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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다시 님의 서재입니다.

작가는 골방에 가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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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다시
작품등록일 :
2022.10.12 18:29
최근연재일 :
2022.11.24 22:3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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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글자수 :
155,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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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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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아이언 가문. (1)

DUMMY

외상값을 빨리 달라는 것일까?


제레이드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자일에게 걸어갔다. 그에 반해 자일의 얼굴은 돈을 받으러 오는 사람치곤 무척이나 온화했다.


제레이드가 입을 열었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혹시 외상값 때문인가요?”


“맞네. 그 일 때문이네.”


제레이드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날짜가 아직 많이 남았잖습니까. 준비가 아직 안됐습니다.”


자일이 태연한 낯으로 가볍게 손을 저었다.


“자네, 이제 그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제레이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렸다.


“예?”


“그 뭐라더라...... 아, 맞아. 팬."


자일이 혼잣말을 구시렁거리며 팬이라는 말을 떠올려냈다.


"자네의 팬이라는 귀공자님이 찾아와서 외상값을 다 해결했다네. 그 이야기를 하려고 온 거네."


“예? 그게 무슨......."


“뭐, 아무튼 그분이 자네 책을 재미있게 보셨다는 구만. 아이언 가문이라고 하면 알 거라고 하던데.”


제레이드는 어리둥절한 인상을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알고 있는 분인가?”


잠시 뜸을 들이던 제레이드가 뒷말을 흐렸다.


“예? 예....... 알고는 있습니다.”


“그렇군. 자네도 참, 왜 진작에 가서 도와 달라고 하지 않았나.”


자일이 눈을 빛냈다.


제레이드가 정말 귀족과 연결고리가 있을 줄이야. 그것도 밀린 채무를 대신 변제할 만큼 친분이 있다니.


“이 사람아, 그게 사실이라면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먼저 도움을 청했어야지. 귀족에게 이까짓 약 값이 얼마나 하겠나. 그러면 내가 더 좋은 약으로 가져다줬을 것 아닌가?”


제레이드는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아······예.”


“그래. 그럼 말 나온 김에 약은 내가 더 좋은 약으로 가져다주겠네.”


제레이드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많이 좋아져서 괜찮습니다."


“그래? 잘 됐구먼.”


자일이 옅게 미소를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이 역력했다.


“그럼, 필요할 때 얼마든지 찾아오게. 아, 그리고 이거. 전해달라고 하더군.”


자일이 보자기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아무튼 나는 전했으니 나중에 잘 받았다고 아이언 귀공자님께 전해주게.”


볼일이 끝난 자일이 몸을 돌려 언덕을 내려갔다.


책 내용을 물어보려고 했던 것은 까맣게 잊어버린 그였다. 다만, 제레이드가 귀족과 친하다는 것은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 넣었다.


제레이드는 자일의 뒷모습과 손에 들고 있는 보자기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이언 가문이라고?'


제레이드는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


아이언 가문.


제레이드는 누구보다 아이언 가문을 잘 알고 있었다.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재력가. 거기다 제국을 차지하려는 원대한 야망을 가진 가문.


물론, 이 모든 것은 소설 속의 설정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자신을 돕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랬다.


아이언 가문은 제영사에 등장하는 가문으로, 작중 영웅을 후원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제레이드는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굴렸다.


스스로를 아이언 가문이라 칭하는 귀공자. 그가 소설 속 아이언 가문처럼 자신을 도왔다.


어느 귀족의 유희일까?


2권 중반에 등장하는 아이언 가문은 고작 세 줄 정도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때문에 제영사를 정독하지 않았다면 기억할 수 없는 내용.


정체를 알 수 없는 귀공자는 정말 아이언 가문은 아니겠지만, 제영사를 재미있게 봤다는 말은 사실인 듯했다.


제레이드가 앞에 있는 보자기를 풀어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안에는 잎사귀에 싸여 있는 둥그런 약이 수십 개 들어있었다.


잎사귀를 열어본 제레이드는 그것이 자양강장제라는 것을 알았다. 에딘과 프리아의 병세에 도움이 될까 먹여본 적이 있는 약이었다. 별다른 성과 얻지 못했지만 고가의 약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제레이드가 물끄러미 약을 보고 있자, 어깨너머로 지켜보던 에딘이 슬쩍 다가왔다.


에딘이 훈수를 두듯 툭 내뱉었다.


“아빠, 여기 편지도 있어요.”


그의 말대로 보자기 안쪽에 편지가 동봉돼있었다.


제레이드는 서둘러 편지를 뜯어봤다.



-안녕하시오, 제에프 경.


우연히 경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소.


