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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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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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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
글자수 :
64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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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8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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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탁단봉(卓丹峰)의 심장(2)

DUMMY

묘강밀림은 혼천강호 세계관에서 가장 크고 넓은 지역이다.

북쪽으로는 장강을 끼고 대도무문과 인접해 있고 남단에는 한때 마교의 근거지로 악명이 자자했던 십만대산이 자리하고 있다.

면적의 9할이 산악과 밀림이고 1할이 농사지을 수 있는 평야인데 그 1할에서 생산되는 쌀이 1년 동안 중원 사람 전부를 먹이고도 남을 만큼 쌀농사에 특화된 곳이다.


마심아와 그녀의 사촌 오빠 탁단봉이 이끄는 금강상단의 수레와 마차들이 덥고 습한 밀림을 빠져나와 진문(畛門)이라는 소도시에 도착했다.

묘강밀림의 관문으로도 불리는 진문은 여행자들에게 신선한 음식과 안전한 숙박을 제공해 이곳에선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곳이었다.

마심아가 진문 중심가에 있는 어느 객점 안으로 들어섰다.

미리 들어와 장부를 정리하고 있던 탁단봉이 그녀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요 앞에 건초 파는 가게가 새로 생겼나 봐요. 금 행수가 사람들 데리고 가서 건초 좀 잔뜩 사서 오겠대요. 식사는 우리보고 알아서 시키래요.”

“그래? 저기, 주인 양반.”


상단 사람 30명분에 대한 주문이 끝난 뒤, 탁단봉은 다시금 장부를 들여다보며 뭔가를 꼼꼼히 기록해 나갔다.

그사이 마심아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객점 안을 둘러봤다.

이른 오전이라 그런지 손님이 별로 없었다.

마심아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사촌 오빠에게 물었다.


“오라버니, 여기 주인이 원래 미간에 큰 점이 있는 할머니 아니었어요?”

“응?”

“몇 개월 만에 주인이 바뀐 거 같다고요. 저번 여름에 왔을 때만 해도 그 욕쟁이 할머니가 저한테 와서 농담도 하고 그랬는데, 할머니도 없고 점원들도 전부 첨 보는 사람들이네요?”


탁단봉이 조금 전 주문을 받은 낯선 얼굴의 객점 주인을 떠올렸다.


“듣고 보니 그러네?”


탁단봉이 주방으로 들어간 주인장을 다시 한번 보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 가게 구석 자리에서 식사 중인 중년 남녀 한 쌍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무슨 일인지 탁단봉의 낯빛이 변했다.

눈치 빠른 마심아가 오라버니에게 물었다.


“왜 그래요?”

“아니야, 심아야, 우리 다른 곳으로 가자.”

“왜요? 무슨 일인데요?”

“나중에 설명해 줄 테니까 지금은 그냥 오라버니 말 들어. 빨리 일어나.”


심아가 행랑을 챙겨 탁단봉을 따랐다.

탁단봉이 옆자리 탁자를 닦고 있던 점원에게 얼마간의 은자를 내어주며 주문을 취소했다.

그가 심아와 함께 객점을 나서려는데 공교롭게도 출입구 반대쪽에서 한 무리의 청포 사내들이 물밀듯 밀려 들어왔다.

탁단봉과 마심아가 옆으로 비켜섰다.

한데 청포인들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마심아와 탁단봉을 둥글게 에워싸는 것이었다.

심아가 불안한 눈길로 사촌 오라버니를 돌아봤다.


“오라버니···.”

“괜찮으니까, 심아 넌 가만히 있어.”


청포인 중 깡마른 얼굴에 입이 뾰족하고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는 사내가 품속에서 용모파기를 꺼내 들더니 두 사람의 얼굴을 빤히 관찰했다.

무례함의 극을 달린 그자가 탁단봉을 향해 물었다.


“네가 금강상단의 탁단봉인가?”


탁단봉이 심아의 떨리는 손을 꼭 부여잡은 채로 대답했다.


“그렇소만. 댁들은 누구요?”

“우리랑 어디를 좀 같이 가줘야겠다. 이유는 가면서 설명하지. 자.”


사내가 출입문 쪽으로 한쪽 팔을 내밀었다.

그의 부하들로 보이는 청포인들이 일제히 길을 텄다.

탁단봉이 잠시 고민하더니, 심아에게 말했다.


