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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김의 서재입니다.

Fortuna : 그 남자의 복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조영김
작품등록일 :
2020.03.25 12:57
최근연재일 :
2022.01.30 07:00
연재수 :
256 회
조회수 :
368,081
추천수 :
3,606
글자수 :
1,293,490

작성
22.01.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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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1쪽

11-1

DUMMY

버스 안의 분위기는 묵직했었는데, 차가 대관령을 넘을 때쯤부터는 여기저기에서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평창동.

조영은 이신애, 김말숙, 여한모와 함께 영화를 보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예매한 영화 시간까지 시간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외출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2층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와 담배를 즐기고 있었다.


여한모가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여한모도 조영처럼 청바지에 니트로 된 티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의 외출 복장인 듯싶었다.


”보스, 미국의 조나단과 통화하고 오는 길입니다.“


”뭐라고 해?“


”아무래도 한국의 외교관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답니다. LA 경찰이 부검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갑자기 일정이 취소되고 시신을 화장한 후에 비행기 편으로 서울로 이송하기로 했답니다. 현지 경찰들도 위에서 내려온 지시라서 어쩔 수 없다고 두 손을 들어버렸답니다.“


”역시 윤근식이 움직인 거겠지?“


”외무부 고위 관료들을 움직이기에는 윤근식의 힘이 부족할 겁니다. 아무래도 여당의 힘 있는 국회의원들이 움직였을 수 있을 겁니다. 일단 하민호 실장에게 상황을 파악해보라고 전달했습니다. 정필모 사장의 인맥이라면 진행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집권 여당의 창당 대회를 앞두고 소속 의원의 아들이 마약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퍼지면 곤란하기는 하겠군.“


”그럴 수 있을 겁니다. [행운 신문]에서도 현지 취재원들을 통해서 기사를 취재하려고 시도 중인데, 이곳저곳에서 압력을 행사하는 전화가 많이 오고 있답니다. 그래서 많은 언론사가 포기하는 분위기라고 하더군요.“


”차라리 [맨해튼 트리뷴]을 움직여서 외신으로 다루는 방법이 가능한지 찾아봐.“


”알겠습니다, 서울에서 미국 언론을 통제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조나단이 얘기하기를 찰스 상원의원이 다음 주에 서울에 올 거라고 하던데요?“


”찰스 의원이? 무슨 일로? 내게는 별다른 연락이 없었잖아?“


”한국과 미국 국회의원들의 친목 모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보스가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했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찰스 의원 쪽과 연락을 취해볼까요?“


”그래, 일정을 확인해 보고 우리 쪽 쇼케이스에 참석할 수 있는지 알아봐. 가능할 것 같다고 하면 알려줘. 찰스와는 내가 직접 통화하는 게 낫겠다.“


”그게 좋겠습니다. 자, 이제 시간이 얼추 되어가는데 일어나시지요?“


”응, 그럴까? 오늘은 꽃다발 안 들고 가도 되겠지? 연애 선생님? 하하하.“


”보스, 꽃다발은 매일 주면 효과가 떨어지는 겁니다. 가끔. 깜짝. 서프라이즈. 이게 핵심인 겁니다. 흐흐흐.“


자리에서 일어난 조영이 여한모의 어깨에 오른손을 걸치고는 웃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 * *


따르릉. 따르릉.

최덕술이 하민호와 전화 통화를 끝낸 후에 마당에 나와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거실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인 손미자는 동네 미장원에 갔기 때문에 집에는 최덕술 혼자였다.

최덕술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참 동안 울리던 전화벨이 지쳤는지 울음을 멈췄다.


마당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오래간만이었다.

따뜻한 볕을 내려주던 해를 한순간 구름이 가리는가 싶더니 구름의 모양이 변하기 시작했다.

구름이 변해서 최정식의 얼굴이 하늘 한가운데에 나타났다.


”정식아, 이놈아......“


아들의 이름을 한번 작게 불러본 최덕술의 눈가에 작은 물방울이 생겨났다.


삐이익.

낡은 대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열리더니 아내가 들어왔다.

붉은색 보자기를 머리에 두른 것을 보니, 파마하던 중간에 잠시 집에 돌린 모양이었다.


”청승맞기는....“


홀로 마당에 서 있는 최덕술을 흘깃 쳐다본 손미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최덕술의 옆을 지나쳐서 현관을 향했다.


”임자. 소식이 왔어.“


최덕술의 목소리는 하늘을 향해 퍼졌지만, 손미자의 걸음이 그 자리에 멈춰졌다.

손미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최덕술은 보지 않아도 아내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미국에 있던 윤가 놈의 손자가 세상을 떴다는군.“


손미자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정식이가 좋아하겠군요.“


끝까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손미자가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으면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내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최덕술은 계속해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최정식의 얼굴을 보여주었던 구름이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었다.

거실로 돌아온 최정식이 주방 쪽으로 눈길을 주었지만,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예전에 아들이 쓰던 물건을 모아둔 작은 방에 들어가서 최정식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쓰다듬고 있을 것이었다.

결혼하고 분가하면서 최정식이 집에 두고 간 물건들이 꽤 많았었다.

최덕술이 모두 내다 버리려고 할 때도 있었지만, 아내가 만류해서 빈방에 처박아 두었었는데, 아들이 죽은 이후에 아내는 가끔 그 방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었다.


아내가 있을 작은 방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최덕술이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기 위해서 성냥을 집어 들었다.


탁.

성냥 끝의 황에 불꽃이 튀더니 작은 성냥개비가 불타기 시작했다.

