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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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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65
추천수 :
659
글자수 :
64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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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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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밀정(密偵)(2)

DUMMY

싹 끌어모은 용의자 수는 총 스무 명이었다.

수가 너무 많아 나는 육손에게 내가 보는 앞에서 이들을 한 번 솎아 내도록 했다.

육손이 몇 가지 질문 후, 시간상으로 너무 촉박하거나 신분이 매우 명확한 자들 순으로 사람을 걸러냈다.

그래도 열 명이나 남았다.

문득 금파파가 떠올랐다.

눈썰미 좋은 그녀라면 사람의 말투나 모양새만 보고도 단번에 간자(間者)를 찍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장원에 없었다.

금파파와 강군, 두문택, 홍금보 이렇게 네 사람은 해 장로의 요구사항인 용산장원의 집문서를 얻기 위해 불철주야 파견 나가 있는 상태였다.

남은 열 명에 대한 심문을 시작하려는데 마침 몽일천이 도착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머리도 정돈된 상태고 얼굴색도 무척이나 밝아진 모습이었다.

아편을 빨고 온 것이 분명했다.

그가 의자를 끌어와 내 옆에 자리했다.

몽일천이 대뜸 한 용의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육손을 향해 말했다.


“이봐, 육 책사. 그 사람은 아니야. 그 친구는 내가 있을 때 식사 배달을 왔었어.”


심문 중인 자는 식당에서 배식을 맡고 있는 최 씨라는 사내였다.

육손이 몽일천을 돌아보며 말했다.


“관지연의 말에 의하면 이 자는 식사를 배달한 후, 한 시진 뒤에 재차 중망루를 찾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릇을 가지러 오긴 했지만, 목격자가 부족합니다.”


최 씨가 뭐라 변명을 하려는데 몽일천이 다시 한번 그를 변호했다.


“아니라니까. 그 친구 까막눈이야.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른다고.”


육손이 나를 바라봤다.

내가 최 씨를 지척으로 불러들였다.


“사실인가?”

“···네.”

“혈화문 입문 시기가 언제쯤이지?”

“당홍설 문주가 계실 때니까 7년 조금 넘었습니다.”

“천룡회 선거 시작 후 장원 밖에 나갔다 온 적은 있나?”

“네, 집에 계신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이호님께 허락을 맡고 저녁에 문안 인사드리러 항시 다녀오고 있습니다.”

“집이 어디지?”

“···죽림 근처에 있는 최가촌입니다.”

“갔다 오는데 시간이 꽤 걸리겠군.”

“네, 장원에 돌아오면 대충 자정 안쪽입니다.”

“음, 일단 자네는 가지 말고 저쪽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게.”


···이렇게 육손과 몽 고문이 먼저 심문하고 내가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식으로 용의자를 세 명으로 압축시켰다.

앞서 심문한 식당 사람 최 씨와 현재 중망루 내부 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증소문이라는 목공, 마지막으로 홍 의원을 따라 3개월간 우리 장원에서 의료활동을 하기로 한 채 부인이라는 여자였다.

신기하게도 세 사람 다 같은 시각 중망루 안에 있었고 동선에 목격자가 없었다.

육손이 내 지시에 따라 이들에게 자기를 변호할 시간을 주려는 데 때마침 마심아와 왕정정이 식당 사람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가지고 도착했다.

내가 잠시 휴식을 명령했다.

나는 추문강과 철두에게 만에 하나라도 있을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라 당부 후, 마심아와 정정은 전각 안으로 들여보냈다.

철두가 하선이를 불러 뭔가를 따로 상의했다.

저녁 식사는 마파두부, 삼겹살 두루치기, 어향육사(魚香肉絲) 같은 대부분 매운 사천요리였다.

나는 밥이 담긴 큰 대접에 요리를 조금씩 덜어 올린 뒤 용의자들과 대청 바닥에서 식사를 함께했다.

얼마 있으니 채 부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문주님, 혹시 이후로도 범인이 나오지 않으면 저희는 어찌합니까?”


내가 양념 된 삼겹살 한 점을 밥과 함께 입에 털어 넣으며 대답했다.


“나올 거요. 그리고 모두에게 자신을 변호할 시간을 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차분히 식사나 하시오.”

“······네.”