“심아야, 너는 여기 있어. 내가 이들을 따라갔다가 용무를 마치는 대로 금방 돌아올게. 금 행수와 상단 사람들이 도착하면 그들과 함께 여기서 나를 기다려···.”


청포인이 탁단봉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아니, 그럴 순 없다. 이 여자도 우리랑 함께 간다.”


탁단봉이 정색하며 물었다.


“조금 전에 분명 나를 원한다고···.”


훤칠한 키의 청포인이 마심아를 음흉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생각이 바뀌었다. 둘이 같이 간다. 행여 허튼수작 부릴 생각하지 마라. 너흰 지금 묘강밀림에 있고 우린 이곳을 지배하는 청방 사람들이니까.”


청방이라는 말에 마심아가 용기를 내서 청포인에게 말했다.


“이봐요. 무슨 오해가 있으신가 본데 우리 금강상단은 청방에게 줄곧 보호비를 잘 납부해 왔어요. 사람을 시켜 한번 알아보세요. 이번 달에도···.”


청포인이 중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가 비릿하게 웃더니 뇌까리듯 지껄였다.


“알아, 네가 말 안 해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하지만 이건 전혀 다른 성격의 문제야. 네 오라비가 묘강밀림 안에서 건드리면 안 될 사람들을 건드렸고, 그 사람들이 지금 너희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거든. 그러니 순순히 우리를 따라오는 게 좋을 거야. 그 사람들은 너희를 산 채로 데려오란 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그때였다.

가게 구석 자리에 있던 중년 남녀가 탁자 맡에 내려놨던 칼을 집어 들고 일어났다.

중년인이 대뜸 청포 사내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진문이 아무리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해도 엄연히 무림맹의 관장하에 있는 곳이거늘, 감히 백주대낮에 대놓고 납치 행각이라니.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녀석들이로구나.”


청포인이 몸을 돌려 중년 남녀를 사납게 노려봤다.

그가 중년인을 향해 싸늘하게 말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제 명까지 살고 싶거든 적어도 이곳 묘강밀림 안에선 너희와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중년인이 허리에 찬 요패를 떼어 청포인을 향해 휙, 내던졌다.

착― 소리와 함께 청포인 손에 들어간 상앗빛 요패에는 무림맹(武林盟)이라는 세 글자가 또렷하게 상감(象嵌)돼 있었다.

중년인이 당당하게 말했다.


“너희 같은 쓰레기들의 범죄를 막는 게 바로 우리 무림맹이 하는 일이다.”


요패를 요리조리 돌려보며 잠시 고민하던 청포인이 일순 부하들을 향해 출입문 쪽으로 턱짓했다.

포위를 푼 그의 부하들이 하나둘 객점을 빠져나갔다.

청포인이 중년 사내에게 요패를 던져주며 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무림맹 분들의 귀한 존성대명을 좀 듣고 싶은데 괜찮겠소?”

“본인부터 밝히는 게 예의 아닌가.”

“아, 내 정신 좀 보게. 나는 청방(靑幇)의 동부지부 지부장 기동우(奇東羽)라고 하오. 여기 계신 탁단봉 대협과는 사업상 잠깐 대화를 나누려고 했을 뿐이니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중년인이 대답했다.


“나는 무림맹 수사관 진신민(陳新民). 이쪽은 같은 수사관이자 내 아내 곽진예(郭珍霓)다. 이 정도에서 멈춘다면 우리도 더는 추궁하지 않겠다.”

“하하하, 선처에 감사드리오.”


청방 지부장 기동우가 탁단봉과 마심아, 진신민과 곽진예를 향해 양팔을 활짝 들어 올려 과도하게 인사하더니 몸을 돌려서 객점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기동우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탁단봉과 마심아가 그제야 참았던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무림맹 수사관 진신민과 곽진예는 창가로 이동해 밖의 상황을 살폈다.

주방에 몸을 숨기고 있던 객주와 점원들이 눈치를 살피며 밖으로 나왔다.

겨우 호흡을 다스린 탁단봉이 진신민과 곽진예를 향해 공수의 예를 올리며 말했다.


“진 대협, 곽 여협. 생면부지의 저희를 도와주신 은혜 진심으로 감사 말씀 올립니다.”


진신민이 탁단봉에게 말했다.


