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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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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62
추천수 :
659
글자수 :
649,521

작성
23.09.1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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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9쪽

무림맹주 여불선(余不善)

DUMMY

내가 솜이불 속에서 눈을 떴다.

간밤에 마신 술때문에 몸이 찌뿌듯했다.

창밖을 내다보니 아직 새벽이라 하늘이 어둡고 공기도 차가웠다.

술 내음이 가득한 집무실을 가로질러 책상에 놓인 물 주전자를 집어 들었다.

순간 바닥에서 뭔가 물컹한 게 밟혔다.

추문강 대가리였다.

녀석이 꿈속에서 ‘은이화~ 은이화~ 한 번만~’ 개소리를 중얼거렸다.

녀석을 부축해 긴 의자 위에 올려놓고,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때 창문 너머로 뭔가 스멀스멀 기어 들어왔다.

아기 동자와 내가 동시에 소리를 내질렀다.


“지상님!”

“원걸영!”


혹시 다른 사람이 볼까 싶어 아기 동자에게 소리 죽여 물었다.


“뭐야, 너 언제 나왔어?”

“아, 그게··· 사실 저는 새벽에 이렇게 잠깐 나와서 이슬을 먹고 들어가야 해요. 인간의 몸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에요.”

“허, 그리 중요한 걸 왜 여태 말 안 했어?”

“······깜빡했어요. 히히.”

“이리와.”


내가 아기 동자의 뒷덜미를 잡아서 솜이불 속으로 쑥 집어넣었다.

말 안 한 걸 탓할 생각이 아니었다.

간만에 본 김에 은이화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내가 저번 날 은이화를 만난 이야기를 원걸영에게 들려주었다.

원걸영이 한탄 섞인 어조로 대답했다.


“후, 정말 집요한 여자군요.”


내가 솜이불 속에서 다리를 뻗고 앉은 원걸영에게 물었다.


“은이화가 도대체 어떻게 너나 아수라대다나리경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원걸영이 민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 왜 구검님이 감옥에 계실 때 제정신이 아니셨잖아요. 그때 계속 헛소리를 하셨대요. 근데 그게 나중에 알고 보니까 헛소리가 아니라 과거에 겪은 일을 반복해서 말씀하신 거였어요.”

“아··· 그걸 누가 들었구나.”

“네, 간수랑 죄수들이요. 특히 그 간수 중에 무림맹주 여불선의 명을 받고 구검님을 고문하던 자가 있었어요. 음영신공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요.”


내가 고개를 가만히 주억였다.


“그자가 뒤늦게 구검님이 반복해서 뱉어낸 말이 그의 비밀이라는 걸 알아챘어요. 간수가 무림맹주 여불선에게 그 얘기를 전했죠. 하지만 그땐 이미 은이화는 다른 죄수를 통해 제 존재를 알고 있었어요.”

“계속해.”

“은이화가 구검님의 은신처에 숨어있던 절 찾아왔어요.”

“아, 너 은이화한테 한 번 잡혔었구나.”

“네, 하지만 그녀 역시 저에 대해 완벽히 알진 못했어요. 제 500년 법력을 우습게 알았다가 저한테 한 방 제대로 먹었죠. 히히히.”

“도망쳤군.”

“네! 그리고 도망친 곳에서 구검님 죽음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순간 저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죠. 그대로 이십 년 가까이 잠적해 있었어요. 근데 최근에 또 은이화가 용한 법사를 고용해 저를 찾아낸 거예요. 저는 그게 왠지 하늘의 계시인 것만 같아 도주 중에 보리수나무 아래서 점을 쳐봤어요. 그때 제 새로운 주인님이 되실 지상님이 눈에 보인 거예요.”

“너 점도 쳐?”

“네~”

“그럼, 이번 천룡회 회장 선거에 누가 당첨되는지도 알 수 있어?”

“하하, 그건 안 돼요. 주인님의 사적 이익이 걸린 문제는 점괘가 나오지 않아요.”

