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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케이투 님의 서재입니다.

유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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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최근연재일 :
2023.05.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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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48,903

작성
23.05.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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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에필로그

DUMMY

에필로그

1.

정원을 살짝 넘긴 보급선에서의 생활을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침대는 교대로 18시간씩 사용했다. 마음만 먹으면 늘어지게 잘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럴 기분은 아니었고 의미도 없었다. 오히려 그 18시간이라는 시간이 모두를 더 애매하게 만들었다. 마음껏 돌아다닐 공간도, 할 일도 없는 그 시간은 고문에 가까웠다.


식사는 하루 두 끼, 물은 1L로 한정되었다. 샤워는 3일에 한 번 거품을 묻히고 닦아 내는 것이 다였다. 이산화탄소 농도에 모든 신경이 가있었다. 공기정화 장치를 최대로 가동했지만 이산화탄소를 말끔히 처리하기에는 뿜어내는 사람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항상 머리가 무거웠다. 거기에 도망치는 패잔병의 우울함까지 더해져 유로파의 심해로 내려가는 것처럼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그 가운데서도 미찌코와 김철수는 각자의 방을 배정받았다. 켐젠도 방 하나를 차지했다. 샘슨은 예상대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샘슨은 의무실 침대하나를 전용으로 사용했다. 켐젠과 샘슨은 자주 자신의 영역에서 나와 부하들을 살폈지만 김철수와 미찌코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말끔한 방에서 앞으로의 일에 관해 머리를 굴리고 지구와 통신을 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사태를 수습하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 때로는 말을 맞추고 때로는 서로 비난할 작전을 짜고 있었다고 확신한다.


그런 가운데 모두의 희망은 화성에서 발사된 보급선과 하루 빨리 만나는 것이었다. 그 보급선에 인원의 1/3을 옮겨 태울 계획이었다. 그리고 달에서 오는 보급선과 만나 다시 1/3을 옮길 예정이었다. 그러면 1인 1침대에 공기도 맑아질 것이며 하루 한 번의 샤워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가라앉은 기분은 어찌 할 것인가!


아무도 죽은 자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안드로이드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나에게도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 우르을 잡아 유벤타를 만들었던 때가 내가 영웅이었던 시기였다. 이제 나는 금지된 지옥의 문을 연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만큼 내게 주어진 공간에 머물 수 있었고,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귓가에 울리는 시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을 들을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문건한의 세포가 살아남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주선을 빼앗아 지구로 갈 거라고 말해주세요.”


문건한의 그 경고를 몇 명이 알고 있을까! 동일 주파수로 통신기를 열어놓고 있었으니 김철수와 샘슨, 클라크는 확실히 들었다. 하지만 궤도차 통신기의 위성 발신기가 꺼져있었는지 켐젠이나 미찌코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문건한의 그 말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보급선 전체에 퍼져버렸다. 전파자는 뻔했다. 클라크였다. 전쟁을 해본사람만이 전쟁의 무서움을 안다고 했던가! 전쟁을 아는 클라크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클라크는 인간의 지식을 흡수한 우르가 어떤 존재인지 사무치게 경험해버렸다. 하지만 클라크가 무서워 한 것은 우르보다도 유로파 그 자체였다.



2.

달에서 지구로 가지 하루 전, 미찌코가 자신의 방으로 나를 불렀다. 뜻밖의 부름이었다. 미찌코의 방은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는데 임원급만이 쓸 수 있는 방이었다. 미찌코는 딱딱한 얼굴로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로봇이 내 앞에 커피를 갖다 놓았다. 방금 내린 커피로 우주선의 커피와는 향부터 달랐다.


“용건만 간단히 말할게. 지구가 어떤 상황인지는 알지?”


나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 박사도 질서를 유지하고 공황상태서 사람들을 구하는데 협조해야 돼.”


“난 김철수 이사가 이런 말을 할 거라 생각했는데 네가 하다니 뜻밖이다.”


“김 이사는 오늘 먼저 지구로 갔어. 우르인간 격퇴 TF의 멤버가 되었거든.”


“우르인간이 우르인데··· 우르인간을 격퇴하면 우르를 격퇴하는 게 되고, 그럼 유벤타는?”


내가 웃었다. 미찌코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잖아?”


“그럼 뭐가 중요한데? 그게 진실이잖아?”


“진실은 우리가 유로파에 갔었고, 우르를 잡았고, 유벤타를 만들었다는 거야. 우린 인간이고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성공할 거란 말이야.”


내가 다시 웃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을 걸.”


“그래서 김 박사를 부른 거야. 이제 지구에 가면 청문회가 있을 거야. 그 자리에 불려나가도 문 팀장 얘기는 하지 마. 절대로 하지 말란 말이야.”


“글쎄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찌코가 소릴 빽 질렀다.


“이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알아? 김철수가 바이러스를 만들어 뿌렸기 때문이야. 유벤타 알파가 없다는 걸 감추기 위해서 말이야.”


나도 예상했던 일이지만 미찌코의 입에서 듣자 조금 놀랐다. 특히 바이러스를 뿌렸다는 말은 충격이었다.


