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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색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 휴게소 키우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흙색
작품등록일 :
2024.07.28 19:44
최근연재일 :
2024.09.14 22:48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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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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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47
글자수 :
2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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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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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035. 청어와 메기, 그리고 상어(3)

DUMMY

“네? 아······ 네. 사실 저도 한 개 없어졌어요. 그저께요. 왜 말 안 했냐고요? 그냥 누가 잘못 가져갔나 싶어서······.”


‘뭐야 이거?’


서린의 오만상이 구겨졌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조사를 했더니, 여학생 다섯 명 중 무려 셋이 팬티를 분실한 것이다.


반면 어른들 중엔 읽어버린 사람이 없었다.


단순히 애들이 어른들에 비해 부주의하기 때문일까?


그런 거라면 좋겠지만, 그녀는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당장 진수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팬티가 없어졌다고요?”

“네. 나은이랑 예린이랑 보람이요. 예린이랑 보람이는 그저께 없어졌고, 나은이는 어제 빨래통에 넣어두고 오늘 봤는데 없었대요.”

“누가 잘못 들고 간 거 아니에요? 빨래를 모아서 하니까 섞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긴 한데 이름도 적어놨고, 또 애들 거라 사이즈도 안 맞을 텐데요. 그리고 없어져도 하필 애들 것만 골라서······.”


진수는 끙 앓다가 말했다.


“서린 씨 말은, 누가 일부러 훔쳐 간 것 같다는 거죠? 불순한 의도로.”

“네.”

“하아.”


진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염병할.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등 따습고 배부르니까 이러는 거야?


살만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이딴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단 말이야?


“일단 여자분들 짐부터 다시 확인해 보세요. 단순히 오해일 수도 있으니까. 찾아봐도 안 나오면 다시 저한테 말해주세요.”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서린은 수면실로 돌아가 여자들에게 각자의 짐을 확인케 했다.


휴게실에서 자는 인원들도 짐은 수면실에 모아뒀기에 확인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팬티란 팬티는 모조리 까 봐도 잃어버린 여학생들의 것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금 진수에게 가 찾지 못했음을 알렸다.


“후······. 알겠어요. 남자들 소지품도 뒤져보게 할게요.”


남자들 짐은 남자 수면실, 그리고 푸드코트에 나누어져 있었다.


그는 우선 휴게소 내 남자들을 전부 한 자리로 불러 모은 뒤, 몇 명만 차출해 짐을 수색하게 했다.


“뭐꼬? 저게 뭐 하는 난리고? 남의 가방은 와 뒤지고 지랄인데?”

“아, 그게요 형님. 여기 애들 몇 명 있지 않습니까. 어린 여학생들이요.”

“근데?”

“글쎄, 걔네들 팬티가 없어졌다네요? 그래서 찾아보고 있답니다.”

“하이고, 난 또 누가 뽕이라도 들여왔나 했네. 꼴랑 빤쓰 좀 잃어버린 것 가지고 유난은. 쯧쯧쯧.”


김영기는 혀를 끌끌 차다가 말했다.


“근데 얼라들 빤쓰를 왜 여기서 찾고 앉았노? 가시나들 방이나 찾아볼 것이지.”

“누가 훔쳐 갔나 싶어서 그런 거죠.”

“훔친다꼬? 얼라 빤스 훔쳐서 뭐 한다고? 삶아 먹을 것도 아닌데.”

“예?”


최상득이 갸웃했다가 대답했다.


“뭐, 뻔하지 않겠습니까? 그거 하는 데 쓰겠죠.”

“그거?”

“예예. 혼자서. 탁탁탁······.”


순간 김영기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이런 씨바꺼! 애들 빤쓰로 그 지랄을 한다꼬?”

“왜, 가끔 그런 놈들 있지 않습니까. 애들만 골라서 그러는.”

“하, 나 이런 개새끼를 봤나. 그런 짐승 새끼들은 거시기를 확 짤라뿌야 하는데. 안 글나?”

“맞습니다. 뚜드려 패서 확 잘라버려야죠.”

“쯧쯧. 한심한 빙시 자슥덜. 여기가 먹고 살긴 한 갑다. 벌써부터 이 지랄 하는 것 보니.”


김영기는 그렇게 말하며 힐끗 옆을 봤다.


“······.”


그곳엔 박진호가 있었다.


박진호는 오늘 아침부터 어딘가 이상했다.


