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행성케이투 님의 서재입니다.

유로파!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최근연재일 :
2023.05.21 18:02
연재수 :
170 회
조회수 :
90,417
추천수 :
4,442
글자수 :
848,903

작성
23.05.12 22:48
조회
129
추천
16
글자
12쪽

16장. 죽음과 변용 (11)

DUMMY

나는 문건한의 궤도차 에어록으로 달려갔다. 에어록을 열고 막 뛰어오르려는 순간 조심하라는 문건한의 외침과 함께 머리에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나는 에어록 손잡이를 놓치고 비틀거리며 궤도차에서 떨어져버렸다. 머리가 띵해 정신이 없었다.


내 헬멧을 이토록 강하게 친 게 뭔지 고개를 돌려보았다. 좀 떨어진 곳에서 농구공만한 얼음덩이가 딩굴고 있었다. 머리를 바로 하며 얼음덩이에서 눈을 돌리려는데 뭔가가 꽂히듯 등을 찔러왔다. 숨 쉴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잇따랐다.


“우르인간들이 얼음과 창을 던지고 있어요.”


문건한이 외치며 궤도차로 나를 막으려 했지만 문건한의 궤도차 위에는 우르인간이 넷이나 올라타고 에어록 안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심해요. 에어록에 우르인간이 붙었어요.”


나는 고통 속에서 힘을 짜내 외쳤다. 통신기에서는 가장 앞서갔던 김철수의 외침이 들렸다.


“우르인간들이 얼음바위로 고속도로를 막아놓았어. 궤도차 한대로는 얼음덩이를 밀어낼 수 없어요.”


클라크가 다급하게 말했다.


“우리 차에도 놈들이 들어왔어. 샘슨, 운전대를 잡아.”


클라크가 싸우는 소리가 연달아 들린 뒤 클라크의 다소 여유있는 소리가 들렸다.


“됐어. 들어 온 놈은 모두 반으로 갈라 밖으로 던졌어.”


클라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기충격기와 대검으로 우르인간을 제압하는 모양이었다. 문건한은 궤도차의 에어록이 있는 쪽을 얼음기둥으로 바싹 붙여 우르인간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막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문건한의 궤도차에 탈 수 없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내 궤도차로 뛰어갔다.


그 1분도 안되는 시간 동안 어깨와 허벅지에 얼음덩이와 창을 맞았다. 어깨에 얼음덩이를 맞았을 때는 얼음덩이의 속도에 밀려 땅에 쓰러지기도 했다. 나는 오직 생존 의지로 몸을 일으켰다.


내 궤도차 에러록 앞에는 우르인간 둘이 버티고 있었다. 하나는 금속 막대기까지 들고 있었다. 나는 쓰러졌을 때 얼음조각 하나를 집어 들고 일어섰는데 그것으로 빈손으로 달려드는 우르인간의 머리를 내리쳤다. 우르인간의 머리가 한순간에 깊게 꺼지며 주저앉은 것과 동시에 금속막대기를 쳐들고 있는 우르인간에게 몸을 날렸다. 우르인간은 금속막대로 내리치려했지만 그 전에 내 몸에 밀려 뒤로 넘어지며 뒹굴었다.


어떻게 그런 과감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다. 유벤타 공장이 무너지는 걸 보았고, 오직 다섯 명만 남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만큼 필사적이었던 것 같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 궤도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궤도차 안에는 전기 충격기에 마비된 우르인간이 꿈틀대며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보다 밖에 쓰러진 우르인간이 따라 들어오는 게 더 무서웠다.


나는 마비된 우르인간을 무시하고 운전석에 뛰어들듯 앉아 궤도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에어록을 막았던 우르인간이 쓰러진 방향으로 궤도차를 꺾어 깔아뭉갠 뒤 김철수가 갔던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에러록을 막았던 우르인간 둘이 궤도차에 정말 깔렸는지 당장 따라오는 우르인간은 없었다.


