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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케이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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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최근연재일 :
2023.05.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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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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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48,903

작성
22.09.0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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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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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글자
10쪽

9장. 캬티냐 기지(3)

DUMMY

미찌코가 손으로 더 안쪽을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김 박사는 이 박스를 잠수정에 옮겨놓고 기다리세요. 그리고 김 이사님과 나는 다른 건물을 계속 수색하죠.”


김철수는 이의를 말하지 않았다. 미찌코가 마음껏 조사하게 내버려두려는 의도 같았다. 나도 둘을 따라 더 깊게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나는 나뒹구는 가대차를 발견하고 박스를 차곡차곡 쌓았다. 조명등의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완전한 암흑이었다. 거기에 사방이 부서진 시설물들의 잔해였다. 그런 곳을 혼자 다니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해도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가대차를 밀고 잠수정으로 향했다. 얼음 바닥이 미끄럽지도 거칠지도 않아 가대차를 수월하게 밀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김철수와 미찌코가 걸어간 쪽에서 조명등 몇 개가 더 켜졌다. 김철수가 또 배전반을 찾아내 내려진 스위치를 올린 모양이었다. 얼음이 그 빛을 반사시켜 공간은 조금 더 밝아졌다.


그러나 빛이 약해 어둠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오히려 창백하리만치 음산한 동굴의 분위기를 더 고조시켰다. 긴장과 두려움 속에 잠수정에 도착해서는 잠수정에 올랐다 내리기를 다섯 번이나 해야만 했다. 다섯 개의 박스를 혼자 날라야 했던 것이다.


잠수정의 빈 공간에 박스를 다 재어놓자 다시 나가기가 싫었다. 그러나 이 유명한 카티냐 기지에 와서 멍청히 잠수정 안에 있기는 그랬다. 나는 용기를 내 다시 잠수정 밖으로 나갔다.


“김철수 박사, 미찌코 박사, 어디에 있나요?”


동굴 아득한 안쪽에 흔들리는 불이 보며 나는 통신기로 김철수와 미찌코를 불렀다.


“유벤타 실험실에서 100미터 정도 들어왔어요.”


김철수가 묵직한 소리로 바로 대답을 했다.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가죠.”


나는 아까 왔던 길을 되밟아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걸었다. 오른쪽 어둠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처음은 무시했으나 잔해를 지나 동굴 안으로 갈수록 어둠 속의 움직임은 더 확실했다. 움직임은 거칠지도 급하지도 않았다. 어둠은 스멀거리듯 흔들렸고 그때마다 공포가 등을 타고 흘렀다. 나는 조용히 서서 어둠이 흔들리는 쪽으로 갑자기 랜턴을 비췄다.


불이 비추진 곳에 거대한 자벌레 같은 생물이 몸을 굽혔다 뻗으며 기고 있었다. 굵기는 사람 몸통의 두세 배는 되는 것 같았고 길이는 대충 보기에도 5미터는 넘을 것 같았다. 나는 놀라 숨을 멈추었다. 내가 더 놀란 것은 검은 곰팡이가 자벌레 같은 생물을 덮고 있어서였다.


빛이 닿자 생물체는 움찔거렸다. 생물체는 몸을 꼿꼿이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힘에 붙인 듯 다시 땅에 늘어졌다. 흩어진 잔해 옆에서 꿈틀거림이 몇 차례 있은 후 생물체는 지친 듯 이동을 멈췄다. 몸을 덮은 곰팡이 사이사이로 희끄무레한 베이지 색이 랜턴의 빛을 반사했다. 그것이 본래의 몸 색깔이었다. 곧 우르의 색깔이었다.


나는 이 시설물들을 내리치고 파괴했을 기다랗고 둔중했을 우르의 몸채찍을 떠올렸다. 그 채찍 일부분을 떼어놓는다면 내 눈앞에서 곰팡이에 덮여 늘어져있는 생물체와 같을 것이다. 그랬다! 그것은 분명 몸채찍의 일부분이었다.


나는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생물체로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곰팡이가 분명히 보였다. 곰팡이에는 윤기가 흘렀고 빽빽하게 자랐다. 의문이 내 머리를 채웠다. 우르는 자체의 면역력으로 곰팡이를 억제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이건 뭔가?