낯빛도 어둡고, 어째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다고 할까?


얼마 뒤 짐 수색 작업이 끝났다.


하지만 불시검문에 나섰던 진수와 사람들은 그 무엇도 찾아내지 못했다.


“진호.”

“······.”

“박진호.”

“예? 부, 부르셨습니까, 형님?”

“니 잠깐 나와 보이라.”


사람들이 돌아가자마자, 김영기는 박진호를 데리고 푸드코트 뒤편으로 나갔다.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김영기가 삼엄한 말투로 물었다.


“니 인마, 솔직하게 말하레이.”

“뭐, 뭘······?”

“니 아이가?”

“예?”

“얼라들 빤쓰 쌔벼간 거. 니 아니냐고.”


박진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1~2초쯤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


“예에!? 무, 무슨! 저 아닙니다.”

“진짜 아이가?”

“당연하죠! 제가 왜, 엌!”


철썩!


김영기가 박진호의 뺨을 후려쳤다.


박진호가 휘청일 정도의 충격이었다.


김영기는 그대로 동생의 멱살을 쥐고 끌어당기며 재차 으르렁거렸다.


“니 셰끼야, 잘 생각해레이. 지금 말해야 행님이 수습할 수 있다. 진짜 아이가?”

“이잇! 아니라니까요!”

“그럼 셰끼야. 니 그제 새벽에 화장실 간 건 뭔데?”

“예?”

“화장실 가서 한참이나 있다가 나오더만. 똥칸 처박혀서 그 짓거리 하고 온 거 아이가?”

“무슨! 또, 똥 싸고 왔습니다. 담배 피우니까 배가 아파서······ 똥 싸고 왔단 말입니다. 제가 배 아프다고 말씀 드릿─”

“닥치고, 내 눈 똑바로 쳐다봐라.”


박진호가 억울함과 분노, 당혹이 서린 눈으로 김영기의 눈을 쳐다봤다.


그렇게 5초쯤 눈을 맞추었다.


“마지막 기회데이. 진. 짜. 로. 니가 빤쓰 쌔벼간 거 아이가?”

“아닙니다. 흑! 저 그런 놈 아니에요, 형님! ······어윽.”


김영기가 멱살을 놓아주었다.


박진호는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알았다. 믿는데이. 가서 세수 한번 하고 들어오니라.”


그는 그 말을 남기고 푸드코트로 들어갔다.


바닥에 주저앉은 박진호는 분노에 불타는 눈으로 그의 등을 쏘아보았다.


“개새끼······.”



***



오전에 있었던 소란 아닌 소란으로 휴게소의 분위기는 다소 우중충했다.


우중충한 것은 우중충한 것이고, 일은 일이었다.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이라면 오후 2시경, 시범으로 제작한 발리스타 4기가 완성됐다는 것이었다.


휴게소 사람들은 잠시 하던 일을 내려놓고, 발리스타의 시험 발사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렇게 놓고 보니까 생각보다 더 크네요.”


대성의 말에 진수는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했다.


“저 정도는 돼야 그 털북숭이 거인한테 한 방 먹이죠.”

“하긴.”


완성된 발리스타는 높이가 1.3m 정도에 활대가 1.8m, 몸체 길이는 2m에 달했다.


몸체는 목재와 농사 장비 부품을 이용해 만들었고, 활대엔 온갖 재료들이 다 쓰였다.


쇠파이프부터 철판, 용수철, 도르래까지.


하단부엔 수레바퀴를 달아놓았는데, 끌고 옮기기 편해 보였다.


“그럼, 한 방 쏴보겠습니다.”


발리스타 제작에 크게 기여한 김용국 씨가 대표로 발사에 나섰다.


“먼저 여기 보이시는 손잡이.”


그는 발리스타 측면에 붙어 있는 손잡이를 붙잡았다.


손잡이는 자전거에서 뗀 기어와 연결돼 있었다.


“이거를 이렇게! 열나게! 돌려줍니다! 그러면······!”


그가 손잡이를 마구 돌리기 시작하자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며 시위가 서서히 당겨지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활대가 휘었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르륵! ······철컥!


한순간, 시위가 턱에 걸렸고 그때부턴 손잡이를 돌려도 시위가 더 늘어나지 않았다.


“헉헉! 아이고, 힘들어라. 이렇게 시위를 다 당겼으면 이제 이 홈에 화살을 놓는 겁니다. 읏차!”


