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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최근연재일 :
2023.05.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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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903

작성
23.05.08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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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6장. 죽음과 변용 (10)

DUMMY

우리는 20여 분을 달렸다. 장영의 매끄럽고 검은 머리결과 맑은 눈이 내 눈앞에서 계속 어른거렸다. 지금이라도 그 자리로 돌아가야 장영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무감과 통신도 되지 않는 사람을 유로파에서 찾는 건 불가능하다는 현실이 번갈아 가슴을 할퀴고 또 메웠다.


그런 갈등 속에서도 나는 궤도차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력을 냈다. 삶에 대한 본능적 욕구였다고 하겠지만 마크를 찾아 죽음의 길로 나선 장영에 대해 서운함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대략 15km를 넘게 갔다. 통신기에서 잡음이 사라졌다. 우르인간을 떼어놓은 것은 물론 우르가 쫓아 올 거리에서도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들었을 때 켐젠에게서 통신이 왔다. 혹시나 휴먼에이트가 들을까봐 몇 차례나 주파수를 바꾸며 조율을 한 끝에 이루어진 통신이었다. 켐젠이 힘없이 말했다.


“없어요. 아무리 지형을 조사해도 고속도로에서 1km 이내에 왕복선이 앉을 만큼 평탄한 곳이 없어요.”


“1km 거리를 벗어나서는 어떻습니까?”


“몇 군데 있긴 한데, 가장 가까운 곳이 3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5, 7km 정도 벗어난 곳도 있고요. 거기에 인간은 다닌 적이 없는 험난한 얼음 지형을 통과해야 해요.”


“3km라···”


그 정도 거리라면 생각해 볼만 하다는 듯 김철수가 입맛을 다셨다. 켐젠이 재빨리 김철수의 기대를 잘랐다.


“그런데다 사론페논 리네아의 끝 부분에서 나온 크레바스들을 건너야 합니다.”


리네아와 연결된 크레바스다. 바로 얼마 전에도 우르가 몸을 가늘게 해 크레바스로 올라오지 않았었나! 김철수는 바로 포기했다.


“그럼 결국 월리엄 기지까지 가야한다는 말입니까?”


“그래요. 지금 달리고 있는 곳에서 한 시간 반 이상을 쉬지 않고 가야 해요.”


한 시간 반이라는 말을 듣자 몸이 더 피곤해지며 힘이 빠졌다. 나는 실망을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월리엄 기지는 휴먼에이트가 우리 통신을 듣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의 목적지로 짐작할 만한 곳이에요.”


김철수도 내 의견에 동의했다.


“그럼 월리엄 기지를 그냥 통과해서는 왕복선이 앉을 만 곳이 있습니까?”


“월리엄 기지에서 4km 정도 가면 한 곳이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만들 때 로봇 포크레인들과 불도저들을 임시로 주차시켜 놓던 곳이에요. 월리엄 기지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이죠.”


김철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곳이 더 안전할 것은 같은데···. 하지만 4km를 더 가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샘슨이 고통을 참는 소리로 말했다.


“다 따져 봐도 월리엄 기지가 우선이겠어요. 열심히 달려 휴먼에이트와 우르보다 빨리 도착하는 수 밖에 없어요.”


착륙지점이 결정 나자 내가 불쑥 말했다.


“방역관은요? 장영은 어떡합니까?”


침울한 침묵이 흘렀다. 켐젠이 무겁게 입을 뗐다.


“산소가 이미 다했을 겁니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마크를 찾으러 대열을 이탈했는지···”


정말 무슨 생각이었던 것일까? 장영에게 마크가 그토록 소중한 존재였을까? 마크와 장영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되니 가슴이 두 배로 아렸다. 그동안 입을 열지 않았던 클라크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듯 갑자기 말했다.


“정말 찜찜하군. 월리엄 기지는 우르인간에게 털렸던 곳이야. 우르인간이 기지를 차지한 뒤 성을 함락시켰을 때처럼 수비대를 남겨놓지 않았을까?”


김철수가 놀란 투로 물었다.


“이 유로파에 수비대가 왜 필요하단 말입니까?”


클라크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냥. 그 프라 모델의 시대였던 중세 때는 대부분 그러지 않았어요?”


김철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말했다.


“갑자기 월리엄 기지로 가는 게 불안해지는 군. 미리 알 방법이 없을까?”


샘슨이 켐젠에게 물었다.


“위성사진으로 월리엄 기지의 상황을 볼 수는 없습니까?”


“위성은 통신과 과학 위성밖에 없어요. 카메라가 있어도 군사용이 아니라서 우르를 분별할 만큼의 해상도를 갖지 못해요.”


“왕복선을 보내 기지의 모습을 찍어요.”