“시발.”

“네?”

“아니야, 됐어. 암튼 그러면 은이화의 목적은 너한테서 아수라대다라니경이 숨겨져 있는 반야동의 위치를 찾는 거였군.”

“맞아요.”


내가 원걸영에게 물었다.


“그럼 나중에 은이화가 방문하면 그땐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아기 동자가 잠시 생각한 뒤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다.


“주인님, 혹시 은이화를 제압할 수 있으세요?”


녀석의 질문에 갑자기 그녀한테 뺨을 수십 대 처맞고 기절한 채인하가 떠올랐다.


“모르겠다. 만일 그 여자랑 붙는다면 사생 결단할 각오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럼··· 혹시 지상님은 아수라대다라니경을 보고 싶지 않으세요?”


내가 혀를 끌며 대답했다.


“그닥··· 그리고 설사 내가 그걸 본다 해도 고대 경전 수준의 글을 내 머리로 해석할 수 있을까?”

“제가 해드리면 되죠.”

“그렇다 해도 우연히 보게 된다면 모를까. 나는 억지로 반야동을 찾아가진 않을 것 같아.”


원걸영이 엄지를 빨며 말했다.


“주인님, 그럼 이렇게 해요. 은이화가 찾아오면 저를 불러내세요. 그러면 제가 은이화한테 반야동으로 가는 지도를 그려줄게요.”

“가짜 지도를 그려주려고?”

“아니요. 어느 정도 정확한 지도를 그려줘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그리 해줘도 막상 찾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동굴 입구가 법력으로 보호되고 있어서 하늘의 뜻이 아니면 코앞에 있어도 못 보고 지나칠 게 뻔해요.”

“하늘의 뜻이라··· 그래, 그럼 네 생각대로 해. 나는 우리 혈화문 사람들한테 피해만 없으면 되니까.”

“네, 아, 주인님. 오늘이 선거 운동 시작일이죠?”

“응, 그러니까 얼른 너 들어가 봐야겠다. 사람들 깰 시간이다.”

“시작 단추 잘 끼우세요!”

“고맙다. 아, 차. 너 진짜 이슬만 먹어? 다른 건 못 먹어?”

“음, 포도는 먹어요.”

“청포도 괜찮아?”

“네.”

“알았어.”


내가 원걸영의 빛나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원걸영이 씩, 웃더니 연기로 화해 은방울 속으로 사라졌다.

아, 시발. 녀석이 사라지고 나서야 생각났다.

원걸영에게 육지(肉芝)를 아느냐고 물어봤어야 했다.

다시 원걸영을 불러내려는 데 대청 안으로 이호가 바삐 뛰어들어왔다.

이호가 내게 달려와 뭔가를 내밀며 다급히 말했다.


“문주님, 천룡회에서 온 서신입니다.”


내가 이호가 내민 서신 뭉치를 받아들고 녀석을 향해 일갈했다.


“당장 기상나팔을 불어 간부들을 전원 집무실로 집합시켜라!”



*



대도무문(大道無門) 무룡궁(武龍宮).


높다란 단 위 황금 옥좌 위에서 황금빛 룡포(龍袍)를 걸친 백발의 노인이 무공서로 보이는 얇은 책자를 들여다보고 있다.

맹주의 집무실 무영전(武英殿) 문을 지키던 시위 하나가 단상 아래 대기 중인 무림맹 총관 사마랑(司馬朗)에게 말을 전했다.

사마랑이 무림맹주 여불선(余不善)에게 고했다.


“맹주님, 현무칠협(炫武七俠)이 맹주님을 뵙기를 청합니다.”


여불선이 책을 덮고 말했다.


“들라 이르라.”

“네.”


곧바로 한 무리의 젊은 협객들이 무영전 안으로 들어왔다.

상관금천이 일행보다 한 발 앞으로 나와 부복하며 말했다.


“현무칠협이 맹주님을 뵙습니다.”


뒤에 선 여섯이 그 말을 복창했다.


