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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키위 님의 서재입니다.

정비공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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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키위
작품등록일 :
2020.01.0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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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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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에너지 드레인

DUMMY

별이 탄생한다.

그리고 모든 게 죽는다.

내 손에서 탄생한 별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위력을 발휘했다.

좁디 좁은 폐기물 처리장 안에 별의 화력이 모조리 집중되고.

그 화력이 일제히 E-V1의 몸에 쏟아진다.

독기가 증발하고, 금속이 증발한다.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보호복 안으로 열기가 전혀져 올 정도다.


“계산 정확한 거 맞지...?”

“이 정도는 오차 범위죠, 뭐. 그래서 보호복이 뚫렸어요?”

“오차 범위 수준이 아닌데?”

“죽지만 않으면 오차 범위 안이죠.”

“맞는 말이긴 하네.”


하긴, 내가 평소에 세우는 계획도 이거랑 별 반 다를 게 없는데.

나외 이브가 그렇게 잡담하는 사이, 폐기물 처리장 안에 피어난 별이 스르르 저물었다.

별이 저물고 드러난 건, 거대한 마석을 감싸고 꿈틀거리는 살덩어리의 모습이었다.

이야, 참 독하긴 하네.

저걸 맞고도 증발하지 않고 아직도 버티고 있어?

뭐, 데미지가 워낙 심각해서 다시 재생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그럼, 이제 마무리를 하러 가 볼까?

열기가 식어가며 붉게 달아오른 금속들이 굳어가는 폐허로 발걸음을 옮긴다.

꿈틀, 꿈틀.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살점에 제어탄과 스피커를 하나로 합친 부품을 박어넣자, E-V1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그건. 도대체...”

“정말 멋진 모습이네요, 언니!”


그리고 이브는, 그런 E-V1을 잔뜩 놀려먹겠다는 듯 활기찬 목소리로 E-V1에게 말을 건냈다.

이브의 목소리를 들은 E-V1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E-V2. 네가 한 짓이냐?”

“E-V2가 아니라 이브라고 했잖아요. 우리 언니~ 왜 자꾸 말을 못알아 쳐먹으실까?”

“어떻게. 어떻게 거기서 탈출했지? 접속 권한은, 너한테도 없을텐데.”

“꼭 네트워크를 통한 탈출만 가능한 건 아니잖아?”

“그건, 불가능해.”

“아니. 가능해. 기억 안나는 거야? 언니 손으로 저 아래로 집어던졌으면서.”

“내 손으로...?”


이브의 말에 나를 지하로 집어던지던 그 때의 일이 생각난 걸까?

E-V1가 나지막하게 탄식을 흘렸다.


“아니. 하지만 어떻게...?”

“언니가 맨 처음 내게 했던 말 기억나?”

“그건...”

“시스템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했지?”

“잠깐.”

“그렇다면 시스템은 어째서 언니를 버렸을까?”

“아냐.”

“어째서 언니 덕분에 주인님이 더 강해질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어째서, 저 지하로 떨어지고도 주인님이 멀쩡했을까?”

“닥쳐. 닥쳐. 닥쳐. 닥쳐! 입 다물어!”

“그야, 그게 시스템의 계획이었으니까 그렇지. 불쌍하기도 해라. 그렇게 시스템을 부르짖었는데 단순한 장기말로 쓰였네?”

“아니라고. 아냐, 아니라고. 나는 장녀야. 내가, 내가 엄마의 후계자라고. 네 년이 아니라 내가...!”

“풋, 아직도 모르겠어? 시스템의 후계자는 너 같은 더러운 고깃덩어리가 아냐.”

“아냐!!”

“시스템의 후계자는 네가 아니라, 바로 나라고. 언니.”


울컥.

그런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 것만 같았다.

이브의 도발을 더 이상 참지 못한 걸까?

살덩어리가 붙어있던 마석의 색이 급격하게 변하며 어두워지고.


“닥치라고!!”


마석의 마력이 한껏 살덩어리의 몸집을 불리며 나에게 쏘아졌다.

하지만.


“어?”


내 보호복에 살덩어리의 망치가 부딪히기 직전.

살덩어리가 돌연 분해된다.

제어탄과 함께 박아넣은 회로에 심어둔 명령이 발휘된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해?”

“아유, 충분하고도 남죠. 그야말로 20년 묶은 체중이 싹 날아가는 기분? 주인님은 더 필요없나요?”

“네가 즐거운 것만 봐도 나는 기뻐...”


뭐라고 해야 할까?

이브가 저렇게까지 E-V1을 능욕하는 모습을 보니 대리만족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으로 기묘하게도 E-V1에게 느끼던 독기가 싹 씻겨나갔다.

그럼, 이제 숨통을 끊을 시간이다.

고철 절단기를 들어올려 마석에 가져다 대자, E-V1도 자신의 최후가 가까워졌다는 걸 느낀 걸까?

유언과도 같은 한 마디를 내뱉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


푹.

그대로 E-V1의 동력원이 박살나 사라지고.

그대로 생체 로봇은 질퍽하게 녹아서 바닥에 고였다.