김철수가 명령을 내리는 투로 말하자 켐젠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왕복선 연료는 이제 당신들을 데려올 정도만 있습니다.”


김철수가 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무작정 돌진 할 수밖에 없군.”


문건한이 자신있게 말했다.


“그럼 내가 제일 먼저 월리엄 기지로 가죠.”


“문 팀장이 그럴 것까지야···”


샘슨이 미안한 듯 말했다. 샘슨은 부상당한 자신을 부축해 궤도차에 태워준 문건한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말렸다.


“문 팀장의 차보다 내가 앞이니 내가 월리엄 기지를 정찰하겠습니다.”


하지만 문건한은 단호했다.


“앞지르면 되니까 차 순서는 상관없어요. 월리엄 기지의 핵발전소도 봐야 하고···. 어째든 내가 가장 먼저 월리엄 기지에 들어가겠습니다.”


지난번 월리엄 기지의 핵발전소를 점검했던 일이 떠올랐지만 문제는 없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문건한의 말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웅심으로 앞서기를 좋아했던 김철수도 조용히 있었다. 위험한 곳에 먼저 가지 않으려는 본능이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는 통신기의 주파수를 계속 변경하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통신기는 조용했고 고속도로 옆은 얼음기둥과 바위들만이 첩첩히 쌓여 있을 뿐, 우르나 우르인간의 어떤 기척도 없었다. 너무나 적막한, 그래서 안정적이지만, 그 때문에 불안한 길이 계속되었다.


월리엄 기지를 10km 남기고 문건한의 궤도차가 선두에 섰다. 각 궤도차와는 200미터 이상 거리 두었다. 우르가 몸을 접었을 때 약간의 여유를 두고 도망갈 수 있는 거리였다. 우르가 얼음덩이를 감아 던질 때를 대비해 월리엄 기지의 안전이 확보된 뒤에야 왕복선을 부르기로 했다. 월리엄 기지에 다가갈수록 우르인간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점점 강해졌다.


“월리엄 기지에 바로 진입하지 말아요.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들어가.”


클라크가 당부했다. 문건한은 알겠다고 짧게 답했지만 어쩐지 건성으로 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월리엄 기지 초입에서 문건한은 속도를 줄였다. 문건한은 착륙지점으로 정해진 월리엄 기지 앞 공터까지 천천히 궤도차를 몰고 들어갔다. 다른 차들은 간격을 유지한 채 문건한의 궤도차를 지켜보고 있었다. 김철수가 초조한 듯 물었다.


“아무 이상 없어요?”


문건한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우르인간은 보이지 않는데··· 기지의 에어록들이 완전히 뜯겨져 나갔어요. 안은 말할 것도 없겠네요. 내려서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얼른 말렸다.


“그건 위험해요. 궤도차의 진동을 감지한 우르인간이 기지 안에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들이 굳이 숨어 있을 필요가 있나요? 그 정도로 전략적이었지는 않았던 것 같던데.”


문건한은 평소와는 다르게 농담투로 말하고는 기어이 차에서 내려 월리엄 기지의 에어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문건한은 곧 에어록에 도착해 스스럼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겁이 없다는 말보다 초월했다고 하는 편이 맞는 말이었을 것이다. 문건한의 몸캠으로 보이는 기지는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요.”


문건한의 말에 내 불안감은 더 커져갔다. 문건한은 좀 더 안으로 들어갔다. 그만 들어가라고 말하려는 순간 내 궤도차 지붕에서 뭔가 뛰어내리는 텅 하는 소리가 잇달아 들렸다. 소리의 정체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내 차 위에 우르인간이 뛰어내렸어요.”


나는 통신기에 대고 미친 듯 소릴 질렀다. 내가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김철수도 고함을 질렀다.


“얼음 바위 뒤에서 우르인간이 쏟아져 나왔어. 고속도로를 막았다.”


샘슨이 급하게 문건한을 불렀다.


“문 팀장. 기지에서 나와 빨리 궤도차에 타요.”


김철수가 자신의 궤도차를 출발시켰다.


“여기서는 착륙이 안 되겠어. 다음 곳으로 이동합니다. 내가 밀고 나가겠어.”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김철수는 궤도차를 출발시켜 고속도로를 가로막고 있는 우르인간을 향해 돌진했다. 나도 급하게 궤도차를 출발시켰다. 지붕으로 뛰어내린 우르인간을 떨어뜨릴 방법은 그 밖에 없었다. 나는 순식간에 클라크의 차를 지나쳐 월리엄 기지 앞을 통과했다. 김철수의 차는 고속도로를 막은 우르인간을 그대로 깔아뭉개며 저만치 앞서 달리고 있었다. 내 차 바로 뒤에는 클라크와 샘슨의 차가 있었다.


