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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맨 님의 서재입니다.

히어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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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맨
작품등록일 :
2024.02.04 10:33
최근연재일 :
2024.04.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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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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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창공(1)

DUMMY

승필은 다른 에스퍼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능숙한 몸놀림으로 창공의 해치를 열고 조종석에 올라탔다.


창공의 동체와 감응한 승필은 생각보다 멀쩡한 창공의 상태에 깜짝 놀랐다.


뜯겨 나간 오른손까지 그대로.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때 그대로라고 해도 모자람 없었다.


트리니티의 테러 이후 관리국에 창공을 몰수당한 지만 10년.

그 긴 세월 속에서도 창공은 녹슬지도, 망가지지도 않고 컨디션을 유지한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승필이 창공에 올라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에스퍼들은 일제히 창공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화염과 찔러 드는 번개의 창.

창공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염력으로 옥죄이는 에스퍼도 있었고 손에서 광선을 내뿜는 에스퍼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초능력은 4미터가 넘어가는 강철의 거인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외부 갑피에 상처가 날지언정 그 어떤 공격도 창공에 치명타는 하나도 없었고 창공은 모든 공격을 무시하며 두께 10cm가 넘어가는 철문을 들어 올려 바닥에 내리찍었다.


쾅!


철문은 방패가 되어 창공으로 날아드는 모든 공격을 대신 받아내었고 이내 에스퍼들은 정면에서의 공격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감히 철문 옆으로 돌아 창공의 근처로 접근할 생각을 하는 에스퍼는 아무도 없었다.


“빌어먹을.”


박선은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뒤돌아 계단을 올라갔다.


그의 암시 능력은 사람을 똑바로 보고 사용해야 하는 초능력이었기에 저곳에 남아 있어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박선이 생각한 것은 시욱이를 인질로 잡는 것.

그는 시욱이가 있는 놀이방을 향해 뛰었다.


한달음에 세 층을 뛰어 올라간 선은 숨을 몰아쉬며 놀이방 앞까지 도착했으나 그가 놀이방에 도달하는 일은 없었다.


바닥을 뚫고, 아니 찢어내고 나타난 창공의 상반신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창공의 왼손이 아연실색한 박선의 몸뚱이를 낚아채 눈앞까지 끌고 왔고 승필은 선을 죽이지는 않고 고통스러울 정도로만 손을 쥐며 그를 윽박질렀다.


-대표에게 가서 전해. 더는 나와 시욱이를 뒤쫓지 말라고. 그러면 우리가 적이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알아들었지?

“끄으윽. 아, 알겠어. 알겠으니까 풀어줘.”

-좋아.


박선이 도망치듯 떠나고 승필이 놀이방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자 졸린 얼굴의 시욱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우우웅. 아저씨?”


시욱이는 창공에 타고 있는 것이 승필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보고는 폴짝폴짝 뛰었다.


“우와아아! 멋있다!”

-후후, 그래?

“응! 나도 타고 싶어!”


승필은 순진무구하게 웃는 시욱이를 왼손에 올려 해치 안에 태워 무릎에 앉힌 후 앞으로 전진했다.


창공은 지나가기에 길이 좁았던 탓에 상반신만 내민 채로 바닥을 전부 부수며 이동했고, 그 압도적인 모습에 다른 에스퍼들은 창공을 막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아지트를 풍비박산 내며 정문까지 들이받아 부순 창공.


그의 앞으로 암흑에 물든 숲이 펼쳐져 있었다.


밖으로 쿵쿵거리며 걸어나온 창공은 어둠이 내린 숲속으로 뛰어올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잠시 뒤, 소란의 현장으로 모인 루돌프와 대표.


“머시너리가 그걸 발견했군요.”


루돌프가 창공이 뚫고 나왔던 구멍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 암시가 제대로 걸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대표님.”


선은 고개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고 대표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다독였다.


“괜찮아요. 제가 안일했던 잘못이니까 자책하지 마요. 로봇을 해킹할 수 있는 일말의 여지도 줘서는 안 됐는데.”

“도망간 머시너리는 어떻게 할 겁니까?”


