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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이목소리 님의 서재입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세계 소환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라이트노벨

냥이목소리
작품등록일 :
2020.05.30 18:26
최근연재일 :
2020.08.01 18:02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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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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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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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알고 있었던 이야기 - 3

DUMMY

학교 수업이 전부 끝나고, 승현과 하굣길을 함께한 뒤, 집으로 돌아온 난, 교복을 대충 벗어 놓고서 곧바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단순히 누워서 쉬려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일을 하러가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며칠 동안 반복되는, 그때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


이번에도 같은 시간에 소환되었다.


타이밍에 맞춰서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니,

보고 있던 사진을 갑자기 넘겨버린 것처럼,

듣고 있던 음악을 바꿔버린 것처럼,

상상에 잠겨버린 것처럼,


세계가 바뀌어있었다.


“여긴 어디······인지는 역시나 바뀌지 않았지? 리아.”


“응, 하준 어서와.”


이세계에 소환되어 처음으로 날 반겨준 건, 역시나 날 소환해준 소환술사 리아의 눈웃음이었다.


앞머리 때문에, 제대로 볼 순 없지만 말이다.


이번 소환에도 난 역시나 파괴되었던 도시의 보수공사를 해야 한다.


그러하나, 오늘은 다행이게도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왜냐하면 오늘은······.


오늘이야말로···!


“드디어!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제 이세계 막노동 생활은 끝이다!”


드디어 이 칙칙하고,

고블린들밖에 없고,

판타지스럽지 않은,

이 지하도시에서 나갈 수 있다!


“응, 하준하고 세이트, 그리고 모두가 열심히 해줘서 빨리 끝날 수 있었어.”


“빨리 끝났다고 하기엔 시간이 꽤 많이 지난 느낌이 있지만······ 뭐 아무튼 간에, 오늘 빨리 일을 끝내고 우리들의 여행을 계속하러 가야지! 다음은 어디로 가야하나.”


으으,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 왔는가.


노가다 일을 해가면서, 할배한테 완전 머슴 취급이나 받고, 맨날 구박이나 하고, 귀찮은 일들만 한 가득씩 가져오기나 하고······.


나의 쓰고도, 서러웠던 지난날들이여, 이젠 안녕.


아임 프리, 이제 자유일 몸이니라······.


“그, 그러네, 우리 여행을 하고 있었지······.”


“왜 그래? 리아. 무슨 문제라도 있어?”


내가 기지개를 피면서, 이후의 우리들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리아가 말을 더듬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알아차릴 수 있는 리아의 행동에 의문이 들어, 아직 해결 못한 문제라도 있는 건 아닌지 물어봤다.


웬만하면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으니까, 해결할 수 있는 건 빨리 해결하는 게 상책이지.


“응? 아, 아니야. 아무것도······. 그냥 이제 어디로 가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그리고······ 아쉽기도 하고······.


“······그렇네, 벌써 정이 들었지. 가끔씩은 떠오르긴 하겠네.”


“응······.”


가븐

고블린들의 지하도시

현대문명이 살아 숨 쉬는 이곳에서 생활한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


여러 사람들, 아니 고블린들과 인연을 맺고,

서로 땀을 흘리면서 일하면서,

말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비록 작을지라도 제대로 느껴지는 유대감, 동료애라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이미 형성되어있었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리아에게는 새로운 감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따돌림으로 인해 홀로 마을을 빠져나온 리아는 길드에서 마저 배신을 당하고 홀로 생의 마지막을 경험할 뻔했다.


타이밍 좋게도 내가 소환되어 가까스로 리아는 살아남았지만, 리아는 홀로 있어야 했다.


나에게는 귀환이 있었기 때문에······.


세이트를 만나고 나서는 그나마 안심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리아의 곁엔 나와 세이트 두 명뿐······.


내가 귀환하면 리아는 세이트와 단 둘뿐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여기에 있던 모든 이가 고블린일지라도, 리아에게 있어서 몇 개월이나 같이 울고 웃으면서 지낸, 동료, 친구, 가족이나 다름없을 존재들일 것이다.