전기충격에 마비되었던 우르인간의 움직임이 부드러워지는 걸 보고 차를 세웠다. 나는 그 우르인간의 발을 잡아끌어 궤도차 밖으로 내던지고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클라크가 궤도차로 김철수의 차에 달라붙은 우르인간을 밀었다는 대화가 통신기에서 들렸다.


김철수와 클라크의 궤도차 두 대는 힘을 합해 길 위에 놓인 얼음바위를 밀어가며 앞으로 나갔다. 우르인간이 바리케이드 삼아 갖다놓은 얼음바위는 그들의 힘을 생각할 때 몇 톤이나 나갈 만큼 큰 것들은 아니었다. 두 대의 궤도차로도 밀리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다니기에 귀찮을 정도의 크기였다. 하지만 궤도차가 얼음을 밀수록 전력소모가 심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시간 또한 지체되었다. 나는 쉽게 김철수의 차를 따라 잡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곧 문건한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문 팀장, 어디에요?”


“나는 아직 그 자리에 있어요.”


“그 자리에 있다고요?”


“예. 우르인간의 주의를 내 궤도차로 돌리고 있는 중이죠. 사실 내 차 둘레에는 우르인간으로 가득 찼어요. 대략 백 명이 넘어 보이는데, 이런 경우를 군사 용어로 포위당했다고 하죠.”


문건한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왠지 모를 비장함과 슬픔이 깔려있었다. 나는 방향을 바꾸기 위해 궤도차를 세웠다. 문건한이 내 마음을 알아차렸다.


“차를 돌려 내게 오려고 하죠? 그러지 말아요. 궤도차로 밀고 나가면 우르인간의 포위망을 뚫은 가능성도 있겠죠. 하지만 난 이제 그러고 싶지 않아요.”


“뭐라고요? 무슨 말입니까? 자실이라도 하겠단 말입니까? 내가 갈 테니 기다려요.”


“아뇨, 아뇨. 빨리 착륙지점으로 가요. 그게 날 위하는 길입니다. 한 가지 팁을 알려 줄까요? 만약 고속도로로 갈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면 지형도를 잘 보세요. 얼음의 험지를 직선으로도 통과한다면 우르인간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을 고속도로보다 더 빠를 수 있어요.”


그때 즈음 김철수와 클라크 쪽도 우리 대화를 듣고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샘슨이 놀란 투로 말했다.


“문팀장, 우리가 지원하러 갑니다. 우르인간이 궤도차로 들어오는 걸 최대한 막아요.”


문건한이 급하게 만류했다.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랬다간 모두 죽을 거예요.”


통신기에서 희미한 잡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우르가 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문건한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 샘슨과 통신이 된다면 그 앞에 가고 있을 김 이사님과도 통신이 되겠군요.”


김철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래요. 난 다 듣고 있어요. 그런데 왜 빨리 따라오지 않은 겁니까? 지금이라도 우르인간을 뚫고 나와요. 우리가 기다리겠어요.”


문건한은 김철수를 무시하는 듯이 되물었다.


“김 이사님은 로봇들과 함께 유로파로 돌아올 생각이시죠? 그래서 모든 걸 제쳐두고 도망치듯 착륙지점으로 가는 거죠?”


“유벤타는 내 모든 것이요. 유벤타를 위해서는 반드시 유로파에 돌아와야죠. 하지만 도망친다는 표현은 마음에 들지 않는 군요.”


문건한이 다시 낮게 웃었다.


“지금 내 손에 이사님이 모든 것이라 했던 그 유벤타가 한 통 있습니다. 백 알이 든 완전 새 통이죠. 아, 우르인간이 에어록을 열려고 난리군요. 하지만 에어록 쪽을 얼음 기둥에 밀착해 놓아 시간은 있어요. 그래도 빨리 말해야겠네요.”


“설마 백 알을 한 번에 먹을 생각은 아니겠죠?”


김철수의 질문에 문건한은 희미하게 웃고는 말을 이었다.


