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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케이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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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최근연재일 :
2023.05.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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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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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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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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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글자
10쪽

9장. 캬티냐 기지(4)

DUMMY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풀로 다가갔다. 풀의 반대쪽 건너편에 몰려있던 우르인간들이 우리를 쳐보았다. 그들이 금방 달려들 것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우르인간들의 시선은 대원들의 헬멧을 벗길 때의 무심한 살기, 그래서 더 오싹했던 우르인간과는 달랐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관한 잔상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르인간과 우리 사이에 풀이라는 장애물이 있다는 것 외에도 그런 느낌이 심리적인 여유를 주었다.


나는 건너편을 경계하며 풀에 다가갔다. 풀은 순전히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아주 넓은 얼음 구덩이였다. 안쪽으로 갈수록 천장이 낮아지며 풀이 끝나고 우르인간이 모여있는 곳 너머는 완전히 어둠에 묻혀 있었다.


우리가 서있는 쪽의 천정에는 길이가 5미터는 될 것 광파발생기 4대가 좌우로 달려있었다. 얼음 천정에 설치하느라 고생 꽤나 했을 것 같았다. 풀은 잠수정이 들어왔던 동굴과 연결되어 물이 오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광파에 취한 우르를 끌어들인 것도 그 길을 통해서였다. 그 물길이 나있는 쪽에 특수강으로 만들었다는 철창의 일부가 뒤틀어져 물위에 나와 있었다. 끌어들인 우르를 가두기 위해 설치한 모양이었다. 그런 것으로 우르를 가둬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게 놀라웠다.


김철수와 미찌코도 조용히 풀 가장자리로 다가왔다. 풀 건너편의 우르에게 신경의 절반이 가 있는 채로 우리는 조심스레 물속을 드려다 보았다. 뭔가가 물속에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김철수가 물속으로 랜턴을 비추었다. 광량은 빈약한데 반해 물에 깃든 어둠은 강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깊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물속에 들어있는 것을 너무나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옅은 베이지 색 물질들이 겔 상태로 엉겨있었다. 그 겔 바로 아래에 거대한 베이지색의 물체가 나직이 꿈틀대고 있었다. 우르였다. 피부는 거칠었고 매끄러운 광택도 없었지만 작게 움직이고 있는 건 분명 우르였다.


“우르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물 가까이에 머리를 댔다. 우르가 솟구쳐 오르거나 몸채찍이 날아올 수도 있었지만, 작게 꿈틀대는 우르의 모습에 안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였다.


“겔 같은 것들은 뭐지? 우르가 분해된 건가?···”


김철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아예 풀 가장자리의 얼음위에 쭈그리고 앉았다. 얼음에 미끄러질 수도 있지만 김철수는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 나는 겔을 가만히 보며 대답했다.


“우르는 그대로입니다. 바다 속의 유기물이 엉겨 붙어 겔화가 된 것 같습니다. 잠수정으로 탐사하면서도 뭉쳐진 유기물들을 보지 않았습니까?”


“그럼 우르인간은 겔이 뭉쳐져 만들어지는 걸까요?”


나는 김철수의 질문을 들으며 물속의 우르에 눈을 모았다. 우르의 몸체 여기저기가 두드러기처럼 부어올라 있었다. 부어오른 주위에는 겔이 붙어있었다. 빛이 약하고 조사되는 범위도 작아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풀어 오른 형태는 분명 인간을 닮아 있었다.


“저 부은 모양을 보십시오. 사람 형태지 않습니까? 우르인간은 우르에게서 분리되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내 목소리가 떨렸다. 김철수도 나와 같은 곳을 보았다.


“으음. 그렇네요. 그렇다면 아마 겔은 영양분 같습니다. 그런데 유로파의 바닷물은 유기물이 풍부하다해도 저런 겔은 없지 않았어요?”


“그렇습니다. 저런 겔은 이 풀에서 처음 봅니다. 어쩌면 이 안에 잠겨 있는 우르가 유기물을 엉기게 하는 물질을 분비해 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김철수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미찌코는 곰팡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연구 주제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찌코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곰팡이들이 물에 떠있기는 하지만 퍼지지는 못하고 있네요.”