“우르인간 셋이 옆에 붙었어."


클라크가 다급히 경고해왔다. 궤도차의 에어록에는 잠금장치가 없다. 내 궤도차의 지붕에 뛰어내렸던 우르인간은 곧 옆으로 달라붙은 뒤 에어록으로 들어왔다. 내가 궤도차를 운전하는 동안 우르인간을 막아 줄 사람은 없었다. 우르인간은 저항을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왔다.


백미러로 우르인간을 보자 나도 모르게 핸들을 옆으로 꺾고 운전석에서 일어섰다. 궤도차는 그대로 고속도로 옆의 얼음기둥을 들이박고 자리에 섰다. 우르인간 하나가 헬멧의 목 부분을 노리며 나를 덮쳤다. 내 헬멧을 벗기려고 한 것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한손으로 우르인간을 막고 다른 손으로 우주복 주머니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냈다. 우르인간의 손이 내 목에 닿는 순간 나는 전기충격기를 우르인간에게 대었다. 우르인간의 몸이 굳어지며 떨다가 쓰러져 버렸다. 뒤에서 다른 우르인간이 내게로 돌진해 왔다. 나는 소용없게 된 전기충격기를 우르인간의 얼굴로 향해 던지고는 바닥에 몸을 엎드리다시피 해 헬멧을 벗기려는 우르인간의 손을 피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궤도차에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에어록으로 기어갔다. 에어록 앞에는 또 하나의 우르인간이 문을 막고 있었다. 우르인간은 한손에 짧은 금속 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우르인간과 엉겨 붙었다. 우르인간이 두 손으로 내 목을 노렸다면 아무 무기도 없는 나는 그 힘을 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르인간은 자신의 손에 쥔 금속파이프로 나를 내려치려 했다. 나는 한 손으로 금속파이프를 든 우르인간의 손을 잡고 온몸으로 우르인간을 밀었다.


우르인간이 밀리며 문을 여는 스위치를 누른 것 같았다. 에어록의 내측 문이 열리며 우르인간은 외측 문까지 밀려났다. 전기 충격기에 머리를 맞았던 우르인간이 뒤에서 내 목을 막 움켜쥐려던 순간이었다. 외측문에 기대 우르인간과 내가 몸싸움을 할 때 마침 외측문의 개폐 스위치가 보였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개폐 스위치를 눌렀다. 우르인간은 궤도차안의 공기가 빠져나가는 힘에 밀려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나도 마찬가지로 공기의 흐름에 따라 고속도로 위에 내동댕이쳐졌다. 궤도차로 들어왔던 우르인간 둘은 어느새 몸을 바로 하고 내게로 덤벼들었다.


나는 막 일어서려는 참이었다. 상대는 하나도 아니고 둘이었고 나는 자세를 전혀 취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대로 목이 잡히고 헬멧이 벗겨질 순간이었다. 그때 문건한의 궤도차가 달려와 우르인간 둘을 그대로 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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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휴가 등의 사정으로 잠시 연재를 쉽니다. +1 22.07.30 881 0 -
170 에필로그 +12 23.05.21 234 28 9쪽
169 16장. 죽음과 변용 (13) 23.05.21 143 14 16쪽
168 16장. 죽음과 변용 (12) 23.05.15 237 11 12쪽
167 16장. 죽음과 변용 (11) +2 23.05.12 130 16 12쪽
» 16장. 죽음과 변용 (10) 23.05.08 138 14 11쪽
165 16장. 죽음과 변용 (9) 23.05.05 146 11 11쪽
164 16장. 죽음과 변용 (8) +1 23.05.01 150 15 13쪽
163 16장. 죽음과 변용 (7) +2 23.04.28 154 15 13쪽
162 16장. 죽음과 변용 (6) 23.04.24 143 16 13쪽
161 16장. 죽음과 변용 (5) 23.04.21 158 11 13쪽
160 16장. 죽음과 변용 (4) 23.04.17 171 14 11쪽
159 16장. 죽음과 변용 (3) 23.04.14 165 13 13쪽
158 16장. 죽음과 변용 (2) 23.04.11 160 13 12쪽
157 16장. 죽음과 변용 (1) +1 23.04.07 157 14 15쪽
156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6) +1 23.03.31 189 15 13쪽
155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5) 23.03.27 151 15 10쪽
154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4) 23.03.24 146 19 13쪽
153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3) 23.03.20 157 16 12쪽
152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2) +1 23.03.17 163 15 14쪽
151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1) 23.03.13 151 15 11쪽
150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0) +1 23.03.10 162 14 14쪽
149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9) 23.03.06 185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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