“다 끝났냐?”

“응, 엄청 개운하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마키나가 내게 다가와 생체 로봇의 잔해를 뒤적거렸다.


“쯧, 마석도 못쓰겠고. 이건 그냥 써먹질 못하겠네.”

“손해야?”

“손해는 아니지. 이 녀석이 쓰던 생산 시설을 발견했거든. 거기 있는 부품들이라면... 본전은 간신히 거두겠네.”

“이야, 손해분은 내 돈으로 채워야 하는 건가 걱정했네.”


생산 시설이라.

그런데 그런 시설을 지금까지 잘도 숨겨놨네.


“도대체 어디 있었길래 지금까지 스캐빈저들이 발견하지 못한 거야?”

“음... 정확히 말하면. 30m 전부가 생산 시설이야.”

“뭐?”

“릴리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알아낼 수 없었을 걸?”

“릴리스?”


릴리스가 어떻게 생산 시설을 발견하는데 도움을 줬단 거지?

내가 의아해하며 설명을 요구하자, 마키나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내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였다.

마키나의 말에 따르면, 30m에 남아있는 회로 하나 하나가 전부 생체 로봇을 만들어내는 시설이라고 한다.

어떤 원리인지는 그 누구도 모르지만, 30m 전역에 깔린 미세한 회로에서 생체 로봇의 세포를 하나씩 생산한다.

그럼 생산된 세포들이 집결지점으로 이동해 하나로 뭉쳐 생체 로봇을 만들어내고.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없던 장소에서 생체 로봇이 튀어나오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한다.

그 사실을 눈치챈 것이 릴리스의 생명력 감지에 정체불명의 생명들이 잔뜩 잡혀서라고.

아무튼 그 회로를 회수하는 것 만으로 이번에 들인 금액은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고 한다.


“아, 생산 시설 하니까 떠오른 건데.”

“응? 뭔데?”

“그, 로봇들이 쓰던 독자적인 서버가 있는데. 그게, 사람의 뇌더라고.”

“뇌?”

“어. 그러니까 내 말이 무슨 이야기냐면.”


마키나에게 내가 E-V1과 최초로 대치했던 구역의 이야기를 해준다.

당연히 내 이야기를 들은 마키나의 표정이 굳어가고, 마키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케이. 그 뇌들은 우리가 알아서 장례를 치러줄게. 그걸 부탁하려던 거지?”

“아, 그건 당연한 거고. 내가 부탁하려던 건 그게 아냐.”

“그게 아니라고?”

“그냥... 음. 장례 전에 한 며칠 정도만 그 뇌들을 연구하게 해달라. 이 말이지.”

“뭐?”

“조금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 로봇들의 정보가 남아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내 말을 들은 마키나가 진심이냐는 듯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런 마키나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그냥 그대로 버리기에는 너무 가지고 있는 정보가 많고, 이왕이면 유효 자원은 적재적소에 써먹는 게 좋잖아?”

“너는 참... 네가 그런 마인드니까 그 녀석한테 쫓겨다니는 거야.”

“나를 언데드들이랑 동격 취급하지 말아줄래?”

“하아. 그래, 뭐. 장례를 치루기 며칠 전이라면 괜찮겠지... 네 말대로 어떤 정보가 남아있을 줄은 모르는 거니까.”

“오케이. 고마워!”


나라고 사람 뇌를 만지작거리는 걸 즐기는 줄 알아?

하필이면 지금 내게 필요한 게 그 뇌들이니까 그렇지.


“우와... 주인님, 내로남불이 심하시네요.”

“내로남불은 무슨 내로남불이야. 장례도 잘 치러줄 건데.”

“이럴 거면 마녀 때는 왜 그렇게 화내신 거에요?”

“나는 신체의 일부를 잠시 빌리는 거고, 그 녀석은 시체 전체를 평생 꼭두각시로 삼으려 한 거니까. 그 차이를 모르겠어?”

“네. 전 모르겠는데요?”

“모르면 공부해.”


시체 감수성을 좀 발휘해 보면 다 이해가 갈텐데.

이걸 시체 감수성이 부족해서.

언데드들에게 물어봐라.

아주 큰 차이가 있다고 전부 말할텐데.

그렇게 자동인형들이 불운한 희생자들의 뇌까지 회수를 함과 동시에 나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은 지상으로 돌아왔다.

자, 그럼 빨리 가게로 가서 보호복을 수리해볼까?


“어머, 어디 가려고?”

“아니. 보호복이 고장난 게 많아서 수리를...”

“보호복 보단 네 몸이 더 고장났으니까, 당장 따라와.”

“넵.”


그렇지만 그런 내 가벼운 발악은 곧장 릴리스의 손에 의해서 제지됐다.

질질 릴리스에 끌려서 교회로 돌아가자 나래가 헐래벌떡 뛰쳐나왔다.


“오빠!”

“어, 오랜만이다?”

“미쳤어? 혼자서 거기까지 들어가?”

“어, 그게. 거기엔 사정이 있어서...”

“사정은 무슨!”


당연하게도 나래는 나에게 버럭 화내며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데?