“현무칠협이 맹주님을 뵙습니다.”


무림맹주 여불선이 옥좌 위에서 현무칠협 한 사람 한 사람을 차갑게 내려다봤다.

여불선이 젊은 협객들을 향해 말했다.


“기억에 담아두고 싶으니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소속과 이름을 말하도록 하여라.”


상관금천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밝혔다.


“소림의 상관금천(上官金天).”


뒤에 대기하고 있던 여섯 사람이 차례대로 앞으로 나와 소속과 이름을 복창하고 상관금천 옆에 나란히 섰다.


“무당의 장태호(張太虎).”

“청성의 이불범(李不凡).”

“모용세가의 모용균(募容均).”

“하후세가의 하후현(夏侯玄)”

“곤륜파의 이도진(李刀眞).”

“화산파의 정청하(丁靑霞), 이상입니다.”


무림맹주 여불선이 옥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가 자홍색 비단이 깔린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며 말했다.


“내가 오늘 현무칠협 너희를 부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있느냐?”


형제들이 시선을 맞춘 뒤 곧 상관금천이 대표로 대답했다.


“오늘이 천룡회 선거 운동 시작일이기 때문입니다.”

“맞다. 내 그래서 너희에게 내 뜻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기 위해 이 꼭두새벽에 호출했다.”

“네···.”

“상관금천.”

“네, 맹주님.”

“저번 날 내가 너에게 무어라 일렀느냐.”


상관금천이 빠르게 대답했다.


“흑도 가문으로 돌아가되 제 뿌리가 백도임을 절대로 잊어서는 아니 된다 하셨습니다.”

“또.”

“음, 이번 천룡회 회장 선거에 무조건 당선되어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몽매하고 무지한 흑도들을 개도하기 위함이라 하셨습니다.”

“맞다. 잘 기억하고 있구나.”


계단을 다 내려온 여불선이 현무칠협의 어깨를 한 명씩 지그시 어루만지며 지나갔다.

그가 총관 사마랑 옆에 서서 뒷짐 진 채로 말했다.


“한데 그 계획이 오늘 자로 조금 변경됐다.”

“······.”

“흑도인 상관세가를 도와 천룡회 회장 선거에 최선을 다해 임하되 만일 일이 그릇될 거 같으면··· 이리하면 된다.”

“분부하십시오.”

“선거 도중에라도 흑도 세력을 이용해 혈화문을 멸하도록 해라.”

“······.”

“그다음엔 최대한 신속하게 천룡회의 모든 장로를 제거하고 현 천룡회 회장인 상관금정과 총관 제갈근, 철혈대 대장 진가엽도 죽여라. 이때부터는 대도무문의 우리 무림맹 무사들을 이용해도 된다.”


상관금천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맹주님, 그러면 바뀐 임무는 흑도들을 개도하는 게 아니라 아예···.”

“그렇다, 흑도 수뇌부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됐다. 흑도들이 다시는 머리를 들지 못하도록 그 뿌리까지 찾아내 철저히 파괴해야 한다.”


상관금천 옆에 있던 장태호가 상관세가에 속한 금천의 의중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면 상관세가나 제갈세가 등은 차후에 어떻게 됩니까···.”

“직계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참수형에 처한다. 금천이가 속한 방계 일가족을 제외한 나머지 방계들도 모조리 잡아서 남자들은 천상각 뇌옥으로 보내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노비로 활용한다. 압수한 재산은 이번 임무에서 공을 세운 순으로 나누어 갖는다.”


현무칠협 중 유일하게 화산파 사람이자 여불선의 제자인 정청하가 사부에게 물었다.


“하면 만일 저희가 선거에서 우승할 것 같으면 그땐 어찌합니까?”

“그리해도 결론은 마찬가지다. 다만, 시간이 조금 늦춰질 뿐이지. 상관금천이 천룡회 회장이 되면 그 힘을 가지고 조금 전 내가 말한 명령을 차근차근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결국, 천룡회 회장 선거를 빌미로 흑도 수뇌부를 모조리 제거하는 게 변경된 임무의 핵심이군요.”

