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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케이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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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최근연재일 :
2023.05.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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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48,903

작성
23.04.11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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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6장. 죽음과 변용 (2)

DUMMY

2.

신디케이트와 재단의 합병 발표는 지구를 흔들었다. 달, 화성, 그리고 목성의 유로파, 토성과 해왕성의 전진기지와 연구기지까지 갈 수 있는 모든 곳에 가 있는 인간은 누구나 유벤타 덕을 보고 있었기에 태양계가 흔들렸다고 쓰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재단 관련 회사의 주식은 폭등하고 신디케이트 관련 제약주들은 폭락했다. 유벤타 가격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다 결국 7,8배 상승 수준에서 안정되어 갔다. 알렉시아의 예측대로였다.


유회장은 미소를 지었을지 모르지만 신디케이트의 직원들은 깊은 패배감에 빠져버렸다. 신디케이트와 재단의 합병은 유기체인 인간이 기계인 로봇에게 졌다는 의미였다. 물론 합병 비율이 5:5로 결정되었기에 합병이 꼭 패배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신디케이트 직원들은, 특히 최접점에 있었던 유로파의 근무자들은, 인간의 영속성을 실험하고 로봇에 비해 우월성을 증명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교육되어졌기에 합병 비율은 위안거리가 아니었다.


거기에 미래가 확실한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샘슨과 켐젠의 자리도 없을 질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래는 유로파의 사람들을 더 침울하게 했고, 힘 빠지게 했다. 반도 남지 않는 공장 건물에서 들리는 것은 조용히 짐 싸는 소리, 누가 해고되고 누가 남을 거라는 근거 없는 추측을 수군거리는 소리뿐이었다.


한편으로, 영원한 젊음을 주기에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만 했던 유벤타 공장은 패배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이제 누구도 무너지고 깨어진 공장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토록 중요하고, 소중했던 것이 이토록 무관심한 존재가 되어버린 예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인지 겔이 된 우르가 되어 물러가고, 합병이 발표된 뒤 켐젠과 샘슨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철수 순번을 정하는 것이었다. 김대주와 임진우는 1번과 2번으로 1그룹이었다. 보안요원은 마지막 그룹이었다. 나는, 별로 향유하지도 못한 부장이라는 직위 때문에 마지막 그룹 중에서도 마지막에 속하게 되었다.


나와 같이 왕복선에 탈 사람은 책임자인 클라크와 켐젠, 샘슨이었다. 그리고 1그룹이었던 장영이 우리 그룹에 자신 참여했다. 본인이 원해서라고 했지만, 할일을 다한 WHO의 방역관이 최후까지 남을 이유가 없다는데서 모두가 의아해했다.


미찌코는 1그룹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눈치가 보였는지 자신과 일했던 연구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나와 같은 최후의 그룹으로 옮겼다. 김철수도 1그룹이었다. 그는 갑자기 연구실에 박혀 나오지 않다가 뭔가 실험할게 있다며 역시 마지막 그룹으로 옮겼다. 그렇게 유로파의 핵심인력은 마지막 철수 그룹으로 모아졌다.


대외적으로는 책임감 있게 비추어졌을 테지만 내부적으로는 각자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일단 목성을 돌고 있는 보급선에 모두를 태운 뒤, 한 달 빨리 지구를 출발한 다음 보급선과 화성 근방에 만나 인원을 나누기로 했다. 그래야만 가까스로 산소와 식량이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목성을 돌고 있는 보급선에 유벤타를 싣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김대주와 임진우는 이런 뉴스를 서둘러 타전했다. 이런 긴급 철수가 공식적으로는 비용 절감 차원이라 했지만, 우르 때문이라는 건 모든 지구인이 다 눈치채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값싸게 유벤타를 사게 될 일은 이제 로봇에게 맡겨졌다.


단 하루 사이에 신디케이트가 아니라 재단이 인류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는 동안 지진이 세 번 있었다. 얼음이 흔들리고 분출공이 깨어지며 뿜어져 나온 물은 얼음이 되어 흩어졌지만 우르는 나오지 않았다.


우르를 녹여 내리게 할 정도로 강력했던 새 진정제 때문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모두가 우르의 공격을 두려워했다. 목숨처럼 여겼던 공장을 박살내고 겔이 되어 허물거리는 존재로 사라졌지만 다음에 그들이 나타났을 때, 새 진정제를 이겨내는 생물로 변해 있을 거라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통제실 앞 복도에서 임진우를 만났다. 임진우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번 합병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어요.”


“할 얘기가 없네요.”


나는 그가 싫었다. 그 때문에 내가 얼마나 어려운 입장에 놓였는가를 생각하면 한 대 때리기라도 하고픈 마음이었다. 임진우는 내 기분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질문했다.