그가 발치에 있는 대형 화살을 들어 올렸다.


발리스타 크기에 맞게 화살도 무척이나 거대했다.


통상 화살은 대나무를 쪼개 만들지만, 저건 어린 대나무를 통으로 썼다.


참고로 대나무는 마을 인근 대숲에서 꺾어온 것이었다.


진수가 마을에서 자재를 수급할 때, 서린과 대성은 따로 일꾼들을 데리고 나가 대나무를 모아 왔지.


대나무 화살이 발리스타에 얹혔다.


“발사하겠습니다. 다 뒤로 물러나세요. 앞에 누구 없지요?”

“물러나세요. 뒤로 오세요, 뒤로!”


발사를 하기 전, 사격 방향에 사람이 없도록 다들 물러나게 했다.


‘저것들은 또 어딜 기어가?’


진수의 눈에 인파에서 떨어져 화장실 뒤로 걸어가는 김유찬과 이동근이 보였다.


또 자기들끼리 모여서 구시렁구시렁 뒷담화나 할 작정인가?


‘······신경 끄자. 속 시끄럽다.’


진수는 끌끌 혀를 차곤 관심을 껐다.


“쏘겠습니다!”


김용국이 발리스타 뒤에 부착된 방아쇠를 당겼다.


방아쇠가 턱에 걸친 시위를 밀어냈고, 시위는 엄청난 속도로 화살을 때렸다.


퉁! ······콰쾅!


“오!”

“오오!”

“와, 미쳤다.”

“제대로인데?”


전방 40m에 있던 철판 과녁에서 끔찍한 소리가 났다.


화살이 철판을 찢고 들어가는 것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였다.


진수는 그리로 후다닥 달려갔고, 과녁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의 눈이 커졌다.


“······상상 이상인데 이건?”


대나무 화살은 철판을 관통한 것도 모자라 장벽 담장까지 뚫고 들어갔다.


바닥엔 부서진 화살 잔해와 돌 부스러기가 너저분히 깔려 있었다.


‘이 정도면 그 괴물 놈 골통도 뚫을 수 있겠어.’


촉(鏃)도 달지 않은 화살이 이 정도 위력이라니.


제대로 쇠 촉을 달면 에틴의 대갈통도 분쇄할 수 있을 듯했다.


사람들은 나머지 세 대의 발리스타도 시험 발사 해보았다.


모두 문제없이 작동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조준사격 시 명중률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인데, 표적(에틴)이 거대하니 큰 문제는 아닐 터였다.


‘내일······ 하자.’


진수는 미뤄왔던 구울 사냥을 재개키로 마음 먹었다.


겸사겸사 에틴도 끌어들여서 확 잡아버리고 말이다.


현재 읍내 상황이 좋진 않을 터였다.


에틴이 날뛰는 걸 며칠이나 방치해놓았으니까.


아마 꾸역꾸역 버티던 생존자들도 많이 죽었을 테지.


다만 불행 중 다행인 소식이 있었는데, ‘rlatjdtlr123’에게 온 쪽지에 따르면 그가 읍내 쪽 생존자 8명을 보살피고 있댔다.


진수는 오늘은 별 다른 일과 없이 푹 쉴 것을 거주민들에게 당부했다.


그러며 자신은 유탁과 함께 성벽을 보강하고, 또 내일 치를 에틴 사냥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하루가 무탈하게 지나가는 듯했다.


짜증스러운 소란이 들려온 것은 슬슬 사람들이 저녁을 먹기 위해 몰려드는 오후 5시 50분 경의 일이었다.



***



“보면 볼수록 물건이네.”


진수는 장벽 위로 올려 놓은 발리스타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이런 걸 전기 그라인더나 용접기도 없이 뚝딱 만들어내다니.


시골 아저씨들 손재주가 좋긴 좋구나 감탄하고 있으려니, 계단 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수 씨! 진수 씨!”

“음?”


돌아보니 서린이 헉헉대며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진수가 다가가며 묻자 그녀가 멈춰 서선 말했다.


“헉헉! 잡았대요.”

“네?”

“팬티 도둑 말이에요. 잡았대요.”

“뭐라고요?”


진수는 눈살을 좁히며 즉시 물었다.


“누군데요? 누가 훔쳐 간 거였는데요?”

“쳇! 그 인간이래요. 김영기!”

“······예?”


