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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MYoun 님의 서재입니다.

세 개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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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LMYoun
작품등록일 :
2018.10.02 03:21
최근연재일 :
2024.02.17 00:10
연재수 :
2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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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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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72,531

작성
22.12.04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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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종전 -1-

DUMMY

155화. 종전 -1-



기사는 거창한 존재 같지만 그 본질은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설계된 소모품이다.


그들은 그 운명에서 달아나지 않기 위해 교육받고, 또 혹독하게 수련한다. 대신 소모되기 전까지 좋은 대접을 받고 지위를 보장받는다.


안젤리카도 지금까지 한 명의 기사로 살아왔다. 그러나 운명과 마주하자 그녀는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버렸다.


미네르바의 검에 허벅지를 관통 당했을 때, 안젤리카는 살 방법부터 궁리했다. 그리고 애마를 불러 가까스로 전장을 이탈하는데 성공했다.


뒤에서 아군이 부르는 소리가 계속 들렸지만 안젤리카는 눈을 감고 계속 달렸다. 안젤리카는 로렌 남문을 벗어나고도 한참을 더 달리고 나서야 눈을 떴다.


“헉. 헉.”


눈을 떠 보니 넓은 관도 위에 혼자 서 있었다. 안젤리카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어떡하지.’


원래대로라면 지금이라도 로렌으로 돌아가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죽기 싫었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운 좋게 포위망을 벗어나더라도 이대로라면 부상이 심해 얼마 못 가 죽을 것이었다.


‘일단 티베론 요새로 가자.’


안젤리카는 티베론 요새로 가기로 했다. 피를 많이 흘려 눈앞이 흐릿해진 안젤리카는 말 등에 엎드려 잠시 눈을 붙였다.



“누구냐!!!”


“···.”


“안젤리카님이신 듯하다. 델피안님에게 연락하고 내려가서 모시고 와라.”


“예.”


“으음.”


안젤리카는 눈꺼풀을 살짝 위로 밀어올리고 병사들을 따라갔다. 병동의 의료 마법사는 안젤리카를 치료했다.


치료가 끝나자 안젤리카는 다시 기운을 차렸다. 침상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자 델피안이 왔다.


“로렌이 함락 당했어.”


안젤리카는 델피안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델피안은 이미 보고를 들었는지 시큰둥하게 그것을 들었다. 그리고 차갑게 말했다.


“그런데 넌 왜 여기 있지?”


“그게···.”


안젤리카는 카라스, 델피안과 수십 년간 한 조였지만 둘 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라스의 난폭한 성격과 잔혹한 성격은 협동 임무에 맞지 않았다.


‘아으. 재수 없어.’


델피안은 맡은 일은 잘 해내는 편이었지만 남의 기분을 전혀 헤아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당최 알 수가 없어 보기만 해도 답답했다.


“일단 감옥에 들어가 있어라. 네 처분은 나중에 결정하겠다.”


델피안은 안젤리카의 팔목과 발목에 내공의 응집을 방해하는 팔찌를 채웠다. 수의로 갈아입은 안젤리카는 델피안을 따라 감옥으로 갔다.


“뭐야.”


감옥 안에는 밥이 차려져 있었다. 안젤리카는 델피안을 째려보았다. 무슨 의도에서냐는 의미였다.


“먹어라. 전투는 해야 하지 않겠나.”


‘또 저 표정.’


안젤리카는 웃는 것도, 화난 것도 그렇다고 무표정도 아닌 저 델피안 특유의 표정에 밥맛이 확 떨어졌다. 그렇지만 배가 너무 고파 무시하고 식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근데 왜 이렇게 졸리지. 전투하고 부상을 입어서 그런가.’


밥을 먹자 졸음이 몰려왔다. 꾸벅꾸벅 졸던 안젤리카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


‘으음. 여긴.’


안젤리카는 아카디아 제국의 수도 로가폴에 와 있었다. 로가폴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기억을 되짚어 보자면 이곳은 몇 십 년 전의 로가폴이었다.


‘이 옷은.’


안젤리카는 거추장스러운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를 보고 오늘이 무슨 날 인지까지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아그수스 공작의 제자로 최종 발탁된 날이었다.


가문에서 아그수스 공작의 제자가 된 것을 축하하며 특별히 맞춰준 옷이지만 안젤리카는 지금 봐도 이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젤리카는 기분을 전환할 겸, 잠시 과거의 로가폴 시내를 둘러볼까 했다. 하지만 공간이 일렁이며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쳇.’


안젤리카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로가폴 외곽에 있는 아그수스 공작의 별장으로 갔다. 별장 안으로 들어가자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기 시작했다.


“안녕. 난 안젤리카야. 네 이름은 뭐니?”


“델피안.”


‘저땐 참 귀여웠었는데.’


