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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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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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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903

작성
23.05.15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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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6장. 죽음과 변용 (12)

DUMMY

나는 궤도차를 돌려 문건한에게 가려 했다. 하지만 문건한을 구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았고 문건한의 부탁이 계속 귀를 울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차를 돌리지 않았다. 우르인간 몇 명이 에어록에 달라붙었지만 얼음바위에 문질러 떼어버렸다. 궤도차가 망가지는 건 이미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공기가 새고 있다는 경고도 의미가 없었다. 머리속에는 문건한의 말이 맴돌고 있었고 오직 살아 지구로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미친듯 차를 몰았다. 우주복의 산소탱크마저 빨간 불이 들어오자 별 수 없이 차를 세우고 산소통을 교환했다. 그 몇 분의 사이에도 궤도차 지붕위로 얼음덩이들이 쿵쿵 떨어졌고 에어록으로 들어오기 위해 궤도차와 얼음바위 사이의 좁은 틈으로 몸을 넣는 우르인간이 측방 카메라에 잡히고 있었다.


문건한의 말을 상기하며 나는 운전하면서도 한쪽 모니터에 지형도를 띠워 눈이 가는 대로 보곤 했다. 월리엄 기지에서 착륙지점까지는 약 1km를 직선으로 간 뒤 시계 방향으로 험난한 얼음지형을 우회해야 했다. 문건한의 말대로 그 험난한 얼음지형을 직선으로 통과할 수 있다면 거리를 상당히 단축할 수 있었다.


김철수와 클라크가 바위덩이들을 밀어 놓아 나는 그럭저럭 속력을 낼 수 있었다. 그 덕에 우르인간을 따돌릴 수도 있었다. 김철수와 클라크의 차는 이미 시계 방향으로 도는 곡선부분에 들어가 있었다. 고속도로의 그 부분은 1km 가량이 크레바스 지형이었다. 곳곳에 크레바스가 있고 고속도로와 만나는 크레바스 위에는 특수금속으로 만든 다리가 놓여 있었다. 길이는 짧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크레바스를 건너는 거라 다리 위를 달릴 때는 긴장되는 곳이었다. 김철수가 다리를 지나며 말했다.


“아, 크레바스들이에요. 조심해야겠어.”


샘슨이 안심시키려는 듯 대답했다.


“이곳에는 리네아와 직접 이어진 크레바스가 없어요. 그런데···”


샘슨이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왜 그럽니까? 다른 변수가 있습니까?”


“아주 길고 깊은 크레바스가 몇 개 있다는 지질 조사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었어.···”


그 크레바스는 얼음지각에 막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크레바스의 끝이 얼음지각의 갈라진 부분과 이어졌다면···. 그 갈라진 곳에 바닷물이 들어온다면···. 나는 내 상상을 괜한 걱정으로 몰아 마음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나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김철수의 고함이 들렸다.


“우르다. 크레바스에서 우르가 기어 나오고 있어.”


나는 뱀같이 가늘고 긴 형태로 크레바스를 기어 나왔던 우르를 떠올렸다. 샘슨이 재촉하듯 말했다.


“아직 우릴 공격할 정도로 나오지는 않았어요. 최대속도로 지나갑시다.”


김철수와 클라크의 궤도차는 크레바스 지역을 무사히 통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두 궤도차와 한참 떨어져있었다. 나는 크레바스 지역에 접근 할수록 머리털이 서는 것 같았다. 통신기에서 클라크의 소리가 크게 나왔다.


“얼음바위다.”


그리고 큰 충격 소리가 들렸다. 크레바스를 기어 나오며 우르가 던진 얼음바위가 김철수와 클라크의 궤도차 앞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우르인간이 바리케이드 삼아 갖다 놓은 얼음바위와 우르가 던지는 얼음바위는 크기에 있어 비교할 게 못 됐다. 클라크가 욕과 함께 다급하게 말했다.


“3,4톤은 나갈 것 같아. 궤도차로 밀어도 밀리지 않겠어.”


“옆으로 지나가면 갈 수 있어요.”


김철수의 궤도차를 뒤따르던 샘슨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의지를 보였다.


“이번 바위는 그렇지만···”


김철수의 말처럼 날아오는 얼음바위는 하나만이 아니었다. 이어서 몇 개의 얼음바위가 고속도로 옆의 얼음기둥과 바위에 맞아 굴러떨어지기도 하고 고속도로에 깊은 흠을 내기도 했다. 김철수는 그런 상황을 말하며 탄식의 소릴 연달아 냈고 클라크는 욕을 뱉었다. 결국 김철수의 차가 구르는 얼음바위와 충돌한 모양이었다. 김철수의 신음과 함께 클라크의 소리가 들렸다.


“김 이사 괜찮아요?”