그렇지 않아도 구겨졌던 진수의 표정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그 인간 가방에서 팬티 3개 나왔대요. 전부 애들 거 맞고요!”

“······.”

“지금 사람들 다 푸드코트에 있어요. 싸움 날 것 같아요. 진수 씨도 빨리 와보세요!”

“아, 알겠어요. 가죠.”


진수는 얼른 장벽을 내려가 푸드코트로 향했다.


그런데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오전에 뒤졌을 땐 분명 아무것도 안 나왔잖아요? 그런데 왜 갑자기 나타나요?”

“나야 모르죠. 어디 빼놨다가 도로 들고 왔는지.”


진수는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것을 느끼며 푸드코트로 들어섰다.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쩌렁쩌렁한 욕설이 울려 퍼졌다.


“왐마, 이 쓰발럼들이요! 사람을 이래 담가뿌네! 내 아니라고 이 개자슥덜아!”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그쪽 가방에서 이게 나왔는데.”


대성이었다.


그는 분노한 얼굴로 손에 들린 것을 들어 보였다.


그건 검은색 비닐봉지였다.


주위를 빙 두른 사람들은 더러운 오물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김영기를 쏘아보았다.


“변태······.”

“저놈 저거 그럴 줄 알았어.”

“어떻게 애들 속옷으로······ 저질이네 진짜.”


그러며 마구 수군댔다.


김영기는 바락바락 소리쳤다.


“씨바꺼, 그걸 내가 우째 아노! 어떤 개썅놈의 새끼가 몰래 내 가방에 넣어놨는갑지!”

“······.”

“애초에 내가 아새끼들 빤쓰를 말라 쌔벼가냐 이 말이라! 그거 가져가서 어디다 쓴다고!”

“벼, 변태 짓 하는 데 썼겠지! 너희 같은 깡패가 다 그렇잖아!”


누군가 꽥 외쳤다.


김유찬이었다.


“뭐라꼬? 이런 개······! 아. 알긌다. 김유찬이 니구나? 니 짓이제? 이 걔이셰끼야 일로 와봐.”

“히, 히익!”

“가만히 있으세요! 움직이지 마시고.”


대성의 경고에 김영기는 터질 듯한 분노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꼭 폭발하기 직전 화산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이게?”


그때, 진수가 사람들을 가르며 나타났다.


대성이 그를 돌아보며 검정 비닐봉지를 건넸다.


“저 사람, 김영기 씨 가방에서 이게 나왔습니다.”


검정 비닐봉지 안에는 팬티 3장이 들어 있었다.


“보소, 고 사장! 나 아니라예! 어떤 개자슥이 나 담굴라고 수작 부린 거라니까! 이런 뻔한 수에 속나? 왐마 진짜 돌대가리뿌이 없네! 대가리 왜 달고 댕기노?”

“소리치지 마시고, 가만히 계세요.”

“왐마, 미치고 팔짝 뛰겠다 진짜!”


진수는 그렇게 말한 뒤 대성을 돌아보았다.


“아까 오전에 뒤져봤을 땐 분명 아무것도 없었지 않습니까?”

“예, 그렇긴 한데······.”

“이거 누가 발견했어요? 팬티 찾아낸 사람이 누구냐고요!”


진수가 사람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사람들 사이에서 성민지라는 여자가 주뼛주뼛 나왔다.


그녀는 면사무소에서 구해 온 사람 중 한 명이었는데, 며칠 요양했더니 얼굴색이 퍽 좋아져 있었다.


“저, 저예요.”

“어떻게 발견했어요 이걸?”

“그······ 티슈 뽑으려고 이쪽으로 왔는데, 저 회색 가방에 그 비닐봉지가 들어 있었어요. 비닐봉지 안에 팬티가 있는 게 보였고요.”

“가방을 열어 봤어요?”

“아니요. 열려 있었어요.”


‘열려 있었다고?’


진수는 회색 가방 안을 들여다봤다.


김영기의 짐가방인데 안에는 담배를 비롯해 옷가지와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들어 있었다.


‘흙?’


그리고 흙 부스러기가 잔뜩 떨어져 있었다.


흙은 비닐봉지 겉면에도 묻어 있었고.


진수는 입술을 씹으며 상념에 잠겼다.


바로 그때였다.


“저 새끼! 순 나쁜 새낍니다!”


누군가 김영기를 삿대질하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올 법한 대사를 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니······ 니 지금 뭐 하는 기고?”


