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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맨 님의 서재입니다.

히어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네맨
작품등록일 :
2024.02.04 10:33
최근연재일 :
2024.04.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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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398

작성
24.03.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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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해방전선(2)

DUMMY

한바탕 소란이 있고 나서 승필은 대표의 손짓에 이끌려 그의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어째서 따라갔는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냥 따라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

사람들 앞에서 사실을 폭로하려다 입을 떼지 못했던, 그때의 감각과 아주 비슷했다.


방에 들어가자 거짓말처럼 입과 목을 옥죄이면 감각이 사라졌고 승필은 곧바로 대표를 다그쳐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초능력이죠.”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어떤 능력으로 내 입을 막은 거냐고.”


대표는 대답하지 않고 아까와 같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서랍을 열어 커피 스틱을 꺼냈다.


“좋아. 나와 이야기할 생각이 없다면 더는 여기 있을 필요가 없지.”


철컥, 철컥.


승필이 뒤돌아 문을 열고 나가려 했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고장 난 것은 아니었다.

손잡이도 멀쩡히 돌아가고 문이 조금씩 들썩거리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밖에서 걸어 잠그거나 누군가가 막고 있는 것 같았다.


“내보내 줘.”

“앉아요. 커피 한 잔 마시고 진정하세요.”

“아니, 생각 없어. 나를 내보내 줘. 더는 당신과 엮이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문은 안 열릴 거예요. 초능력을 써도 소용없어요. 전자식 잠금장치가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얌전히 자리에 앉아서 제 이야기를 들으세요.”

“빌어먹을.”


승필은 어쩔 수 없이 한쪽 구석에 앉았으나 대표가 권한 커피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나한테 왜 그런 이야기를 한 거야?”


승필은 대표가 굳이 여기에 오늘 처음 들어온 자신에게 다른 해방전선 인원들도 모르는 이야기를 한 이유가 궁금했다.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더라면 민준을 살려준 대표의 행동에 의문을 갖기는 했겠지만, 이렇게까지 반발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아까 말했잖아요. 당신이라면 이해해주리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제 생각이 틀렸네요. 결국에는 당신도 똑같은 사람이었어요.”

“똑같은 사람이 뭘 이야기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널 이해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이 세상 어느 누가 이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까.

승필이 지금껏 보아온 사람 중 이 사람만큼 이상한 인간은 트리니티와 한민준 정도였다.


“제 생각의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죠?”

“전부.”

“설마 승필씨는 아무도 고통받지 않고 희생하지 않고 격리 지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런 문제가 아니야.”

“그런 문제예요. 이상만으로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대표는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고는 말을 이었다.


“관리국과 정부, 아니 대한민국은 에스퍼를 사회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요. UN으로부터 격리 지구 같은 비인도적인 제도를 철폐하라고 온갖 제재를 받고 있는데도 강경히 거부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러면 남은 방법은 에스퍼들이 직접 자유를 쟁취하는 것밖에 없는데 그게 가능해 보이던가요? 아니요, 불가능해요. 평생 그 상태 그대로일 테죠.”

“그만해. 당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건 내가 당신 생각에 동조할 일은 없으니까. 어떻게 포장해도 당신은 괴물, 정신병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승필은 어서 이 끔찍한 담론을 그만두고 싶었다.

이야기하면 이야기할수록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다면 유감이네요. 승필씨가 저를 이해해주길 바랐는데.”

“왜 그러는 거야?”

“뭐가요?”

“계속 나한테 공감을 바라고 이해해주길 원하는 것 같은데, 왜 그러는 거냐고.”


대표는 왜 이러는 걸까.


지금까지 대표가 주장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라도 이용하고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비인간적이고 효율주의적인 사상을 가진 인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대표가 승필에게 하고 있는 행동들은 오히려 그 반대.

승필의 마음을 돌려놓으려는 대표의 행동은 비효율적이고 집착에 가깝도록 공감의 갈구하는 심리는 인간적이기 그지없었다.


“이거 기억나시나요?”


