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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최근연재일 :
2023.05.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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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903

작성
23.04.1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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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6장. 죽음과 변용 (4)

DUMMY

3.

난 정문 에어록을 걸어 나왔다. 우르용 주사기가 장착되어 있어 손에 든 공기총이 듬직하게 무거웠다. 내 뒤에서는 잭이 이끄는 보안요원 네 명이 거리를 두고 내 뒤를 엄호하고 있었다. 궤도차를 타지 않고 보안요원들과 거리를 둔 것은 모두 우르의 주의를 최대한 끌지 않기 위해서였다.


통신을 위해 열어 둔 통신기에서는 간헐적으로 잡음과 함께 죽은 자들의 말소리가 나왔다. 회백색의 얼음과 베이지색의 우르를 보며 죽은 사람의 소리를 듣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듣고 싶지 않아 주파수를 바꾸어도 잠시 뒤에는 그 소리가 다시 들렸다. 죽은 자들도 주파수를 이리저리 바꾸는 모양이었다. 결국 우리 모두가 죽은 자의 소리 막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자원했을 때 모두가 내 용기를 칭찬했지만 미찌코의 눈빛은 여전히 냉랭했다. 우르를 향해 자세를 잡는 동안에도 그것이 마음에 남았다.


“서둘러요. 우르가 연구동을 다 부수고 숙소동을 파괴하기 시작했소.”


잡음 속에 들리는 클라크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공장 끝에서 몸채찍의 끝부분이 힐끗 보였다. 클라크가 화를 내며 소릴 질렀다.


“저놈들이 우르인간을 앞에 내세워 우릴 견제하고 있어. 이번에는 새 진정제를 쏘기도 어려워.”


무너지는 공장 쪽에서 보안요원은 새 진정제를 쏘려 하지만 우르인간이 우르 앞에서 얼음덩이와 쇠 조각 등을 던지기에 기회를 잡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쪽은 우르를 저격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르와의 거리가 1,2백미터에 불과에 단지 아슬아슬한 일일뿐이었다.


이제 그것이 소용없다는 일임을 알면서도 나는 진동을 일으키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했다. 모든 정황을 보건데, 이제 우르는 진동만으로 사물을 감지하지 않았다. 우르의 몸에는 우르인간의 눈 같은 세포가, 어쩌면 기관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째든 나는 약 백 미터 앞에서 우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우르 같은 거대한 표적을 맞추지 못한다면 바보이거나 총에 문제가 생긴 것일 거다. 새 진정제는 우르의 몸에 꽂혔고 우르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 지 몸을 한 번 접었다 펴 내 앞 50미터 정도까지 도달했다.


“우르가 오는 방향에서 벗어나 뛰어요. 한 번 더 접었다 펴면 우르에 깔려요.”


내 몇 십 미터 뒤에 있던 잭이 외쳤다. 그런 건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끝까지 용기 있게 보이고 싶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우르가 녹아내리거나 마비되기를 기다렸다.


“미쳤소?”


샘슨의 소리가 죽은 자의 잡음 속에서 섞여 들렸다. 그 소리 밑으로는 얼음바위에 맞아 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려있었다. 이럴 때, 장영이나 미찌코가 나를 걱정하며 경고하는 소릴 듣는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지만 그런 소리는 없었다. 그 무음에서 나는 정신이 들었고, 몸을 돌려 우르의 몸이 떨어지는 곳과 90도 방향으로 미친 듯 뛰었다.


내가 지구에서 100미터를 뛰는 시간만으로 본다면 나는 우르에 깔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유로파였다. 지구 중력의 1/6인 곳이었다. 나는 나는 듯 달려 뭔가 내 위로 떨어진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 얼음 위를 굴렀다.


우르의 몸이 내 발끝을 아슬아슬하게 지나 얼음 위에 내려앉았다. 나는 땅을 한 차례 더 굴렀다. 하늘의 절반을 차지한 목성이 바보를 보며 웃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찌코도 한심해 하고 있을 것이었다.


아무리 의식하지 말자고 했지만 나는 미찌코를 의식하고 있었다. 미찌코만 아니라 모든 자의 눈을 다 의식하고 있었다. 미찌코는 과거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기념하는 트로피였다. 얼음 위를 구르며 웃는 것처럼 보이는 목성의 기류를 보자 이제 그때는 아무리 해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뼈를 때리듯 자각 되었다. 그랬다! 이제 그때의 영광은 지나갔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미찌코를 비롯해 그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 해봐야 소용도 없었다.


“우르인간이 접근하고 있어. 빨리 일어나 공장안으로 들어와요.”