미찌코의 말처럼 곰팡이가 붙은 겔들은 보이지 않는 장막이 있는 듯 건강한 겔 주변을 부유할 뿐이었다. 나는 떠오르는 생각을 말했다.


“그 자벌레 같았던 우르 조각도 몸에 붙은 곰팡이를 치료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지도 모르겠어요.”


김철수가 자신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얘긴데···”


“페르몬에 의해 수놈이 끌려오듯 어떤 화학물질에 의해 끌려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페르몬이라···, 그 가정을 확장하면 유로파의 우르는 모두 이곳에 모여들 수도 있겠군요.···”


김철수의 목소리가 갑자기 밝아졌다.


“이 겔 말입니다, 이걸 가져가 분석하면 곰팡이에 저항하는 유전자나 화학 물질을 좀 더 빨리 분리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김철수는 머릿속에 떠오는 것이 있는지 말을 끝내지 못했다. 잠깐의 침묵이 있은 뒤 김철수가 말을 이었다.


“어쩌면 우르가 아니라 곰팡이의 어떤 성분이 겔을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지도 몰라요.”


미찌코는 김철수의 말에 찬성하다는 듯 ‘음음’ 하는 소리를 내며 부유하는 곰팡이를 따라 풀의 한가운데로 랜턴을 비추다 짧은 비명을 질렀다.


“저기 가운데 떠있는 건 뭐죠?”


우리는 미찌코가 보고 있는 쪽을 보았다. 허연 물건이 물 밖으로 반쯤 나와 있었다. 물건의 색과 형태가 왠지 눈에 익숙했다.


“저건 우주복이요. 우주복.”


김철수가 알았다는 기쁨에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갑작스레 일련의 그림들이 그려졌다. 미찌코가 경악하며 말했다.


“그럼 이 풀에 우리 대원들의 시체가 있단 말이에요? 그들은 모두 좀비가 되지 않았나요?”


“우르의 몸에 파묻혀 있던 대원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과정에서 인간의 유전자가 우르에게 전해진 것 같습니다.”


미찌코가 작은 한숨을 쉬며 김철수를 노려봤다.


“유로파에 이 같은 겔이 있다는 보고는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인간이 기지를 만들어 실험했던 곳에서 이런 겔이 발견되었어요. 우리가 유로파의 생태계에 큰 변화를 일으킨 거예요. 바로 이 캬티냐 기지에서요.”


김철수가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관리를 잘못해 이런 겔이 만들어졌다는 겁니까?”


“김 이사님이 이곳에서 진균류도 실험했지 않아요?”


“난 관리를 철저히 했다고요. 그리고 풀에 가둔 우르에게 진균은 테스트하지도 않았고요.”


미찌코와 김철수가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 동안 나는 풀에서 눈을 들어 건너편의 우르인간들을 보았다. 우리를 계속 보고 있는 건 알았지만 그사이 시선의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세포에 각인된 정보들이 서서히 깨어나며 세상을 오염시킨 인간이 눈앞에 있다는 걸 자각 하는 모양이었다. 이제 공격성이 일깨워질 일만 남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그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몸에 소름이 일었다.


“분위기가 이상해요. 빨리 도망가야 합니다.”


내가 급하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뭐라고요?”


김철수가 놀라면서도 바로 움직이지 않자 나는 더 초조해졌다.


“건너편 우르인간들이 시선이 호기심에서 무감각으로 달라졌단 말입니다. 인간을 죽이던 우르인간과 같아졌어요. 빨리 잠수정으로 가야 합니다.”


“지금은 안 돼. 저 겔과 물을 가져가야지.”


“담을 용기도 없지 않습니까? 머뭇거리다간 죽습니다.”


