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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이목소리 님의 서재입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세계 소환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라이트노벨

냥이목소리
작품등록일 :
2020.05.30 18:26
최근연재일 :
2020.08.01 18:02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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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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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글자수 :
350,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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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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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알고 있었던 이야기 - 5

DUMMY

역시 쓰네. 커피란 거······.


나와 요코드는 그 장소에서 빠져나와 근처 카페에 오게 되었다.


그 장소에 더 있었다가는, 생매장당할 것 같은 느낌이어서 말이다.


시간을 멈추고서 시멘트 가루를 한 줌을 가져와서 연막으로 쓰고, 서둘러 그 장소에서 빠져나왔다.


혼란에 빠져있던 요코드를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혀놓고, 아메리카노를 내와서 일단은 진정시킨 상태.


여러모로 피곤하다. 빨리 이 지하에서 나가고 싶어······.


아무튼 이제 집중된 이목도 없으니 요코드가 사과한 이유를 들어나 보자.


“시멘트 가루 뿌렸던 건 죄송해요. 어쩔 수 없었달까······. 근데 아까 왜 사과한 거에요?”


“정말 죄송···!”

“잠깐 스탑!”


요코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게 할 찰나, 그녀의 행동을 재빨리 막아 세웠다.


“아까 뭐든 한다고 했죠? 그럼 아까 왜 사과한 건지만 ‘조용히’ 얘기해줘요. 또 오해의 소지가 있을 발언하면 나 그냥 가? 알았죠?”


“네······, 죄송합니다······.”


요코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시무룩해진 채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 참, 내가 왜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하는 건데?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심호흡 한 번 해주고서 말해봐요.”


또 이목 집중시키지 말고.


“스읍, 후우······ 이제야 말하게 돼서 정말 죄송해요. 사실은 더 일찍 말하려고, 아니 말했어야 했는데······.”


요코드는 내가 말한 대로 심호흡을 한 번 해주고는, 차분하게 본래 말하려 했던 것을 나에게만 들리도록 적당한 크기의 목소리로 말해주기 시작했다.


“먼저 식당에 있었을 때인데······ 그때 제대로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어요. 죄송해요.”


“할배에 관한 거 말이죠?”


“네, 그때 하준님이 귀환하시고 나서 리아님이 엄청 화내셨어요. 왜 사실을 얘기해주지 않았냐고 하면서요.”


호오, 그건 좀 뜻밖의 감동적인 사실인데? 리아가 나를 위해서 화를 내줬다니······.


생각해보니, 리아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상황이긴 했네.


리아의 화난 모습이라······.


내 주인님의 의외의 모습을 못 본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벽에 있었을 때······. 그땐 정말 죄송했어요. 아니 지금도 정말, 정말로 죄송해요. 주제넘게 흥분해서는 감히 무례를 범하고 말았어요.”


호각수가 내려와서 모두 벽으로 대피했을 때를 말하는 거구만.


지상에서 사람이 오면, 모두가 죽는다······.


내가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내용이다.


사람을 피해 지하로 도망쳐온 이들에게 사람이 오면, 호각수가 내려와 전부를 파괴시키는 저주라니······.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대체 뭘 위한, 뭘 대비한 저주라는 거냐.


금기를 어겨서 발동하는 게 아닌,

특정한 누군가를 목표로 한 것도 아닌,

운도 뭣도 아닌 저주.


그런 말도 안 되는 저주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요코드의 심정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증오의 대상인 우리 앞에서 분노를 참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완전히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억울하게 세상이 파괴되어 가는 원흉이 눈앞에 있다니, 얼마나 증오스러울지.”


난 이제 노을의 흔적만이 남은, 아직까진 밝은 밤하늘을 보며, 내 생각을 말했다.


공감이 아니다. 단지 내가 그때 그 상황이면 어땠을까라는 가정.


“증오라뇨! 그런······.”


“물론 제 생각이에요. 이런 식으로 어림잡은 생각으로 누굴 탓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리고 이미 지나간 일이기도 하고. 사실······ 누구의 탓이라고 따진다면 제 탓이죠.”


이 사건의 발단은 우리가 던전에 들어온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생각만을 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와 리아와 세이트 이 세 명의 잘못으로 보일 테지만, 확실히 다르다.


전부 내 책임이다.


틀에 박힌 생각으로 빠져나갈 수 있던 가능성을 버려두고, 피폐해진 정신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다.


싸우고자 했으면, 상황은 달라졌을 텐데.

내가 먼저 움직였었다면, 세이트는 그렇게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100호각수를 그때 처리했었더라면,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내가 조금이라도 더 생각을 했었더라면, 상황은 더 좋게 바뀌었을 텐데.