루돌프의 질문에 대표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잡아 와야죠.”

“하지만 녀석은 창공에 타고 있어요. 방금도 도망치는 걸 못 잡았고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녀가 한 말의 의도를 알아차린 루돌프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대표님, 저는 자신 없습니다. 아무리 똑같은 능력이라고 해도 숙련도의 차이가···.”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에스퍼들도 도와줄 테니까. 우리의 계획을 위해서 머시너리를 꼭 붙잡아 와야 해요.”

“···알겠습니다.”


루돌프가 자신없는 목소리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


“서산?”


휴대전화에 찍힌 위치는 서산시의 어느 숲속.


승필이 해방전선으로 향한다고 했으니 지도에 찍힌 이 위치가 해방전선의 거점일 것이었다.


민아는 차를 몰아 서산으로 향했고 한밤을 지나 새벽이 되어서야 서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도에 찍힌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도로에 차를 세워둔 그녀는 대응반에서 슬쩍해 온 야간 투시경을 썼다.


야간 투시경은 손전등을 썼다가 발각되기라도 하면 혼자서 해방전선 전원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기에 가져온 것.


마음 같아서는 무기까지 꺼내오고 싶었으나 총기류는 엄중히 관리되고 있었기에 야간 투시경 정도가 한계였고, 어차피 표시된 그 위치에 해방전선이 정말로 있는지만 확인하고 올 생각이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숲속으로 한참을 들어간 그녀는 곧 지도에 표시된 위치 근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쯤인데···.’


몸을 낮추고 주변을 살피던 민아는 저 앞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바닥으로 몸을 숙였다.


보초를 서던 그는 절벽에 기대어 하품을 하고 있었는데, 옆을 보니 인위적으로 깎아낸 느낌이 드는 동굴 하나가 있었다.


‘저기가 녀석들의 거점인가?’


민아는 동굴 입구가 잘 보이는 위치로 기어서 이동했다.


그렇게 엎드려서 구경하고 있자니 동굴 안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와 보초를 서고 있던 자를 향해 달려와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했고 두 사람은 그대로 기지 안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어디로 간 거지?’


보초도 사라졌겠다 기지를 더 자세히 관찰할 기회라고 생각한 민아는 은밀하게 동굴로 접근했고 동굴 앞까지 다다르자 그 안쪽에는 엉성하게 수풀로 가린 기지의 입구가 있었다.


더 살필 것이 있나 둘러보던 민아는 급하게 밖으로 뛰어나와 근처에 몸을 숨겼다.


입구 안쪽에서 고함치는 소리와 레킹 볼로 후려치는 듯한 육중한 타격음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민아가 숨을 죽이고 있자 곧이어 쇠가 휘는 듯한, 끼이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후 거대한 로봇이 기지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는 그 로봇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창공! 저게 왜 여기에?’


민아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승필의 격리 지구 행이 결정되었던 그 날, 승필은 관리국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창공에서 내렸고 창공은 관리국의 차량 수십 대가 달라붙어 견인해갔고 관리국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혹시 모조품인 걸까 싶어 로봇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았고, 뜯겨 나간 오른손을 발견한 그녀는 저 기체가 10년 전 승필이 타고 다녔던 창공이 맞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째서 저게 여기에?’


바로 일주일 전에도 관리국 창고를 지나가다가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창공이 여기에 있는 것일까.


민아가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하는 사이 창공의 다리 부분에 전력이 집중되듯 희푸름하게 빛나기 시작했고 창공은 곧이어 숲 위로 날아올랐다.


'일단 쫓아가 봐야겠어.'


엎어져 있던 민아는 곧장 일어나 달렸다.


어째서 여기에 창공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것 같았으니까.


민아는 연락도 없이 떠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어두운 숲속을 헤치며 질주해 나갔다.


***


나무들을 이쑤시개 부러뜨리듯 짓뭉개며 나아가던 창공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창공을 조종하고 있던 승필의 몸에선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는데, 10년 만의 조종이 만만치 않았던 탓이었다.