내가 말하는 사이 우르인간이 몸을 바로세우고 있었다. 잠재되어 있던 의식이 깨어나 우리가 누구고 뭘 해야 할지 확실히 깨달은 모양이었다. 가장 멀리 있던 우르인간이 몸을 움직이며 앞쪽으로 몇 걸음 뛰어나온 순간 안쪽 조명등이 몇 개 켜졌다. 우르인간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빛을 보고는 동작을 멈추었다.


“왜 불이 켜졌죠?”


“모르겠어요. 우르인간이 동굴 안쪽의 전기선을 건드린 모양이에요.”


“지금이 기회입니다. 빨리 잠수정으로 뛰어요. 빨리!”


그러나 내가 말하면서도 몸은 바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동굴 안쪽이 밝아지며 온갖 것이 쌍인 무더기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유벤타 공장에서 가져간 것들이었다. 심지어 재단의 4족 로봇 다리까지 보였다.


“우르인간이 노획품처럼 가져간 것을 저기에 모두 쌓아놓았군.”


김철수가 기가 막힌다는 듯 말하자 미찌코가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그럼 유벤타 공장을 습격했던 우르인간들이 여기에 있단 말이에요?”


미찌코의 질문에 번개 같은 것이 나의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김철수도 멍해져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공포가 매서운 바람처럼 몸을 덮쳤다. 나는 간신히 힘을 내어 말했다.


“그렇다면···여기가 우르인간들의 기지에요···”


김철수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대꾸했다.


“맞아요. 여기가 단순히 우르인간이 만들어지는 곳이 아니라 그놈들의 집 같습니다.”


미찌코가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저쪽의 우르인간은 그것들이 아닌 것 같고, 그럼 우릴 죽이려들던 그 우르인간들은 어디에 간 거예요?”


김철수가 정신을 가다듬었는지 무거운 소리로 대답했다.


“어쩌면 유벤타 공장을 공격하러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돌아오면 우린 끝이에요.”


김철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빛에 적응되었는지 우르인간이 이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모두 같이 일어섰다. 이제 벌어질 일은 분명했다. 나는 공포에 몸이 떨렸다. 김철수도, 미찌코도 상황이 위급하다는 걸 알았다.


“빨리 잠수정으로 갑시다. 그것만이 살길이에요.”


내가 몸을 돌렸다.


“아, 잠깐.”


김철수가 나를 세웠다. 나는 김철수가 보고 있는 건너편을 보았다. 우리에게 달려올 자세를 취했던 우르인간의 시선이 그들의 왼쪽으로 가있었다. 우리도 우르인간이 보고 있는 곳을 보았다. 우르인간이 있는 곳에서 왼쪽 끝, 우리로서는 대각선 쪽에 로봇개 두 마리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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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에필로그 +12 23.05.21 233 28 9쪽
169 16장. 죽음과 변용 (13) 23.05.21 141 14 16쪽
168 16장. 죽음과 변용 (12) 23.05.15 236 11 12쪽
167 16장. 죽음과 변용 (11) +2 23.05.12 128 16 12쪽
166 16장. 죽음과 변용 (10) 23.05.08 137 14 11쪽
165 16장. 죽음과 변용 (9) 23.05.05 146 11 11쪽
164 16장. 죽음과 변용 (8) +1 23.05.01 150 15 13쪽
163 16장. 죽음과 변용 (7) +2 23.04.28 153 15 13쪽
162 16장. 죽음과 변용 (6) 23.04.24 142 16 13쪽
161 16장. 죽음과 변용 (5) 23.04.21 158 11 13쪽
160 16장. 죽음과 변용 (4) 23.04.17 171 14 11쪽
159 16장. 죽음과 변용 (3) 23.04.14 164 13 13쪽
158 16장. 죽음과 변용 (2) 23.04.11 159 13 12쪽
157 16장. 죽음과 변용 (1) +1 23.04.07 156 14 15쪽
156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6) +1 23.03.31 189 15 13쪽
155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5) 23.03.27 151 1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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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3) 23.03.20 156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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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1) 23.03.13 151 15 11쪽
150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0) +1 23.03.10 162 1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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