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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맨 님의 서재입니다.

히어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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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맨
작품등록일 :
2024.02.04 10:33
최근연재일 :
2024.04.23 00:10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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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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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265,398

작성
24.03.14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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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32-신입(3)

DUMMY

“저리 비켜!”


골목에서 튀어나온 남자가 지나가던 행인의 몸을 들이받고는 그대로 모퉁이를 돌아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그리고 뒤이어 골목에서 따라 나오는 무장한 사람들.

사람들은 그것이 대응반이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소리 지르며 사방팔방 도망치기 시작했다.


“에스퍼다!”

“으아아악!”


민아가 총을 들어 도망치는 에스퍼의 등을 겨누었으나 이내 총구를 내리고는 에스퍼를 따라서 뛰었다.


신입 조장으로서 교육을 받다가 얼떨결에 실전에 투입된 최태수.

그는 민아를 따라 뛰며 그녀에게 물었다.


“어째서 안 쏘시는 겁니까?”

“잘못하면 사람들이 맞을 수 있어요.”


마음 같아서는 곧장 쏴서 제압하고 싶었지만, 도망자가 사람들이 많은 길목으로 달아났기에 쉽사리 총을 쏠 수가 없었다.


<에스퍼 경보, 에스퍼 경보. 시민 여러분께서는 가까운 대피소나 안전한 장소로 신속히 대피해주시길 바랍니다. 에스퍼 경보. 에스퍼 경보. 시민 여러분께서는···.>


썩을 것들, 참 빨리도 하네.


민아는 한 발 늦은 방송을 듣고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그러면 어떡합니까?”

“에스퍼들에게 맡겨봐야죠. 부탁해 경수야.”

“알겠습니다요.”


경수는 다리를 굽혀 도약 자세를 취했고 그가 다리를 펴는 순간 그의 몸은 로켓처럼 발사되어 하늘을 날았다.


점프하는 순간 받는 중력을 낮춰 몸무게를 가볍게 만든 것이다.


수영하듯 몸을 눕혀 공기 저항을 최대한 덜 받는 자세로 날아간 경수.

그는 홍해 갈라지듯 쫙 갈라진 인파 사이로 뛰어가는 에스퍼를 발견하고는 중력을 서서히 높여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엇?”


착지하며 도망자를 붙잡은 경수는 그대로 다시 몸을 웅크리고는 이번에는 수직으로 뛰었고 두 에스퍼의 몸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으아아아악! 이거 놔!”

“정말? 감당할 수 있겠어?”


악을 지르던 에스퍼는 경수의 말에 아래를 보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콩알만 하게 보일 정도의 높이.

이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팔다리 부러지는 정도로 끝날 리가 없었다.


얌전해진 에스퍼는 경수와 천천히 낙하해 민아가 대기하고 있는 장소로 떨어졌다.


“능력은 뭐죠?”


포박당해 대응반 차량에 실린 에스퍼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각성해서 정확히는 몰라요.”

“대략적으로라도.”

“애, 액체. 그러니까···몸에서 나오는 체액에 닿는 것들이 녹는 것 같아요.”

“체액이라면 침이나 피, 눈물 전부 해당하는 건가요?”

“예···.”

“으음···이걸 뭐라고 적지···모든 것을 녹이는 체액? 이건 너무 길고···산성 체액? 산성인지는 모르는데···. 에이 모르겠다.”


민아는 남자가 말하는 정보를 태블릿에 받아적으며 계속해서 물었다.


“강도는요?”

“네? 가, 강도라니 그런 짓은 한 적 없어요. 하늘에 맹세코 사람을 해치거나 한 적은 없으니 제발···.”

“아뇨, 아뇨. 체액이 물건을 녹이는 강도가 어느 정도냐고요. 어떤 물건까지 녹일 수 있어요?”

“어···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제 물을 마시다가 입에 닿은 스테인리스 컵이 녹았어요.”


특기사항에 금속도 녹일 만큼 강력함이라고 적은 민아는 태블릿을 끄고 뒤에서 구경하던 태수에게로 몸을 돌렸다.


“대응반 번호는 기억하세요?”

“네. 어제 알려주신 덕분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번 연락해보세요.”

“어···연락해서 뭐라고 합니까?”

“도주자 잡았다고, 이제 복귀하겠다고 하면 돼요. 간단하죠?”


태수는 민아의 말대로 대응반으로 전화해 에스퍼를 포획했음을 알렸고 이후 민아는 대응반으로 복귀하기 위해 운전석에 올랐다.


“잠깐···뭔가 잊은 것 같은데.”


조수석에는 신입인 최태수, 뒷좌석에는 도주자와 그녀의 부하인 경수와 혜주.


그녀는 인원을 모두 확인하고 나서야 잊은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태수씨. 하나씨는 어디 있어요?”

“네? 아, 아아!”


그제야 부하 에스퍼 오하나가 기억 난 태수.