그래도 여기에는 계속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슬슬 나갈 때도 되었고, 세상은 넓게 봐야하는 법이니까.


뭐, 물론 내 개인적인 욕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기도 하고······.


이세계에 소환되었는데, 판타지스러운 느낌이 하나도 없으면, 역시 재미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밖으로 나가게 되면, 안 떠오를 수야 없겠지?


징글징글하면서도 내게 있어서 아주 친숙한 장소로 기억될 테니까.


“나 참, 멍때리는 건 대체 언제 끝나는 게냐? 퍼뜩 정신 차리고 일을 시작하는 게야.”


······이 할배, 진짜 분위기 망치는 데엔 선수가 따로 없다.


“좋은 이미지 챙기려고 하는데, 방금 할배가 다 망쳤어. 분위기 좀 읽으라고.”


“쯧쯧, 쓸데없는 짓인 게야. 퍼뜩 일이나 끝내고 가버리는 게야. 이제 꼴도 보기 싫은 게야.”


“망할 할배가······.”


콘드 할배는 심술궂게 말을 하고, 지팡이를 딱딱거리며 뒤를 돌아가버리는 모습에, 짜증이나 그 늙은이의 뒷모습에, 구멍이 뚫리길 빌면서 눈총을 쏘아댔다.


“저기, 할아버지······.”


내가 할배의 뒷모습을 보며 씩씩거리고 있을 때, 리아가 앞으로 나가, 걸어가고 있던 할배를 불러 세웠다.


“지금까지 정말 고마웠어요. 저와 세이트를 치료해주시고, 도시도 구경시켜 주시고, 처음 보는 맛있는 것도 대접해주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이제 곧 여기서 나가게 되겠지만, 전 절대 이곳을 잊지 못할 거예요. 이곳과 이곳에 있는 모두, 그리고 할아버지를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리아는 지금까지 이 지하도시에 있던 일들을 되새겨가며, 하나하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순수한 말들을 피어내어, 듣고 있던 이들의 심금을 휘저었다.


“민폐를 끼친 것 같고, 귀찮게 해드린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를 받아들여주시고, 돌봐주신 것이, 그 이상으로 너무 감사드려요. 여기 있는 모두가 정말 고마워요. 정말, 정말로요.”


착하다 못해, 아름답다고 느껴질 정도의 마음이 엿보이는 소녀의 말은, 심장을 죄어오면서 사랑에 빠진 듯한 기분을 들게 하였다.


감정이 뒤흔들리고, 마음속은 이미 아름다운 소리에 홀려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네놈, 빨리 따라오는 게야. 이게 마지막 일인 게야. 나머지는 미리 다해놨구먼.”


리아의 말이 끝나자 할배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가며, 일 얘기를 꺼냈다.


저 할배도 참 대단하다.


리아의 말을 듣고도 무시한 채, 나만 불러내 일을 하라고 하다니······.


감정이란 게 있긴 한 거야?


리아의 이곳에서의 마지막 감사인사 후, 나와 리아 그리고 할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걸음이 다다른 곳은 지하도시에 하늘이 생기고 처음 짓게 된, 초고층 빌딩이었다.


대체 몇 층인 건지 눈으로 세는 건 진작에 포기했다.


아래에서 위로 빌딩을 올려다보다가, 할배의 지팡이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니, 왠 거대한 바늘창이 할배보다 높은 키로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이 안테나를 이 마천루 가장 꼭대기에 고정시켜 놓으면 되는 게야. 이게 마지막 일인 게야. 나도 같이 올라가니, 네놈이 사고칠 일은 없는 게야. 안심하는 게야.”


“할배, 그 말 엄청 재수 없는 거 알지? 재수 없는 타이틀은 이미 꽉 찼어. 다른 컨셉이나 알아봐.”


“쯧!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시작하는 게야.”


내가 비꼰 말에 할배가 혀를 찬 것으로 대화를 종료시켰고, 난 내 키 정도 되는 안테나를 들어올렸다.


