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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맨 님의 서재입니다.

히어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네맨
작품등록일 :
2024.02.04 10:33
최근연재일 :
2024.04.23 00:10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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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65,398

작성
24.03.27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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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38-터널(6)

DUMMY

탁탁탁탁!


칼을 내리찍으려던 찰나, 민준은 다수의 발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민준과 춘봉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빨리 일어나!”


민준은 후다닥 일어나 국장의 팔을 붙잡았고 춘봉은 철희에게 당해 기절해있는 창식을 들쳐 메고는 터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 어디 가! 저 녀석은?”


국장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철희를 가리켰다.


조철희가 살아서 모든 것을 증언하는 일만큼은 막아야 했으니까.


“괜찮아. 내버려 두면 알아서 죽을 거야.”


에스퍼를 수도 없이 죽여본 그의 경험으로는 저 정도 상처와 출혈이면 살 가망은 아예 없다고 봐도 좋았다.

병원으로 이송되어도 금방 죽을 테니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기 전에 자리나 빨리 뜨는 것이 상책.


덕분에 민준 일행은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에 간발의 차로 무사히 터널 안으로 대피할 수 있었다.


“바, 반장님!”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그의 쌍둥이 동생 한민아의 목소리였다.


터널 안쪽 어두운 곳에서 숨어서 보고 있자니 그녀와 같이 온 사람들은 대응반 녀석들인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아와 대응반 인원들은 시체나 다름 없는 철희를 데리고 밖으로 사라졌다.


***


민아는 초조한 모습으로 대기실에서 서성거렸다.


승필의 거짓 신고로 대응반을 불러오는 데는 성공했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너무 늦고 말았다.


기다리지 말고 바로 왔었다면 반장님을 살릴 수 있었을까?

승필이 자신을 말리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민아는 괜시리 승필이 원망스러워지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몇 시간을 기다렸을까.

수십 시간은 흐른 것만 같은 감각.


다른 사람이 보면 발바닥이 닳아 없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만큼 서성거리던 그녀에게 의사가 찾아왔고 그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보호자분,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아마 환자분께서 다시 일어나실 일은 없으실 겁니다.”


의사의 입에서 나온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


민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의사의 어깨를 붙잡았다.


“뭐라고요?”

“어떻게든 기적적으로 목숨은 부지했습니다만, 출혈도 심했고 심정지도 왔던 상황이었던지라 뇌에 산소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많이 손상된 상태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환자분께서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승필은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 민아를 기다렸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보아도 전화기는 꺼져 있는 상태.

꺼진 전화를 억지로 켜서 받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게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가만히 그녀를 기다렸다.


결국 민아가 집에 들어온 것은 사흘 후.


문을 열고 들어와 현관에 엎어진 그녀는 완전히 술에 취한 모습이었다.


“···괜찮아?”


승필은 그녀에게 조심히 물었다.


그는 이미 병원 데이터를 뒤져봐서 알고 있었다.

반장이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괜찮냐고···? 하하, 괜찮지, 괜찮고말고.”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녀는 혀 꼬인 발음으로 말했다.


“비켜 봐. 쉬고 싶으니까···.”


그녀는 승필을 밀어내고, 따라오는 시욱이도 무시한 채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안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흐느끼는 소리.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려던 승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문밖에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어찌 되었든 돌아간다.


누가 죽었건, 또 누가 얼마나 슬퍼하건 이해해줄 생각도 않고 늘 굴러가던 대로 굴러가고, 가야만 했다.


대응반도 그러했다.


민아의 망가진 마음이 치유될 새도 없이 대응반은 언제나처럼 바쁘게 돌아갔다.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바쁘게 돌아갔다.


비어버린 반장 자리때문이었다.


조철희가 다시 복귀하지 못할 것이 확실해졌으니 누군가는 반장을 맡아야만 할 터.


유력한 후보는 15조 조장 민창식이었다.


그리고 그 유력한 후보는 지금 관리국 본부 국장실에 불려간 상태였다.


“녀석이 앞으로 일어날 일은 없다고?”

“네.”

“만에 하나라도?”

“절대로 없다고 합니다. 뇌가 많이 망가져서 눈을 뜨더라도 말 한마디 하기 힘들 거라고.”

“후우, 그거 잘 됐군. 한시름 놨어. 그놈의 컴퓨터는?”

“파쇄기에 갈아버렸습니다.”

“잘했어, 민창식 조장. 아니, 이제 곧 반장이지. 수고했으니 돌아가 봐. 곧 좋은 소식이 갈 거야.”

“감사합니다.”


창식이 국장실을 떠나고 국장은 가만히 창문을 열어 바깥의 하늘을 응시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데 그의 마음과 머릿속은 그와 반대로 먹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탁하고 어두웠다.


철희가 돌아올 가망이 없단 것을 확인했음에도 그는 아직 걱정 가득한 얼굴이었다.


조철희가 터널에 대해 발설하는 일만 막아낸 것이지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조철희가 터널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제보 때문이었다고 했으니 적어도 자신이 모르는 한 명, 터널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남아있다는 소리.


조철희를 구하러 왔던 대응반 인원들이야 터널을 보기만 했지, 그게 무슨 용도인지는 모를 테니 그 인원들은 논외로 친다고 해도 남은 한 사람이 영 꺼림칙했다.


‘누구지? 그 터널을 제보했다는 사람이라는 게.’


그는 꼭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도 몸에 두르고 있는 느낌에 진저리치며 창문을 탁하고 닫았다.