“어, 어떡합니까? 도망이라도 쳤으면···.”

“진정해요. 도망치지는 않았을 거예요. 제가 찾아볼 테니 여기서 잠시 대기하고 있어 봐요.”


민아는 허둥대는 그를 진정시키며 운전석에서 내려왔던 길을 따라 돌아갔다.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살피던 그녀는 얼마 가지 않아서 구슬땀을 흘리며 걸어오는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헉, 헉.”

“하나씨, 어디 갔었어요?”

“헉, 헉. 어디 안 갔어요. 계속 따라서 뛰었는데···.”


처음 도주자를 추적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계속해서 민아 일행을 쫓아가던 그녀는 점점 벌어지는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낙오되고 말았던 것.


평소에 신체를 단련하는 대응반 사람들과는 달리 격리 지구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그녀에게 달리기는 상당히 버거운 일이었다.


두 사람이 차로 돌아오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태수는 불만 가득한 눈으로 오하나를 노려보았다.


“한민아 조장님, 부하 에스퍼를 바꿀 수는 없습니까?”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이 정도도 못 뛰는 녀석을 데리고 어떻게 일을 합니까? 보니까 체력이 보통 안 좋은 게 아니던데.”


그의 푸념에 뒷좌석에서 심드렁한 얼굴로 그의 말을 듣고 있던 경수가 끼어들었다.


“거참 더럽게 징징대네.”

“뭐라고?”

“운동해 본 적이 없으면 그럴 수도 있지.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하면 되잖아요, 신입 조장님?”

“이게 어디서 상관한테···.”

“상관? 아직 정식으로 조장도 아닌 주제에 어딜 상관 대접을 받으려고.”

“다들 그만!”


민아의 외침에 입을 닫은 두 사람은 서로를 무시하듯 고개를 돌렸다.


“낄낄낄, 남자들 삐진 것 좀 봐. 어휴, 유치해서 증말.”

“혜주야. 너도 조용히 좀 해. 다들 듣기 싫으니까 입 닫고 있어. 알겠지?”


민아의 명령으로 대응반 다섯 명과 도주자, 도합 여섯을 태운 차량은 침묵 속에서 복귀했다.


대응반에 도착하자 입구에는 도주자를 본부로 이송하기 위한 차량이 대기 중이었고 도주자를 넘겨준 민아는 태수를 끌고 곧장 23조 사무실로 들어갔다.


“태수씨.”

“네, 한민아 조장님.”

“왜 그렇게 에스퍼들을 싫어하세요?”

“괴물들을 싫어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에스퍼도 처음에는 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잖아요.”

“네. 트리니티도 그랬고 말입니다.”


태수는 반항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제 할머니와 친구가 모두 그 사건으로 죽었습니다. 조카와 놀아주려고 가셨던 할머니는 조카를 지키다가 돌아가셨고 친구는 제 눈앞에서 건물에 깔려 죽었죠. 이 정도면 싫어해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씨가 트리니티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언제 트리니티처럼 변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기도 합니다. 한민아 조장님, 저야말로 궁금합니다. 어째서 조장님은 에스퍼들을 싸고도는 겁니까?”

“그런 적 없어요.”


민아는 태수의 말을 부정했다.


그녀는 딱히 어떤 에스퍼를 편애하거나 싸고돈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태수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아주 불쾌한 느낌이요. 그래···저 녀석들 같은 느낌 말입니다.”


그는 창밖으로 보이는, 정문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시위자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인권 단체로, 피켓에는 에스퍼들도 똑같은 인간이라며 격리 지구를 없애고 에스퍼들을 사회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아주 역겨운 자들입니다. 자기들 가족이나 지인이 죽었어도 저럴 수 있었겠습니까? 가족 잃은 자들의 고통은 이해하지 못하면서 본 적도 없는 에스퍼들을 걱정하는 위선적인 녀석들. 볼 때마다 구역질이 치밀어 오릅니다.”


태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면 왜 대응반에 들어온 거예요? 에스퍼들이랑 같이 일하는 거 몰랐어요?”

“그런 부분은 싫지만 에스퍼들에게 복수할 수 있으니까요. 돈도 많이 받는 편이고 말입니다.”

“···누구에게 복수한다는 거예요? 당신이 복수해야 할 대상은 에스퍼들이 아니라 트리니티에요.”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이제 트리니티도 없지 않습니까.”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당연히 이해 못 하실 겁니다. 조장님은 가족을 잃어본 적이 없으실 테니까요.”

“있어요.”

“네?”

“저도 가족을 잃었다고요.”


***


민아의 어머니는 토끼 머리띠를 하고 트리니티의 얼굴이 그려진 부채를 팔랑거리는 딸의 모습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핀잔을 주었다.


“얘, 너는 스무 살이나 돼서도 이런 유치한 게 좋니?”