“안심하긴 아직 이르오. 청방 놈들이 잠깐 물러나긴 했지만, 언제 또 생각을 고쳐먹고 몰려올지 모르니까.”


곽진예가 마심아에게 말했다.


“그리고 우린 당신들과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아니에요. 자세한 사정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저희 부부는 누군가로부터 마심아님을 보호하란 명을 받고 이곳에 온 것이에요.”

“네, 저를요?”

“아··· 그래서.”


곽진예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탁단봉이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을 내뱉었다.

사실 그가 두 사람과 눈이 마주친 뒤 객점을 나서려 했던 것은 며칠 사이 두 사람을 여러 곳에서 마주친 기억이 있어서였다.

그는 진신민과 곽진예가 자신들을 노리는 살수라고 오해를 한 것이었다.

곽진예가 탁단봉의 의중을 꿰뚫어 보고 그에게 물었다.


“탁 대행수. 당신을 노리는 사람들이 누구죠?”


마심아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촌 오라버니를 응시했다.

탁단봉이 근처에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심아가 그의 어깨를 붙들고 물었다.


“오라버니, 무슨 일인지 빨리 말해줘요.”


탁단봉이 장탄식을 내뱉더니 모두를 돌아보며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게 실은··· 얼마 전에 대운종(大雲宗)이라는 밀교에서 파생된 종교인들과 우리 금강상단 사람들 사이에 작은 마찰이 있었소.”


창가에서 떨어진 진신민이 탁단봉 앞에 자리했다.

곽진예와 마심아도 찻잔에 차를 따르며 탁단봉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 전 묘강밀림 속 어느 장족 마을 인근에서 금강상단 무사들과 대운종 승인(僧人)들 간에 약간의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충돌의 시발점은 일부 장족 사람들이 탁단봉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대운종 승인들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제사 때 그들이 모시는 미라 상태의 즉신불(卽身佛)에 살아있는 제물을 바쳤는데 매번 사원 근처 마을에서 아이들을 차출했다.

장족 마을 사람들은 사원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소작농이 대부분인지라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했다.

한데 올해는 대운종이 요구하는 아이의 수가 너무 많았고 나이에도 제한이 없었다.

이러다가는 마을에 아이들의 씨가 말라버릴 지경이었다.

해서 평소 대운종에 불만이 많았던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쌀을 사기 위해 방문한 금강상단 무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평소 의협심이 높기로 소문난 탁단봉은 그들에게서 자초지종을 모두 전해 들은 뒤 그 길로 대운종 사원을 찾았다.

경내로 들어선 탁단봉은 다짜고짜 대운종 주지와 면담을 요청했다.

면담 자리에서 탁단봉은 대운종 주지 요성(了性) 선사에게 상당량의 은자를 제시하며 앞으로는 아이들을 산 채로 제물로 바치는 잔혹한 행위를 그만둘 것을 요구했다.

당연하게도 요성선사는 그 요구를 단칼에 그 거절했고, 오히려 탁단봉 면전에다 감히 누구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냐며 험한 쌍욕을 퍼부었다.

대운종 승인들이 중원의 여느 스님들과 많이 다를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지만, 막상 부처를 모시는 자의 입에서 쌍욕이 터져 나오자 탁단봉은 더이상 그들이 불자로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마을로 돌아온 탁단봉은 마을 장로들을 설득해 대운종 제사 기간 아이들을 숨겨두고 승인들이 찾아오면 그 앞에서 무력시위를 벌였다.

몇 번의 충돌이 있고 난 뒤 승인들은 더는 찾아오지 않았고 그것으로 모든 일이 해결된 줄로만 알았다.

한데 쌀 구매 업무가 마무리되던 시점에 탁단봉에게 한 가닥 비보(悲報)가 찾아들었다.

전에 용기를 내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장족의 젊은이들이 모조리 참살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대운종 승인들이 마을 장로들을 금품으로 회유해 젊은이들의 명단을 알아낸 것이었다.

돈에 눈이 어두워 동족까지 팔아먹은 그 패륜적인 행위에 장족 사람들에게서 정나미가 떨어져 버린 탁단봉은 그길로 부하들과 함께 해당 마을을 떠났다.