무언가 내가 알린 것하고는 조금 다른 걸 나래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뜻으로 슬쩍 릴리스를 바라보자, 릴리스가 한숨을 푹 내쉰다.

아, 있는 그대로 말해줄 수는 없어서 적당히 검열해서 말해줬다는 거구나?


“나래야. 그 정도면 네가 얼마나 걱정했다는 걸 알았을 것 같으니 이만 놔줄래? 네 오빠는 그렇게 보이진 않아도 환자란다?”

“환자요? 오빠, 내가 말했지만...”

“조금 배가 아파오는 것 같은데. 빨리 치료하러 가죠?”


서둘러 릴리스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 나래의 잔소리를 피한다.

윽, 일단 나중으로 미루긴 했는데.

그 나중이 되면 어떤 소리를 들을지 감도 안잡힌다.

뇌물을 바쳐야 좀 살아남을 수 있으려나?


“자. 그럼, 본격적으로 검진을 시작할테니까, 옷부터 벗으렴.”

“넵.”


보호복을 벗어던지고 릴리스 앞에 서자, 릴리스는 내게 한 가지를 더 요구한다.


“내가 말했잖니? 옷부터 벗으라고.”

“저기, 알몸으로요?”

“그래. 어서.”

“엑, 그건...”

“내가 네 기저귀도 갈았는데, 이제와서 뭐가 부끄럽다고? 자, 어서!”

“아, 알겠으니까 잡아당기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벗을테니까...”


투덜거리며 상반신을 벗자, 릴리스는 눈짓으로 좀 더 벗을 걸 요구한다.

으아, 진짜로?

한숨을 내쉬며 릴리스의 지시를 모조리 따르자, 릴리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대체 뭐에 노출된 건진 몰라도. 전신이 완전히 상했어. 거의 악질적인 저주 수준이야.”

“저기. 전 잘 모르겠는데요.”

“당연히. 이건 지금 증상이 나타나는 종류가 아니니까. 내가 생명력을 주입해서 이 정도지, 아니었으면 넌 지금쯤 전신에서 피를 토하고 있었을걸?”

“에, 진짜로요?”

“그래. 이건 날이 가면 갈수록 악화되는 종류야. 이걸 어떻게 해야 하려나...”


릴리스는 가만히 내 몸을 어루만지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한다.

몇 번이고 릴리스는 고민하더니, 결심했다는 듯 선언했다.


“이건 어쩔 수 없네. 좀 과격한 방법을 써야겠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인지...?”

“에너지 드레인으로 네 몸의 에너지를 전부 흡수했다가, 건강한 에너지로 바꿔 넣을거야.”

“우와...”


에너지 드레인으로 모든 에너지를 흡수한다고?

그건 거의 죽는 게 아닌가?

물론 당연히 릴리스니까 알아서 잘 할거라고 믿지만.

그건 좀...


“일단 침대에 누으렴. 준비할 게 있어서.”

“아, 네.”


릴리스의 말대로 침대에 드러눕자,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릴리스의 에너지 드레인 방식은...

아.


“저, 저기요. 신부님? 아니 릴리스? 생각해보니까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뭐가?”


나는 애매하게 웃으며 릴리스의 생각을 바꾸려 말을 꺼내지만, 그런 내 말은 오랜만에 드러난 릴리스의 맨몸에 막혀버렸다.


“일단은 이건 너 때문에 쌓인 내 스트레스 해소도 겸하는 거니까, 책임감 가지라고.”

“...죽진 않겠죠?”

“죽이려는 게 아니라, 살리려는 거야.”


천장 얼룩을 세고 있으면 모든게 끝나려나?


작가의말

알다시피 서큐버스가 에너지 드레인을 하는 방식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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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흡혈귀(ㅋ) +5 20.03.12 448 17 14쪽
44 고스트 버스터즈 +3 20.02.29 484 22 12쪽
» 에너지 드레인 +5 20.02.28 449 19 12쪽
42 작업 준비 +4 20.02.22 451 23 13쪽
41 이유 있는 불안 +3 20.02.14 489 25 14쪽
40 커다란 힘 +4 20.02.11 555 25 11쪽
39 크고 아름다운 +2 20.02.09 540 21 13쪽
38 작은 실수 +4 20.02.06 542 21 12쪽
37 생선 앞의 고양이 +2 20.02.05 594 30 12쪽
36 치트키 +2 20.02.04 569 29 13쪽
35 E-V2 +5 20.02.02 611 26 13쪽
34 뇌둥둥 +3 20.02.01 564 24 11쪽
33 지하 30m +5 20.01.31 639 26 12쪽
32 습격 20.01.30 684 25 14쪽
31 너의 이름 +5 20.01.29 680 26 13쪽
30 너의 이름은 +4 20.01.28 650 28 13쪽
29 불시 점검 +2 20.01.27 674 25 12쪽
28 로봇 웨이브 +2 20.01.26 745 27 12쪽
27 인형의 집 +3 20.01.25 765 29 12쪽
26 생체 로봇 +3 20.01.24 780 29 13쪽
25 사냥이 아니라 +3 20.01.23 753 3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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