나는 식사 중에도 틈틈이 최 씨와, 채 부인, 증소문 목공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갈 무렵, 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추가로 얻기 위해 밖에 나갔던 육손이 돌아왔다.

육손이 내게 긴히 말할 게 있다며 귓속말을 속삭였다.

내가 녀석에게 얘기를 다 전해 들은 뒤 몽 고문과 상의 후 일단 심문을 이어나갔다.

잠시 뒤 최후 변론이 시작됐다.

이번엔 증소문이라는 목공부터였다.


“저는 그 시각 3층에서 공사 중이었습니다. 원래 계단참에 여인 무사가 있었는데 하필 제가 5층 문 치수를 재려고 올라갔을 때, 무사들 교대 시간이었는지는 몰라도 그 여인 무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절대 4층 제조실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5층 문의 치수만 재고 내려왔습니다.”


내가 육손에게 물었다.


“그때가 무사들 교대 시간이었나?”

“아닙니다. 당시 근무를 섰던 무사는 2층 계단으로 내려와 채 부인과 상담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상담?”

“최근 달거리가 불규칙해서 채 부인에게 약을 부탁했더랍니다. 마침 채 부인이 와서 약도 주고 또 불규칙한 이유도 설명해줘서 그걸 전해 듣고 다시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왜 하필 2층에서 했지?”

“2층이 그나마 공사가 많이 마무리된 상태라 비교적 깨끗해서였다고 합니다. 부탁한 입장에서 채 부인을 그리 모실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딨나?”

“대청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들어오라고 할까요?”

“···아니야. 됐어. 바로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지. 채 부인이었던가?”

“네.”


채 부인이 대청 한가운데로 나와 변론을 시작했다.


“저는 저번 날 홍 의원으로부터 몽 고문에게 약으로 쓸 아편을 구입하라는 명을 받고 중망루를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다 여인 무사에게 따로 부탁들 받았고, 오늘 오후 그 약을 챙겨 중망루에 들렀습니다. 한데 여인 무사에게 약을 건넨 뒤 제조실에 들렀을 땐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몽 고문께서 구석에 있는 화장실 문을 열고 나타나셔서 저는 평소 하던 대로 아편을 사서 돌아왔습니다. 이게 끝입니다.”


나와 육손, 몽 고문이 시선을 교환한 후 마지막 사람을 불렀다.

식당 사람 최 씨가 나와서 말했다.


“저는 진짜 억울합니다. 저는 그릇을 찾으러 중망루에 들렀을 뿐입니다. 당시 계단참에 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모릅니다. 바로 4층으로 올라가 문 앞에 놓여 있던 그릇을 챙겨 내려왔습니다. 그게 답니다.”

“알았으니 일단 들어가게.”


심문이 끝났다.

추문강은 무사들과 함께 대청 입구를 차단하고 있었다.

전각 지붕 위 보이지 않는 곳에선 임하선과 10인의 궁수들이 숨죽인 채 대기 상태였다.

철두는 칼자루를 꽉, 움켜쥐고서 세 사람 뒤에 서 있었다.

나와 육손, 몽 고문은 대청 한쪽으로 이동해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내가 세 사람이 들릴 만큼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 자가 가장 유력하군.”

“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육손의 맞장구를 받으며 용의자들에게 다가갔다.

내가 뒤에 선 철두를 향해 눈짓하자 철두가 칼집에서 스르륵 칼을 빼냈다.

바닥에 앉은 세 사람이 고개를 들어 겁먹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내가 무심히 턱짓하자 철두가 즉시 칼을 큰 동작으로 휘둘렀다.

기절초풍한 세 사람이 동시에 비명을 내지르며 양손을 들어 칼을 막았다.

행동에 있어 한 사람도 튀는 이가 없었다.

칼은 그들의 머리 위에서 곡선을 그리며 공중으로 치솟았다.

당연히 누구도 칼에 맞은 자는 없었다.

내가 실금까지 지리려 하는 세 사람을 향해 말했다.


“다들 안심해라. 오늘 이리 한 것은 혈화문 장원 전체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나와 몽 고문이 짜고 연극을 한 것이니까.”

“네?”

“정말입니까?”

“그래, 이만 다들 돌아가도 좋다. 그전과 같이 일선에서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육손이 세 사람에게 위로금 조로 은자 얼마간을 내주었다.