“할 말이 없다고 하지 마시고요, 그래도 최초의 우르 사냥꾼이지 않습니까? 이제 로봇이 우르를 잡는다고 하던데, 최초의 우르 사냥꾼으로서 감상이 어떠합니까?”


감상이 어떠하냐고? 유로파는 난장판이 되었고, 난 생계 빠듯한 시간강사로 돌아가게 생겼는데 감상이라! 어쩌면 유벤타를 사지 못해 바로 늙은이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감상이 어떠하냐고? 나는 픽 웃고는 그대로 돌아서 통제실로 들어왔다. 몸을 돌릴 때 눈에 들어온 임진우의 표정은 똥이라도 씹은 것 같았다.


어쩌면 기자 정신에 가장 충실했던 사람은 임진우였다. 어리석은 자만이 김철수와 신디케이트의 의도대로 적절한 시기까지 유로파의 상황을 가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사실 우리 모두가 어리석었다. 우린 신디케이트의 힘을 그토록 믿고 있었다.


하지만 유로파의 사람들은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에 대한 희생양을 찾고 싶어 했다. 그래야만 패배와 좌절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라도 있었던 것이다. 그 희생양이 임진우였다. 임진우는 단번에 유로파의 왕따가 되었다. 누구도 그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나에게 한 인터뷰 요청이 최후의 시도였고 나마저 그를 걷어차 버렸다. 그래서 샘슨이 1번으로 보급선을 타도록 요청했을 때 임진우는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치를 보다 특종을 놓친 김대주의 처지도 좋지 않았다. 진실이 드러났기에 언론사나 신디케이트 모두에게 두 기자는 의미 없는 존재였다. 마지막 인터뷰 시도가 실패하고 30분 뒤, 임진우는 보급선으로 가는 왕복선을 탔다. 김대주도 같은 왕복선을 탔는데, 좁은 왕복선에서, 또 보급선에서 얼굴이 마주칠 때 마다 얼마나 어색했을까 생각하면 우스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 또한 그 보급선에 탄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웃음을 거두기는 했지만 말이다.


합병이 발표된 뒤부터 김철수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버렸다. 이 유로파에서 주인처럼 굴었던 사람이 연구 프로젝트 하나를 맡는 책임자로 좌천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우리는 김철수가 실의에 빠져 있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천재라는 걸 잊고 있었다. 그는 연구실에서 자신만의 진정제를 연구하고 있었고 그것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 물론 샘슨의 지시에 의해 미찌코의 새 진정제는 열심히 제조되고 있었다. 새 진정제가 우리의 최후 무기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르와 우르인간은 유벤타 공장의 인력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 때 나타났다. 겔 상태로 우르가 사라진 뒤 거의 하루가 지나서였다. 짧고 약한 지진이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르 두 마리가 분출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나는 그때마침 통제실에 있었다. 우르 출현 경보를 냈지만 김철수는 오지 않았다. 클라크과 샘슨이 통제실을 지휘했다. 공장은 생산불능이 되었고 인원은 순번에 따라 철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공장을 지키기 위해 싸울 이유가 없었다. 클라크가 불만스럽게 욕을 했다.


“빌어먹을. 아무리 돈 받고 싸우는 처지지만 왜 우리가 마지막으로 철수해야 해?”


샘슨이 묵묵히 대답했다.


“신디케이트의 직원들을 끝까지 보호하는 게 임무지 않습니까?”


“저런 괴물에는 우리도 방법이 없지 않으니 그렇지. 그나저나 다음 왕복선은 언제 온답니까?”


“보급선에 달린 왕복선은 연료를 모두 소진했고 제임스 기지의 왕복선은 연료를 다시 채워야한답니다.”


“빌어먹을. 그럼 저 괴물들이 얼음위로 올라오더라도 당장 철수 할 수 없단 얘기잖소?”


“그러니 여기서 최대한 버텨야죠.”


“지금 있는 인원을 모두 제임스기지로 철수하려면 여러 번 오가야 할 텐데.”


“지금 아직도 보안요원까지 150여명이 남았습니다. 일곱 차례는 오가야 합니다.”


샘슨과 클라크가 얘기하는 동안에도 우르는 분출공에 서있기만 했다.


“저 우르는 정상인 것 같은데. 하지만 이제 잡을 수도 없고 유벤타를 만들 수도 없으니.”


샘슨이 혀를 찼다. 나는 정상인 우르는 이제 없다고 믿었다.


“이제 정상이 우르가 있을까요? 모두 서로 유전자를 교환하지 않았을까요? 저렇게 서 있기만 한 하는 게 분명 어떤 목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박사님은 언제나 부정적인 전망만 하시는군요.”


