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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맨 님의 서재입니다.

히어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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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맨
작품등록일 :
2024.02.04 10:33
최근연재일 :
2024.04.23 00:10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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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65,398

작성
24.02.29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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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해방전선(1)

DUMMY

패애앵!


“미치겠네. 이놈의 비염은 도대체가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단 말이야.”


루돌프가 코를 문지르며 불평을 내뱉었다.


“쯧쯧. 나약한 녀석. 나를 봐, 항상 운동하니까 감기 한번 걸린 적 없잖아.”


힘자랑하듯 양팔을 들어 올리며 건강을 과시하는 불새.

매일 같이 운동한다고 하는데 어째서 저런 깡마른 체형이 나올 수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루돌프가 추측하기로는 불새가 감기에 걸린 적이 없는 것은 아마도 운동 덕분이 아니라 능력 덕분일 것이었는데, 1000도가 넘어가는 불길을 뿜어대니 몸속에 있는 감기 바이러스도 전부 죽어 나가는 것이 틀림없었다.


“운동은 너나 열심히 하셔.”

“내가 가르쳐 준다니까?”

“됐고, 머시너리는 어디 있어?”

“까칠하기는···저쪽 방에서 동수가 갑옷을 해체 중이야.”


불새가 말한 방으로 들어가자 한쪽 벽면에 기대어 끙끙대고 있는 승필을 볼 수 있었는데, 어디 눈에 띄게 다친 곳은 없었으나 수류탄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루돌프는 반쯤 해체되어 바닥에 정리된 로봇 부품들을 보며 감탄을 흘렸다.


“대단한데. 이걸 그 안에서 만들었단 말이야?”

“루돌프?”

“그래, 머시너리. 밖에 나와보니 어때?”

“아직도 현실감이 없어. 내가 정말 밖에 나온 건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나도 그 기분 알지. 나도 한 때···.”

“시끄러워. 작업하는 데 방해되니까 조용히 좀 해줄래? 이거 생각보다 꽤 세밀한 작업이란 말이야.”


로봇의 다리 부분을 해체하고 있던 동수가 짜증을 내며 루돌프를 노려보았다.

그는 손에서 둥둥 떠다니는 나사는 금방이라도 발사될 것처럼 부르르 진동하고 있었다.


“오, 미안. 조용히 구경하고 있을게.”


동수가 능력을 이용해 갑옷을 해제하는 동안 루돌프는 부품들을 하나씩 세세히 뜯어 보았다.


고철 조각들을 모아 이어붙인 만큼 통일성도 없는 제멋대로의 구성.

언뜻 보기에는 볼품없어 보이는 외관.


그러나 루돌프는 감탄하고 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승필의 제작 능력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보기에도 대단한 것이었고, 이런 물건을 폐허 더미에서 만들어 냈기에 더더욱 대단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화단에 피어난 백합보다 쓰레기장에 피어난 한 떨기 장미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듯이.


“휴우, 정말 단단하게도 만들어 놨네.”


갑옷을 전부 분해한 동수는 땀을 닦아내며 뒤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착용자가 없었더라면 갑옷을 분해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승필이 다치지 않도록 분해해야 했기에 상당히 난이도 높은 일이었다.


심지어 수류탄의 충격으로 찌그러진 곳도 여러 군데 있어서 동수는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했고, 결과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다.


“수고하셨어요, 동수씨.”

“대표님!”


동수는 문을 열고 들어온 대표를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에는 대표를 향한 무한한 신뢰가 깃들어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승필의 눈에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는 민준을 놓아주었던 대표의 결정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머시너리, 아니 승필씨라고 불러야 하나요?”

“편하신 대로 부르세요.”

“움직일 수 있으시겠어요?”

“걷는 정도라면요.”

“그러면 잠시 따라오세요. 할 이야기가 있어요.”


대표가 승필을 안내한 곳은 앞으로 승필이 지내게 될 방이었다.


“여기가 승필씨 방이에요.”