델피안의 곱상한 외모에 조용한 성격을 지닌 소년이었다. 엄격한 선발시험으로 지쳤던 안젤리카는 호감을 가지고 델피안에게 다가갔다.


“넌 어디서 왔어?”


“···.”


‘어이구 저 둔한 년. 저때 알아봤어야지.’


다시 보니 저때도 델피안은 특유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때 관심을 주지 않았으면 앞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은 델피안의 옆에서 계속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안젤리카는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안젤리카는 뒤를 돌아보았다.


“에비-.”


“꺅.”


뒤에는 정말 못돼먹게 생긴 소년이 다리가 다 뜯겨나간 풍뎅이를 들이대고 있었다. 벌레를 싫어하는 안젤리카는 놀라 넘어졌다.


“난 카라스다.”


“퍽.”


안젤리카는 그대로 카라스에게 주먹을 날렸고, 델피안은 무표정으로 둘을 보고 있었다. 그것이 셋의 첫 만남이었다.



이후 셋은 아그수스 공작의 지도를 받았다. 아그수스 공작이 시키는 수련은 선발 시험과는 비교할 수 없이 혹독했다.


의외로 가장 잘 버티는 것은 카라스였다. 그렇지만 카라스는 남을 챙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결국 계속 낙오되는 델피안을 챙기는 것은 안젤리카의 몫이 되었다.


‘후후. 조금만 더 자라라 델피안.’


안젤리카도 완전히 사심 없이 델피안을 도와준 것은 아니었다. 델피안보다 두 살 많은 안젤리카는 델피안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다.


델피안이 성장하며 슬슬 제 몫을 다하기 시작하자 안젤리카는 델피안에게 슬슬 호감을 표했다. 그렇지만 델피안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 저 무심한 놈.’


안젤리카는 더 적극적으로 구애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델피안은 뭔가가 결여되어 있는 듯 했다. 델피안은 수련을 제외한 모든 것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안젤리카도 나이가 들며 델피안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무뎌졌다. 그렇지만 마음 한편에는 아직 델피안에 대한 마음이 남아 있었다.



또다시 장면은 바뀌었다. 안젤리카는 팬지꽃이 만개한 들판에 서 있었다.


“안젤리카.”


뒤에서 델피안이 다가왔다. 델피안은 팔을 뻗어 안젤리카를 안았다. 안젤리카는 잠시 델피안의 품에 안겨 있었다.


“너를 좋아해.”


안젤리카는 행복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여기부터는 실제 기억이 아니었다. 왜곡되어 재생되는 자신의 망상일 뿐이었다.


“미안.”


안젤리카는 델피안의 팔을 풀었다. 그러자 공간이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안젤리카는 정신을 잃었다.


**


“일어났나.”


“그래.”


창살 앞에는 델피안이 있었다. 안젤리카는 애써 덤덤한 척 했지만 그녀의 볼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델피안은 창살을 열고 감옥 안으로 들어왔다.


“기운을 차렸으니 묻겠다. 왜 거기서 죽지 않았나. 명예로운 제국 기사답게 말이다.”


역시 이게 현실이었다. 델피안은 또 그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한 말도 다그치는 듯 했지만 그냥 형식적으로 물어보는 것 같기도 했다.


너무나 달콤하면서도 잔잔한 여운이 남는 꿈을 꿔서 그런지 안젤리카는 갑자기 감정이 격해졌다.


“언제까지 그럴 건데?”


안젤리카는 훌쩍이며 말했다.


“뭘?”


“네가 어릴 적 부모님을 잃어 상처가 있는 건 알아. 근데 언제까지 아무 감정 없는 척. 세상에 무관심한 척 하고 살 거냐고.”


안젤리카의 칭얼거림에 델피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날 좋아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 아냐?”


“지금 네가 어떤 처지인지 모르나 본데···. 아니다. 몸이 많이 안 좋은 갑네. 쉬어라.”


“아니야. 나 멀쩡해. 말해봐. 넌 정말 나한테 한번이라도 감정을 느낀 적 없어?”


전장을 이탈해 티베론 요새로 왔지만 이미 승패는 기울어 있었다. 여기 있는 아카디아 제국군이 맞이할 운명은 농성하다 죽거나 포로가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안젤리카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전부 털어놓았다. 그래도 털어놓자 소이 후련해졌다.


안젤리카는 인상이 사나운 편이었지만 예쁜 축에 속하는 얼굴이었다. 창살 사이로 들어온 달빛은 안젤리카의 눈에 맺힌 눈물을 더 부각시켜 주었다. 델피안은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뭐?”


“지금이라고.”


델피안은 안젤리카를 부드럽게 않았다. 안젤리카는 델피안을 밀어냈다.


“너 나 놀리는 거지? 너 내가 우스워? 으아아앙.”


얼굴이 시뻘게진 안젤리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델피안은 안젤리카를 다독였다.


“아냐. 진심이야.”


“정말?”


