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실종 부재 선고신고서」
“후우······.”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서류를 보자 한숨이 나왔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평범하고 단란했던 우리 가족.
군대를 제대할 때 즈음, 이 평범한 일상은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해자와의 긴 소송에 아버지는 매일 밤낮을 술로 지새우셨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무언가에 빠져 전국을 헤매고 다녔다.
어느 날, 아버지는 오랜만에 술에 취하지 않은 멀쩡한 모습으로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드디어······ 드디어 방법을 찾았다, 아들! 이 애비가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마. 우리가 행복했던 그때로!”
누군가에게 또 사기를 당하신 게 틀림없다.
그렇게도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으셨던 걸까.
아버지는 어디선가 주워온 낡은 책 수십 권과 함께 방에 틀어박혔다.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하룻밤 사이 실종된 아버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도움을 청할 친척조차 없던 나는 완벽하게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언제까지나 슬퍼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우선 먹고는 살아야 했다.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중소기업 영업직에 들어갔다.
주중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아버지를 찾아 전국을 들쑤시며 다녔다.
아버지의 부재를 느낄 새도 없이 일은 정신없이 몰아쳤다.
- 김 과장, 작년 실적 정산 올라왔는데, 올해도 역시 김 과장이 전국 탑이네! 잘하면 최연소 차장 달겠어? 한잔해야지?
휴대폰에 깨똑이 울렸다.
상념을 지우기 위해 몰두했던 영업은 내 천직이었는지 전무후무한 실적을 기록했다.
그렇게 실종 10년이 되는 날. 바로 오늘. 경찰에서는 실종선고서를 법원에 제출한 뒤, 사망으로 선고받기를 권유했다.
‘아니, 절대 그렇게 가셨을 리가 없다.’
누구보다 가족애가 넘쳤던 아버지가 나를 그냥 두고 잠적했을 리가 없다.
나는 식탁 위에 쌓여있는 책을 집어 들었다.
50권에 가까운 책이다.
저자의 이름도, 출간된 적도, 제목조차 없는 무협지.
아버지가 가져올 때부터 누렇던 책은, 오랜 세월을 증명하듯 조금씩 삭아있었다.
‘이런 책을 어디서 구하셨을까?’
혹여 아버지의 실종에 대한 단서가 있을까?
수 천 번을 샅샅이 읽었다.
‘그런데 이거 무협지라기보다는······. 설정집인가? 이러니 출간도 못 하고 망했지.’
책을 집어 들자 수마가 찾아왔다.
깜빡 잠이 들었을까.
귓가에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이, 이놈이? 구가야! 이리와 봐! 이, 이놈 눈이 돌아왔다! 정신이 들었어!”
“뭐라고? 대체 어떻게······. 광가야! 네놈 정성이 하늘에 닿은 모양이다!”
“푸헐! 그게 어찌 오롯이 나만의 정성이었겠느냐? 네놈의 그 천기인가 뭔가가 들어맞은 것 아니겠느냐?”
“으하하하! 그런데······. 왜 아무 말이 없는 건가?”
눈앞에는 웬 노인 두 명이 날 바라보며 기쁨의 눈물을 터트리고 있었다.
열 살의 몸.
나는 무림에 떨어졌다.
주인공도, 악역도 아닌, 길가에 널린 평범한 어린아이로.
* * *
‘대체 이곳은 어디일까.’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상념에 잠겼다.
뜬금없이 열 살 아이의 몸으로 변했다.
실종의 단서를 찾으려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아버지도 이 세상에 계신 걸까?’
산을 내려가 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없다.
답답한 마음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명아! 나무는 다 했느냐?”
첩첩산중.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만장절애가 삼면을 둘러싼 작은 분지.
이곳이 나와 노인 둘이 사는 작은 지옥이다.
소박하게 지어진 초옥 안에서 걸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 했어요!”
“그럼 땅은 잘 골라놓았느냐? 봄에 이것저것 심어 먹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
“다 했다고요!”
“빨래는 했느냐?”
“아, 다 했다고!”
뻐억!
‘커헉.’
털썩.
어디선가 돌멩이가 날아와 복부를 후려갈겼다.
“······요.”
“에잉. 애새끼가 좀 크더니 이제 반항도 하고 말이야. 클클.”
집 안에서 혀를 차는 목소리와 함께 시야가 아득해졌다.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새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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