까무러칠 정도로 정신이 나갔던 세 사람은 얼마간 휴식 후 본래 자신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 무렵 영야각 임청라가 두 번째로 장원을 찾았다.

첫 번째 정보 교환 때 탁단봉을 알아내지 못한 실수를 저질렀기에 이번 방문은 청라로서도 만반의 준비를 다 한 것이었다.

나는 부하들과 함께 청라가 가지고 온 새로운 정보에 귀를 기울였다.

청라가 돌아간 후 회의가 이어졌다.

회의는 밤늦게까지 지속했다.



*



멀리 있는 산사에서 사경(四更, 새벽 1시)을 알리는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질 때였다.

작업 인부들이 묵는 숙소에 횃불이 켜졌다.

이글거리는 횃불 아래서 누군가 소리쳤다.


“간자다, 간자가 붙잡혔다!”


각 숙소의 등불이 밝혀지고 사람들이 하나씩 밖으로 뛰쳐나왔다.

목공 증소문도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증소문이 횃불을 들고 있는 동료 이 씨에게 물었다.


“어이, 이 형. 무슨 일이오?”

“엉, 낮에 몽 고문의 제조실을 침입했던 간자를 붙잡았다는구만. 빨리 가보세.”


증소문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밍기적 동료들을 뒤따랐다.

한데 얼마 가기도 전에 중마루로 가는 길목에서 한 떼의 칼 든 사람들과 마주쳤다.

철두가 이끄는 일화단(一華團)이었다.

일화단은 최근 육손이 편성한 여러 조직 중 문주의 친위대를 일컬었다.

철두가 군중 속에서 증소문을 발견하고 대갈했다.


“여봐라, 당장 저놈을 잡아들여라.”


증소문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무사들이 달려와 그의 양팔을 뒤로 꺾었다.

손목에 포승줄이 칭칭 휘감겼다.

증소문이 무릎 꿇린 자세로 다급히 포효했다.


“아니, 이보시오. 철두 양반, 일언반구도 없이 이게 대체 무슨 짓이요?”


철두가 다가와 증소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증소문, 너랑 함께 심문을 받았던 그 최 씨란 놈이 또 몽 고문의 제조실을 침입했다가 현장에서 붙잡혔다. 문주께서는 고민 끝에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차단하기 위해 너와 채 부인에게도 각각 사형을 명하셨다. 그러니 얌전히 칼을 받아라. 뭣 하느냐, 당장 녀석의 목을 늘리지 않고!”


증소문으로선 청천벽력과도 같은 얘기였다.


“아니, 이보시오, 이게 무슨···.”


무사들이 양쪽에서 그를 붙들고 증소문의 머리를 바닥에 밀어붙였다.

증소문의 짧은 목이 철두의 칼 앞에 온전히 드러났다.

철두가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철두의 칼이 증소문의 목에 내려앉았다.


까아아앙―


바닥에 깔린 백석(白石)과 부딪힌 칼날에서 황금빛 불꽃이 튀었다.

증소문이 모두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일화단이 그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이 공사 때 쓰고 남은 초석(礎石) 위에 올라가 있던 증소문이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아니 이런 막장 놈들을 봤나? 진짜로 내려칠 생각이었구만.”


그가 혀를 내두르더니 발목 위까지 올라온 가죽 신발 안에서 두 자루의 백색 사시미를 꺼내 들었다.

철두가 녀석을 향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진짜 이름이 뭐냐?”

“하하, 그래. 이름 정도는 밝히는 게 예의겠지. 나는 아스카 왕국의 닌자 한조(漢蚤)다.”


그때 저만치 언덕 위에서 지상이 내려오며 소리 질렀다.


“죽이지 말고 생포해라.”


한조가 이지상을 노려보며 응답했다.


“난 아스카의 닌자다. 죽으면 죽었지, 날 생포할 순 없다.”


그가 무사들을 향해 조야한 돌 하나를 힘껏 내던졌다.

펑, 소리와 함께 무사들 중심에서 연막탄이 터졌다.

하얀 연기 사이로 사라지는 그림자를 잡아낸 지상이 전력을 다해 뛰어와 귀신보를 펼쳤다.

한조의 그림자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한조가 내지른 사시미가 지상의 뺨을 스쳤다.

지상이 히죽 웃으며 머리를 돌려 피했다.

지상의 금나수가 한조의 옷자락을 북, 찢어발겼다.