그 후 마심아가 도착해 잠시 그 일을 잊고 있었는데 오늘 이런 사달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만일 여기 계신 무림맹 수사관 부부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물론이와 고모부님의 딸 심아까지 큰 곤경에 처할 뻔했음을 깨닫자 창졸간 모골이 송연해지며 식은땀까지 줄줄 흘러내렸다.

얘기가 끝나자 진신민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탁단봉에게 물었다.


“한데 그 많던 금강상단의 무사들은 다 어디 보내고 두 분만 객점으로 들어오셨소?”


마심아가 아까 탁단봉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하려는데 문득 시간이 너무 지체됐음을 깨달았다.

순간 탁단봉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탁단봉이 심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금 행수, 그 사람. 절대 일을 나서서 하는 양반이 아니잖아.”

“생각해보니 이상하네요. 상단 내에서도 엉덩이가 무겁기로 소문난 금 행수가 조금 전 저한테 먼저 와서 건초를 사겠다고 한 게···.”


그때 객점의 주인장이 다가와 네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본의 아니게 손님들 얘기를 엿들었는데 혹시 무림맹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제가 점원을 시켜 요 앞에 있는 무림맹 초소에 연락을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진신민이 끄덕이며 물었다.


“이곳 초소에 몇 사람이나 상주해 있소이까?”

“초소를 지키는 인원은 두세 사람뿐이지만,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무림관이 있는 데 그곳에 상주 인원이 오십은 됩니다. 그 인원이면 충분히 청방으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사람을 좀 보내주시겠소? 아, 입구 쪽 대로(大路) 말고 몰래 빠져나갈 수 있는 개구멍 같은 곳은 없소이까?”

“있습니다. 제게 맡겨 주십시오.”


객주가 어린 점원를 불러 당부 말을 하는 사이 진신민이 다시 창가로 이동해 밖의 상황을 살폈다.

진신민이 어깨너머로 물었다.


“수레와 마차는 어디에 있소?”

“진문 입구에 있는 사설 역참에 맡겨둔 상탭니다. 오늘 밤 여기서 숙박을 하고 갈 계획이었습니다.”


진신민이 곽진예와 상의하더니 두 사람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만일 이후로도 상단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상단의 물건을 포기하고 우리끼리 야반도주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소.”


탁단봉이 이마에 땀을 훔치며 말했다.


“만일 무림맹 사람들이 와준다면요···?”

“그러면 금상첨화이긴 한데 우리도 이곳이 처음인지라 그 사람들을 믿고 마음을 놓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소.”


얼마 뒤 대로에서 거칠게 말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말은 전광석화처럼 객점 앞에서 멈춰섰고 말에서 내린 이가 황급히 객점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는 무림맹 사람이었고 예상과 달리 진신민, 곽진예 부부와 친분이 두터운 자였다.

진신민이 한걸음에 달려가 현무칠협 중 한 명인 모용균의 손을 붙잡았다.


“아니, 이게 누구야. 모용균 아닌가.”

“진 대협, 곽 여협, 여기서 다 뵙습니다. 하하하.”


모용균과 진신민 부부는 같은 동향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아니 대도무문에 있어야 할 자네가 대체 여긴 어인 일인가?”

“맹주님으로부터 특별 임무를 받고 이곳 무림관에 잠깐 파견 나와 있었습니다. 한데 선배님들은 이곳에 무슨 연유로 오신 겁니까? 아이가 와서 뜬금없이 선배 부부 이야기를 꺼내는 데 대관절 무슨 소린가 싶었습니다. 하하하.”

“우리도 마침 특별 임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네. 한데 아이에게 들었다면 다른 무사들은 어찌하고 혼자 왔는가?”

“안심하십시오. 선배님들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 저 먼저 달려온 겁니다. 이곳으로 집합 명령을 내려놨으니 무장하고 오는 데 반 각이면 충분할 겁니다. 그나저나 여기 계신 분들이 바로 금강상단 분들이군요.”

“맞네. 이분이 마심아 대행수고, 이분이 탁단봉 대행수일세.”


모용균이 마심아와 탁단봉에게 다가와 친밀하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현무관 출신 모용균이라고 합니다.”

“탁단봉입니다,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마심아입니다. 저도 감사드려요.”


인사를 마친 모용균이 진신민 부부 앞에 앉으며 객주에게 말했다.


“어이, 여기 시원한 물 한 잔만 갖다 주시게. 급히 달려왔더니 후덥지근하구만.”

