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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이목소리 님의 서재입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세계 소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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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이목소리
작품등록일 :
2020.05.3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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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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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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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었던 이야기 - 4

DUMMY

나와 콘드 할배는 마천루 꼭대기 가장자리에 두 손을 머리 뒤로 모은 채로 누워서, 이제 다 저물어가는 소량의 햇빛을 받으면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이 도시에서의 노동이 모두 끝났다는 사실 덕분인 건지, 기분은 한층 더 몽환적이고 느긋해져만 갔다.


마천루의 딱딱한 옥상이지만, 정신적인 평온이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고, 지금이 좋다고, 속삭이며 세뇌하기만 했다.


“아아, 이런 곳에서 매일 잠들면, 꿈에서 몸이 붕 뜰 것만 같아.”


“떨어질 게야. 바람 불면 떨어지는 이곳이 뭐가 좋은 게냐? 불안해서 잠자리만 사나울 게야.”


“낭만이라고, 낭만.”


“이 늙은이한테 낭만을 찾다니 어리석은 짓인 게야.”


이상적인 생각이 현실적인 고블린에 의해 방해되어, 안식을 취하려 감은 눈을 뜨고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에 시선을 맞췄다.


“나 참······, 그러고 보니, 나 할배의 반이 왜 초록인지 듣지도 못했네. 그건 왜 그런 거야? 아까 저주 뭐시기라고 말했잖아.”


이 지하에 오고 의문이 들었던 건, 고블린들에 관한 것뿐이었지, 할배에 관한 건 하나도 없었다.


보통사람이라면 할배의 몸의 절반이 왜 초록으로 뒤덮여져 있는지 궁금해 할 법도 한데, 왠지 나는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정신이 한창 혼란스러웠을 때여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고, 더 신경 쓰이는 게 많기도 했지.


“이거 말인 게냐. 간단한 얘기인 게야. 내 어미 되는 고블린이 그린고블린한테 당한 게야. 내가 태어났을 때는 어미가 죽어서, 난 부모없이 홀로 살아왔던 게야. 지금 생각해보면 이 절반의 피 덕에 생존할 수 있었던 게야. 그래도 고맙다고는 못하겠구먼.”


할배는 녹색으로 얼룩진 뺨을 오른 팔로 더듬으며, 담담하게 내 물음에 대한 답을 내주었다.


절대 담담하게 뱉을 내용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난 얘기를 짧게 끝내고서 손을 다시 머리 뒤로 모은 할배를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미, 미안.”


“이제는 별것도 아닌 얘기인 게야. 따지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구먼······.”


할배가 작게 주억인 말에는 무게감이 느껴져, 내 질문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채게 해주었다.


확실히 잘못되어버린 상황에 난 아무 말도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하늘밖에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네놈이 아까 한 말 덕에, 사과하는 게 별로 와 닿지 않는 게야. 할 거면 좀 더 진심을 담던가 하는 게야.”


역시 분위기 브레이커, 무거웠던 분위기를 말 한마디로 날려버리는 센스와 당당함은 이 할배 말고 또 누가 가지고 있을까.


덕분에 난 안심하고, 할배의 배려로 만들어진 가벼운 분위기에 올라탈 수 있게 되었다.


“네놈 세계는 어떤 게냐? 여기 세계하고 얼마나 다른 지가 궁금하구먼.”


이번엔 할배의 질문.


처음 이 도시를 두 눈으로 맞닥뜨렸을 때, 내가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밝혔던, 내 세계에 관한 첫 번째 사실에 관한 질문이다.


난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없을 정도로 비슷한 이 도시에, 피식 웃음이 세어 나오면서 할배의 질문에 답을 달았다.


“사실 여기하고 별반 다를 게 없어, 지하가 아니라는 점과, 고블린이 아니라는 점, 아 그리고 군사력이 평균은 한다는 점만 빼면 거의 똑같아.”


“그럼 젊은 놈하고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그······ 할배라는 건 거기엔 없는 게냐?”


“······.”


난 여전히 누워있는 상태로 고개를 옆으로 돌려 할배를 쳐다봤다.


할배는 하늘에 시선을 때지 않은 채, 자신의 질문에 답이 달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다시 하늘을 바라보고서, 내 생각을 말했다.


“아마 있을 지도······. 아니다. 역시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젊은 놈하고 할배는 없어. 띠동갑이 몇 번씩이나 지난 나이 차이로 이렇게 대화하는 건, 우리 세상에 한 쌍조차 있을까 말까니까.”


극한의 확률로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이런 조건은 우리 세상에선 무리가 있다.