한조가 마치 벼룩처럼 공중으로 10장 가까이나 뛰어올랐다.

어찌나 높이 올랐던지 녀석의 몸이 점처럼 보였다.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거대한 화염구(火焰球)가 최고점에 다다른 한조를 강타했다.


“커억―”


한조의 작은 몸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불길이 배 숲으로 떨어졌다.

낙법으로 충격을 최소화한 한조가 불붙은 장포를 벗어 던진 뒤 즉시 신법을 펼쳤다.

그가 나무 사이를 곤충처럼 폴짝, 폴짝 뛰어다녔다.

녀석이 순식간에 7장 가까이 멀리 벗어났다.

순간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이 들려왔다.

한조가 얼른 나무 뒤로 몸을 피했지만, 빛살처럼 날아온 화살이 나무와 그의 오른쪽 정강이를 동시에 꿰뚫었다.


“크아아아아악!!”


그가 화살을 부러뜨리고 촉을 빼내는 사이, 지상과 혈화문 무사들이 순식간에 한조를 겹겹이 에워쌌다.

정면에선 추문강과 몽일천이, 우측에선 궁수들과 임하선이, 좌측은 육손과 여몽단(여자무사단)이, 후방에선 지상과 철두, 일화단이 퇴로를 차단했다.

한조가 배나무를 등진 채로 손가락으로 수인을 만들었다.

수인이 바뀔 때마다 동시에 한조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히토, 후타, 미, 요, 이츠, 무, 나나, 야아, 코코노, 토오, 아스카의 닌자 한조, 최후의 비기를 시연한다. 죽음이 내 앞을 가로막을지라도 닌자의 명예를 더럽힐 순 없다.”


한조의 몸이 즉시 열 명으로 분신했다.

열 명의 한조가 각기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일제히 내달렸다.

지상이 걸음을 멈춘 뒤 눈을 감고 눈높이까지 원걸영을 들어 올렸다.

원걸영에서 강력한 은광(銀光)이 방사형으로 뻗쳐 나오기 시작했다.

지상이 손목을 한번 힘주어 흔들자, 은광이 즉각 공간을 지배했다.

배나무 숲을 뛰어다니던 한조의 분신들은 은광에 닿기가 무섭게 연기처럼 사라졌다.

순식간에 아홉의 분신이 사라지고 단 한 명의 한조만이 남았다.

한데 그는 애초에 도망갈 생각이 없었는지 지상을 향해 달려오던 움직임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지상이 쌍두사를 뽑아 들며 말했다.


“생포하긴 힘들겠군, 모두 비켜라. 내가 마무리한다.”


한조가 벼룩처럼 쑥, 쑥 공간을 단축했다.

지상의 예리한 눈이 녀석을 쫓았다.

한조가 기합성을 내지르며 공중으로 날아오르던 순간 지상이 그 앞 배나무 줄기에 생긴 녀석의 그림자를 밟고 하늘로 튀어 올랐다.

한조가 지상이 있던 자리에 도달하자, 지상이 하늘에서 그를 베었다.

쌍두사의 검날이 두 개의 백색 사시미와 연달아 맞부딪쳤다.

앞서 받아친 사시미가 검강에 산산이 조각나 공중에 흩뿌려졌다.

반면 뒤이어 쳐올린 사시미는 쌍두사의 검날을 따라 쭉 아래쪽으로 내려갔다가 콧등이에서 몸을 틀어 지상의 하박을 결대로 베어냈다.

하지만 쌍두사의 거대한 흑날이 이미 한조의 좌측 어깨에 통째로 처박힌 후였다.

한조가 신음하며 사시미를 놓았다.

그가 떨어지는 사시미를 역수로 받아들고 지상의 복부를 향해 힘껏 쑤셔 박았다.

찰나의 순간 지상의 양팔에서 쏘아진 홍사검과 흑사검이 가위처럼 교차한 뒤 한조의 목을 뎅강 잘라냈다.

그가 죽으면서까지 내지른 사시미가 세 치가량 지상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너무도 빠르게 치러진 일전이었기에 두 사람의 대결을 제대로 본 자가 손에 꼽힐 정도였다.

머리를 잃은 한조의 몸뚱이가 쿵, 소리와 함께 뒤로 고꾸라졌다.

지상의 복부가 순식간에 시뻘건 피로 물들었다.