***


집안을 가득 채운 매캐한 담배 연기.


시욱이와 밥을 먹던 승필은 민아의 방 앞에 그대로 놓인 쟁반을 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밥과 반찬이 한술도 뜨지 않은 그대로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아가 휴직계를 낸 뒤 방에 틀어박힌 지 일주일.

그녀는 방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담배만 뻑뻑 피워대며 술을 마셔댈 뿐이었다.


승필은 그녀가 그러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녀가 조금만 더 빨리 갔다면 반장이 식물인간까지 되지는 않았을지도 몰랐다.


자신이 그녀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늦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말은 않지만 분명히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 터였다.


“아저씨, 누나가 요즘 무서워.”

“···누나가 요즘 조금 힘들어서 그래. 금방 괜찮아질 거야.”


그러나 다시 일주일이 지나도 민아는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정리될 줄 알았건만, 작은 불길을 빨리 잡지 않으면 점점 커져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듯 부정적인 감정은 불꽃이 되어 그녀의 마음을 모조리 불태우고 있는 것 같았다.


승필은 생각했다.


원망의 대상인 자신이 이 집에 계속 있는 한 그녀의 마음은 계속해서 썩어 문드러져 갈 것이라고.


그는 이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애초에 이 집에 계속 붙어서 민아에게 위험부담을 지우는 것도 불편하던 차였다.


자신의 존재가 민아에게 계속해서 해만 끼친다면 이 집에서 한시라도 빨리 나가 주는 것이 맞을 것.


그는 하루 동안 시욱이와 함께 집을 떠날 채비를 마치고는 자신의 생각을 민아에게 말했다.


그녀는 화를 내지도, 떠나지 말라고 말리지도 않았다.


그저 죽은 눈으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할 뿐.


그녀는 차 열쇠를 들고는 승필과 시욱이에게 따라오라고 힘없이 손짓했다.


근방의 모든 스캐너를 마비시킨 승필은 시욱이와 함께 민아의 차에 올랐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깡촌의 작은 마을.


이제는 노인밖에 남지 마을로 온 이유는 그가 히어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 그가 살았던 집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승필과 시욱을 내려준 민아는 담배를 꺼내 물다가 근처에 풀과 나무가 많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멈칫하고는 습관적으로 집어넣으려 했으나 이제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심정으로 다시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누나···.”


시욱이가 민아의 옆에 다가왔다.


“건강해야 해?”


민아는 아이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무심히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그대로 차에 올라탔다.


승필이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다가왔으나 민아는 오히려 그런 그를 보고는 곧장 시동을 걸어 길을 떠나버렸다.


“아저씨, 누나랑은 빠이빠이 했어?”

“응.”


승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요.”


시욱이 승필을 칭찬하며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고는 눈앞에 보이는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으악, 거미야!”


온 구석마다 쳐진 거미줄과 곰팡이들.


시욱은 깜짝 놀라면서도 그런 광경을 재미있어했다.


창문을 타고 넘어온 담쟁이 넝쿨도 만져보고 마당에 돌아다니는 개구리도 쫓아가 보고, 시욱이에게는 여기가 놀이동산이나 다름없었다.


격리 지구로 이송된 이후로 본 것이라고는 붕괴된 건물의 잔해, 그리고 민아의 집구석뿐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저씨, 우리 여기 사는 거야?”

“그래. 그러려면 일단 청소부터 해야겠지? 시욱아 도와줄 수 있겠어?”

“응!”


시욱의 힘찬 대답에 승필은 입꼬리를 올리며 슬쩍 미소 지었다.


***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의 팔이 피를 뿌리며 바닥에 툭 떨어졌다.


“으아아아아악!”

“너, 넌 누구···커억!”


이번에는 그의 옆에 있던 남자의 동료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다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여기가 영웅회가 맞나?”

“에, 에스퍼냐?”

“묻는 말에만 대답하면 돼.”


이번에는 그에게 에스퍼냐고 물은 남자가 두 눈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넘어졌다.


“여기가 영웅회가 맞냐고 물었다.”

“마, 맞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목숨을 살려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나?”


무릎을 꿇고 비는 남자의 주변으로 널브러져 있는 조직원들.


그를 제외하고는 한 명도 남김없이 모조리 시체가 되어 있었다.


제정신이라면 저 남자의 말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좋아. 그러면 나머지 녀석들은 필요 없겠군.”


피범벅 된 남자의 말이 끝나자 문 바깥과 천장의 대들보 위, 테이블 아래에서 동시에 단말마가 들려왔다.


기습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던 영웅회의 조직원들이 그의 공격을 받고 한순간에 절명한 것이다.


“으, 으아악!”


살아남은 조직원은 대들보에서 쿵 하고 떨어진 시체를 보고는 기겁하며 뒤로 넘어졌다.


뒤로 넘어져 벌벌 떨고 있던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기어와 머리를 조아렸다.


“며,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웅회의 보스에게 전해. 나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찾아오라고. 만약 찾아오지 않으면 영웅회를 모조리 몰살시키겠다고.”

“아, 알겠습니다. 보스에게는 누구라고 전하면 되겠습니까?”

“내 이름이 중요한가?”

“아, 아닙니다! 바로 가서 보스에게 전하겠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그래, 이름 정도는 대는 게 부르기 편할 수도 있겠어.”


남자는 테이블 보로 롱소드를 닦아내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트리니티.”

“···네?”

“가서 트리니티가 영웅회의 보스를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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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041-세상은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는다(1) 24.04.08 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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