대표가 갑자기 웃옷을 걷어 올렸다.


대표의 복부와 갈비뼈의 맨살이 전부 드러났고 오른쪽 옆구리에는 아주 커다란 흉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상처.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의 뇌리를 스치는 기억.


‘살려주세요! 제 딸이!’


“저는 10년 전 테러 현장에 있었고 폭격에 휘말렸죠. 큰 상처를 입어서 죽어가고 있었고 저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설마···.”

“하지만 죽어가던 저를 승필씨가 구해줬어요.”


트리니티에게 눈 한쪽을 잃었던 직후, 자신이 구해냈던 한 여자.


승필은 대표가 그 여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나니 갑자기 대표의 모습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던 중성적인 외모와 신비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상당히 커 보였던 키는 150 후반대의 신장으로 바뀌어 보였으며 목소리마저도 가늘고 여린 여자의 목소리로 바뀌어 들려왔다.


동화 속 요술처럼 한순간에 사람의 모습이, 인상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제 제 모습이 제대로 보이시나요?”

“내가···악몽을 꾸고 있는 건가?”


승필은 꿈인지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뺨을 꼬집었다.

격리 지구 탈출부터 눈앞에서 벌어진 요술 같은 일까지 꿈이 아니라면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었으니까.


뺨은 상당히 아팠다.


***


“괜찮겠습니까? 녀석이 대표님의 본 모습을 알게 되었을 텐데.”


탄탄한 체형에 제법 잘생긴 외모, 그리고 차가운 인상.

그녀의 심복 중 하나인 박선이 그녀의 옆에 다가와 섰다.


그의 초능력은 암시.


사람들이 대표를 중성적인 모습으로 보게 하거나 사람들에게 폭로하려 했던 승필의 행동을 막았던 것은 모두 그의 초능력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대표의 모습을 왜곡되게 보았던 것은 심층 심리에 파고든 그의 암시가 그녀에 대한 이미지를 흐렸기 때문.

승필처럼 강렬한 기억과 함께 대략적인 이미지를 잡아버리게 되면 그의 암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게 되어 그의 초능력이 무용지물 되었다.


“괜찮아요. 오히려 알아줬으면 했어요.”


‘그날 너를 구하지 말았어야 했어.’


대표는 방금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해해줬으면 했고 공감해줬으면 했는데 돌아온 것은 차가운 시선과 경멸의 목소리.

실연이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저 녀석, 대표님과 협력할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어디 가서 대표님에 대한 정보라도 흘리고 다닌다면···.”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녀석을 너무 신뢰하시는군요.”

“승필씨를 신뢰하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은 내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뿐이에요.”


그녀는 현실적이고 철저한 인간이었다.

승필이 자신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100퍼센트 확신하고 있지도 않았고 아무런 보험도 없이 본 모습을 보여줄 정도로 멍청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승필에게 그런 행동을 한 것은 그녀가 승필을 옭아맬 확실한 카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신과 일할 생각이 없어.’

‘저와 일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시욱이에 대해서 까먹으신 건 아니겠죠?’

‘···씨발.’


승필에게 부정당해도 좋다.

그가 반감을 갖고 있어도 상관없다.


시욱이라는 아이를 인질로 잡은 이상 그는 자신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으니까.

그는 어린아이를 내버려 둘 만큼 모진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


두 계단 세 계단씩 성큼성큼 뛰어 올라간 민아는 승필의 현관문을 쾅쾅 두드렸다.


“야, 뭐해! 정승필. 너 요즘 연락도 안 하고 너무한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대답.


민아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쇠창살 너머를 쓱 보았지만, 승필이 만든 잡동사니들만 잔뜩 보일 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승필씨라면 밖에 나갔어요.”


승필의 집 아래, 1층에 거주하는 여자 도연아가 계단 아래로 얼굴을 내밀었다.


“밖에 나갔다고요? 무슨 일로요?”

“무슨 재료를 구한다고 그러던데요. 기계 만들 재료가 부족하다고.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고 했어요.”