충격이 컸던 모양으로 김철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몇 십초가 지난 뒤 신음소리와 함께 김철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궤도차의 앞부분이 좀 찌그러졌어. 그런데 궤도 축이 어긋났는지 움직이질 않아요.”


샘슨이 놀라며 말했다.


“빨리 우리차로 와요. 차를 막고 있는 얼음바위 옆으로 차가 다릴만한 공간이 보여요. 또 얼음바위를 던져 막기 전에 지나가야 합니다.”


“그럼 내 궤도차에서 나갑니다.”


잠시 후 김철수가 클라크와 샘슨의 궤도차로 옮겨 탔다는 말이 들렸다. 이제 한 대가 된 궤도차는 우르가 마구 던지는 얼음바위를 피하며 착륙지점을 향해 달려갔다. 우르는 목표를 확인하지 않고 얼음을 던져댔다. 궤도차 같은 특정한 목표물을 명중시키기는 무리겠지만 고속도로를 부분적으로 막아 궤도차의 속도를 줄이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


클라크는 궤도차의 속력을 최대한으로 내지 못했고 그만큼 시간은 지체되었다. 그렇다 해도 그들은 착륙지점까지 갈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우르가 올라온 크레바스 지역 앞에서 궤도차를 세우고 그곳을 지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뒤에서는 잠시 떼어놓았던 우르인간들이 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무거운 진동을 일으키는 궤도차로 크레바스위에 놓인 다리들을 건너는 것도 자살 행위였다. 통신기에서는 잡음이 점점 심해졌고 간혹 휴먼에이트라고 할 수 있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문건한의 부탁을 들어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문건한이 알려준 팁이 생각났다. 문건한은 험난한 얼음지형을 통과하는 직선거리가 더 가깝다고 했다. 이렇게 오도 가도 못하게 될 경우를 미리 예상했던 게 분명했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우르 때문에 크레바스 지역을 지날 수 없어요. 궤도차를 버리고 얼음바위와 기둥들을 뚫고 착륙지점까지 가겠습니다.”


지직거리는 잡음 속에서 샘슨이 놀라며 반대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말도 안 돼요. 시간 안에 도착할리도 없어요.”


“하지만 궤도차로 계속 나가는 것도 무리입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샘슨이 안타까움에 말을 다하지 못하는 사이 김철수가 결단을 내린다는 듯 말했다.


“상황이 상황이니 앉아 죽을 수만은 없겠지. 우리가 최대한 김 박사를 기다리죠. 그럼 착륙지점에서 봅시다.”


나는 산소탱크를 점검했다. 30분 정도 호흡할 수 있는 산소가 남아있었다. 착륙지점까지는 대략 2km가 조금 넘는 거리였다. 평탄한 길이라면 30분이라면 충분히 갈 거리지만 지형이 험해 한 시간은 생각해야했다. 나는 산소통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혹시나 몰라 예비산소통을 가져가기로 했다.


온통 얼음바위와 기둥뿐인 얼음의 땅에서 방향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늘을 반이나 덮고 있는 목성을 방향등으로 삼기에는 그 크기 때문에 불완전했다. 제임스 기지와 유벤타 공장이 없어진 상황에서 휴대용 GPS에 의존하기에도 뭔가 불안했다. 궤도차를 내리기 전에 지형도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위성사진으로는 착륙지점 근처에 얼음기둥들이 연달아 서있었다. 보통 얼음기둥보다 높이는 조금 낮았지만 옆으로 늘어선 길이만큼은 유별났다. 그 얼음기둥들의 왼쪽 끝에서 11시 방향으로 2백 미터 앞쪽이 착륙 지점이었다.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궤도차에서 내렸다. 고속도로 옆의 얼음바위에 올라 몸을 낮추고 목성과 GPS를 번갈아 확인하며 방향을 잡고는 곧장 앞으로 나갔다. 열어둔 통신기에서는 우르가 던져대는 얼음바위를 피해가며 나가느라 고군분투하는 클라크와 김철수의 욕지기와 대화가 들리고 있었다. 우주복의 통신기에 그들의 대화가 잡힌다면 그들이 가까이 있다는 얘기였다.


우르가 내 진동을 감지하거나 나를 시각적으로 인지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우르는 궤도차를 향해 얼음바위를 던지는 데 골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진동을 일으키지 않으려 애쓰며 얼음바위 무더기를 넘고 크레바스를 피해가며 십분 이상을 걸었다.


점점 마음이 안정되어가며 착륙지점까지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하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목성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다른 때보다 목성이 너무 커 보였다. 자꾸만 목성으로 눈이 갔고 속이 울렁거렸다.


목성은 자신에게 종속된 유로파에서 헉헉거리며 얼음기둥 틈을 비집고 가는 나 같은 존재는 손바닥 위의 잡균정도만큼이라도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목성에게 나는 그런 존재다. 그러니 나도 목성을 무시해야 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가장 높고 거친 얼음기둥 위에 올라섰다.


