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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최근연재일 :
2023.05.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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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903

작성
23.05.05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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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6장. 죽음과 변용 (9)

DUMMY

우르는 몇 초간 가만히 있었다. 앞으로 가야할지 진동이 일어난 곳으로 방향을 틀어야할지 고민하는 듯 했다. 어쩌면 시각 정보와 촉감 정보 중 어느 것을 우선적으로 믿어야 할지 판단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가장 앞선 우르가 서자 멀찍이서 뒤따르던 우르도 그대로 멈춰 섰다. 클라크가 외쳤다.


“뭐든 좋으니 진동을 일으켜.”


강한 진동이 유인에 더 효과적일까? 생각할 여지도 없이 문건한과 김철수가 얼음조각들을 들어 사방으로 던져댔다. 나도 그들을 따라 얼음을 주워 던지며 궤도차 있는 쪽으로 뛰다시피 걸었다. 한 번 왔던 길이라 처음보다 빨랐지만 바위틈을 헤집고 얼음기둥을 돌아야 하는 등 길이 너무 험해 생각만큼 전진하지는 못했다.


“우르가 우리 쪽으로 온다.”


목까지 차오르는 숨소리와 함께 클라크의 외침이 들렸다. 방향을 튼 우르가 한 번의 꿈틀거림으로 우릴 따라 잡은 모양이었다. 김철수의 소리가 이어졌다.


“엎드려요.”


나는 반사적으로 얼음위에 몸을 엎드렸다. 몸 위 1미터 정도에서 몸채찍이 지나고 있었다. 얼음위에 엎드린 몸으로 영하 150도의 차가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다. 하지만 난 일어서지 못했다. 우르가 내 위를 지나고 있었다.


내 옆의 얼음바위를 긁듯 지난 우르의 겉살에서 우르인간의 형체가 잡혔다가 살 속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얼음바위의 압력이 모체에서 분리를 막았을 것이다. 우리에겐 정말 다행이었다. 이곳에서 우르인간의 떼에 둘러싸인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우르는 온 만큼 빠르게 우리를 지나갔다. 우린 다시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고 길을 나갔다.


“빌어먹을. 다른 놈들은 착륙지점으로 가고 있어.”


클라크가 욕을 뱉었다.


“하지만 뒤에서 따라오던 놈들이라 시간은 벌었어요.”


샘슨이 말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점 하나가 나타나 감질나게 커지더니 아래에서 하연불빛을 뿜어냈다.


“왕복선이 역분사를 시작했어요. 잘 착륙해야 할 텐데.”


레이저 유도기를 작동했다는 말과 착륙지점의 요원들과 조종사간의 대화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우린 다시 온 힘을 다해 궤도차를 향해 나갔다. 나는 장영이 걱정되었지만 여러 통신들이 오가는 중이라 장영을 부를 수 없었다. 우리를 지나갔던 우르가 멈춰 섰다. 우리는 우르가 간 방향과 갈라져 나갔는데 우르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것 같았다.


“조심해. 진동을 일으키지 마. 우르가 눈치 챈 것 같다.”


클라크의 말이 끝나자마자 통신기에서 심한 잡음이 생겼다. 불길한 느낌이 드는 순간 잡음이 낮아지며 휴먼에이트의 소리가 나왔다.


“아, 아, 마비에서 풀려났어요. 우르를 유인하고 있는 모양인데···, 음···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는 않네요.”


우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통신기의 잡음이 왕복선과의 통신에 방해가 안 되기를 빌 뿐이었다. 휴먼에이트가 몇 차례 더 우릴 불렀다. 우린 억지로 무시하고 궤도차가 있는 곳으로 나갔다.


“아, 저놈들이 왕복선에 얼음바위를 던졌어.”


가끔씩 뒤를 돌아보던 클라크가 탄식을 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며 우린 일제히 뒤로 고개를 돌렸다. 착륙지점에 가장 가까이 간 우르가 몸채찍으로 얼음바위를 감아 앞으로 던졌다. 얼음바위는 마침 내려앉는 왕복선에서 십여 미터 떨어져 공간을 가르며 멀리 날아갔다.


“빌어먹을. 저러다간 왕복선이 얼음바위에 박살나겠어.”


김철수가 부르짖듯 외치는 사이 왕복선은 얼음바위 위에 착륙했다. 우르가 얼음바위를 다시 감아올리는 순간 몸이 굳어지며 얼음바위를 던지지 못했다. 통신기에서 보안요원이 보고했다.


“한 발 남은 진정제로 우르를 쐈습니다.”


“잘했어. 잘했어.”