침대 자리를 빼면 남는 공간이 별로 없어 비좁기는 하지만 격리 지구에 비하면 훨씬 나았기에 승필은 방에 대해서 큰 불만은 없었다.


“지내는 데 큰 불편함은 없을 거예요. 화장실은 저 밖으로 나가서···.”

“그때 왜 녀석을 살려 보냈죠?”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요.”


대표는 의자를 끌어와 앉았고 승필에게 침대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는 땅을 보며 잠시 생각하던 대표는 입을 열었다.


“승필씨는 왜 에스퍼들이 격리 지구에 갇혀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트리니티 일당이 저지른 테러 때문이겠죠.”

“네, 물론 그 사건이 결정타를 날리기는 했지만, 저는 그 전에 근본적인 부분을 묻는 거예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해 못 하겠군요.”


한민준을 살려 보낸 건에 관해 이야기할 줄 알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이런 토론이라니.

승필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에스퍼들의 능력은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개중에는 일개 군단에 맞먹는 힘을 가진 자들도 있어요.”


일개 군단에 맞먹는 힘을 가진 에스퍼들.

실제로 히어로 활동을 하던 에스퍼 중 상위권의 몇몇이 그러했고 특히, 트리니티는 군단을 따위로 만드는 무력을 보여주고 사라졌다.


“격리 지구의 에스퍼 숫자는 5만이 넘어가고요. 그런데 에스퍼들은 어째서 관리국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며 격리 지구에 갇혀 지내는 걸까요? 트리니티가 저지른 죄의 벌을 대신 받으면서 말이에요.”

“···모르겠군요.”


대표는 승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관리국은 군인들을 앞세워 에스퍼들을 격리 지구로 몰아넣었어요.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전부 잠재적 위험 분자라며 사살했고요. 그렇게 격리 지구에는 말 잘 듣는 겁쟁이들만 남게 되었죠. 관리국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관리국은 격리 지구라는, 에스퍼들이 당장 먹고 살기도 급급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을 제공했죠.”


열악한 환경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승필이야 민아에게서 음식물을 계속 조달받았으니 문제가 없었지만, 음식이 부족해서 약탈하고 서로를 죽이는 일은 격리 지구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거기에 관리국은 에스퍼들이 서로를 경계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기까지 했죠. 덕분에 관리국의 의도대로 에스퍼들은 분열만 일으키며 서로를 경계하게 되었어요.”

“···물론 관리국이 열악한 환경을 제공한 건 맞지만 에스퍼들의 분열까지 의도했다는 건 너무 비약적인 이야기 아닌가요?”

“과연 그럴까요? 승필씨는 집에서 10년간 숨어 지냈어요. 그런데 승필씨는 어떻게 주변에서 범죄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았을까요?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그게 무슨···.”


대표의 말대로 승필은 최대한 집에서 나가지 않도록, 다른 에스퍼와 충돌이 없도록 조심하며 살아왔다.

격리 지구에는 뉴스를 전해줄 매체도 없었고 그런 사건을 취재할 기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승필이 해킹할 수 있는 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에스퍼들이 싸웠다느니 죽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자신은 어떻게 알았던 걸까.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그 소문을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해냈다.


“연아씨···아래층에 사는 분이 알려줬어요.”

“그 아래층에 사는 분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승필은 그제야 이상함을 깨달았다.


“이상하죠? 격리 지구에서 탈출하신 분들 모두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위험한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어요. 주변 소식에 무감각한 편이든, 외출을 자제하든 어떻든 간에요. 저는 거기서 확신했죠. 누군가 에스퍼들 사이에 정보를 뿌리고 있다.”


대표는 휴대 단말기를 켜서 승필에게 어떤 파일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저는 이걸 찾아냈어요. 제 예상대로였죠.”


대표가 보여준 파일에 적힌 내용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요약하자면 관리국과 내통하는 에스퍼들이 몇몇 있으며 그들이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

관리국의 에스퍼들의 분열을 의도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이게 사실이라는 걸 어떻게 믿죠?”