제영사의 열렬한 팬으로 써 하루빨리 다음 권을 보고 싶은 마음에 경의 어려움을 조금 덜어주고 가오.


너무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소.


갚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시오.


다만, 그럼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면 제영사를 쓰는데 전념해 주시오. (개인적으로 어서 3권을 끝내고, 10월 중에는 4권 집필에 들어가면 좋겠소. 경이라면 충분히 쓸 수 있을 것이라 믿소.)


피로 해소에 좋은 약을 담았으니, 먹고 집필에 열중해 주시오.


-아이언 가문.



제레이드는 짧은 편지의 내용을 몇 번이나 훑어봤다.


내용을 살펴보니 특별한 저의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껄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내가 제영사의 작가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제영사를 집필하며 철저하게 제에프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다.


자신이 제영사를 쓰고 있다는 것은 가족들과 떠돌이 상인을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자일도 모르는데······’


정체가 알려진 것이라 생각하니 목이 탔다.


‘혹시······ 그들일까?’


아니, 그들이라면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으리라.


조용히 다가와 해치웠겠지. 이런 번거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없었다.


편지 속 내용만 보자면 정말 제영사를 좋아하는 독자의 편지 같기도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에딘이 고개를 빼 들고 편지의 내용을 살폈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제레이드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뭘 망설이는 거야.’


제레이드는 약을 앞에 두고 고사라도 지내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아빠, 선물인데 왜 안 드세요.”


에딘은 답답한 마음에 약을 하나 집어 들었다.


“여기 먹으라고 쓰여 있잖아요. 주는 사람 성의도 생각해야죠.”


에딘이 약을 까서 제레이드의 입으로 가져갔다. 제레이드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복잡한 얼굴로 약을 받아먹었다.


편지 내용 대로라면 에딘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후원도 해주고 약까지 보냈으니.


에딘은 자신이 만든 약을 돌고 돌아 먹이는 것이 속이 터졌다.


‘약 먹이는 것 한번 힘드네.’


그래도 꿀꺽 넘기는 제레이드를 보니 한시름 놓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레이드는 머리와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냥 약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편지 내용이 다시 보였다. 의심을 거둬내고 보자, 뿌듯함과 감격이 밀려왔다. 독자에게 편지와 선물을 받아본 것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두막에 틀어박혀 글을 쓰고, 거래는 떠돌이 상인들과 하니 독자들의 반응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읽었다는 사람도, 내용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사람도 없으니 누군가 읽고 있다는 의식도 엷어진 상태.


한데, 오늘 받은 편지는 제영사의 열렬한 독자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마음이 들뜨고 한편으로는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피어났다. 더구나 편지의 내용으로 보자면 다음 권을 재촉하는 느낌도 있었다.


빚까지 대신 갚아 줬으니 귀공자의 말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그리 생각하니 왠지 코가 꿰인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갈증을 느낀 제레이드가 물을 들이켰다.


***


저녁을 먹던 에딘이 문득 입을 열었다.


“아빠, 우리 내일 숲으로 소풍 가요.”


뜬금없는 소리에 제레이드가 고개를 들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소풍이라니.......”


“전에 약속했잖아요.”


“약속?”


“왜, 제가 숲에 따라간다고 나갔던 날이요.”


에딘 역시 갑작스럽다고 생각했다. 하루빨리 제영사를 완성해야 하는 제레이드에게 시간을 빼앗아야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내일이 프리아에게 약속했던 날이기 때문이었다.


열 밤 자고 소풍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법도구점에 들러 마법 달력을 수리하면서 알게 됐다.


프리아도 그렇고 제레이드도 간간이 마법 달력이 찾아서 고쳐 왔는데, 날짜를 보니 내일이 딱 별 두 개가 그려진 날이었다.


이젠 밖을 뛰어다니는 것이 일상이라 소풍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프리아지만, 약속은 약속이라 그냥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제레이드가 고개를 기울이며 기억을 더듬었다.


“몸이 좋아지면 가자고 했잖아요.”


에딘이 보채듯 말했다.


그제야 제레이드는 쓰러진 에딘을 안고 들어왔던 날이 떠올랐다.


분명 몸이 나으면 다 같이 숲에 가자고 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건강이 되려 나빠질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소풍이다! 소풍!”


프리아가 큰소리를 내며 제레이드의 말을 끊었다. 마침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발견한 프리아가 지원사격을 해준 것이다.


프리아는 연신 소풍을 외치며 노래를 불렀다.


제레이드가 난처한 얼굴을 했다.