클라크가 감격스레 칭찬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비된 우르 뒤에서 수 마리의 우르가 왕복선에 접근하고 있었다. 우리 위를 지나갔던 우르도 자신의 실수를 확실히 깨달았는지 몸을 우리 쪽으로 틀었다.


“우르가 다시 온다.”


김철수가 소리치며 얼음바위 틈에 몸을 비집고 달렸다. 나도 김철수를 따라 얼음바위에 긁히며 앞으로 나갔다. 우주복이 찢어지지 않을까 언뜻 걱정이 되었지만 당장은 그런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다. 통신기에서는 알 수 없는 비명소리와 잡음, 휴먼에이트가 짓는 듯 하는 비웃음 그리고 조종사가 탑승을 재촉하는 소리가 섞여 쏟아져 나왔다.


귀가 멍한 가운데 머리위로 얼음바위가 굴러갔다. 몸채찍으로 던진 게 아니라 우르에게 부딪쳐 떨어져 나온 것 같았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위에서 허연 뭔가가 떨어진다고 생각한 순간 억 하는 샘슨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달리며 뒤를 보았다. 우르의 몸채찍이 샘슨의 앞을 내리친 것이다.


샘슨은 아슬아슬하게 몸채찍을 피했지만 클라크, 문건한과 함께 산탄총알처럼 쏟아지는 부서진 얼음조각들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얼음조각은 우주복을 뚫지는 못했다. 하지만 샘슨의 가슴에 충격을 주어 갈비뼈에 부상을 입힌 모양이었다. 샘슨은 잠깐 정신을 잃었다. 문건한이 기어서 샘슨에게 다가갔다.


“움직이지 마. 몸채찍이 또 날아와.”


클라크가 경고하는 사이 이번에는 클라크 뒤쪽의 얼음기둥 위에 몸채찍이 떨어졌다. 큼직한 얼음조각이 클라크와 문건한, 샘슨 위로 쏟아졌다. 우린 얼음바위 사이에 엎드려 꼼짝하지 않고 우르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우르는 몸채찍을 휘두르며 서서히 우리에게서 멀어져갔다. 샘슨이 아픔을 참는 신음소릴 냈다. 우린 얼음조각들을 힘들게 밀쳐내었다. 큰 얼음덩이가 좁아 바위틈에 걸려 떨어지지 못한 것이 우릴 살렸다. 통신기에서는 탑승을 중이라는 소리와 재촉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다른 우르가 또 얼음바위를 던졌습니다.”


보안요원의 말 뒤에 얼음바위가 빗나갔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긴장과 안도가 교차되는 속에 나는 몸을 세웠다. 문건한이 샘슨을 부축해 일으켰고 클라크와 김철수도 부상을 입지 않았다. 우린 진동을 만들지 않으려 조심조심 바위틈을 나갔다.


“탑승 완료. 탑승 완료. 해치 닫습니다.”


마침내 기다렸던 통신이 들렸다. 성공했다는 생각에 힘이 났지만, 이제 우리만 남았다는 것에 마음은 더 초조해졌다. 우리의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 통신기의 잡음 속에서 휴먼에이트의 소리가 들렸다.


“아, 이럴 때는 우르인간이 효율적이야. 마비가 풀리며 살이 흐물거리니 떨어져 나오기도 좋지.”


“빌어먹을. 우르인간들이 떼로 나오겠군.”


김철수가 욕을 하며 뜀박질을 시작했다. 나도 정신없이 그 뒤를 따랐다. 문건한의 부축을 받으며 뒤를 따라오는 샘슨의 신음소리가 간혹 들렸다. 고통이 심하지만 정신력으로 버티는 모양이었다. 김철수는 우리가 왔던 길을 잘도 찾아내었다. 그의 기억력이 그만큼 비상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십 분 가까이 미친 듯 뛰거나 걸어 궤도차가 보이는 오르막 정점에 섰다. 하늘로 올라가는 왕복선의 모습이 아련해지며 한 점이 되었다가 사라졌다. 작전은 성공했다. 미찌코는 왕복선에 탔겠지만 장영이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 걱정이 되었다. 잡음이 조금 줄어든 것 같아 통신기로 장영을 불렀다. 가청 범위에서 벗어났는지 대답이 없었다. WHO가 보낸 방역관을 둘 다 잃는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김철수도 샘슨도 책임에서 벗어 날 수 없을 것이다. 김철수와 샘슨도 장영을 여러 번 호출했지만 잡음 속에 묻히고 말았다.


“우리 산소가 얼마 남지 않았어. 일단 궤도차부터 탑시다. 그래야 구하러가던지 할 것 아닙니까?”