“그렇다. 다들 조금 놀랐겠지만, 계획이 그리 변경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마랑.”


총관 사마랑이 부관에게서 받은 종이를 현무칠협을 향해 높이 들어 올렸다.

흰 종이엔 천마(天魔)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상관금천이 침음하듯 말했다.


“천마···.”


여불선이 말했다.


“강호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30년 전 전설의 마교가 무림에 출몰했을 때 우리 정파에선 백 명의 젊은 고수를 차출해 마교척살단을 꾸려 마교를 섬멸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마교의 우두머리인 천마의 죽음을 선포했다.”


칠협 중 꾀돌이로 소문난 모용균이 물었다.


“천마가 죽지 않았군요.”


여불선이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 그럼에도 당시 무림맹 수뇌부가 그리 발표한 것은 우리 측 희생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백 명의 마교척살단 인원 중 세 사람만이 살아서 이곳으로 돌아왔다. 내가 그 세 사람 중 한 사람인 건 너희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네.”

“우린 비록 천마를 죽이진 못했지만, 녀석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당시 우리가 상대한 천마는 무공은 월등했지만, 인간의 피와 살이 섞인 우리와 똑같은 존재였다. 때문에 우리는 그가 영원히 재기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여불선이 다시 사마랑을 돌아봤다.

사마랑이 누군가의 용모파기가 그려진 또 다른 종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

상관금천이 소리쳤다.


“마츠시타 시하?”


무림맹주 여불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다. 저 여자는 그녀의 어머니 마츠시타 시호다.”


정청하가 물었다.


“왜 갑자기 일본 여자가 튀어나옵니까?”

“30년 전 천마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도주한 곳이 아스카 왕국이기 때문이다. 한데 이 사실을 우리도 여태 알지 못했다. 최근 천룡회 회장 선거에 개입한 마츠시타 시하의 뒷조사를 위해 아스카 왕국에 침투시킨 우리측 인원이 알아낸 정보다.”


모용균이 물었다.


“마츠시타 시하와 그녀의 어머니가 천마와 관련이 있단 말씀입니까?”

“마츠시타 시호가 천마의 아내다. 두 사람은 몇 년간 정분을 나누었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마츠시타 시하다.”


찬물을 끼얹은 듯 좌중이 조용해졌다.

상관금천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갈세가와 마교의 잔당이 엮인 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군요.”

“그렇다, 마츠시타 시하의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우리 정보원들조차 그 일본 공주가 노리고 있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해서 약간의 무리수를 두더라도 계획을 급히 수정한 것이다.”


잠자코 듣고 있던 곤륜파의 이도진이 말했다.


“흑도와 천마가 결합하는 걸 지켜볼 순 없으니까···.”

“그렇다. 그게 핵심이다.”


현무칠협이 눈을 맞추며 빠르게 서로의 의중을 확인했다.

장태호가 마지막으로 상관금천의 뜻을 확인했다.

상관금천이 끄덕이더니 앞으로 나와 여불선에게 공수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현무칠협이 맹주 님의 뜻을 받들어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여불선이 다가와 상관금천의 손을 양손으로 감싸듯 잡고 말했다.


“금천이 네가 제일 힘들 줄 안다만, 대의를 위해 약간의 소를 희생하는 걸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 가족은 흑도가 아니라 바로 이 사람들이니까.”

“알고 있습니다. 문주님. 다섯 살 때 소림에 몸담은 이후로 그 사실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문주님을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좋아, 믿는다. 가보거라.”

“존명!”


현무칠협이 나간 뒤 여불선이 사마랑에게 물었다.


“인하는 지금 어디 있느냐?”

“소중원의 작은 객잔에서 내상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은이화에게 당했다고?”

“네, 이지상과의 진검승부에서는 호각을 이뤘지만, 갑자기 나타난 이화문의 은이화에게 불의의 습격을 당했다고 보고됐습니다.”