“유벤타를 먹지 않았던 사람이 유벤타를 먹으면 세포의 활성도가 몇 배나 증가한다는 건 아시죠? 난 이 백 알을 다 먹고 우르인간에게 죽을 겁니다. 그럼 내 머리 속에 있는 지식중 상당수가 남겠죠.”


김철수가 퍼득 놀란 듯 소리가 커졌다.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유벤타를 먹고 죽다니. 도대체···”


“그렇습니다. 난 이 유로파에 있는 모든 핵발전소를 열 수 있어요. 이 유로파에 인간이 남긴 재료로 공기총 이상의 무기도 만들 자신 있습니다. 그래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난 당신들이 유로파에 들어오는 걸 막을 겁니다.”


김철수가 궤도차를 세운 것 같았다. 김철수가 화난 소릴 질렀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문건한의 소리도 커졌다.


“난 죽은 다음 변용해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우르를 지킬 겁니다. 그리고 그건 곧 인간을 지키는 게 될 겁니다.”


“문 팀장은 제정신입니까? 유벤타야 말로 인간을 구할 수는 물질이에요.”


문건한의 소리가 낮아지고 침착해졌다.


“착한 내 여자가 유벤타가 떨어져 늙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죽이고 죽었어요. 불로의 존재가 되겠다는 욕망은 순수했던 사람도 괴물로 만든단 말입니다.”


“그런 특수한 사건을 일반화 시키지 말아요. 그 일은 비극이었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러는 건 아닙니다.”


문건한이 낮게 웃었다. 문건한은 웃음으로서 김철수의 반박을 무시하고 말을 계속했다.


“난 지금까지 유벤타를 저주하면서도 우르를 죽여 유벤타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죠. 그 모순, 그 이중성이 날 고문하고, 그 고통이 날 죽을 이유를 만들어주길 기다리면서요. 드디어 난 내 스스로 죽을 수 있는 목적과 장소를 찾았어요. 난 자연에 의해 만들어지고 소멸되는 인간 그 자체를 찾기 위해 죽을 겁니다.”


김철수가 달래듯 말했다.


“문 팀장이 그렇게 죽어 우르인간이 된다고 해도 로봇을 앞세운 인간을 이길 순 없을 거요.”


문건한이 비웃었다.


“인간의 고향인 지구에서라면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여긴 유로파에요. 우르의 땅이라고요. 산소 없이는 3분을 넘기지 못하는 생명체가 지배자가 될 순 없는 곳이에요. 벌써 우르인간에게 쫓겨 달아나는 처지가 아닌가요? 로봇은 우르인간에게 좋은 재료를 대어주는 것 밖에 안 될 거라고요.”


김철수는 금방 반박하지 못했다. 바로 눈앞에 얼음기둥과 바위들이 겹을 지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건한은 시간이 아까운 듯 바로 말을 이었다.


“김 박사님, 우르를 최초로 잡은 것이 내 덕분이라고 항상 말하셨죠? 지금도 그걸 갚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겠죠? 그럼 나를 위해 딱 한 가지만 해주세요. 반드시 지구로 돌아가 내 말을 전해 주세요. 유로파에 온다면 우르인간이 우주선을 빼앗아 지구로 갈 것이라고요. 전 인류가 좀비가 되는, 아니 새로운 인종으로 변하게 된다고요.”


문건한의 사연을 알고 있는 나는 목이 막혀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문건한이 다짐받듯 말했다.


“아시겠죠? 유벤타를 합성하는 건 내가 막을 수 없겠죠. 하지만 이 유로파에는 오지 말라 하세요.”


“어어, 하지만··· 꼭 이렇게 해야 합니까?”


“인간이 늙지 않으면 다음엔 뭘 원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죽지 않으려 할 거예요. 그리고 죽지 않기 위해 누군가에게,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우주의 어떤 생명체에게 또 어떤 짓을 할까요? 그렇게 죽지 않는 존재가 된다면, 그건 또 어떤 존재일까요? 난 막아야 해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이 길 뿐이에요.”


김철수는 설득하길 포기하지 않았다. 문건한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가 우르인간이 될 경우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철수는 마음처럼 말도 빨라졌다.