“요즘 꽤 사이가 좋아지셨나 보네요?”


민아는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기억에 도연아는 집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았고 평소에 승필과 대화도 자주 하지도 않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연아는 민아의 말에 흠칫 놀라더니 변명하듯 대답했다.


“오늘 친구가 오는 날이니까 혹시라도 자기 없는 동안에 오면 말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너무 기다리게 하는 건 싫으니까 혹시 늦어지면 먼저 돌아가라고도 이야기했고요.”

“걔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네.”


민아는 계단을 뚜벅뚜벅 내려가 연아의 앞에 똑바로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네, 정말이에요.”


그녀의 눈을 관찰하듯 바라보던 민아가 갑자기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쾅!


“꺄악!”


멱살을 잡혀 벽으로 밀린 연아가 정신을 차리자 민아의 살벌한 두 눈동자가 코앞에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녀석 어디 갔어.”

“켁켁, 방금 말했잖아요.”

“거짓말하지 마.”


민아는 연아의 가슴팍에 아예 팔꿈치까지 대서 세게 밀어붙였다.


“오늘은 원래 내가 오는 날이 아니거든? 그런데 걔가 그런 말을 했다고?”


예정대로였다면 사흘 후쯤에나 왔겠지만, 그녀가 일찍 찾아온 이유는 승필의 연락이 갑자기 끊겼기 때문.

그녀가 공구들을 가져다줘서 기계를 만들 수 있게 된 뒤로 뺀질나게 연락을 해댔던 그 녀석이 어느 날을 기점으로 갑자기 연락을 안 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상한데 갑자기 나타나서 변호라도 하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도연아를 보고 민아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말해! 정승필 어디 갔어!”

“켁켁, 이것 좀 놔 줘요.”


민아는 팔의 힘을 느슨하게 풀긴 했지만, 완전히 풀어주지는 않았다.


“말해봐. 녀석은 어디 갔어?”

“······.”


민아는 뜸 들이며 말하지 않는 도연을 다시 벽으로 세게 밀어붙였다.


“당장 말 안 해?”

“마, 말할 테니까 놔줘요. 그냥 민아씨한테 말해도 되나 잠시 고민했을 뿐이에요.”

“나한테 말해도 되나 고민했다고?”

“네. 하지만···두 분의 사이를 생각하면 말해주는 게 맞겠죠.”


연아는 승필이 어디로 갔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다 낡고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바람까지 새는 빌라는 방음이 잘 될 리가 없었고 밤에 그가 누군가와 하는 이야기가 전부 다 들렸기 때문이었다.


다만 말하지 않고 뜸 들였던 이유는 무단으로 격리 지구 밖으로 나간 것을 들킨다면 어떻게 될지 뻔했기 때문.

즉각 사살이거나 운 좋게 생포된다고 해도 사형이었으니 쉽게 말해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민아라면.

승필과 막역한 사이인 한민아라면 적어도 승필이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연아는 어렵사리 입을 열어 실토했다.


“승필씨는 격리 지구 밖으로 나갔어요.”

“···뭐? 그게 정말이야? 어디로 갔는지는 정확히 몰라?”

“해방전선이라고 했어요.”

“이런···이런 미친···.”


민아는 곧장 타고 왔던 차에 올라타 격리 지구를 빠져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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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45-이변(3) 24.04.15 10 0 13쪽
45 044-이변(2) 24.04.12 10 0 12쪽
44 043-이변(1) 24.04.11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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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041-세상은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는다(1) 24.04.08 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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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027-창공(1) 24.03.07 11 0 12쪽
27 026-해방전선(4) 24.03.05 10 0 12쪽
26 025-해방전선(3) 24.03.04 11 0 13쪽
» 024-해방전선(2) 24.03.03 11 0 12쪽
24 023-해방전선(1) 24.02.29 12 0 11쪽
23 022-최악의 2인조(3) 24.02.28 11 0 11쪽
22 021-최악의 2인조(2) 24.02.27 9 0 12쪽
21 020-최악의 2인조(1) 24.02.26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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