것보다 이거 안테나였구나.


긴 창의 모습을 한 안테나를 잡고 있으려니, 왠지 창술사가 된 느낌이다.


······리아가 내게 죽으라고 명령하는 날이 올까?


아니, 리아의 성품이라면, 그럴 일은 결단코 없다.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튼 가능성이 전무한 망상을 뒤로 하고서, 나와 할배는 동시에 자리에서 뛰어올라 초고층 빌딩의 벽과 마주한 채, 곧게 위로 날아올랐다.


고층 빌딩의 친절한 구조로, 꼭대기까지는 부족한 도약력을 보완할 수 있는 실외 전망대에서 한 번 더 도약하여, 두 번의 점프 만에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높이가 높아질수록 뾰족해지는 구조라, 현재 나와 할배가 있는 곳은 함부로 한 발자국조차도 걸어 나갈 수 없게 되어있다.


“그걸 여기, 가운데 구멍에 맞게 끼워 넣으면 되는 게야. 이상한 짓만 안하면 되는 게야.”


“예예, 잘 알고 있습니다요. 여기인가, 여기를 이렇게······.”


한 손으로 들고 있던 창, 아니 안테나를 마천루 꼭대기에 난 홈에 알맞게 끼워 넣었다.


‘철컥!’하는 기계적인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일자 모양의 안테나가 전개해, 사방으로 얇고 뾰족한 도파기가 펼쳐진 형태가 되었다.


안테나의 전개가 완료되더니, 할배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통신이 잘 되는지 확인했다.


······이제는 여기서 뭘 봐도 신기하지도 않아. 그냥 그러려니······.


“흠, 다행히 잘 되는 게야. 드디어 이 『무선 휴대용 대화기』를 상용화할 수 있겠구먼.”


“너무 길어. 그냥 폰이라고 해. 우리는 그러니까.”


“참고해보겠구먼.”


끝까지 쌀쌀맞고 고집불통인 할배의 태도에 이제는 한숨도 나오지 않는다.


“이제 일 끝난 거 맞지? 그럼 빨리 내려가서, 나가는 방법이나 알려줘, 할배 말대로 퍼뜩 나갈 테니까.”


“······.”


콘드 할배는 나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빌딩 꼭대기의 가장자리에 걸터앉고서, 먼 산을 보듯 시선은 멀리에 있는 지하의 벽을 보고 있었다.


“할배 뭐해? 가자니까?”


“조금 있다가 가는 게야. 네놈도 여기 앉아서 쉬는 게야.”


“······뭐한 게 있어야, 쉬는 의미가 있지. 나 원······.”


“······.”


내가 할배의 말을 비꼬았는데도, 할배는 아무 말 없이 여전히, 저기 멀리 있는 벽을 보기만 했다.


내 말에 할배가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자, 난 할배의 왼쪽에 자리 잡아, 할배와 같이 꼭대기에 걸터앉았다.


어라, 이 구도 왠지 익숙한데.


아, 식당의 뒷골목에서 얘기했을 때······.


“네놈, 세상은 어디까지 볼 수 있게 된 게냐?”


그때도 뒷골목으로 나갔을 때, 힘에 대한 얘기를 먼저 했었지.


할배가 알려준 정신력을 쓰는 방법.


지금은 『세상을 보는 눈』이라고 임시이긴 하지만, 일단은 이름을 붙여둔, 제 3의 눈 비슷한 걸로 세상을 투시하는 힘이다.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형편없었다.


잘했을 때가 기껏해야 작은 건물 1층 정도였으니.


지금의 나는······.


“아마도 이 빌딩의 절반 정도일까나······.”


난 말을 하면서 눈을 감고 대충 힘을 사용했다.


3인칭 시점으로 내 몸부터 보이기 시작하면서 한 순간에 빌딩의 중간 정도를 투시했다.