예전에는 자유자재로 다루었던 팔다리였을 텐데 지금은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온몸에 부담이 오는 것이 바로바로 느껴질 정도.


창공은 따로 연료를 쓰지 않고 오로지 승필의 능력에 의존하여 움직였기 때문에 정신력뿐 아니라 체력의 소모도 어마어마했다.


승필의 무릎에 앉아있던 시욱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저씨 괜찮아?”

“응. 괜찮아. 조금만 쉬면 다시 괜찮아질 거야.”


승필은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애써 웃으며 시욱이를 안심시켰다.


‘창공을 끌고 계속 이동하는 건 무리야. 민아에게 연락을 해봐야겠어.’


그는 창공을 버리고 도망갈 생각을 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가 창공을 버리려는 이유는 체력 소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거대한 로봇을 이끌고 관리국의 시선을 벗어나기는 불가능했기에 어차피 언젠가는 버려야 할 운명이었고, 그는 민아에게 도움을 요청해 시욱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옮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쿵. 쿵.


“응?”


승필은 익숙한 충격음을 듣고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 충격음은 지금 들릴 수가 없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창공을 움직일 때마다 났던 발소리.

강철의 발굽이 바닥을 찍을 때마다 울려퍼졌던 그 소리가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뒤를 돌아본 승필은 경악하며 황급히 창공을 일으켜 세웠다.


놀랍게도 그의 눈앞에는 창공이 서 있었다.

그가 타고 있는 기체와 쌍둥이인 것처럼 똑 닮은 바로 그 기체가, 뜯겨 나간 오른손까지 똑같은 그 기체가 시퍼런 안광을 내뿜고 있었다.


-대단해, 머시너리. 이런 걸 조종하고 있었다니 존경스러울 정도야. 손가락 발가락 하나 움직일 때마다 죽을 맛이군.

“루돌프?”

-그래.


상대방의 기체에서 들려온 것은 루돌프의 코맹맹이 목소리.

그 역시 창공의 조작이 힘들었는지 상당히 지친 목소리였다.


-보아하니 너도 지친 것 같은데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는 게 어때?

“나는 절대로 돌아갈 생각 없어.”

-아까까지만 해도 널 못 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여기까지 조종해보고 나니 알겠어. 네가 우리에게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해. 대표님이 네 잘못은 묻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다시 생각해봐.


루돌프의 제안을 가만히 듣고 있던 승필이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자.”


아마도 창공을 지하에 보관하고 있던 것은 대표.

그녀가 창공의 존재를 숨기고 있었던 것인지 다른 에스퍼들은 창공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루돌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다른 에스퍼들은 지하에 무엇이 있는지 알 길이 없었으나 루돌프라면, 승필과 같은 능력을 구사하는 그라면 창공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었고 대표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터.


그런데도 루돌프가 있는 근처에 창공을 보관했다는 것은 대표와 루돌프의 관계는 여타 해방전선의 인원들보다 더 긴밀한 관계라는 것을 뜻했다.


“너도 혹시 대표가 어떤 녀석인지 알고 있었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러면 더 알기 쉽게 물어볼게. 대표가 한민준을 일부러 풀어줬다는 거, 너는 알고 있었어?


루돌프는 침묵했고 승필은 그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너도 똑같은 녀석이었을 줄이야.“

-마음대로 생각해. 어쨌든 얌전히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거지? 그러면 힘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어디 한 번 해봐. 내가 진짜 실력이 뭔지 보여줄 테니까.“


땅을 딛고 똑바로 일어선 두 기체는 서로를 마주 보았고 기체 모든 부위에서 희푸름한 불빛을 서서히 발산하기 시작했다.


창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새벽의 숲속을 뒤덮었고 금방이라도 돌진할 것처럼 몸을 달아 올리던, 두 기체를 감싼 불빛은 얼마 지나지 않아 최고조에 달했다.


"시욱아, 아저씨 꽉 붙잡아."

"응."


그리고 최대로 충전된 두 기체는 이내 맹렬한 기세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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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45-이변(3) 24.04.15 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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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041-세상은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는다(1) 24.04.08 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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