“···인하에게 전해라.”

“네, 맹주님.”

“상세가 회복되면 현무칠협의 일을 방해하지 말고 주변에서 관망만 하다가 때가 되면 녀석들을 도와 혈화문의 이지상을 죽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책자도 전해주어라.”


어느샌가 옥좌 위로 올라간 여불선이 아까 자신이 들여다봤던 얇은 무공서를 사마진에게 떨구었다.


“이것은···.”

“자하신공의 마지막 9성에 도달할 수 있는 요결이 적힌 비급이다. 다른 이를 시키지 말고 네가 직접 인하에게 전해라. 또한, 인하에게 읽고 태우라 일러라.”

“알겠습니다.”

“가봐라.”

“존명!”



*



혈화문 장원 문주 집무실.


장로들의 서신 속 내용은 오늘 이후 야야장에 모두 밝혀질 내용이라 일부러 간부들 외 사람들까지 집무실로 집합시켰다.

금파파가 휴가기간 새롭게 섭외한 이용(李冗)이라는 요리사가 아침식사로 만든 음식을 솥단지 채로 가지고 들어왔다.

금파파가 왕정정과 함께 그릇에 뜨거운 음식을 옮겨 담아 사람들에게 나누었다.

내가 뚝배기에 담긴 고기와 국물을 한움큼 퍼서 후, 식힌 후 목구멍으로 넘겼다.


“오우~ 시원하다.”


순간 몽일천이 갑자기 내 침상 위로 올라가더니 벽에 못을 박고 거기다 그물침대를 내걸었다.

추문강과 내가 한참이나 어이없는 표정으로 몽일천을 노려봤다.

그물침대로 올라가 몸을 누인 몽일천이 정정에게서 식사를 받아 국물을 홀짝이며 물었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육손과 우공이 어디선가 찾아온 하얀 대리석 판을 집무실로 가지고 들어와 맞은편 벽에 팡팡, 내걸었다.

육손이 목탄을 꺼내 대리석에 뭔가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서신 뭉치를 든 채로 내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철두가 나를 불렀다.


“형님, 발표할까요?”

“아니야, 좀 더 기다려. 능소가 안 왔어.”


발걸음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사사키 유이와 안개위, 홍금보가 손을 잡고 들어왔다.


“능소는?”

“오고 계세요.”

“알았어. 다들 준비해.”


두 아들과 함께 내 책상에서 장부를 정리하고 있던 휘 노인이 물었다.


“문주님, 밥 먹으면서 들어도 되겠죠?”

“그래, 근데 이거 고기가 뭐지?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왜 이렇게 맛있지?”


이용이라는 요리사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뱀탕이예요. 뱀탕.”


우에에에엑―

토하진 않았다.

그냥 입에 들어갔던 고기를 슬그머니 뱉어냈다.

옆에 앉아 있던 하선이와 두문택도 눈치껏 그릇을 내려놨다.

내가 이용에게 물었다.


“아침식사로 뱀은 좀 거시기하지 않아?”

“네? 왜요? 저희 고향에서는···.”

“아, 알았어. 한데 이용.”

“네.”

“다음부턴 일주일 전에 식단표를 만들어서 나한테 먼저 제출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문주님.”


능소가 소희와 함께 도착했다.

내가 능소를 내 침상 옆으로 오게한 뒤 철두에게 발표를 시작하라 명했다.

철두가 육손이 걸어놓은 대리석 쪽으로 이동해 우리를 마주보고 장로들의 서신을 하나씩 읽어나갔다.

육손이 그것을 그대로 대리석에 옮겨적었다.


“상장로, 천산화(天山華).”

“다음.”

“자 장로, 은자 500만냥.”

“다음.”

“축 장로, 녹림 출신 호면수라(虎面修羅) 악법옹(惡法翁)의 머리.”

“그냥 계속 쭉 읽어 봐.”

“인 장로, 발타선사(跋陀禪師)의 수정경(水晶鏡).”