생물체는 불빛을 피하려는 듯 나와 멀어지는 방향으로 다시 움직였다. 생물체는 느렸고 지쳐보였다. 이것이 정말 우르의 몸 조각이라면, 유로파를 지배하는 생물의 위세는 어디로 갔는가! 나는 밀려드는 이상한 서글픔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멈추자 생물체도 멈추었다. 움직이지 않는 생물체를 보자 바로 전까지의 슬픔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것을 채집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욕망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5미터 길이의 사람만큼 굵은 것을 잡을 도구도, 넣을 만한 것도 없었다. 갑자기 통신기가 시끄러워졌다.


“뭐 하는 거예요?”


“샘플을 찾는 거지 뭘 하겠어요?”


김철수는 계속 능글거리는 투로 미찌코를 상대했다.


“하지만 손에 들었다 놓는 건 백신이나 주사약을 담는 작은 병이지 유벤타 알파의 샘플을 담을만한 크기는 아니잖아요?”


“급하면 연구원들이 아무 병이나 담을 수 있지 않겠어요?”


“아뇨, 그건 규정에 어긋나요. 브랜드 관리와 정확한 분별을 위해 유벤타는 무조건 신디케이트가 정해놓은 병에 담게 되어 있어요.”


미찌코의 참견이 지겨운 듯 김철수는 말을 돌려 나를 찾았다.


“김 박사, 거기서 뭐하는 거요?”


“새로운 생물체를 발견했습니다.”


“뭐? 새로운 생물체?”


“그런데, 이게 우르의 일부분 같습니다.”


“우르의 일부?”


놀라는 소리가 멈추고 김철수와 미찌코의 불빛이 내게 향했다. 그 진동을 감지 했기 때문일까. 생물체는 더 어두운 안쪽으로 황급히 기기 시작했다. 생물체가 접고 펼 때마다 그 길이만큼 내게서 멀어져갔다. 나는 서둘지 않았다. 발에 걸리는 잔해들이 거추장스러웠고 도망치지도 못할 것 같은 생물체를 급하게 쫓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천천히 생물체를 따라갔다. 곧 김철수와 미찌코가 내 뒤에 붙었다.


“어디, 어디, 생물체가 어딨어?”


나는 앞으로 불빛을 비추었다. 미찌코가 먼저 낮은 비명을 질렀다.


“저 검은 것은 곰팡이가 아니에요?”


“저렇게 곰팡이가 슬은 개채가 있다니···”


김철수가 앞으로 나갔다. 나는 얼른 김철수의 팔을 잡았다.


“우르라면 공격할지도 모르잖아요? 위험합니다.”


김철수가 걷는 속도를 줄였다.


“저게 우르라고? 아닌 것 같은데···”


“아닐지도 모르죠. 하지만 우르의 채찍을 생각해 보십시오.”


김철수는 긍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대신 김철수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저렇게 작으면··· 새끼인가···”


“곰팡이 때문에 떨어져 나온 우르 조각 같습니다.”


김철수가 빠르게 감을 잡았다.


“아하, 그럴 수도 있겠군. 감염이 심해 면역 효과가 떨어지는 부분은 스스로 떨어져 나가거나 떼어버리는 거야. 그럼 본체는 적은 양의 방어물질만 가지고도 효과적으로 침입자에 대응할 수 있겠지.”


생물체를 따라가던 김철수는 랜턴을 간간히 생물체에 비췄다.


“저것은 우르처럼 빛에 반응하지 않는군.”


“곰팡이가 덮여 있잖아요?”


김철수의 의문에 미찌코가 짧게 대답했다.


“맞아. 곰팡이에 감염된 우르는 광파발생기에 반응하지 않지.”


우르 조각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옆으로 빠지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쪽은 우리가 유벤타 알파를 찾았던 곳과는 다른 갈래였다. 김철수가 긴장한 소리로 말했다.


“이건 우르를 가두는 풀로 가는 길인데···”


미찌코가 놀라 물었다.


“그럼 우르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김철수는 대답하지 않고 바싹 긴장된 얼굴로 우르 조각을 따랐다. 우리는 아주 가루가 되다시피 한 컨테이너 잔해들을 지났다. 우르가 난동을 부렸을 때 먼저 공격을 받은 곳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나갈수록 동굴 천정은 조금씩 낮아졌다. 동굴은 부드럽게 휘어졌고 우리는 얼음벽을 따라 모퉁이를 돌았다. 천정은 낮았지만 폭은 확 넓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랜턴 빛이 닿는 곳에 유로파의 바닷물이 비춰졌다. 풀이었다. 언젠지 모를 옛날에 들어왔던 물이 갇힌 곳이었다. 풀은 잔물결도 없는 연못처럼 고요했다. 우르조각은 조용히 그 물속으로 들어갔다. 김철수가 걸음을 멈추고 랜턴으로 얼음벽을 비추었다.