“그래요. 인류의 발전에는 숱한 오류가 있었어요. 부작용과 그에 수반된 억울한 희생도 많았죠. 하지만 결국 인류는 긍정적인 쪽으로 발전했어요. 유벤타는 인류의 한계를 확장시켜 더 성숙한 존재로 만들어 줄 겁니다.”


문건한이 차갑게 웃었다.


“‘인류’에게는 그렇겠죠. 하지만 ‘내 여자’와 ‘나’에게는 긍정적이지 않았어요. 인류의 한계 확장이라는 것도 가루가 되어 몇 줌의 단백질로만 남을 우르의 희생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요. 그러니 인류의 발전과 확장을 위해 가루가 될 의향이 있다는 우르의 동의부터 먼저 얻어야 할 걸요.”


문건한이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난 유벤타를 먹고 있었어요. 한 통을 다 먹었으니 이제 얼음기둥에서 떨어져 우르인간이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겠네요.”


“그러지 말아요.”


김철수가 화난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문건한은 이미 궤도차를 움직이는 것 같았다. 문건한이 불쑥 말했다.


“김 박사님, 내가 알려준 팁을 잊지 마세요. 반드시 살아 지구로 가세요. 모든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유로파로 오는 걸 막으세요.”


그리고 문건한은 통신을 끊었다. 샘슨이, 김철수가, 몇 차례 더 문건한을 불렀지만 통신기에서는 점차 커지는 잡음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유로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6장 13회 분은 토,일요일 중에 올리겠습니다. 23.05.19 29 0 -
공지 다음 회차(16장 2회분)는 하루 늦은 화요일 올리겠습니다. 23.04.10 30 0 -
공지 죄송합니다. 이번 주 월요일 한 번 쉬겠습니다. 23.04.02 60 0 -
공지 죄송합니다. 1월 2일은 쉬고 다음부터 월, 금 주 2회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23.01.02 66 0 -
공지 이번 주 연재는 1회만 올리겠습니다. 22.12.26 64 0 -
공지 추석연휴 여러 사정으로 9월9일, 9월12일 연재를 쉬겠습니다. 22.09.08 127 0 -
공지 8월부터 약 한달 정도 일주일 3회 연재합니다. 22.08.08 144 0 -
공지 휴가 등의 사정으로 잠시 연재를 쉽니다. +1 22.07.30 881 0 -
170 에필로그 +12 23.05.21 234 28 9쪽
169 16장. 죽음과 변용 (13) 23.05.21 143 14 16쪽
168 16장. 죽음과 변용 (12) 23.05.15 237 11 12쪽
» 16장. 죽음과 변용 (11) +2 23.05.12 130 16 12쪽
166 16장. 죽음과 변용 (10) 23.05.08 137 14 11쪽
165 16장. 죽음과 변용 (9) 23.05.05 146 11 11쪽
164 16장. 죽음과 변용 (8) +1 23.05.01 150 15 13쪽
163 16장. 죽음과 변용 (7) +2 23.04.28 153 15 13쪽
162 16장. 죽음과 변용 (6) 23.04.24 143 16 13쪽
161 16장. 죽음과 변용 (5) 23.04.21 158 11 13쪽
160 16장. 죽음과 변용 (4) 23.04.17 171 14 11쪽
159 16장. 죽음과 변용 (3) 23.04.14 165 13 13쪽
158 16장. 죽음과 변용 (2) 23.04.11 159 13 12쪽
157 16장. 죽음과 변용 (1) +1 23.04.07 156 14 15쪽
156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6) +1 23.03.31 189 15 13쪽
155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5) 23.03.27 151 15 10쪽
154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4) 23.03.24 146 19 13쪽
153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3) 23.03.20 156 16 12쪽
152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2) +1 23.03.17 163 15 14쪽
151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1) 23.03.13 151 15 11쪽
150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0) +1 23.03.10 162 14 14쪽
149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9) 23.03.06 184 1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