유치하게 언쟁을 벌이며, 신기하게 친구처럼 대화를 이어나가는 사이가, 띠동갑이 대여섯 번이 넘게 지난 나이 차이와 경험한 세계가 다를 확률은,

복권에 당첨 된 다음 날에 번개 맞고 살아있을 확률보다 희박할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여기 있는 나와 할배 말고는 존재할 수 없는 조합이라는 것이다.


“그 띠동갑이라는 건 뭔 게냐?”


“어······ 특정한 나이 차이인데, 그냥 미신 같은 거야. 신경 쓰지 마.”


아무 것도 모르는 존재에게 설명하기엔 말이 너무 길어질 것이다. 그리고 귀찮으니까.


“음, 14심 같은 게냐? 이것도 비슷한 뜻이긴 한 게야.”


여기에도 있는 거였냐······.


이제는 차이가 있는 게 뭔지, 정리하고 싶을 지경이다.


게다가 2밖에 차이도 안 나고, 비슷한 뜻이라고 한다면 사실상 별 의미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그건 뭘 상징하는 거야? 우리는 12지신이라고, 12마리의 동물을 상징한다는데.”


“그런 뜻이 있구먼. 여기도 별거 아닌 게야. 간단히 말하면 끊임없이 전쟁하는 신들을 상징한다고 보면 되는 게야.”


끊임없이 전쟁하는 신들이라······.


왠지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느낌이다.


이 세계의 신들이 누구누구 있는지는 모르지만, 솔직히 궁금하지도 않다.


신들이라니, 무교를 지지하는 나의 입장으로선 공감 못할 게 뻔하다.


그리고 쓸데없는 지식을 늘려봤자 도움도 안 되니까.


공사할 때 배운 기술 같은 거라면 모를까.


인터넷으로 잠깐 공부해보니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 이세계에서 배운 기술이 원래 세계의 기술과 거의 같을 줄이야.


뭐, 솔직히 이세계에서 기술을 배워봤자다.


차라리 이 판타지세계에서 쓸 만한 정보를 얻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된다.


뭐, 아무튼이다. 아무튼.


“아무튼, 이건 쓸데없는 얘기였고, 이번엔 내 차례. 요코드는 왜 초록 얼룩 같은 게 없는 거야? 손녀라고 했잖아.”


이번엔 질문의 바통을 내가 잡았다.


할배의 최측근,

할배의 손녀인 요코드.


그녀에겐 할배처럼 초록색 반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조부와 손녀라는 관계를 봤을 때는 요코드에게도 반점이 있어도 이상한 점이 없을 것인데.


“그 아이 말인 게냐? 사실 그 아이는 내가 입양한 아들의 딸인 게야.”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할배가 요코드의 양할아버지라는 거지?”


“그렇게 되는구먼. 참으로 다행인 게야. 이런 저주는 그 아이에겐 있어선 안 되는 것인 게야. 자신을 원망하게 될 테니까······. 그 아이에게 있어서, 평생을 원망할 존재는 나 하나면 충분한 게야. 내가 아들놈 대신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바램인 게야.”


말 한 마디, 한 마디······.


전부 다 진실된 마음이었다.


거짓된 마음이었다면, 말하는 중간에 날 의식하고 있었겠지.


혼잣말처럼 읊어진 할배의 진심엔 안심, 슬픔, 후회, 번뇌가 섞여 한탄의 형태로 내게 보여지고 있었다.


저주와도 같은 자신의 절반,

넘겨주고 싶지 않은 고통의 시간,

대신해야만 하는 원망의 대상,

이제는 대신할 수 없다는 후회,

결코 적지 않은 세월을 보낸, 늙어버린 이의 진심 어린 한탄.


하지만 그 안에는 할배가 깨닫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평생 원망할 존재라······ 아마 그건 아니라고 봐.”


“무슨 말인······?”

“어이쿠!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나버렸네! 리아가 기다리고 있겠어. 그럼 할배! 나 먼저 내려간드아아아아···!”


난 할배의 질문을 다 듣지도 않은 채, 있지도 않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서는, 누워있던 상체를 힘껏 일으켜 세워, 고층 빌딩 아래로 냅다 뛰어내렸다.


······그녀가 과연 할배를 원망할까?


난 알 수 없다.


내 생각이 아닌, 요코드, 할배의 손녀의 생각이니까.


내 생각을 말하자면 No다.


이유를 말하자면······.


『어르신 곁에 있는 것을 원했어요. 뭔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을까하면서.』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를 구해주세요···!』


말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내 머릿속에는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는 듯하다.


사실, 깊이 생각하는 게 귀찮을 뿐이다.


“차차, 차, 착지! 거리감 끝내주네.”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가며, 가까워지는 바닥에 착지를 성공시키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결과는 애매하게 성공······.