김영기의 부하 중 한 명인 박진호였다.


박진호는 진수에게 후다닥 달려와선 말을 쏟아냈다.


“저 새끼 믿지 마세요. 저놈 내란 모의 했어요. 내란 모의하는 거 내가 다 들었다고요!”

“······뭐요? 내란 모의?”

“네! 그쪽 제치고 자기가 이 휴게소 먹겠다고, 그렇게 공모했다니까요. 내가 전부 들었어요!”

“야, 박진호 너 미쳤어? 형님한테 왜 그래?”


최상득이 그를 말리고 나섰다.


박진호는 격하게 손을 뿌리쳤다.


“형님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형님 형님 하고 떠받들어 주니까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고! 상득이 형. 형도 이제 저 자식 그만 빨고 여기 붙어!”

“너, 너······.”

“아니면 같이 싸잡혀서 퇴출 당하던지!”

“어읍······.”


진수의 표정은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굳었다.


그가 서늘한 표정으로 김영기를 쳐다보았다.


“······이 말 진짭니까? 날 제치고 휴게소를 먹겠다고요?”

“아, 아니, 고 사장예.”


김영기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아닙, 아닙니다. 내가 미쳤는교? 고 사장을 제끼긴 뭘 제끼요? 저 자슥이 장난으로 한 말 가지고······. 야야, 상득아. 니가 말해 보이라. 내가 제낀다고 하더나?”

“그, 그러니까······.”


최상득은 기다 아니다 말 못하고 이리저리 눈치 살피기 바빴다.


혹여나 자신에게까지 불똥이 튈까 봐 불안해하는 듯했다.


“그러니까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을 했다는 거네요?”

“아니, 들어 보이소. 그 장난이라는 게······.”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때였다.


예상치도 못한 인물이 예상치도 못한 말을 꺼냈다.


“저 사람, 적어도 내란 모의 같은 생각은 안 했습니다.”


전명환이었다.


그가 앞으로 나섰고, 대단히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아무리 사람이 미워도 없는 죄까지 덮어씌우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명환······ 아재요?”

“뭐 아는 게 있으신 겁니까?”


진수의 물음.


전명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새벽에, 저 셋이 담배 피우며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영기 씨가 진수 씨를 제친다, 어쩐다 했던 건 우스개도 못 되는 말이었습니다.”

“······.”

“오히려 영기 씨는 말썽 부리지 말고 조용히 잘 지내라고, 저 두 사람한테 당부하기까지 했어요.”


전명환이 최상득을 돌아보며 괘씸하다는 듯 말했다.


“분명 그쪽 형님이 그렇게 말했잖아요? 왜 들었으면서 아무 말도 안 합니까? 마트에 있을 땐 그렇게 아첨들 떨더니!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의리 지키겠다고 그랬던 겁니까? 이런 한심한······ 한심한 작자들 같으니.”


최상득은 말이 없었고, 박진호는 어버버했다.


“그래도 팬티는 저 깡패가 훔쳐 간 게 맞잖아요! 빨리 퇴출해요!”


조용해진 푸드코트에 김유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수가 그에게 터벅터벅 다가갔다.


“손 좀 봅시다.”

“네? 무, 무슨 손이요?”

“그쪽 손이요.”


진수는 그대로 김유찬의 손목을 낚아채 손을 확인했다.


고생한 티를 찾아볼 수 없는 맨들맨들한 손.


그런 와중에도 손톱 아래엔 때가 잔뜩 껴 있었다.


진수는 도로 손을 놓은 뒤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다들 여기서 기다리고들 있으세요.”

“어? 어디 가요 진수 씨!”


진수는 그렇게 말하곤 휙 나가버렸고, 서린이 따라붙었다.


진수는 그 길로 ‘종합관리실’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는 거예요?”


서린의 물음에 진수는 동문서답했다.


“아무리 봐도 얄팍하지 않아요?”

“네?”

“오전엔 없었던 물건이 저녁이 되니 갑자기 발견됐죠. 그것도 너무 허술하게. 비닐봉지에 흙이 묻은 걸 보니 땅에 묻어놨던 모양인데, 휴게소엔 흙바닥이 별로 없어요. 창고나 화장실 뒤쪽밖에는.”

“그런데요?”

“그리고 많이들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휴게소엔 CCTV가 있죠.”


진수는 종합관리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불 꺼진 내부.