성냥불을 담배에 가져가서 불을 붙이는 잠깐 동안, 성냥 특유의 황이 타는 냄새가 최덕술의 코를 간질었다.


따르릉. 따르릉.


최덕술이 두어 모금의 담배를 빨아들였을 때, 다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수화기를 향해서 천천히 움직이는 최덕술의 손에는 검버섯이 가득했다.


”여보세요.“


[장로님, 천수철입니다. 흑패를 불태웠습니다.]


”그렇군. 역시 천 사자의 일 처리는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깔끔하군.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겠네. 이것은 거래였으니까.“


[말씀하셨던 물건은 언제 회수하러 가면 되겠습니까?]


”물건은 준비되어 있네. 자네 편한 시간에 가지러 오게. 원한다면 우편으로 보내줄 수도 있네만, 원하지 않겠지?“


[내일 방문드리겠습니다.]


”알겠네.“


간단한 통화가 끝났을 때, 최덕술이 들고 있는 담배는 절반가량 남아 있었다.

최덕술이 뒷목을 소파에 기대면서 거실의 천장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한참 동안 작은 방에 들어가 있던 손미자가 미장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현관을 나섰을 때, 마당 한쪽 편에서 삽을 들고 땅을 파고 있는 최덕술을 볼 수 있었다.

늙은 나이에 삽질하는 것이 제법 힘이 들어서, 최덕술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다가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천수철에게서 전화가 왔어. 내일 내려온다는군. 받을 걸 받았으니, 줄 건 줘야지.“


손미자는 말없이 천수철의 옆에 쌓인 한 뭉텅이의 흙을 바라보다가 대문을 열고 나갔다.


* * *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 시립 시신안치소.

짙은 감색의 양복을 입은 두 명의 동양인 사내가 건네준 서류를 검토하던 잭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야, 잭?“


시신안치소에서 오랫동안 함께 근무했던 동료인 조가 다가오면서 물었다.

조가 힐끔 동양인 사내들을 쳐다보았지만, 그들은 잭을 향해 고정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명령서야. 어제 새벽에 들어온 시신을 내주라는군. 화장한다나 봐.“


”아, 그 총상으로 들어온 동양인 말이군? 서류 확인하고 내주면 되는 거 아닌가? 왜 인상을 찌푸리고 있어?“


”아니 그게. 제이콥스 검시관이 이따가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잘 보관하라고 했었거든.“


”제이콥스가? 어제 새벽 당직자가 이미 확인했잖아? 어제 당직이 누구였지?“


”말콤.“


”그래. 말콤이 이미 검시한 시신을 제이콥스는 왜 또다시 들여다보겠다는 거야?“


”몰라. 일단 제이콥스에게 전화 좀 해 보고.“


잭이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걸었지만, 한참이 지나도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제이콥스가 전화 안 받아? 점심 먹으러 나간 거 아냐?“


”이보시오. 직원 양반. 우리가 가져온 서류에 문제가 있소?“


”그건 아니오. 잠시 내부적으로 확인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러는 겁니다.“


”우리는 바쁜 사람들이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공무원들의 이런 일 처리가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거요.“


전화 한 통 하는 시간을 두고 동양인이 공무원을 언급하면서 훈계하는 듯한 말투에 잭의 인상이 더욱 일그러졌다.


”거, 뭐가 그리 급해서 재촉을 하시오? 어련히 알아서 내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리시오.“


성격 좋은 조가 너털웃음을 흘리면서 두 사람의 어색한 관계에 끼어들었다.

잭과 대화하는 동료를 두고 잠시 밖으로 나갔던 다른 동양인이 되돌아와서는 동료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따르릉.


”여보세요. 시립 시신안치소입니다. 네. 네? 저는 오늘 근무자인 잭 워커입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거칠게 끊은 잭이 동양인 사내 둘을 노려보았지만, 두 사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잭?“


”빌어먹을. 시청에서 전화가 왔어. 앤드류가 왜 서류를 가지고 온 분들에게 빨리 시신을 인도하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군.“


”앤드류? 막무가내 앤드류? 제기랄. 기분 정말 더럽겠군. 잭, 어서 내주고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앤드류와 엮여봤자 피곤하기만 하다는 걸 잘 알잖나?“


뒷부분의 말은 조가 목소리를 한껏 낮춰서 얘기했기 때문에, 동양인들은 들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래야겠어. 자, 이쪽 서류에 서명하고 따라오시오. 바로 내어드리겠소.“


동양인 사내 중 한 명이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서, 잭이 내미는 시신 인수 서류에 서명하자 잭이 서류를 책상 위에 집어 던지고는 카운터를 빠져나왔다.


”조, 자네가 잠시만 자리를 지켜 줘. 나는 시신을 인도해 주고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게, 잭.“


조가 잭이 있던 자리로 들어가는 동안, 잭과 두 동양인 사내는 시신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면서 등을 보이고 있었다.

잭이 돌아온 것은 오래지 않아서였다.


* * *


천수철의 보고를 받는 정은섭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래서, 최덕술 서장이 내일 오라고 했다는 건가요?“


”네. 제가 직접 다녀올까 합니다.“


”아니오, 천 사자는 이번 일을 하느라 마음고생이 심했으니 목포에는 다른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소.“


”하지만 교주님. 이번 일을 한 것은 저였습니다. 제가 마무리를 짓는 것이....“


”내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런 줄 알고 계세요.“


정은섭이 단호한 어투로 대답을 하는데, 천수철이 계속해서 자기 뜻을 주장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만 나가보세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일부러 내보이면서 천수철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정은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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