빌딩의 중간 정도를 투시하니, 사정거리의 끝부분은 역시나 흐릿해지고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 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정도쯤이면 충분히 넓고, 곧 한계인 건지 더 이상 넓어지지 않는 듯하다.


“열심히 한 게야.”


“······뭐, 뭐야. 갑자기 칭찬? 뭐야 무서워.”


“······.”


원래 이렇게 말하면, 할배의 대꾸로 “나 참, 시끄러운 게야.”같은 말이 나와야 하는데, 할배는 조용히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지? 진짜 무서워지려하는데······.


“이 도시에 하늘이 생긴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게냐?”


“오늘 여러 번 갑작스럽네, 뭐······ 좋은 거 아니야? 매일이 어두운 풍경이면 아무래도 칙칙한 것 같기도 하고, 건강에도 안 좋고······ 이건 고블린한텐 해당 안 되나? 아무튼 재미없을 거 아니야.”


매일매일 똑같은 풍경에, 똑같은 하루, 똑같음의 지루함은 누구보다 잘 안다.


낮과 밤이 있는 내 세계에서도 난 재미없을 느끼는데, 밤 밖에 없는 어두운 풍경의 연속이라니······.


그렇게 되면 아마 난 무색무취의 기계처럼 살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는구먼. 그거 아는 게냐? 하늘이 생긴 이후 고블린 아이들은 밖에 나가 놀지 못하고 있는 게야. 아이들은 여태까지 하늘의 존재를 모르고 산 것인 게야. 그 날 이후로 밖에 보이는 빛에 공포에 떨게 된 게야. 그때를 아이들은 잊지 못하고 있는 게야.”


당혹스러웠다.


하늘이란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어린 고블린들······.


그들의 첫 만남은 썩 좋지 못했다.


아니 최악이었다.


아니, 그 이상의 이상이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무수한 빛은 이곳의 아이들에겐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피폐해진 정신을 갖추어버린 이곳의 젊은 피를 난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난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있는 힘껏 뛰어 놀고서,

친구들과 군것질거리를 나누며,

우리들은 이제 이해하지 못하는 농담으로 서로를 놀려대면서,

떠들썩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나오는 아이들을 이제 이 거리,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본 어느 곳에서도 볼 수가 없다.


“······왠지 미안해.”


내가 왜 사과하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원흉은 이미 사라져버렸는데도,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탓일까.


그 생각들에 의한 죄책감은 내게로 몰려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끝이 없어 보이는 이 빌딩의 밑으로 시선을 내렸다.


“네놈은 상관없는 게야. 모든 건 내 잘못인 게야.”


또 책임을 자신의 것으로 돌리려는 할배······.


“······할배 이렇게 된 거 이제는 솔직하게 말할 때가 된 것 같아. 질문할 거니까. 대답해줘.”


할배는 내가 한 말에 아무런 대꾸없이 계속해서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도시에 오고 나서 처음부터, 그리고 마지막까지 머릿속에서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던, 수수께끼.


“할배는 대체 어디까지 아는 거야?”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모든 것을 알아채고 있는 듯한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듯한

할배의 모든 상황에 맞아 떨어지는 말과 행동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예지를 했던 것일까······.


“······그렇구먼, 이제야 말하게 되는 구먼······.”


할배의 시선이 벽에서 하늘로 향하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역시나 할배가 타이밍을 망치고 있었던 걸까.


내가 할배의 예지력에 대해 의문을 품고서 질문을 내뱉으려 했을 때마다, 항상 타이밍이 어긋나 있었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었던 것일 거라고, 난 진즉에 확신에 차있었다.


이제는 사실을 알 때가 되었다.


나와 리아에 관련된 할배의 예지를······.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알고 있었던 게 아닌 게야. 난 단지 들었을 뿐이구먼. 그 분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말인 게야.”


들었을 뿐이라고···? 그 말은 즉 할배가 예지한 게 아니라는 말인 거냐?


난 할배의 말에 바로 떠오른 물음표에 질문하고 싶은 충동이 있었지만, 모든 걸 털어내는 듯 심오한 분위기를 만든 할배를 방해하는 건, 아무래도 어지간히 눈치 없는 행동이 아닐 수가 없다.