전등을 켜자 어스름이 걷히며 사무용 책상과 컴퓨터 몇 대가 드러났다.


컴퓨터 모니터엔 휴게소 전경이 실시간으로 비치고 있었다.


건물 내부까진 확인할 수 없지만, 휴게소 곳곳의 풍경은 선명히 보였다.


“아······ 맞아. 이런 것도 있었지.”


종합관리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건물이라 사람들이 들락날락하지도 않았다.


하여, 이곳에 이런 기능이 있다는 것도 대부분 몰랐다.


진수는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조작했다.


저장된 녹화 영상을 틀고, 방향키를 신경질 적으로 연타하며 시간을 건너 뛰었다.


화면은 어느새 발리스타 테스트를 위해 사람들이 모였던 장면을 비추었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를 은밀히 빠져나가는 2명이 있었다.


김유찬과 이동근이었다.


그들은 화장실 뒤편으로 향했고.


“저 자식들 뭐 하는······?”


열심히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참 땅을 파다가 그 속에서 검정 비닐봉지를 꺼냈고, 푸드코트 건물로 향했다.


“저, 저런 쓰레기 놈들이······!”


사건의 경위를 깨달은 서린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편, 진수는 시간을 더 건너 뛰었다.


대충 이틀 전쯤으로.


다시 앞으로 돌리니 때때로 바닥에서 캐낸 비닐봉지를 챙겨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두 놈이 포착됐다.


“서린 씨 말이 맞아요.”


진수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엔 말로 해서 못 알아먹는 놈들이 너무 많아요.”


·

·

·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고,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유찬이 너······ 너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그런 짓을 한 것도 모자라서 남한테 덮어 씌우려고까지······.”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아, 아니야! 나, 난 그냥······ 그냥 잠깐만 빌려 쓰고 다시 돌려놓, 엌!”


쩍!


“컥! 커헑······!”


별안간 날아든 진수의 주먹에 김유찬의 뚱뚱한 몸이 바닥을 굴렀다.


그의 입에서 피와 함께 부서진 이빨이 후두두 쏟아졌다.


“일어나.”

“아악! 어으읔!”


진수는 엎어진 놈의 머리채를 끌어 잡곤 강제로 일으켰다.


그대로 뺨을 다섯 대 올려 쳤다.


피부가 다 찢기고 찢긴 틈으로 피가 줄줄 흘렀다.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사람들은 모두 얼어붙었다.


진수는 놈을 끌고 나가 바닥에 내팽개쳤다.


빠각! 뿌즈즉!


“끄아아아아악! 내, 내 다리! 으아악!”


군홧발로 오금을 지르밟자 끔찍한 소리를 내며 다리가 분질러졌다.


진수는 다시 푸드코트로 들어갔다.


이동근이 무릎을 꿇은 채 파리처럼 싹싹 빌고 있었다.


“죄죄,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흑! 저는 하지 말자고 했어요! 진짜예요! 그런데 저 자식이······!”

“빌지 마. 봐줄 만큼 봐줬어.”

“제바으컼!”


진수는 무릎 꿇은 놈의 면상을 그대로 걷어찼다.


놈도 머리채를 끌고 나가서 바닥에 내팽개쳤다.


두 놈은 짐승처럼 울어댔다.


“내가 분명히 말했지. 한 번만 더 거슬리는 짓 하면 구울 밥으로 던져버리겠다고.”

“흐어어! 어으어어어!”

“내 말이 우습게 들렸나 본데, 잘 봐. 진짜인가 거짓말인가.”

“사, 살려주세요! 제발! 으어어어! 아앜!”

“끄어억!”


진수는 창고에서 들고나온 밧줄로 놈들의 몸을 단단히 묶었다.


몸부림치면 그대로 뺨을 올려 치고 배를 걷어찼다.


다 묶은 뒤엔 번쩍 들어 올려 트럭 짐칸에 내동댕이쳤다.


“지, 진수 씨. 뭘 하시려는······ 읍.”


그의 행각에 질린 대성이 말리려 다가왔다가 그의 눈빛을 보곤 움찔 떨었다.


진수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수많은 눈들을 향해 포고했다.


“다들 똑똑히 봐요! 물 흐리는 놈들이 어떻게 되는지!”


그는 트럭을 출발시켜 성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벌써 7시에요! 곧 있으면 해가 질 텐데, 이 시간에 어딜 간다고 그래요!”

“비켜요.”