“여기 쯤 풀의 메인 전원이 있는 배전반이 있는데···”


김철수가 랜턴을 비춘 곳에 박살이 난 배전반이 있었다.


“빌어먹을. 완전히 깨어졌군.”


김철수가 욕설과 함께 혀를 찼다. 김철수는 좀 더 안쪽으로 랜턴의 불빛을 옮겼다. 얼음벽을 따라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또 다른 배전반이 있었다. 배전반이 부서지며 끊어진 전기선이 아래로 쳐져 있었다. 김철수가 걸음을 빨리해 선이 늘어져 있는 배전반으로 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전기선이 빠진 단자가 보였다.


“이건 비상용 예비 배전반인데, 여기만 연결하면 되겠어.”


내가 랜턴을 비추고 김철수가 쳐진 전기선을 들어 올려 부서지지 않은 단자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기대에 찬 눈으로 메인 스위치를 눌렀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풀 주위의 전등 몇 개가 켜졌다. 풀의 전경이 어둑어둑하게 눈에 들어왔다. 우리들 모두가 ‘악’하는 비명을 질렀다.


풀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우르인간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대강 눈으로만 봐도 열 이상은 될 것 같았다. 김철수에게서 탄식 같은 혼잣말이 들렸다.


“빌어먹을 우르인간이다.”


우르인간들의 시선이 일제히 빛을 보내는 우리에게로 쏠렸다.


“도망쳐요.”


미찌코가 겁에 질려 소리쳤다.


“잠깐, 잠깐만요.”


내가 황급히 제지했다.


“왜 우르인간이 우릴 공격하지 않죠?”


내 물음에 김철수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우리가 뭔지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도망가야죠.”


미찌코가 다급하게 말했지만 나와 김철수의 다리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풀 가운데서 우르인간의 머리가 올라왔다.


“악”


미찌코가 낮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우르인간은 천천히 허우적거리듯 헤엄을 치며 우르인간이 모인 쪽의 풀 가장자리로 가 얼음위로 올랐다. 물이 떨어지는 몸의 빛깔은 앳되다 할 정도로 신선한 베이지색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막 태어난 우르인간이었다.


“저것은 지금 생겨난 거야.”


김철수가 감탄어린 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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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휴가 등의 사정으로 잠시 연재를 쉽니다. +1 22.07.30 881 0 -
170 에필로그 +12 23.05.21 233 28 9쪽
169 16장. 죽음과 변용 (13) 23.05.21 141 14 16쪽
168 16장. 죽음과 변용 (12) 23.05.15 235 11 12쪽
167 16장. 죽음과 변용 (11) +2 23.05.12 127 16 12쪽
166 16장. 죽음과 변용 (10) 23.05.08 136 14 11쪽
165 16장. 죽음과 변용 (9) 23.05.05 145 11 11쪽
164 16장. 죽음과 변용 (8) +1 23.05.01 149 15 13쪽
163 16장. 죽음과 변용 (7) +2 23.04.28 151 15 13쪽
162 16장. 죽음과 변용 (6) 23.04.24 141 16 13쪽
161 16장. 죽음과 변용 (5) 23.04.21 157 11 13쪽
160 16장. 죽음과 변용 (4) 23.04.17 170 14 11쪽
159 16장. 죽음과 변용 (3) 23.04.14 163 13 13쪽
158 16장. 죽음과 변용 (2) 23.04.11 158 13 12쪽
157 16장. 죽음과 변용 (1) +1 23.04.07 155 14 15쪽
156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6) +1 23.03.31 188 15 13쪽
155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5) 23.03.27 150 15 10쪽
154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4) 23.03.24 145 19 13쪽
153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3) 23.03.20 155 16 12쪽
152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2) +1 23.03.17 161 15 14쪽
151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1) 23.03.13 150 15 11쪽
150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0) +1 23.03.10 161 14 14쪽
149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9) 23.03.06 183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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