난 의문을 가진 채로 조용히 할배의 말을 마저 듣기로 했다.


“그 분께는 너무 많은 은혜를 받아버린 게야. 모험가들을 피해 이곳으로 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이 늙은이의 말을 믿어줬던 것도, 전부 그 분 덕인 게야.”


할배의 눈에 비춰진 건 단지 하늘뿐이었지만, 마치 그 시선 끝에 누군가가 있는 듯 허공에 두 눈을 맞추고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건 그 분께서 날 믿어주시고, 말씀해주셨던 덕분인 게야. 허나 한편으로는 여기까지 와버린 게야.”


할배의 하늘을 향해있던 시선이 급격하게 바닥으로 떨궈졌다.


그로인해 바뀌지 않는 표정은 햇빛이 닿지 않아 어두워져 버렸다.


“모든 걸 알고 있었음에도, 바꿀 수 없다는 건 꽤나 괴로운 게야······.”


솔직히 난 할배의 기분을 잘 모른다.


아니 알 수 있을 리 없다.


몇 초 뒤에 상황도 알 수 없는 내가, 여기까지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던 할배를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지금 내가 가진 죄책감은 할배의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존재 가치조차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내가 가진 건, 내가 가진 것뿐이다.


내가 할배에게 할 말은 너무도 한정적일 수밖에.


“이기적이게 살아.”


그럼에도 보여줄 수 있는 건 역시나 내 것일 수밖에······.


“어쩔 수 없는 거잖아. 모든 걸 알아버린 거, 바꿀 수도 없는 거, 그냥 최대한 즐겨버려.”


내가 말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난 입고 있는 연보라 후드의 모자를 쓰고,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두 손을 머리 뒤로 모았다.


“미래를 안다는 느낌을 알진 못하지만, 어떻든 괜찮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 최소한 난 그렇게 살았······나? 아무튼 그게 이상적이라는 말인 거지.”


“······말도 안 되는 게야.”


이번에 들려온 할배의 목소리는 표정의 영향을 받은 건지, 말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 어두워져있었다.


“절대 괜찮을 리가 없는 게야. 네놈은 내 머리를 보고도 모르는 게냐? 이 몸은 저주받은 게야. 이런 몸으로 이기적인 것에도 정도가 있지, 요코드를 위해서라도 난 절대 이기적일 수 없는 게야. 더 열심히 해야만 했던 게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보려고도 한 게야. 그런데도 어쩔 수 없던 게야. 세상은 바뀔 수가 없는 게야······.”


“······뭐야. 충분히 이기적이잖아.”


신세를 한탄하듯 할배는 자신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심정을 털어놨다.


그 속에는 알고 있는 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차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손녀를 위해서라도 세상을 바꿨어야만 했다는 의지가 할배에겐 있었다.


자신의 의지가 말이다······.


이게 할배의 이기심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면 뭐라는 거냔 말이냐.


“이타심이라는 거, 솔직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거 거든. 남을 위한 나 자신하고, 자신의 행동으로 도움을 받은 남의 모습에 취할 뿐인 거지. 사람이란 거,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밖에 몰라. 남의 생각을 완전히 읽을 순 없으니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인간들을 관찰한 결과,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 도출이었다.


그들의 행동 이유는 전부 다를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단지 그러고 싶었기에 한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할 때에는 기쁘고 싶었기에,

그를 위하는 것을 할 때에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에 기쁘고 싶었기에,

무언가를 할 때에는 미움 받기 싫었기에,

무언가를 강제로 할 때에는 더한 공포를 받고 싶지 않았기에,

상황에 맞을 법한 이득을 쫓는 감정에 휘둘리며, 결과가 어떻든 행동을 실행하는 것이다.


리아가 소환술사가 되고 싶은 것처럼,

내가 언제든 리아를 위하고 싶은 것처럼,

알 수 없는 결과를 감수하더라도, 개인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것도, 전부 자기 자신 거니까, 감당하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지.”