“안 돼요! 절대 못 비키─”

“비키라고요.”

“읏······.”


서린을 비롯한 몇몇이 몸으로 막으며 지금 나가는 건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그는 기어코 휴게소를 빠져나갔고 30분쯤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그가 돌아왔을 때 김유찬과 이동근, 두 문제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트럭에서 내린 진수는 몹시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쓰러질 듯 위태로운 몸을 가까스로 다스리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두에게······ 모두에게 경고합니다. 앞으로······ 휴게소에 폐 끼치는······ 그런 인간은······ 구울이랑 똑같이 취급하겠습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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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01

  • 작성자
    Lv.99 세렌디
    작성일
    24.09.07 13:22
    No. 91

    법과 규칙이 없는 아포칼립스에서 삼진아웃 처벌이면 양반이지

    찬성: 2 | 반대: 2

  • 작성자
    Lv.58 눈감은전등
    작성일
    24.09.07 23:23
    No. 92

    불티 닉값 지리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솔리온
    작성일
    24.09.08 11:58
    No. 93

    몇편전에 폭력을 쓰지않는 이유를말했고 납득가는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추방만 하는게 아니고 폭력을 쓰는건 조금 캐릭터에 맞지않는게 아닌가

    찬성: 7 | 반대: 0

  • 작성자
    Lv.23 cr*****
    작성일
    24.09.08 17:47
    No. 94

    아쉽네요 거인잡을 때 미끼로 써야하는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7 너구울
    작성일
    24.09.08 21:59
    No. 95

    개인적으로는 씨씨티비 생각을 사건 초기부터 염두하고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돌려볼지 엄두가 안나서 곤란하다가, 장소와 시간이 특정돼서 도음을 받을 수 있었다는게 좀 더 자연스럽게 드러났으면 했네요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88 판타지최고
    작성일
    24.09.09 23:38
    No. 96

    미친거 아닌가? 공포정치로 갈거 아니면 그냥 추방선으로 했어야지 너무 수위높은 처벌은 사람한테 거부감 주기 십상인데 저기까지 한다고?

    찬성: 6 | 반대: 1

  • 작성자
    Lv.35 나라연2
    작성일
    24.09.10 14:22
    No. 97

    주인공을 이용해 먹으려고 했다.
    차도살인.

    쳐죽이는게 정상.

    찬성: 3 | 반대: 1

  • 작성자
    Lv.41 가면라이더
    작성일
    24.09.11 18:07
    No. 98

    그냥 책임감에 무너지고 독재가 맞다고 합리화하는 흔한 군상인 거 같은데?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68 갈매기와책
    작성일
    24.09.11 19:41
    No. 99

    워킹데드 주인공이 윤리 때문에 힘들어 했던게 떠오르네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63 knf
    작성일
    24.09.15 17:01
    No. 100
  • 작성자
    Lv.99 go*****
    작성일
    24.09.16 02:13
    No. 101

    아포칼립스 상황 벌어지면 뒤에서 수근거리고 사람들 선동할 인간들 딱 댓글만 봐도 티난다 ㅋ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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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034. 청어와 메기, 그리고 상어(2) +54 24.09.04 18,745 653 15쪽
33 033. 청어와 메기, 그리고 상어 +56 24.09.03 19,215 726 15쪽
32 032. 뉴페이스(3) +53 24.09.02 19,717 683 17쪽
31 031. 뉴페이스(2) +44 24.09.01 20,085 679 18쪽
30 030. 뉴페이스 +26 24.08.30 20,483 701 16쪽
29 029. 읍내 진입(3) +37 24.08.29 20,095 750 15쪽
28 028. 읍내 진입(2) +29 24.08.28 20,171 721 15쪽
27 027. 읍내 진입 +35 24.08.27 20,487 679 15쪽
26 026. 몰이사냥(3) +25 24.08.26 20,298 697 13쪽
25 025. 몰이사냥(2) +27 24.08.24 20,782 652 14쪽
24 024. 몰이사냥 +10 24.08.23 20,733 631 13쪽
23 023. 게임의 활용(2) +22 24.08.22 20,771 683 13쪽
22 022. 게임의 활용 +15 24.08.21 20,939 623 15쪽
21 021. qqq를 구하라(3) +23 24.08.20 20,830 66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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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019. qqq를 구하라 +22 24.08.17 21,364 63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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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017. 거주민 입성(2) +26 24.08.15 21,350 64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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