“우린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휴먼에이트의 말이라 증거가 될 수는 없지만, USB에 바이러스를 묻혀 자신의 연구원에게 건넸고 그게 우주정거장까지 갔어. 연구원의 남자친구가 거기에 있었고 자신의 여자친구로부터 유벤타 알파를 만드는 실험이 모두 실패했다는 얘길 들었거든.”


“뭐라고? 그렇게까지···”


“그 연구원이 탄 잠수정은 광파발생기가 고장 나 우르의 공격을 받아 죽었고 말이야. 문제없던 광파 발생기가 왜 갑자기 고장이 났겠어?”


나는 다시 웃었다. 충격에 힘이 빠져 허탈감으로 나온 웃음이었다.


“내가 경험하고 들었던 모든 걸 종합하면 그런 얘기가 만들어 질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설마···.”


미찌코가 똑바로 들어라는 듯 차갑고 날카롭게 말했다.


“그 설마가 사실이란 말이야. 나도 그렇게 믿고 있고, 유회장도, WHO도 믿고 있어. 안드로이드 방역관의 보고서로 유추하면 그런 결론밖에 안 나와. 물론 누구도 내색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도 김철수를 TF에 참여시켰다고?”


“왜 그랬겠어? 당장은 김철수를 건드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어? 김철수의 행동이 폭로되면, 신디케이트는 또 어떻게 되고···.”


미찌코가 긴 한숨을 쉬었다.


“문제는 직접 증거가 없다는 거야. 시끄러워지기만 하다 결국은 신디케이트가 와해되고 재단과의 합병 자체가 흔들릴 거란 말이야. 그럼 이 사태를 누가 수습해? 당장은 살려 주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지구 상황이 어떤지 알잖아? 너도 TF 멤버에 들어가 있으니까 제발 문건한 이야기는 하지 마. 너에게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거야.”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회는 나에게만 온 것이 아니었다. 김철수에게도 온 것이다. TF가 성공해 로봇이 우르를 잡아들이고 유벤타가 다시 생산된다면 자신이 저지른 일은 영원히 묻혀 지겠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인류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 아닐까? 인류에게 부과된 운명을 지킬 기회, 자연을 법칙을 지킬 기회 말이다. 귓가에서는 ‘죽음과 변용’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런 확답도 하지 않고 미찌코의 방을 나왔다.



3.

나는 청문회장에서 내가 보고 알고 있는 것들을 말했다. 직접증거가 없는 김철수와 관련된 얘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건한의 경고만큼은 몇 번이고 말했다.


“문건한이 죽어 변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청문회의 한 패널이 물었다.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가 항상 듣던 음악을 들었습니다. 전 그의 세포가 대부분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유로파에 가는 건 위험합니다. 어쩌면 지구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나와 같은 주파수를 공유했던 누구도 ‘죽음과 변용’을 들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김철수는 물론 샘슨과 유로파 자체를 무서워하는 클라크까지도 말이다.


그렇다고 나는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잡음이 심해 정말 음악을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늙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진실이 이길 순 없으니까! 더 부유해지고 더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 또한 진실을 이길 순 없는 법이다.


문건한의 경고는 청문회장에서, 아니 지구 전체의 인류에게 무시당했다.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는다. 문건한이 자신의 목숨을 바쳤듯이 나도 지구의 안전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칠 것이다. 그것이 이 긴 글을 쓴 이유이다.


작가의말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구도만 가지고 세세한 얘기는 회차를 쓰면서 만들어 내었는데  시간도 걸리고 힘도 많이 드네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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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12 23.05.21 235 28 9쪽
169 16장. 죽음과 변용 (13) 23.05.21 143 14 16쪽
168 16장. 죽음과 변용 (12) 23.05.15 238 11 12쪽
167 16장. 죽음과 변용 (11) +2 23.05.12 130 16 12쪽
166 16장. 죽음과 변용 (10) 23.05.08 138 14 11쪽
165 16장. 죽음과 변용 (9) 23.05.05 147 11 11쪽
164 16장. 죽음과 변용 (8) +1 23.05.01 150 15 13쪽
163 16장. 죽음과 변용 (7) +2 23.04.28 154 15 13쪽
162 16장. 죽음과 변용 (6) 23.04.24 143 16 13쪽
161 16장. 죽음과 변용 (5) 23.04.21 159 11 13쪽
160 16장. 죽음과 변용 (4) 23.04.17 172 14 11쪽
159 16장. 죽음과 변용 (3) 23.04.14 165 13 13쪽
158 16장. 죽음과 변용 (2) 23.04.11 160 13 12쪽
157 16장. 죽음과 변용 (1) +1 23.04.07 157 14 15쪽
156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6) +1 23.03.31 189 15 13쪽
155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5) 23.03.27 152 15 10쪽
154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4) 23.03.24 147 19 13쪽
153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3) 23.03.20 157 16 12쪽
152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2) +1 23.03.17 163 15 14쪽
151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1) 23.03.13 152 15 11쪽
150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0) +1 23.03.10 163 14 14쪽
149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9) 23.03.06 185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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