샘슨이 못 마땅한 눈으로 나를 힐끔 보았다.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분출공이 늘어선 유벤타 공장의 리네아 끝에서 다른 우르 다섯 마리가 나타났다. 지난번 공장을 공격했던 세 마리의 우르가 왔던 방향과 같았다. 통제실의 요원이 요란스레 상황을 보고했다.


“17번 분출공 쪽에서 다섯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아아, 다섯 마리···”


샘슨이 찬탄인지 탄식인지 모르게 중얼거리더니 통신기로 김철수를 찾았다. 김철수는 알겠다고 짤막하게 대답만 했다. 우르 다섯 마리, 아니 분출공에 있는 둘까지 합쳐 일곱 마리의 우르를 동시에 보는 건 나도 처음이었다. 우르 다섯 마리가 엇갈려 유벤타 공장으로 오는 모습은 공포를 넘어 장엄하기 조차했다.


“우르인간의 대열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수백 명은 될 것 같습니다.”


통제실 요원의 말대로 다섯 마리의 우르 뒤에 4,5백 명은 될 것 같은 우르인간의 대열이 나타났다. 그들의 대부분은 공장에서 가지고 간 파이프나 쇠 조각이 들고있었다. 우르인간의 숫자에 질렸는지 클라크가 보안요원의 위치를 재차 확인했다.


“우르는 새 진정제로 잡는다 해도 저 우르인간들은 어떡하지. 새 진정제는 얼마나 있나?”


“다섯 마리 분이 있습니다.”


분출공에 서있는 두 마리가 나온다면 끝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샘슨이 공장의 전 인원에게 상황을 알리고 비상대기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통신기로 다시 김철수를 불렀다.


“거의 다 되었으니 잠깐만 기다려요.”


김철수의 통신이 끝나자마자 미찌코가 들어왔다. 샘슨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새 진정제가 다섯 마리 분량뿐이라면서요?”


“그래요. 지금 연구실에 제조중이지만, 쉽지가 않아요.”


미찌코는 우르와 우르인간의 수를 확인하고 표정이 바뀌었다. 1그룹에 그대로 남아 철수하지 않은 걸 잠시라도 후회했을 것이다.


“우르는 그렇다쳐도 우르인간이 문제요.”


클라크의 말을 들으며 미찌코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뭐가 저렇게 많아졌지.”


미찌코의 말대로 우르인간은 정말 많아졌다. 말이 4,5백명이지 대열을 지어 행군하는 모습은 정말 압도적이어서 사람을 기죽게 했다.


공장으로 다가오는 우르 중 가장 외쪽의 우르가 방향을 틀어 고속도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가장 오른쪽의 우르도 방향을 살짝 바뀌었다. 동시에 우르인간의 대열도 중앙과 좌우로 나뉘었다. 샘슨이 놀랐다.


“저것들이 왜 갈라졌지.”


클라크가 별안간 외쳤다.


“포위작전이다. 저놈들이 공장을 포위할 생각이야.”


그러고보니 고속도로 쪽으로 오는 놈은 유벤타 공장의 정문을, 오른쪽 우르는 유벤타 공장의 핵발전소 쪽으로 접근하려는 의도가 그려졌다. 공장이 포위된다면 착륙장으로 가는 길이 막히게 된다. 공포의 전율이 내 등을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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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에필로그 +12 23.05.21 234 28 9쪽
169 16장. 죽음과 변용 (13) 23.05.21 143 14 16쪽
168 16장. 죽음과 변용 (12) 23.05.15 237 11 12쪽
167 16장. 죽음과 변용 (11) +2 23.05.12 130 16 12쪽
166 16장. 죽음과 변용 (10) 23.05.08 137 14 11쪽
165 16장. 죽음과 변용 (9) 23.05.05 146 11 11쪽
164 16장. 죽음과 변용 (8) +1 23.05.01 150 15 13쪽
163 16장. 죽음과 변용 (7) +2 23.04.28 154 15 13쪽
162 16장. 죽음과 변용 (6) 23.04.24 143 16 13쪽
161 16장. 죽음과 변용 (5) 23.04.21 158 11 13쪽
160 16장. 죽음과 변용 (4) 23.04.17 171 14 11쪽
159 16장. 죽음과 변용 (3) 23.04.14 165 13 13쪽
» 16장. 죽음과 변용 (2) 23.04.11 160 13 12쪽
157 16장. 죽음과 변용 (1) +1 23.04.07 156 14 15쪽
156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6) +1 23.03.31 189 15 13쪽
155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5) 23.03.27 151 15 10쪽
154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4) 23.03.24 146 19 13쪽
153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3) 23.03.20 157 16 12쪽
152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2) +1 23.03.17 163 15 14쪽
151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1) 23.03.13 151 15 11쪽
150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0) +1 23.03.10 162 14 14쪽
149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9) 23.03.06 185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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