“진 장로, 육지(肉芝).”

“사 장로, 무(無). 아무 것도 안 적혀 있습니다.”


내가 문득 짚이는 바가 있어 몽일천을 돌아봤다.

몽일천이 가만히 끄덕였다.


“넘어가, 다음.”

“오 장로, 무(無). 마찬가집니다.”

“다음.”

“미 장로···, 음···.”

“왜, 빨리 읽어.”

“미 장로, 백의가인(白衣佳人) 여미랑(余美狼)의 젖가리개. 반드시 사용한 흔적이 있어야 할 것.”

“시발···.”

“크크크, 진짜 나이를 똥구녕으로 처먹었나.”

“저런 걸 적어서 감히 우리한테 보낼 용기가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계속합니다.”

“응.”

“신 장로, 은자 10냥.”

“아놔, 시발.”


추문강이 물었다.


“왜? 10냥이잖아.”

“야, 그게 더 웃긴 거지. 후보가 세 명인데. 저건 완전히 우리끼리 무한 경쟁하란 소리랑 다름없잖아. 10냥이 천만냥이 될 수도 있다고.”

“아···.”

“다음.”

“유 장로, 무(無).”

“술 장로, 탁단봉(卓丹峰)의 심장.”

“탁단봉이 누구야?”

“모르겠습니다.”

“일단 다음.”

“해 장로, 야야장 동북부에 있는 용산장원(龍 山場院)의 집문서.”


철두가 더는 없는지 모든 서신을 내려놨다.

내가 물었다.


“끝났나?”


순간 육손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한 사람이 모자랍니다.”

“뭐야, 철두야, 잘 찾아봐. 빠트렸나 보다.”

“아, 여기 하나 더 있습니다. 아니 왜 이건 순서대로 안 되있고 밑장에 겹쳐져 있었지?”

“됐으니까, 빨리 읽어봐.”

“묘 장로 거네요. 묘 장로, 아수라대다라니경(阿修羅大陀羅尼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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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악인곡(惡人谷)(6) 23.10.06 257 5 15쪽
58 악인곡(惡人谷)(5) 23.10.05 284 6 15쪽
57 악인곡(惡人谷)(4) 23.10.04 267 4 13쪽
56 악인곡(惡人谷)(3) 23.10.03 272 6 15쪽
55 악인곡(惡人谷)(2) 23.10.02 293 6 19쪽
54 악인곡(惡人谷)(1) 23.09.30 315 8 12쪽
53 기린아 당지위(唐志偉)(2) 23.09.29 310 6 15쪽
52 기린아 당지위(唐志偉)(1) 23.09.28 345 5 13쪽
51 밀정(密偵)(3) 23.09.27 313 6 14쪽
50 밀정(密偵)(2) 23.09.26 316 6 18쪽
49 밀정(密偵)(1) 23.09.25 337 7 13쪽
48 대운종(大雲宗)(4) 23.09.23 390 6 16쪽
47 대운종(大雲宗)(3) 23.09.22 347 5 15쪽
46 대운종(大雲宗)(2) 23.09.21 372 6 14쪽
45 대운종(大雲宗)(1) 23.09.20 413 7 13쪽
44 탁단봉(卓丹峰)의 심장(4) 23.09.19 377 8 19쪽
43 탁단봉(卓丹峰)의 심장(3) 23.09.18 401 8 15쪽
42 탁단봉(卓丹峰)의 심장(2) 23.09.18 411 7 19쪽
41 탁단봉(卓丹峰)의 심장(1) 23.09.15 444 6 17쪽
» 무림맹주 여불선(余不善) 23.09.14 437 6 19쪽
39 혈화문(血華門) 23.09.13 420 6 15쪽
38 추석 23.09.12 406 6 15쪽
37 매화검수(梅花劍手) 채인하(蔡刃昰) 23.09.11 418 6 19쪽
36 흥정(2) 23.09.09 425 9 16쪽
35 흥정(1) 23.09.08 506 8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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