떨어지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 거리를 눈으로 보며 계산하는 게 조금 어긋났다.


두 발로 서는 것엔 성공했지만,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착지 돼서, 이게 성공인 건지, 뭔지······.


다음부터는 그냥 정신력을 쓰자.


착지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도 바삐 움직이며 일하고 있는 고블린들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고층에서 떨어진 나에게 이목이 모이지 않다니, 왠지 뻘쭘하네.


뭐 다들 바쁘니까, 어쩔 수 없지.


할배의 말에 의하면, 나에게 남은 일은 이제 없다.


그래도 아직 할 일이 이들에겐 남아있다니, 뭔가 내가 되게 불공평한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저기, 일은 끝나신 건가요?”


착지 후 바지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내게 누군가 질문하며 다가왔다.


바로 용모 단정한 이 지하 도시의 미녀 고블린, 요코드였다.


“아, 네 방금 끝나서 내려왔어요. 근데 다른 분들은 일이 아직 남아있나 보네요.”


“네, 그래도 금방 모두 원래 생활로 돌아가게 될 거에요.”


“정말 그렇게 돼야 다행일 텐데······.”


할배의 말이 떠오른다.


하늘이 생기고, 빛이 생기자 두려움에 떠는 어린 고블린들이 있다는 것.


할배는 전부 자신의 책임이라고 했지만, 우리의 존재가 저주의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완전히 우연이었던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이 죄책감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리아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니까.


“정말 죄송해요!”


내가 한숨으로 말을 흐리고, 허공을 쳐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요코드가 머리와 허리를 숙이면서 사과를 했다.


뭐지 이 상황은?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니야?


“왜, 왜 갑자기 사과를···?”


“이제야 말해서 정말 죄송해요. 그땐 정말 죄송했어요!”


요코드는 다시 한 번 사과를 하면서, 숙여져 있던 허리를 더 크게 숙이고, 사죄의 말을 더 큰소리로 전달했다.


당최 이유가 뭔지 생각해낼 틈도 없이, 퍼부어지는 요코드의 사과에, 어안이 벙벙해질 따름이었다.


그 덕에 내가 선보였던 묘기에 집중되지 않았던 주변의 이목을 요코드가 단번에 끌어냈다.


곧 허리가 접힐 듯이 사과하는 고블린 앞에 나,

그리고 이 광경을 목격하고 있는 다수의 고블린들······.


그들의 시선이 너무나도 따가웠다.


“저, 저기 요코드 씨? 여기는 보는 눈이 많으니까. 일단은 고개를······.”


“그땐 정말 죄송했어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감정에 휩쓸리기나 하고. 시키는 건 뭐든 할게요! 부디 용서해주세요!”


“““호오.”””


오해는 점점 커져만 갔다.


작가의말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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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귀환 - 1 +1 20.07.18 3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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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있었던 이야기 - 4 +1 20.07.04 26 1 11쪽
51 알고 있었던 이야기 - 3 +1 20.06.27 24 1 21쪽
50 알고 있었던 이야기 - 2 +1 20.06.26 22 1 17쪽
49 알고 있었던 이야기 - 1 +1 20.06.25 27 1 19쪽
48 알아가는 중 - 11 +1 20.06.24 19 1 15쪽
47 알아가는 중 - 10 +1 20.06.23 18 1 11쪽
46 알아가는 중 - 9 +1 20.06.22 24 1 16쪽
45 알아가는 중 - 8 +1 20.06.21 19 1 12쪽
44 알아가는 중 - 7 +1 20.06.20 23 1 11쪽
43 알아가는 중 - 6 +1 20.06.19 22 1 12쪽
42 알아가는 중 - 5 +1 20.06.19 18 1 19쪽
41 알아가는 중 - 4 +1 20.06.18 22 1 13쪽
40 알아가는 중 - 3 +1 20.06.18 21 1 12쪽
39 알아가는 중 - 2 +3 20.06.17 30 2 13쪽
38 알아가는 중 - 1 +1 20.06.17 20 1 18쪽
37 위화감 - 10 +2 20.06.16 27 3 12쪽
36 위화감 - 9 +1 20.06.16 22 2 12쪽
35 위화감 - 8 +1 20.06.15 18 2 12쪽
34 위화감 - 7 +1 20.06.15 18 1 18쪽
33 위화감 - 6 20.06.14 28 0 18쪽
32 위화감 - 5 +1 20.06.14 23 1 16쪽
31 위화감 - 4 +1 20.06.13 91 2 16쪽
30 위화감 - 3 +1 20.06.13 22 1 15쪽
29 위화감 - 2 +1 20.06.12 2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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