상황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봐야 의미도 없고······. 스읍···. 쓰네.”


난 앞에 있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고는 맛에 대한 감상을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표출했다.


그러자 요코드도 두 손으로 감싸 잡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따라 마셨다.


“그러게요. 향이 좋아서 맛도 좋을 줄 알았는데, 익숙해져도 쓴 맛은 어쩔 수 없네요.”


“시럽 넣어요.”


“예···?”


“그럼 달달해지니 맛있어지긴 하겠죠. 아, 칼로리······ 무슨 상관이야.”


“······그 말 정말 섬세하지 못하네요.”


“죄송해요. 사람하고 대화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라서.”


“고블린인데 말이죠. 틀리지 말아주세요.”


“프흡, 죄송해요.”


내 말실수로 인해 무거웠던 분위기가 운 좋게 풀어졌고, 요코드도 원래대로 돌아온 듯했다.


이를 인식하고 있으려니, 참지 못하고 실없는 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그 덕분에 요코드의 미간은 좀 더 찡그려졌지만 말이다.


“어라 여보? 그리고 하준님? 여기 계셨던 거군요.”


“하준? 여기에 있었구나.”


상반되는 분위기를 가지고서 요코드와 테이블 하나를 두고 대치하고 있으려니,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와카드와 리아 그리고 세이트가 카페에 들어서려고 했던 것이다.


“와카드 형님? 그리고 리아하고 세이트까지? 카페엔 어쩐 일이에요?”


“저는 리아님과 얘기하면서 걷다가, 밖에서 하준님이 보이시기에 일단 와봤는데, 여보도 있었을 줄이야. 얘기하고 있었던 중이었나요? 제가 눈치 없게 끼어들어버렸네요.”


“아뇨아뇨, 마침 마무리하려 했어요.”


“여보, ······.”


몸을 돌리고 와카드와 간단히 말을 주고 받고나니 요코드가 갑자기 자리에 일어나서 와카드에게 가깝게 다가갔다.


그러곤 비밀을 철저하게 지키고 싶은 건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와카드에 귀에 귓속말로 무언가 말하기 시작했다.


“응? 아, 아니아니, 하나도 안 그래.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야, 됐어. 묻지마······.”


하나도 안 들렸고,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무슨 내용인지 다 알 것 같다.


이렇게나 신경 쓸 정도라니, 진심으로 미안해진다.


와카드 형님한테도 말이다.


“리아, 뭐 마실래? 내가 주문해서 가져올······.”


난 리아가 원하는 것을 주문하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자마자, 내가 가져온 두 잔의 커피가 사장님의 서비스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물을 없애줘서 고맙다는 뜻의······.


그렇다······.


“리아, 미안한데. 돈 좀······.”


난 아직 가지고 있는 이세계 화폐가 없었다.


······커피를 다시 주문하고,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난 걸 깨닫고 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커피는 처음 마셔봤는데, 커피는 단 거였구나. 향도 좋았고, 엄청 맛있었어!”


리아, 속인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하지만, 내거하고 바뀌었어.


단 걸 먹고 싶어서 시럽을 넣었는데, 바뀌어버리다니······.


덕분에 난 또 쓴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했다.


리아가 좋아하는 모습에 차마 바꾸자고는 못할 노릇이었고.


인생 참 씁쓸하네.


뭐, 리아도 만족했고, 이미 지나간 일이니, 이젠 상관없다.


“다, 다행이네, 리아.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할 일도 끝이 났고,

할 얘기도 이제는 없을 것이니,

이제 남은 건, 이 지하도시에서 나가는 것만이 남았다.


그렇게 되면, 이 지하도시와는 작별······.


솔직히 그렇게 아쉽지는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때가 다가오니, 입안에서 맴돌던 커피의 쓴 맛이 더 쓰게 느껴졌다.


“나 참, 어디서 뺀질거리고 있었던 게냐? 한참 찾았던 게야.”


카페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으려니, 타이밍 좋게 콘드 할배가 시비조로 운을 때며, 찾아왔다.


“할배가 늦게 내려온 것 때문이잖아. 그래서? 이제 갈 때지?”


“······따라오는 게야.”


할배는 나무지팡이를 딱딱거리며, 뒤로 돌아 앞으로 걸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같이 나온 요코드와 와카드는 할배의 뒤로 붙어서 바로 동행했고, 나도 리아와 세이트를 데리고 할배의 뒤를 따라 걸었다.


걸음은 우릴 지하의 낮은 지대로 이끌었고, 그 후 계속 걸어 한쪽 벽면에 거의 도달하게 되었다.