넘어도 넘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얼음바위와 기둥들이 빼곡히 서있는 땅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내가 왔던 곳으로 무심코 얼굴을 돌렸다. 내가 처음 걷기를 시작했던 그 지역의 얼음 기둥위에서 작은 사람 형태의 것들이 꼼지락거리며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우르인간이었다. 헉 하는 경악의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는 얼음기둥을 재빨리 내려와 뛰다시피 걸음을 재촉했다. 우르인간이 나를 발견했다는 확신이 들며 괜히 높은 곳에 올라갔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김철수와 클라크 쪽도 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우르가 우릴 쫓아오며 얼음바위를 계속 던지고 있어.”


클라크의 욕과 고함이 끝이지 않았다. 우르의 목표가 되지 않기 위해 넓지만은 않는 고속도로를 사행으로 운전하는 클라크와 김철수가 눈에 그려졌다. 통신기에서 잡음 같은 휴먼에이트의 소리가 희미하게 나왔다.


“아, 아, 이사님, 박사님, 내 말이 들리시나요.”


나는 상대하지 않았다.


“모두들 어디로 가고 있나요? 어디에 있나요?”


김철수와 클라크의 소리도 없는 가운데 휴먼에이트의 말이 이어졌다.


“바이러스의 전파에 관한 엄청난 비밀이 있어요. 죽은 기억들이 더 살아났다고요.”


바이러스는 미찌코나 관심을 가질 주제였다. 나는 문건한이 정말 자신의 예상대로 변용되었는지, 변용되었다면 얼마나 변용되었는지, 나를 기억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상대하면 내가 어디에 있고 내 목표가 어딘지 알려주는 단서를 줄지도 몰랐다. 나는 꾹 참고 착륙지점을 향해 걸었다.


길이 너무 험했다. 단 한 곳도 평탄하게 걷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우르인간이 쫒아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거리가 얼마인지 알 수 없었다. GPS상으로는 나는 1km를 왔다. 다시 자신감이 드는 순간 뭔가 새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고속도로가 있는 쪽이었다. 익숙한 베이지색의 물체가 얼음바위 위에 길게 걸쳐져 있었다. 우르였다. 아니 우르였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우르에게서 우르인간이 떨어져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르인간이 떨어져나온 곳은 큼직한 구멍으로 남았다가 다시 메워지고 있었다. 우르는 그만큼 작아졌지만 우르인간은 많아지고 있었다. 우르인간은 형체를 갖추자마자 고속도로가 있는 쪽으로 얼음기둥과 바위 위를 통통 뛰어갔다. 김철수와 클라크의 궤도차를 차단하거나 바싹 추적하기 위해서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이사님, 클라크, 우르인간들이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수십 명은 될 것 같습니다. 아마 길을 차단하려는 것 같습니다.”


“우르인간이라고?”


클라크가 짜증스레 반문했다.


“예. 내 위치에서 왼쪽이면 고속도로 쪽입니다.”


“빌어먹을···”


나는 경고를 하고 우르인간을 보며 착륙지점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진동을 최대한 줄이려 몸동작을 작게 했다. 우르와 우르인간이 있는 쪽은 보지 않으려했지만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우르에게서 막 떨어져 나온 우르인간 하나가 몸을 세우며 내 쪽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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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에필로그 +12 23.05.21 234 28 9쪽
169 16장. 죽음과 변용 (13) 23.05.21 143 14 16쪽
» 16장. 죽음과 변용 (12) 23.05.15 238 11 12쪽
167 16장. 죽음과 변용 (11) +2 23.05.12 130 16 12쪽
166 16장. 죽음과 변용 (10) 23.05.08 138 14 11쪽
165 16장. 죽음과 변용 (9) 23.05.05 146 11 11쪽
164 16장. 죽음과 변용 (8) +1 23.05.01 150 15 13쪽
163 16장. 죽음과 변용 (7) +2 23.04.28 154 15 13쪽
162 16장. 죽음과 변용 (6) 23.04.24 143 16 13쪽
161 16장. 죽음과 변용 (5) 23.04.21 159 11 13쪽
160 16장. 죽음과 변용 (4) 23.04.17 172 14 11쪽
159 16장. 죽음과 변용 (3) 23.04.14 165 13 13쪽
158 16장. 죽음과 변용 (2) 23.04.11 160 13 12쪽
157 16장. 죽음과 변용 (1) +1 23.04.07 157 14 15쪽
156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6) +1 23.03.31 189 15 13쪽
155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5) 23.03.27 151 15 10쪽
154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4) 23.03.24 146 19 13쪽
153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3) 23.03.20 157 16 12쪽
152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2) +1 23.03.17 163 15 14쪽
151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1) 23.03.13 151 15 11쪽
150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0) +1 23.03.10 162 14 14쪽
149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9) 23.03.06 185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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