철두와 일화단이 달려왔다.

한데··· 지상은 뭔가 개운치 않았다.

문득 어떤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갑자기 우편에 있는 하선을 불렀다.


“임하선, 녀석을 놓치지 마라!”


그때였다.

처음 열 개의 분신이 생겼던 자리에서 배나무와 하나가 된 채로 위장하고 있던 진짜 한조가 방심한 사람들 머리 위로 훌쩍 날아올랐다.


“뭐야?”

“설마 저게 진짜야?”


한조가 나무를 타고 넘으며 장원 담벼락을 향해 미친 속도로 내달렸다.

수많은 암기가 그를 향해 던져졌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모두 아슬아슬하게 빗겨 갔다.

한조가 담벼락 밑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뒤 다시 10장가량 높이 솟구쳤다.

그가 담장을 넘으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지상을 한 차례 돌아보는 데 갑자기 어디선가 섬전처럼 날아온 빛살이 그를 덮쳤다.

공중에서 더는 도망칠 곳이 없었던 한조가 임시방편으로 손바닥을 뻗어 빛살을 쳐냈다.

손바닥에 불이 붙은 듯 엄청난 통증과 함께 핏줄기가 튀었다.

한데, 젠장 할, 빗살이 하나가 아니었다.

거의 1초 간격으로 똑같은 궤도로 날아온 화살이 한조를 꿰뚫었다.

누군가가 경탄과 함께 소리쳤다.


“쌍둥이 화살!”


한조가 괴성을 내지르며 담벼락 밖으로 떨어졌다.

이미 지척까지 달려온 지상이 즉시 담장을 뛰어넘었다.

철두와 추문강, 육손이 그 뒤를 따랐다.

한데 놀랍게도 한조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었다.

육손이 북쪽 망루를 향해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이이익―”


북쪽 망루에서 등롱이 세 번 깜박였다.

자신들도 보지 못했다는 신호였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모두 흩어져 근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한조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지상이 쓰디쓴 침을 바닥에 내뱉었다.


“대단한 놈일세.”


그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부하들을 향해 일갈했다.


“들어가자.”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발걸음을 멈춘 지상이 길의 전방과 후방을 향해 쌍두사를 한 차례씩 내질렀다.

거대한 검강이 땅바닥을 사선으로 갈랐다.

그 뒤로도 한참을 그곳에 서 있던 지상과 부하들은 달이 구름에 가릴 무렵 장원 안으로 사라졌다.

희미해진 달빛 아래서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 관찰됐다.

땅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한조였다.

한조가 잘려나간 손가락 세 개를 빠르게 지혈한 뒤 장원 앞 밤나무 숲을 향해 느릿느릿 기어가기 시작했다.

변장술이 어찌나 뛰어난지 바로 지척에서 보고 있어도 땅과 구별할 수 없었고, 또 엄청나게 느린 움직임이라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망루 위 감시병들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한조가 그렇게 지상과의 첫 대결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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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악인곡(惡人谷)(3) 23.10.03 272 6 15쪽
55 악인곡(惡人谷)(2) 23.10.02 294 6 19쪽
54 악인곡(惡人谷)(1) 23.09.30 315 8 12쪽
53 기린아 당지위(唐志偉)(2) 23.09.29 310 6 15쪽
52 기린아 당지위(唐志偉)(1) 23.09.28 345 5 13쪽
51 밀정(密偵)(3) 23.09.27 313 6 14쪽
» 밀정(密偵)(2) 23.09.26 317 6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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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대운종(大雲宗)(3) 23.09.22 347 5 15쪽
46 대운종(大雲宗)(2) 23.09.21 372 6 14쪽
45 대운종(大雲宗)(1) 23.09.20 413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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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탁단봉(卓丹峰)의 심장(3) 23.09.18 401 8 15쪽
42 탁단봉(卓丹峰)의 심장(2) 23.09.18 411 7 19쪽
41 탁단봉(卓丹峰)의 심장(1) 23.09.15 444 6 17쪽
40 무림맹주 여불선(余不善) 23.09.14 437 6 19쪽
39 혈화문(血華門) 23.09.13 420 6 15쪽
38 추석 23.09.12 406 6 15쪽
37 매화검수(梅花劍手) 채인하(蔡刃昰) 23.09.11 418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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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흥정(1) 23.09.08 506 8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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