“그래. 어차피 마지막인데 거짓말 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


안젤리카와 델피안은 잠시 어색한 침묵을 유지했다. 물을 한 잔 마신 안젤리카는 델피안의 귀에 속삭였다.


“마지막일 이유는 없다고 봐. 해가 뜨기 전에 여길 떠나자.”


“뭐?”


안젤리카는 제국을 배신하자고 하고 있었다. 델피안은 깜짝 놀라 주변을 살폈다. 다행이 감옥 안과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린 평생을 제국의 부품으로만 살아왔잖아. 그런데 그 제국이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어. 분명 문제가 생긴 걸 거야.”

“우린 할 만큼 했어. 이제 우리 삶을 찾아 떠나자. 대륙은 넓어. 어디든 숨어살면 되지.”


“···.”


델피안은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안젤리카는 더 이상 그 표정이 밉지 않았다.


“조금 생각해 볼게.”


“그래. 새벽까지야.”


델피안은 안젤리카의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풀어주고 감옥을 떠났다. 안젤리카는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


“대화 다 나누셨습니까.”


“예.”


델피안이 감옥 건물 밖으로 나오자 조금 떨어진 초소에서 아카디아 제국 기사가 나왔다.


“안젤리카님이 우시는 것 같던데, 왜인지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그가 둘의 대화 내용을 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델피안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엘프 전사에게 패배한 게 충격이었었던 듯합니다. 안젤리카님 성격 아시잖습니까. 지고는 못 사는.”


“알겠습니다.”


티베론 요새의 영주 공관으로 돌아온 델피안은 생각에 잠겼다. 자신도 왜 지금이라고 말해버린 지 알 수가 없었다.


‘도망칠까. 아니면 원칙대로 할까.’


이전이었다면 한솥밥을 오랫동안 먹은 동료라도 곧바로 원칙대로 처리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델피안은 지금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고민한 델피안은 답을 내렸다.


‘떠나자.’


델피안은 지금까지 남들의 두 배로 감정을 차단하고 살아왔다. 봇물처럼 터져 나온 감정은 델피안의 심장을 빠르게 적셨다. 머리와 가슴 중 가슴을 택한 델피안은 안젤리카의 소지품을 가지고 감옥으로 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처분은 나중에 하더라도 내일 아침부터는 로렌시아 제국군에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이곳의 사령관은 델피안이었다. 안젤리카에 대한 처분 권한 역시 델피안에게 있었다. 델피안은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안젤리카는 기분 좋게 자고 있었다.


“안젤리카. 일어나.”


델피안은 처음으로 안젤리카를 부드럽게 깨웠다. 슬그머니 눈을 뜬 안젤리카는 소지품을 챙겼다.


“가자.”


안젤리카가 무장을 끝내자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젤리카와 델피안은 같이 밖으로 나왔다.


“제가 숙소로 모시···.”


“툭.”


델피안은 기사의 목을 쳐 제압했다. 기사는 델피안과 실력차가 많이 나 저항하지 못했다.


기절한 기사를 초소 안에다 옮겨 둔 델피안은 안젤리카와 함께 티베론 요새 서쪽 성벽을 넘었다. 안젤리카와 델피안은 험준한 산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자 동이 텄다. 안젤리카는 지쳐 잠시 멈춰 섰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델피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발이 닿는 대로.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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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새로운 시작 -1- 23.04.05 14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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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네오 로렌시아 -2- 23.03.26 141 4 11쪽
232 네오 로렌시아 -1- 23.03.19 148 4 11쪽
231 유리를 소개합니다 -1- 23.03.12 177 3 9쪽
230 달의 이면 : 또 다른 결말 -2- 23.03.05 165 5 11쪽
229 달의 이면 : 또 다른 결말 -1- 23.02.26 182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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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밤의 끝자락 -1- 23.02.19 190 4 8쪽
226 마왕 강림 -1- 23.02.12 183 3 8쪽
225 마지막 한 걸음 -1- 23.02.05 175 3 9쪽
224 운명의 갈림길 -2- 23.01.29 186 3 9쪽
223 운명의 갈림길 -1- 23.01.22 190 4 9쪽
222 조금 이른 출발 -1- 23.01.17 214 3 9쪽
221 영혼을 베는 낫 -1- 23.01.11 205 4 9쪽
220 이차원으로부터의 귀환 -1- 23.01.06 198 4 9쪽
219 프롤로그 : 새벽의 경계 22.12.31 202 4 2쪽
218 로인 외전 : 로인은 못말려 22.12.20 205 4 7쪽
217 에필로그 : 로렌시아 제국전기 22.12.20 227 3 3쪽
216 종전 -3- 22.12.11 214 4 11쪽
215 종전 -2- 22.12.11 208 3 12쪽
» 종전 -1- 22.12.04 212 4 12쪽
213 로렌 탈환전 -3- 22.12.04 209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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