샘슨이 명령하듯 말했다. 뒤의 보안요원들이 의미 없을지도 모르는 공기총을 쏘아댔다. 백 미터가 넘는 우르의 끝부분에서 우르인간 십여 명이 보인다 싶더니 얼음덩이가 날아왔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공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기다란 물체가 날아와 헬멧을 스치고는 얼음바닥에 내리꽂혔다가 튕겨져 나갔다. 공장 어딘가에 있었을 금속 파이프였다. 놀랍게도 원통의 한쪽 끝이 날카롭게 갈아져 있었다. 금속 파이프는 딱딱한 얼음바닥에 꽂히지 못하고 자국만 남겼을 뿐이었지만, 우르인간이 창끝을 연마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소름이 끼쳤다.


“뛰어요.”


잭슨의 소리가 통신기에서 울렸다. 나는 공장을 향해 뛰었다. 등에 둔탁한 충격이 가해졌다. 얼음덩이에 맞은 것이다. 우리한 고통이 전해지는 순간 클라크와 샘슨의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우르가 움직이지 않아. 마비되었어.”


“조금 녹아내리기는 하는데···”


“지금이야. 궤도차를 출발시켜요.”


“1호 출발.”


내가 달려가는 방향이 유벤타 공장 정문 에어록쪽이었다. 에어록이 열리고 다급히 나오는 궤도차들이 보였다. 갑자기 공장 전체가 정전이 되며 어두워졌다가 다시 불이 켜졌다. 뒤쪽으로 접근한 우르가 몸채찍으로 핵발전소와 연결된 전력선을 끊었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적군에게 포위되어 농성 중에 있는 성의 화약고가 폭파되었다는 말을 듣는 기분이었다.


“핵발전소 자동 정지.”


“방사능 누출 제로. 핵발전소 폐쇄. 외부와 모든 통로차단.”


“배터리 정상 가동. 현 전력소비로 280시간 버틸 수 있습니다.”


공장이 가동되지 않아 그래도 며칠은 지속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샘슨이 모든 걸 포기한 듯 차분히 명령했다. 공장은 이제 배터리의 한정된 전력으로 숨 쉬는 존재가 되었다.


“통제실 인원도 모두 철수한다. 에어록으로 가 궤도차에 탑승하라.”


나와 네 명의 보안요원은 그 소리를 들으며 에어록에 도착했다. 분출공 근처에서 얼음바위를 날리던 두 마리의 우르가 얼음바위가 많은 외각으로 이동했다는 보고가 통제실에서의 마지막 보고였다.


나는 에어록에서 통제실 인원을 기다렸다. 그리고 정해진 대로 마지막 궤도차에 올랐다. 샘슨과 클라크, 김철수, 미찌코와 통제실 요원 둘, 보안 요원 둘에 나까지 아홉 명이 탔으니 궤도차는 거의 만원이었다. 장영은 바로 앞 궤도차를 타고 나갔다고 했다. 끝에서 두 번째로 나간 것이다.


정문 에어록 앞에서는 마비된 우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몸의 일부가 녹아내렸고 그렇게 떨어져 나온 우르의 조직이 꿈틀대며 사람모양으로 변하고 있었다. 우르인간이 던지는 얼음덩이가 궤도차 지붕과 뒷부분에 떨어지며 쿵쿵 소릴 냈다.


나는 관측창으로 유벤타 공장을 보았다. 영화 속에서 함락되는 성처럼 불길이 타오르면 장엄하겠지만, 공장은 조금씩 무너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모습은 철거 되는 건물처럼 보였다. 그랬다. 유벤타 공장은 이 위성의 주인, 우르에 의해 철거되고 있었다. 갱단의 본부라고 정체가 탄로나버린 건물이 철거 당하는 것과 같았다.


샘슨은 눈을 감고 그 모습을 보지 않았고 김철수는 관측창이 아니라 모니터를 통해 그 장면을 말없이 보고 있었다. 궤도차는 고속도로를 최대속력으로 달렸고 우르인간이 던지는 얼음덩이는 더 이상 궤도차에 닿지 않았다. 얼음덩이에 맞는 소리가 사라지자 허무함과 범벅이 된 슬픔이 궤도차를 메웠다. 제임스 기지의 켐젠이 상황을 물어왔다.


“모두 다 궤도차에 탔어요. 하지만 공장은 구하지 못했어요.”


샘슨의 힘없는 소리가 슬픔을 더 키웠다. 하지만 누구도 울지 않았다. 열어놓은 통신기에서는 계속 잡음과 가끔씩 비명소리가 들렸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통신기를 닫았다. 잠시 뒤 캠젠이 다시 나와 좌표를 불러주었다. 현재의 속도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로 고속도로 옆에 있는 공터였다. 월리엄 기지까지 세 시간을 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제임스 기지와 보급선의 왕복선 두 대 모두가 준비되었어요. 불러 준 좌표에 왕복선 한 대가 착륙할만한 공간이 있습니다. 굉장히 좁아 위험하지만 조종사들이 시도해 보겠다고 합니다. 한 시간 뒤 그곳에 왕복선들을 차례로 착륙시키겠어요.”