“······네놈은 어디까지 아는 게냐?”


“뭐를? 아무 것도 몰라. 이걸 아는 걸로 치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답게 거지같을 걸.”


세상사는 모두가 이를 지식으로서 생각하고 있다면,

아마 모두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더러운 세상이 되거나,

모두 남을 위하는 기쁨을 알아채 서로가 서로를 위하려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거나.


뭐, 당연 확률은 전자가 훨씬 더 크다고 본다.


“고맙다고······ 해준 게, 너무 고마운 게야.”


머리 아래쪽에서 할배의 목소리가 떨리면서 그런 말이 들려왔다.


하늘에 가있던 시선을 내려 할배의 모습을 보니, 뒤에서 살짝 보이는 초록 뺨에 눈물이 빛을 굴절시키고 있었다.


갑자기 할배의 감정이 폭발한 듯했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할배의 생각을 모르는 나로선, 아니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


자기 자신을 몰아넣으면서, 희생하면서, 깎아내면서, 그렇게 한 뒤 받은 건, 어느 소녀의 진심어린 감사.


아마 그것이 할배의 감정을 건드린 것이 아닐까.


난 다시 상체를 세우고서, 할배의 얼굴을 보았다.


앉은 키조차 작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괴수 고블린이 눈물을 흘리는 옆모습에 난 이렇게 말했다······.


“할배 울어?”


우는 얼굴에 익살스럽게 웃는 얼굴을 들이밀면서 할배를 놀려대듯 몰아붙였다.


“다, 닥치는 게야. 네놈도 나이 먹으면 어쩔 수 없는 게야.”


“솔직히 말하시죠? 부끄러우신 건가요? 풉!”


“죽어버리는 게야! 최대한 빨리 죽어버리는 게야!”


내가 할배를 놀려대니, 할배는 재빨리 눈물을 훔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내 머리를 세차게 가격하기 시작했다.


난 방어력을 킨 채로 맞아가면서, 초록과 노랑의 뺨이 붉게 변한 할배의 얼굴에 폭소를 터트렸다.


“그럼 네놈 아까 사과는 왜 한 게냐?! 이기적으로 살라고 말하는 놈이 왜 사과 따윌 한 게냐?!”


······당연한 거 아니야?


“그거야 당연히 내가 하고 싶어서지. 다른 이유가 있을 리가 없잖아.”


“······네놈 전혀 변하지 않는구먼······.”


뭘 새삼스럽게.


작가의말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주1회 연재입니다!

매주 토요일에 연재가 될 예정이고, 연재 시간은 변함없이 6~7시 사이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시간은 개인사정으로, 예고없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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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알아가는 중 - 9 +1 20.06.22 24 1 16쪽
45 알아가는 중 - 8 +1 20.06.21 20 1 12쪽
44 알아가는 중 - 7 +1 20.06.20 23 1 11쪽
43 알아가는 중 - 6 +1 20.06.19 22 1 12쪽
42 알아가는 중 - 5 +1 20.06.19 18 1 19쪽
41 알아가는 중 - 4 +1 20.06.18 22 1 13쪽
40 알아가는 중 - 3 +1 20.06.18 21 1 12쪽
39 알아가는 중 - 2 +3 20.06.17 30 2 13쪽
38 알아가는 중 - 1 +1 20.06.17 20 1 18쪽
37 위화감 - 10 +2 20.06.16 27 3 12쪽
36 위화감 - 9 +1 20.06.16 22 2 12쪽
35 위화감 - 8 +1 20.06.15 18 2 12쪽
34 위화감 - 7 +1 20.06.15 18 1 18쪽
33 위화감 - 6 20.06.14 28 0 18쪽
32 위화감 - 5 +1 20.06.14 23 1 16쪽
31 위화감 - 4 +1 20.06.13 91 2 16쪽
30 위화감 - 3 +1 20.06.13 22 1 15쪽
29 위화감 - 2 +1 20.06.12 26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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