“네.”


객주가 직접 물 주전자를 내왔다.

진신민 부부가 모용균과 함께 물을 들이켜고 객주에게 말했다.


“고맙소, 객주. 귀하 덕에 우리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소.”


객주가 두 사람을 향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직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니 너무 마음 놓지 마십시오.”

“아니요, 객주, 여기 모용균이 왔으니 설사 청방 사람 수백이 몰려온다 해도 나는 별반 걱정되지 않소. 여보, 안 그렇소?”

“맞아요. 모용균 이 사람은 우리에게 있어 그만큼 듬직한 후배지요.”


한데 뭔가 이상했다.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모용균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한쪽에 비켜선 객주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객주의 유독 검은 얼굴이 어디선가 본듯한 인상이었다.

거기다 아까부터 돌아 서 있는 마심아와 탁단봉에게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모용균과 악수를 나눈 직후부터 두 사람은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상태였다.

진신민이 의혹의 눈초리로 모용균을 바라봤다.


“자네··· 혹시···.”


모용균이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대답했다.


“맞습니다. 제가 저 두 사람의 혈도를 짚었습니다.”

“···왜?”

“대의를 위해섭니다. 강호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구요. 두 분께서 부디 저세상에 가셔서도 저를 많이 원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 말하고 모용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편을 돌아본 곽진예가 진신민과 동시에 칼을 뽑아 들려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러지 못했다.

부부는 칼을 뽑아내기는커녕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두 사람이 방금 전 마신 물에는 독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만진 물잔에는 독이 묻혀 있었다.

그것은 보통 독이 아니었다.

사천당가 역사상 불세출의 가주이자 만독지왕(萬毒之王)이라 불리는 당지위(唐志偉)가 만들어낸 무색, 무취, 무미에 이름까지 무형지독(無形之毒)인 극악의 독이었다.

이것에 중독되면 산 채로 몸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데 일 각의 시간이 경과 하면 녹아내린 촛농과도 같은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더 지나면 완전한 물로 변해 사람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진신민이 두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모용균에게 물었다.


“모 아우, 그간의 정을 생각해 내 아내만큼은 살려줄 수 없겠나?”


곽진예가 남편의 말을 제지하려 했으나 몸이 녹아내리기 전 찾아온 경직 현상으로 입술과 혓바닥이 굳어서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모용균이 옆에 서 있는 객주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해독약은 제가 아니라 여기 계신 당 가주께 부탁해보시지요.”

“당 가주라면, 사천의 다, 당지위?”

“네.”


그제야 모든 걸 깨달은 진신민이 당지위를 사나운 눈초리로 올려다봤다.

순간 출입문으로 아까 그 청방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진신민 부부를 본 기동우가 비열하게 웃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검은 얼굴의 객주가 얼굴에서 인피면구를 뜯어낸 뒤 두 사람 앞에 자리하고 앉았다.

사천당가의 가주 당지위가 담배를 꺼내 물며 진신민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줄을 잘못 섰어. 황건명이 아니라 여불선 밑으로 섰어야지. 그러니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여. 그게 맘이 편할 거야. ···하나 그럼에도 아내를 살리고 싶다면 내 한 가지 방법을 알려 주지.”

“···말해. 빨리.”


당지위가 몸을 돌려 뒤편에 서 있는 탁단봉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자를 자네 손으로 죽인 뒤 그의 심장을 꺼내 주면 되네. 내 그럴 정도의 힘은 회복하게 해줄 테니. 진가 자네가 그리 해주면 자네 아내 목숨은 내가 책임지고 살려보겠네. 시간이 촉박하니 빨리 대답해주게. 지금부터 반 각이 지나면 몸속 장기가 모두 녹아 없어져 해독약도 무용지물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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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대운종(大雲宗)(3) 23.09.22 346 5 15쪽
46 대운종(大雲宗)(2) 23.09.21 372 6 14쪽
45 대운종(大雲宗)(1) 23.09.20 412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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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단봉(卓丹峰)의 심장(2) 23.09.18 411 7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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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추석 23.09.12 405 6 15쪽
37 매화검수(梅花劍手) 채인하(蔡刃昰) 23.09.11 417 6 19쪽
36 흥정(2) 23.09.09 424 9 16쪽
35 흥정(1) 23.09.08 505 8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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