프리아도 에딘도 이제는 매일 같이 오두막을 나가는 상황이었다. 건강도 많이 회복해서 근래에는 쓰러지거나 의식을 잃는 경우는 없었다. 더구나 말린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뭐, 괜찮으려나······’


마침 자일에게 갚아야 하는 빚도 사라져서 종일 약초를 하지 않아도 됐다.


집필을 해야 하는 것이 조금 걸리지만 잠시 아이들과 나들이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제레이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내일은 숲으로 소풍 가자.”


“와, 숲에 간다! 숲!”


프리아가 큰소리를 냈다. 평소보다 더욱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


제레이드는 먹을 것을 싸서 아이들과 숲으로 갔다.


소풍이라고 그다지 특별한 것 없었다. 그저 야외에서 점심을 먹는 것 정도.


그럼에도 프리아는 숲으로 가는 오솔길 내내 폴짝폴짝 뛰었다. 제레이드 역시 매일 약초를 캐러 가는 길인데도 오늘은 특별하게 느껴졌다. 옆구리에 제영사를 끼고 있는 에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제레이드는 너무 깊은 숲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졸졸 흐르는 개울을 따라 알록달록 나뭇잎이 물든 곳을 찾아다녔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얼마나 걸었을까.

색색깔 단풍이 가득한 곳에 다다랐다.


적당한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일행은 도시락을 먹었다.


"와, 저기 다람쥐!"


프리아는 도시락을 먹는 건지, 뛰어노는 건지 빵을 물고 주위를 뛰어다니기 바빴다.


제레이드는 프리아를 부르다가 별 수 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식사가 끝날 때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세 꼬맹이 친구가 찾아와 소풍에 합류했다. 이제 꼬맹이들까지 숲을 휘젓고 다녔다.


밤늦도록 집필을 했던 제레이드는 가을 하늘을 이불 삼아 낮잠에 들었다.


에딘은 돗자리에 배를 깔고 누워 제영사 2권을 읽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표정이 다채롭게 변했다.


웃었다가 울었다가 때론 감격에 벅차 전율했다.


재미있다.


몇 번을 읽었는데도 영웅이 등장하는 부분은 매번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평화롭게 제영사를 보는 이 순간이 그에게는 힐링이 따로 없었다.


'이래, 이 맛이지.'


에딘은 줄어드는 페이지를 아쉬워하며 연신 책장을 넘겼다.


한창 제영사에 빠져들어 있는데 꼬맹이들이 아웅다웅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진짜야, 내가 봤어."


“그럴 리가. 그게 말이 돼?”


“아니야, 정말 개울물이 불쑥 올라왔어.”


대화 내용을 들어 보니 프리아가 무언가 본 것 같았다.


제레이드는 이제 코까지 골며 자고 있는 상황.


별수 없이 책을 덮고 꼬맹이들에게 다가갔다. 프리아가 개울 안에서 무언가를 찾는지 나뭇가지를 휘젓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오빠, 개울에 뭔가 있어.”


프리아는 자기편이 왔다는 생각에 반가워했다.


에스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잘못 본 거겠지. 물속이 다 보이잖아.”


에스터의 말대로 개울물이 맑아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동물이나 몬스터 같은 게 모습을 감추기에는 물이 너무 얕기도 했다.


“진짜야. 내가 쳐다보니까 물속으로 다시 들어갔어.”


이야기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알겠어. 그럼 내가 여기서 보고 있다가 뭔가 나오면 말해 줄게.”


에딘이 개울 옆 바위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아이들은 이내 개울에 관심을 잃고 흩어졌다.


개울을 바라보던 에딘이 다시 제영사를 펼치는 순간이었다.


스르륵-


아닌 게 아니라 무언가 조용히 솟아올라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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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보증. (1) 22.11.03 2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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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보물찾기. (3) 22.10.29 34 2 13쪽
16 보물찾기. (2) 22.10.27 3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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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우물. (1) 22.10.25 44 2 12쪽
13 던전. (3) 22.10.24 37 2 12쪽
12 던전. (2) 22.10.23 37 2 13쪽
11 던전. (1) 22.10.22 29 2 12쪽
10 의뢰소. (1) 22.10.21 42 1 12쪽
» 아이언 가문. (1) 22.10.20 38 2 13쪽
8 빚. (4) 22.10.19 35 1 12쪽
7 빚. (3) 22.10.18 41 1 13쪽
6 빚. (2) 22.10.17 47 1 13쪽
5 빚. (1) 22.10.16 42 1 13쪽
4 프리아. (2) 22.10.15 46 2 12쪽
3 프리아. (1) 22.10.14 48 2 13쪽
2 작가 제레이드. (1) 22.10.13 55 2 13쪽
1 게임 파블라. (1) 22.10.12 11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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