리가 깨져 앞으로 고꾸라지던 흑의인을 어디선가 나타난 다른 흑의인이 붙들었다.

두 번째 흑의인이 휘 노인을 향해 휙, 날카로운 비수를 쏘아냈다.

휘 노인이 손을 들어 막았지만, 손바닥을 꿰뚫은 얇은 비수가 휘 노인의 광대뼈에 박혔다.

휘 노인이 힘없이 고개를 뒤로 떨어트렸다.

뒤집힌 그의 시야에 불에 타오르는 병풍 뒤로 마상춘 쌍둥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 낮에도 식당에서 웃으며 인사를 나눴던 상추, 상하, 상동 세 사람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병풍 뒤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휘 노인이 고통스럽게 침음한 후 이내 의식을 잃었다.

그때 반대편 전각에서 마대에 담긴 무언가를 등에 업은 흑의인 하나가 더 출현했다.

그자가 동료들을 향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이고는 단숨에 유향각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남겨진 두 사람은 앞서 사라진 자와 다른 방향으로 유향각을 빠져나갔다.

멀리서 적을 발견한 육손이 목이 찢어지라 소리쳤다.


“침입자다! 침입자다! 저놈들을 사로잡아라. 절대 놓치면 안 된다. 누구도 장원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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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다짐 23.10.12 289 4 13쪽
63 변고 23.10.11 275 4 16쪽
» 악인곡(惡人谷)(9) 23.10.10 282 6 16쪽
61 악인곡(惡人谷)(8) 23.10.09 275 7 13쪽
60 악인곡(惡人谷)(7) 23.10.08 289 5 17쪽
59 악인곡(惡人谷)(6) 23.10.06 261 5 15쪽
58 악인곡(惡人谷)(5) 23.10.05 289 6 15쪽
57 악인곡(惡人谷)(4) 23.10.04 271 4 13쪽
56 악인곡(惡人谷)(3) 23.10.03 278 6 15쪽
55 악인곡(惡人谷)(2) 23.10.02 301 6 19쪽
54 악인곡(惡人谷)(1) 23.09.30 319 8 12쪽
53 기린아 당지위(唐志偉)(2) 23.09.29 313 6 15쪽
52 기린아 당지위(唐志偉)(1) 23.09.28 348 5 13쪽
51 밀정(密偵)(3) 23.09.27 318 6 14쪽
50 밀정(密偵)(2) 23.09.26 319 6 18쪽
49 밀정(密偵)(1) 23.09.25 340 7 13쪽
48 대운종(大雲宗)(4) 23.09.23 393 6 16쪽
47 대운종(大雲宗)(3) 23.09.22 349 5 15쪽
46 대운종(大雲宗)(2) 23.09.21 374 6 14쪽
45 대운종(大雲宗)(1) 23.09.20 416 7 13쪽
44 탁단봉(卓丹峰)의 심장(4) 23.09.19 381 8 19쪽
43 탁단봉(卓丹峰)의 심장(3) 23.09.18 404 8 15쪽
42 탁단봉(卓丹峰)의 심장(2) 23.09.18 414 7 19쪽
41 탁단봉(卓丹峰)의 심장(1) 23.09.15 447 6 17쪽
40 무림맹주 여불선(余不善) 23.09.14 439 6 19쪽
39 혈화문(血華門) 23.09.13 424 6 15쪽
38 추석 23.09.12 408 6 15쪽
37 매화검수(梅花劍手) 채인하(蔡刃昰) 23.09.11 420 6 19쪽
36 흥정(2) 23.09.09 430 9 16쪽
35 흥정(1) 23.09.08 511 8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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