“여보, 놀러 와서까지 그래야겠어? 이왕 놀러 온 거 즐기게 내버려 둬.”

“가장 신난 건 당신인 거 같은데.”

“그것도 맞지. 이거 봐봐.”


뿌우.


민아의 아버지는 노점상에서 산 빨대를 뿌뿌 불어대며 딸과 함께 낄낄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민아보다 그가 더 신난 것 같았는데, 털 달린 고깔모자에 얼굴에는 스티커를 붙이고 비눗방울 통을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녀는 꼭 애 둘을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못 살아 정말.”

“그러지 말고 즐기자니까? 봐봐, 저기 당신이 좋아하는 붕어빵도 판다. 먹을래?”


그녀는 붕어빵 가게를 보고는 질색하며 볼멘소리를 내었다.


“어휴, 가게 장식 요란한 것 좀 봐. 정신없어.”

“아빠, 나는 슈크림으로.”

“오케이.”

“···나는 팥으로.”

“접수 완료. 사 올 테니까 조금만 쉬고 있어.”


민아의 아버지가 붕어빵을 사러 줄을 서 있는 동안 두 사람은 근처 벤치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구경했다.


삑삑 소리 나는 신발을 신고 다니는 어린아이부터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까지 수십만의 인파가 몰려 북적대는 히어로 페스티벌의 현장.


쿠구구궁.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행복의 공간에 갑자기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응? 이게 무슨 소리니?”

“천둥소리 아니야? 어? 근데 오늘 비 안 온댔는데.”


하지만 일기예보와 달리 눈부시던 분수는 더 이상 빛을 반사하지 않았고 주변은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떨어질 것처럼 어둑어둑했다.


민아는 이상함을 느끼며 하늘로 시선을 돌렸고.


그녀는 세상의 종말을 보았다.


분명 땅에 발을 딛고 있을진대 마치 헬기를 타고 고층 빌딩가를 보는 것처럼 수없이 늘어선 마천루의 꼭대기가 그녀의 눈에 들어와 꽂혔다.


그리고 빠르게 땅으로 추락하는 마천루.


“미, 민아야! 여보!”


붕어빵 봉지를 떨어뜨린 민아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손을 붙잡고 뛰었다.


살기 위해 남을 밀치고 도망치는 사람.

죽음을 직감하고 포기한 사람.

히어로들이 벌이는 환상 쇼겠거니 하고 웃는 사람 등등 많은 군상이 있었지만, 같은 점이 하나 있다면 그들은 같은 운명을 맏이하게 될 것이라는 것.


마천루가 쏟아져 내려 사람들을 덮쳤다.


태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조장님은 어째서···.”

“저를 살린 것도 에스퍼였으니까요.”


오른팔에서 느껴지는 격통, 쓰라린 목.


정신을 차린 민아는 콘크리트 분말에 콜록거리며 소리쳤다.


“엄마! 아빠! 으으윽.”


민아는 부모님을 찾기 위해 일어나려 했으나 오른팔을 콘크리트 잔해가 짓누르고 있어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제발, 빠져라.”


다행히 틈에 교묘히 껴서 짓뭉개지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팔을 뺄 수 있을만큼 느슨하게 낀 것도 아니어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었다.


끼이익.


“어, 어어?”


땅에서 뽑혀 비스듬하게 서 있던 가로등.


가로등이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서서히 민아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민아는 가로등을 피하려고 발악했지만, 콘크리트 사이에 낀 팔은 그것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마천루가 쏟아졌을 때도 직감하지 못했던 죽음을 직감한 그 순간.


<괜찮아요?>


강철의 거인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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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044-이변(2) 24.04.12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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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041-세상은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는다(1) 24.04.08 9 0 13쪽
41 040-트리니티(2) 24.04.02 8 0 12쪽
40 039-트리니티(1) 24.04.01 9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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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037-터널(5) 24.03.25 9 0 12쪽
37 036-터널(4) 24.03.22 9 0 12쪽
36 035-터널(3) 24.03.21 9 0 13쪽
35 034-터널(2) 24.03.20 9 0 12쪽
34 033-터널(1) 24.03.19 9 0 12쪽
» 032-신입(3) 24.03.14 11 0 12쪽
32 031-신입(2) 24.03.13 10 0 13쪽
31 030-신입(1) 24.03.11 10 0 12쪽
30 029-창공(3) 24.03.10 11 0 12쪽
29 028-창공(2) 24.03.08 11 0 13쪽
28 027-창공(1) 24.03.07 10 0 12쪽
27 026-해방전선(4) 24.03.05 9 0 12쪽
26 025-해방전선(3) 24.03.04 10 0 13쪽
25 024-해방전선(2) 24.03.03 10 0 12쪽
24 023-해방전선(1) 24.02.29 11 0 11쪽
23 022-최악의 2인조(3) 24.02.28 11 0 11쪽
22 021-최악의 2인조(2) 24.02.27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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