그나저나, 여긴······.


“익숙한 게냐? 원래 여러 물품들이 떨어진 곳이자, 네놈이 떨어졌던 곳인 게야.”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이제는 별거 아닌 평지가 되어버렸네.”


과거엔 미믹의 노폐물이 떨어져 모였던 장소이자 우리가 처음으로 지하에 발을 들였던 장소가, 이제 아무것도 아닌, 단순한 평지가 되어버린 것에, 왠지 모를 향수가 불러일으켜졌다.


결코 좋지 못한 기억이긴 하지만, 이제 이곳을 떠나 버리는 것에 의해, 이 기억 또한 추억으로 간직되어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직 아이들은 그 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텐데, 내가 친히 설명해주는 건 어떤 게냐?”


“친히 인생을 빠르게 마감시켜 드릴까, 할배?”


“이미 오랫동안 살아있었던 게야. 이제 죽으면 편할 수도 있겠구먼. 하하.”


할배는 내가 웃으며 비꼰 위협에 호탕한 웃음으로 응수했다.


본인을 죽인다는데, 웃으면서 농담으로 받아치다니······.


이 할배는 자기 손녀가 앞에 있는데, 어떻게 못하는 말이 없냐.


물론 시작은 내가 먼저이긴 했는데, 역시 이 할배는 못 따라가겠다.


따라가고 싶지도 않고.


요코드 씨, 고생이 많네요. 이런 걱정되는 할배의 뒷바라지를 한다니 말이에요.


“다 왔구먼. 여기인 게야.”


혼자 속으로 독백하면서 걷고 있자니, 어느새 벽에 완전히 도달해 있었다.


난 벽에 완전히 다가선 채로, 하늘로 뻗어진 벽을 따라 시선을 옮겨 하늘을 보았다.


벽은 하늘로 뻗어서 끝이 보이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끝과 이어진 양옆의 나란한 벽에 웅장함이 느껴졌다.


“······이제 진격할 차례인가.”


“헛소리하지 말고, 거기서 비키는 게야. 방해되는 게야.”


내가 고개를 위로 젖힌 채 작게 중얼거리자, 할배가 내 머리를 지팡이로 때리면서 비키라는 손짓을 했다.


나 참, 오랜만에 덕후 감성을 느끼려하고 있었건만.


“개수(開隧)!”


‘딱···!’


할배가 도사스러운 영창을 하고, 지팡이를 바닥에 찍어 소리를 울려 퍼트리자, 정면의 벽에서 점점 구멍이 뚫리더니, 하나의 기다란 통로가 만들어졌다.


뭐야, 할배가 나가는 길을 열 수 있는 거였어?!


그러면······ 언제든 나갈 수 있었던 거잖아!


나 일만 시키려고, 맨날 때가 아니라고만 하면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던 거냐.


열 받네······.


“여기인 게야. 네놈이 그토록 바라던 밖으로 나가는 길인 게야.”


“그렇지 바랬는데, 결국엔 일이 다 끝나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루어졌네, 증말로 고마워 할배.”


정말 너무 고마운 나머지, 할배를 한 대 치고 싶어졌다.


“그건 그렇고, 여기는 어디로 이어져 있는 거야?”


“나가고자 하면, 어디든 이어져 있는 게야.”


“뭔데 그 철학적인 얘기는? 제대로 알려달라고.”


“하아, 이제 좀 네놈 스스로 알아채는 게야.”


할배는 귀찮은 듯이 한숨을 내쉬면서, 손사래를 쳤다.


한 번 정도는 쳐도 되지? 정말로 한 번이면 되니까 쳐도 되지? 응?


“이곳으로 나가게 되면, 다시는 여기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게야. 미믹들도 전부 죽어버렸으니, 오늘이 이 지하에 있는 마지막이 될 게야.”


“무슨 소리야? 길은 여기에 있고, 다시 닫힌다고 해도, 뭐······ 부수고 들어오면 되는 거고. 물론 문단속은 잘해야 하겠지만.”


“하아, 네놈은 마지막까지 모르는 게야.”


내가 할배의 말에 의아해 하자, 할배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놈은 여기에 미믹의 차원문을 통해 들어온 게 아닌 게냐? 그럼 나가는 것도 물론 차원문을 통해 나가는 게 당연한 게 아닌 게냐?”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금방 말했다시피, 미믹은 이제 없는 게야. 네놈이 나가면, 이제 여기로 들어올 수단은 없다는 말인 게야. 척보면 아는 게야. 척보면.”


“아니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말해줘야 알거든?!”