왕복선은 사람보다 화물 우선으로 설계되었다. 보급선에 딸린 왕복선은 규모가 있어 한대에 40명. 제임스 기지에 배치된 왕복선은 20명이 탈 수 있었다. 보급선 왕복선은 두 번, 제임스 기지 왕복선은 세 번을 오가는 것으로 했다. 켐젠이 걱정스레 물었다.


“우르인간이 추적해 오지는 않지요?”


“아직 그런 징후는 없어요.”


“좋아요. 그럼 궤도차들이 좌표에 도착하면 바로 왕복선을 보내겠어요.”


켐젠이 덧붙였다.


“제임스 기지만이라도 유지했으면 해, 지구에 잔류를 요청했지만 무조건 철수하랍니다. 우르가 너무 위험하다고요. 기자가 보낸 영상이 큰 역할을 했어요.”


켐젠의 희미하게 웃고는 말을 이었다.


“제임스 기지의 인원을 보급선으로 옮기고 나면 왕복선 연료도 끝이에요. 여분의 연료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게 계획대로 맞아 들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켐젠은 다짐 받듯 말했다. 각 궤도차의 상황을 알기위해서는 자주 통신기를 열어야했다. 다행스럽게도 궤도차가 공장에서 벌어질수록 통신기의 잡음도 사라졌다. 일단 탈출은 성공한 것 같았다.


점차 마음이 안정되자 유벤타 공장으로 오는 동안의 일이 생각났다. 그때의 우르인간들은 지금처럼 진화되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궤도차를 공격했다. 그러자 인간만큼이나 진화된 우르인간이 궤도차를 가만히 놔둘 리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이 분위기에서 입 밖으로 낼 순 없었다. 설사 모두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도 어떻게 하겠는가? 우르와 우르인간을 막을 방법이 없지 않는가!


나는 작은 한숨을 쉬며 궤도차 안을 둘러보았다. 김철수는 가장 뒷자리에서 완전히 찌그러져 앉아있고 샘슨은 운전자 뒷좌석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미찌코는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고 클라크만이 가끔씩 다른 궤도차의 부하들과 통신을 하며 상황을 확인할 뿐이었다. 이 궤도차에서 살아있는 사람은 클라크뿐인 것 같았다. 궤도차들은 30분을 달려 리네아 지역을 지나기 시작했다. 샘슨이 눈을 뜨고 중얼거렸다.


“지진이 없어야할 텐데.”


샘슨의 기원처럼 우리가 지날 때 지진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10분 뒤에 작은 지진이 지나갔다. 리네아와의 거리를 생각하면 유벤타 공장을 공격했던 것과는 다른 우르가 분출공으로 올라와 우릴 추적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우리는 궤도차의 속도를 믿었다. 하지만 리네아는 그곳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우르와 우르인간은 몇 시간 전 다른 리네아, 다른 분출공에서 유로파의 얼음 위를 밟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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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에필로그 +12 23.05.21 234 28 9쪽
169 16장. 죽음과 변용 (13) 23.05.21 143 14 16쪽
168 16장. 죽음과 변용 (12) 23.05.15 237 11 12쪽
167 16장. 죽음과 변용 (11) +2 23.05.12 130 16 12쪽
166 16장. 죽음과 변용 (10) 23.05.08 138 14 11쪽
165 16장. 죽음과 변용 (9) 23.05.05 146 11 11쪽
164 16장. 죽음과 변용 (8) +1 23.05.01 150 15 13쪽
163 16장. 죽음과 변용 (7) +2 23.04.28 154 15 13쪽
162 16장. 죽음과 변용 (6) 23.04.24 143 16 13쪽
161 16장. 죽음과 변용 (5) 23.04.21 158 11 13쪽
» 16장. 죽음과 변용 (4) 23.04.17 172 14 11쪽
159 16장. 죽음과 변용 (3) 23.04.14 165 13 13쪽
158 16장. 죽음과 변용 (2) 23.04.11 160 13 12쪽
157 16장. 죽음과 변용 (1) +1 23.04.07 157 14 15쪽
156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6) +1 23.03.31 189 15 13쪽
155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5) 23.03.27 151 15 10쪽
154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4) 23.03.24 146 19 13쪽
153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3) 23.03.20 157 16 12쪽
152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2) +1 23.03.17 163 15 14쪽
151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1) 23.03.13 151 15 11쪽
150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0) +1 23.03.10 162 14 14쪽
149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9) 23.03.06 185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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