김철수의 말이 옳았다. 우리가 다시 움직이는 순간 작은 얼음덩이가 내 머리위로 지나갔고 하나는 김철수의 어깨를 맞추었다. 우르인간이 왔다는 건 보지 않아도 뻔했다. 우리는 궤도차가 있는 곳으로 미친 듯 뛰어 내려갔다. 김철수가 가장 가까운 차에 올라타며 외쳤다.


“최대한 주의를 분산시켜야 해요. 한 명씩 나누어 차에 탑시다.”


김철수가 궤도차에 올라타고 먼저 출발했다. 왕복선을 무사히 보냈기 때문일까, 고립되었다는 위기감 때문일까, 지금과는 다른 재빠른 탈출이었다. 나는 문건한과 샘슨이 오기를 기다렸다. 우리가 서 있었던 오르막 정점에 십여 명의 우르인간이 나타났다. 몇 명은 주위의 얼음덩이들을 들어 연신 우리에게 던졌다.


우리가 쏘았던 진정제처럼 얼음덩이는 어떤 저항도 받지 않고 우리의 헬멧 위를 지나거나 몸을 스치며 궤도차 벽을 때리고 얼음위에 떨어졌다. 문건한이 샘슨을 궤도차 안에 먼저 밀어 넣고는 다른 궤도차 쪽으로 몸을 튼 클라크를 당겨 같은 차에 태웠다. 클라크의 궤도차가 출발했다. 나는 문건한과 같은 차에 타기 위해 문건한을 따라갔다. 문건한이 손을 저었다.


“우르 인간의 주의를 끌 사람이 필요해요.”


“예?”


“모두 죽을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문건한은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궤도차를 가리켰다.


“우르인간도 그렇지만 우르도 곧 우릴 따라올 겁니다. 모두 죽지 않기 위해서는 각자 타고 가는 게 맞다는 말입니다. 빨리 저 차에 타세요.”


우르인간이 던지는 얼음덩이가 내 어깨를 스친 후 궤도차 궤도에 맞아 튕겨져 올랐다. 위험을 감지하자 마음과는 달리 몸이 자동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뭐라 말하지 않고 궤도차에 올라탔다. 내 뒤의 궤도차로 뛰어가는 문건한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궤도차 문을 닫고 시동을 거는 동안에도 몇 개의 얼음덩이가 궤도차를 맞췄다. 나는 곧장 궤도차를 고속도로위에 올렸다. 궤도차의 화면에서는 김철수의 차가 아득히 앞서 있었고 내 몇 십 미터 앞에 클라크와 샘슨, 그리고 내 바로 뒤 몇 십 미터 뒤에 문건한 차의 위치가 떴다.


“모두 탔죠. 월리엄 기지로 무조건 달립시다.”


김철수의 소리가 잡음과 함께 나왔다.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고서야 나는 다시 장영을 떠올렸다.


“방역관을 태우고 가야 하지 않습니까?”


“응답이 없으니···, 하지만 살아있다면 방역관은 능력 있고 똑똑하니 알아서 고속도로 변으로 나오겠지.”김철수가 야멸차게 대답했다. 나는 뭐라 항의하고 싶었지만 다리는 계속 엑셀을 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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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에필로그 +12 23.05.21 234 28 9쪽
169 16장. 죽음과 변용 (13) 23.05.21 143 14 16쪽
168 16장. 죽음과 변용 (12) 23.05.15 238 11 12쪽
167 16장. 죽음과 변용 (11) +2 23.05.12 130 16 12쪽
166 16장. 죽음과 변용 (10) 23.05.08 138 14 11쪽
» 16장. 죽음과 변용 (9) 23.05.05 147 11 11쪽
164 16장. 죽음과 변용 (8) +1 23.05.01 150 15 13쪽
163 16장. 죽음과 변용 (7) +2 23.04.28 154 15 13쪽
162 16장. 죽음과 변용 (6) 23.04.24 143 16 13쪽
161 16장. 죽음과 변용 (5) 23.04.21 159 11 13쪽
160 16장. 죽음과 변용 (4) 23.04.17 172 14 11쪽
159 16장. 죽음과 변용 (3) 23.04.14 165 13 13쪽
158 16장. 죽음과 변용 (2) 23.04.11 160 13 12쪽
157 16장. 죽음과 변용 (1) +1 23.04.07 157 14 15쪽
156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6) +1 23.03.31 189 15 13쪽
155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5) 23.03.27 152 15 10쪽
154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4) 23.03.24 147 19 13쪽
153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3) 23.03.20 157 16 12쪽
152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2) +1 23.03.17 163 15 14쪽
151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1) 23.03.13 152 15 11쪽
150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0) +1 23.03.10 163 14 14쪽
149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9) 23.03.06 185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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