“그게 네놈의 한계인가 보는 게야. 쯧쯧.”


“뭐?!”


“풋, 흐흐흣.”


내가 할배의 말에 어이없어서 화를 내고 있으려니, 갑자기 옆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의 주인은 리아.


갑자기 혼자서 크큭대며 웃기 시작하길래, 나와 할배는 의아한 표정으로 리아를 쳐다봤다.


“리, 리아? 왜 그래?”


“아니, 하준하고 할아버지하고 사이가 좋아보여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어. 흐흣.”


“그건 좀······. 틀렸지? 아무래도. 으응.”

“그거는······. 확실히 틀린 게야. 으응.”


할배와 내가 입을 모아서, 변명을 했지만, 어정쩡한 분위기에 리아의 웃음이 커졌고, 할배 옆에 있던 요코드와 와카드도 웃음을 참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와 할배의 변명은, 변명조차 되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크흠! 어서 빨리 나가는 게야. 이런 칙칙한 지하가 뭐가 좋다고 계속 멈춰 서있는 게냐? 얼른, 퍼뜩 나가는 게야.”


할배는 머쓱한 건지, 나와 리아를 향해 손을 쉬쉬거리며, 이 지하에서 한시라도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나도 머쓱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벌레 같은 취급이라니, 열 받는다.


“안 그래도 갈 거야. 리아, 세이트, 빨리 가자.”


“잠깐, 하준 너무 성급해···!”


내가 리아와 세이트의 팔목을 잡고서, 할배가 만든 통로를 향해 걸어가자, 리아는 내게 끌려가면서 다급하게 날 말리려했다.


세이트는 그냥 아무런 반응 없이 끌려오기만 했다.


최근 들어서 세이트가 내가 말에 너무 순순히 따라주는 느낌이다.


과거 우리를 습격했었던 검객,

주인이 마물에게 습격당하는 걸 보고만 있었던 소환수.


그때의 일들과 지금의 그녀의 모습에 괴리감이 느껴진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걸까?······는 너무 망상이 지나친 듯하다.


“리아님, 세이트님 그리고 하준님, 모두 이곳에서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헤어지려니 왠지 아쉬워지네요. 그럼 지상에서 부디 안 좋은 일 없이 모두 건강하시길.”


“저희는 걱정하지마세요. 이제 전부 원래대로 돌아왔고, 저주도 없어졌으니, 모두 전보다 나아진 삶을 살아가게 될 거에요. 모두 정말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요.”


요코드와 와카드가 차례대로 마지막 인사를 하며, 통로를 통해 나가려는 우리를 배웅했다.


들려온 마지막 인사에 난 통로 앞에서 멈춰 서서, 리아와 세이트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고블린들을 향해 몸을 돌려 세우고,

숨을 크게 들이 쉬고,

들이 쉰 숨을 내뱉으며······.


“드디어 판타지 세계로 나간다! 하나도 다를 거 없는 이곳에서 나간다고! 이 현대문명 고블린들아!”


내가 지하에서 말하지 못한 불만을 지하 전체가 울리도록 시원하게 내질렀다.


후우, 이제야 속이 시원하네, 판타지스럽지 않은 이세계, 이제 안녕이다.


“하준···?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심한 말은 하지 말아줘.”


“나 참, 고래고래 소리나 지르고, 시끄러운 게야.”


마지막까지 들려오는 콘드 할배의 잔소리.


이것마저 그립고 싶지는 않다.


“자아, 그럼 우린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이제 정말 안녕, 콘드 할배. 그 동안 고마웠어. 오래오래 사셔.”


“······.”


“거기선 받아치라고! 남자 대 남자가 이런 상황이 되는 걸 바라진 않았다고!”


내가 할배한테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네자, 할배는 아무 반응도 않고,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태클을 걸면서 받아치질 않으니 오히려 내가 더 부끄러워진 기분이다.


“뭐라고 하는 게냐? 네놈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거라고 전혀 생각치도 못했을 뿐인 게야.”


“뭐? 나도 그 정도는 말할 줄 알아. 잠깐, 생각치도 못했다고? 전부 알고 있었던 게······.”


“하아···, 말했던 게야. 난 전부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전부 들은 것이라고. 내가 들었던 것은 진작 끝난 게야. 이제는 아무 것도 없는 게야.”


그러고 보니 할배, 리아가 감사를 전했을 때, 전혀 몰랐었다는 반응을 했었다.


대체 언제 끝났던 거야?


뭐, 이제 나가는데, 굳이 알 필요까진 없지.


“그럼 진짜로 나가볼게.”


나와 리아 그리고 세이트는 뒤로 돌아서 지하를 등지고, 드디어 통로에 발을 들였다.