“의심되면 관리국 서버를 뒤져보세요. 아직 남아있을 테니까.”

“···좋아요. 일단은 믿겠어요. 그런데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의도가 뭡니까?”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삼천포로 빠지다 못해 눌러앉은 수준의 이야기라 한민준 이야기를 완전히 까먹고 있을 정도였다.


“메기 효과라는 게 있어요. 미꾸라지들만 담은 수족관에서는 미꾸라지들이 금방 폐사하지만 메기 같은 포식자를 한 마리를 넣어주면 미꾸라지들이 오래 살아있게 된다는 이야기죠.”

“점점 더 알 수 없는 말을···.”

“격리 지구의 범죄는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아요. 대부분이 승필씨가 그랬던 것처럼 외부와 접촉을 최대한 피하며 살고 있어요. 그들은 관리국의 의도대로 망상과 학습된 무기력감에 빠져서 뭉치거나 관리국에 반기를 들 생각조차 못 하고 있죠. 격리 지구에는 그 무기력감을 없애줄 메기가 필요해요.”

“설마···.”


대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이해한 승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한민준 같은 포식자 말이에요.”

“미쳤어. 당신,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저는 제정신이에요. 격리 지구에는 지금 공공의 적이 필요해요. 분열을 막고 단합하게 해줄 그런 존재요.”


농담하거나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대표는 진심이었고 승필은 그런 그에게 두려움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 한민준에게 희생될 에스퍼들은? 그 사람들은 무슨 죄야?”

“안타까운 일이죠, 하지만 에스퍼들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현실을 봐야 할 필요가 있어요. 아무런 희생도 없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해요.”


이 자는 단단히 미쳐 있었다.

아니, 미친 사람들보다 더 위험했다.


다른 인간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인간,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냉혈한, 그게 바로 해방전선의 대표였다.


“그렇게 에스퍼들이 뭉치면, 그 뒤에는? 관리국을 상대로, 대한민국을 상대로 전쟁이라도 벌일 생각이야?”

“아니요, 저는 절대다수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원해요. 에스퍼들도 뭉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힘의 균형만 맞추기만 한다면 에스퍼도, 사람들도 모두 행복해질 수 있어요.”

“이건 잘못됐어.”


승필은 그의 사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해방전선의 다른 사람들도 당신의 이런 사상에 동조하는 거야?”

“아니요, 대부분은 몰라요. 하지만 승필씨라면 이해해주리라 생각했어요. 당신은 모두의 영웅 머시너리였잖아요?”


승필은 더 이야기하지 않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쳐나왔다.


요란스러운 소리에 밖에 있던 에스퍼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순식간에 집중되었고 한쪽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루돌프가 덜덜 떨고 있는 승필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왜 그렇게 떨어?”

“대표가···너희 대표가···.”


승필은 대표의 실체를 만천하에 까발리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에 맞춰 입만 뻐끔뻐끔 움직여질 뿐 그 어떤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뭐야? 뭐라고? 잘 안 들려.”

“대표가···대표가···!”


다시 한번 안간힘을 써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사이 어느새 뒤로 다가온 대표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후후, 승필씨, 피곤하신 거 같은데 들어가서 조금 쉬시는 게 어때요?”


대표는 이미 이런 상황을 모두 예견이라도 한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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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043-이변(1) 24.04.11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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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041-세상은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는다(1) 24.04.08 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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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026-해방전선(4) 24.03.05 9 0 12쪽
26 025-해방전선(3) 24.03.04 10 0 13쪽
25 024-해방전선(2) 24.03.03 10 0 12쪽
» 023-해방전선(1) 24.02.29 12 0 11쪽
23 022-최악의 2인조(3) 24.02.28 11 0 11쪽
22 021-최악의 2인조(2) 24.02.27 9 0 12쪽
21 020-최악의 2인조(1) 24.02.26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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