“······잠깐 기다리는 게야.”


통로에 발을 들이고, 지하와는 완전히 발을 땐 시점, 그때 갑자기 할배가 우릴 불러 세웠다.


“왜 그래?”


작별의 선물처럼 뭐라도 줄까라는, 자그마한 기대를 걸어봤지만, 할배가 내게 내놓은 것은······.


“네놈은 소환술사 리아의 첫 번째 소환수이자, 이세계에서 소환된 자. 그 이름은 하준인 게야.”


내 소개······.


“······뭐?”


‘쿠구쿵···!’


할배를 보면서 어이없어 하던 찰나, 돌연 굉음과 함께 시야가 막혀버렸다.


순식간에 지하와 단절되어버려, 당황할 틈도 없이 우린 바람인 건지, 뭔지 모를 힘에 의해, 뒤로 밀려나기에 바빴다.


“아니 잠깐만, 할배가······.”


할배가 한 말은 이미 관심 밖이다.


그것보다 더한 의문이 머릿속에서 박혀버렸기 때문에······.


지하와 단절되고, 뒤로 밀려나기 직전에 『생명체 감지』로 보인 것은,


요코드와 와카드.


그 둘뿐······.


콘드 할배가, 할배의 생명이, 보이지 않았다.


뭐야······. 뭐야.

뭐가 뭐냐고.


할배가 왜, 할배만 왜.

성냥불이 꺼지듯이, 할배의 생명이, 대체 왜.


아니, 아니지?

아닐 거야, 아니라고······.


아니야···!!!


하얀 빛이 온몸을 감쌌다.


던전에서 호각수에게서 도망쳤을 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뛰어든 샘과 똑같은 빛, 차원문.


안식으로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빛······.


정신은 한없이 편안해지고, 의식은 물속으로 잠기듯, 점점 빠져 들어만 갔다······.


“대체······[////]”


······.


커튼 틈 사이로 햇빛이 새어나오고,

창문 밖으로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현재 시간은 7시.


“여기는······.”


나는 내 방안에 있다.

나는 침대 위에서 누워있다.

나는 잠에서 금방 깨어났다.

나는 원래 세계에 있다.


원래 세계의 시간이 흐른다.


······집으로 돌아왔다.



****



“어, 어르신···!!”


한 남자의 목소리는 다급하게 주위로 울려 퍼졌다.


하나의 생명이 갑작스럽게 종국을 맞이해버렸기 때문에.


힘없이 몸이 무너져 내리고, 땅을 짚고 있던 지팡이는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의식은 영원히 끊어져버려, 쓰러진 몸은 이제 텅빈 껍데기, 시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르신! 어르신! 요코드, 어르신을 얼른···! 요, 요코드···?”


친조부가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걱정이 많은 조부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도사라는 것도,

과거에 예언을 들었단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말해주지 않은 조부의 과거까지 알고 있었다.

저주의 진짜 내용도 알고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갈지도,

어떤 게 눈앞에 나타날지도,

누가 어떤 감정을 내보일 건지도,

누구와 밥을 먹을 것인지도,

누구와 싸울 것인지도,

누구의 도움을 받을 것인지도,

누구와 대화를 나눌 것인지도,

특별한 인연들과 작별인사를 하게 될 거라는 것까지도,


전부 알고 있었다.


물론······, 죽음이 일어날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오늘, 출구에서, 조부가,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내가 원했던 마지막 한 가지는······.


“마지막만큼은, 내 이름을 불러줬으면 했는데······.”


너무해요······.』


슬픔에 젖은 눈물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말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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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알아가는 중 - 5 +1 20.06.19 18 1 19쪽
41 알아가는 중 - 4 +1 20.06.18 22 1 13쪽
40 알아가는 중 - 3 +1 20.06.18 22 1 12쪽
39 알아가는 중 - 2 +3 20.06.17 31 2 13쪽
38 알아가는 중 - 1 +1 20.06.17 21 1 18쪽
37 위화감 - 10 +2 20.06.16 27 3 12쪽
36 위화감 - 9 +1 20.06.16 23 2 12쪽
35 위화감 - 8 +1 20.06.15 18 2 12쪽
34 위화감 - 7 +1 20.06.15 18 1 18쪽
33 위화감 - 6 20.06.14 28 0 18쪽
32 위화감 - 5 +1 20.06.14 24 1 16쪽
31 위화감 - 4 +1 20.06.13 92 2 16쪽
30 위화감 - 3 +1 20.06.13 23 1 15쪽
29 위화감 - 2 +1 20.06.12 26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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