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조영김의 서재입니다.

Fortuna : 그 남자의 복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조영김
작품등록일 :
2020.03.25 12:57
최근연재일 :
2022.01.30 07:00
연재수 :
256 회
조회수 :
367,563
추천수 :
3,606
글자수 :
1,293,490

작성
21.12.18 07:00
조회
256
추천
7
글자
11쪽

10-18

DUMMY

박진호가 슬금슬금 뒷걸음치다가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가서 빈 종이를 꺼내서 뭔가를 휘갈겨 쓰는 듯싶더니, 겉옷을 챙겨 들고 빠르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비서실은 볼펜 굴러다니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함으로 가득했다.


* * *


정필모가 입원한 외과 병동 스테이션에서는 당직 간호원들이 간식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지혜 선생님, 저기 503호 특실에 입원한 환자분 말이에요. 뭐 하는 분이시래요?“


”어머, 박지수 선생 몰랐어? 유명한 기업가래. 뭐라더라, 미국에서 사업을 크게 해서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벌었대. 고향이 전라도 어디인데 그곳에 기부도 많이 하고, 불우한 환경의 학생들 공부하라고 도움도 주는 훌륭한 분이시래.“


”아, 그래서 문병 오시는 분들이 많은 거군요?“


”맞아. 오늘도 무슨 신문사에서 나와서 지금 인터뷰 중이라는 것 같더라고. 호호호.“


”그래요? 그래서 지금 저 앞에 시끌벅적 사람들이 많은 거군요?“


”응, 말도 마. 우리 새침데기 외과 과장님도 직접 회진하신다니까? 호호호.“


”흥, 또 잘 나가는 분들한테 눈도장 찍으려고 하시는 거군요? 과장님도 그거 병인데, 본인은 모르시더라고요. 크크크.“


”의사라고 모든 병을 다 알겠어? 원래 자기 자신이 걸린 병은 알아보기가 힘든 법이지.“


두 간호원의 수다는 다가오는 사내의 등장으로 뚝 끊어졌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503호 환자분의 회사 직원입니다. 오늘 일요일인데도 방문객이 많아서 소란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약소하지만 음료수라도 드시라고 가져왔습니다.“


하민호 비서실장이 음료수 한 상자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어머, 감사해요. 이런 거 안 챙겨 주셔도 되는데요. 호호호. 일요일인데도 문병 오시는 분들이 많으신가 봐요?“


”아하하. 지금 신문사에서 인터뷰하러 와서요.“


”신문사에서요? 왜요? 무슨 일 있으시대요?“


”저희 사장님께서 교통사고로 입원하신 건 알고 계시지요?“


”그럼요, 커다란 화물차에 받히셨다고 들었어요. 큰 차에 부딪히면 대형 사고가 많은데, 환자분은 천만다행이신 거에요, 그 정도면.“


”가해 차량 운전자분이 오늘 사과하러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해 운전자분 딸이 국민학생인데 난치병으로 수술비를 구하지 못하는 어려운 형편이랍니다. 상황을 들은 저희 사장님께서 수술비를 도와주기로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가 소문이 나서, 신문사에서 인터뷰한다고 왔습니다. 허허허.“


”네~에? 어머,어머. 차 사고로 목숨이 위험할 뻔하셨는데 용서해주시는 것도 대단한데, 가해 차량 가족의 수술비를 지원해주신다고요? 어머, 너무 훌륭하신 분이시네요.“


”그러게요, 어쩐지 가끔 주사 놓아드리러 갈 때 뵈면 인상도 너무 선하시고 점잖으시더라고요, 어쩜 이런 훌륭한 결정을 하셨대요?“


”하하하, 사장님께서 어려운 시절을 겪으시면서 자수성가하셔서 어려운 사람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귀 기울여주고 계십니다. 아무튼, 오늘 소란스럽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어머, 아니에요. 그런 훌륭한 일은 세상에 널리 알려야지요. 혹시라도 다른 병실에서 항의가 들어오면 저희가 잘 설명해 드릴게요. 다른 환자분들도 모두 양해해주실 거에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스테이션에서 뒤돌아서는 하민호 실장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정필모의 병실에서는 한창 사진 촬영 중이었다.


”자, 자. 운전 기사분이 두 손으로 사장님 손을 잡고, 두 분 모두 이쪽 카메라를 보면서 활짝 웃어주세요. 그렇지요, 좋아요. 좋아.“


찰칵.


”자, 이번에는 사장님이 운전 기사분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주는 장면으로 찍어보겠습니다. 자, 운전 기사분 조금 더 침대 쪽으로 다가가시고, 웃으세요. 자, 고개는 돌리시고. 좋습니다. 한 번 더요.“


찰칵. 찰칵.

[행운 신문] 사회부에서 나온 사진 기자가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한쪽 벽에 기대서서 수첩에 기사 내용을 메모하고 있는 기자의 옆에는 이성찬 편집장이 직접 나와서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오랫동안의 촬영이 만족스러웠는지 사진 기자가 흡족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챙기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박 기자, 촬영은 끝났나?“


”네, 편집장님. 사진이 잘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자, 그럼 사장님, 저희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일 신문에 올리려면 들어가서 후속 작업을 해야 해서요.“


”이거 바쁘실 텐데,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와주셔서 어떡합니까. 어이, 하 실장.“


정필모 사장의 부름에 하민호 실장이 하얀 봉투를 이성찬 편집장에게 건넸다.


”아니, 뭐 이런 걸 다.“


”휴일인데, 사무실 들어가시는 길에 막걸리라도 한잔하고 가세요. 부담 갖지 마시고요.“


”사장님, 감사합니다.“


사진 기자의 목소리가 우렁찬 것이 봉투의 효과가 즉시 발효되는 것 같았다.

이성찬 편집장의 재촉으로 기자들이 간단한 조명 장치 등 가지고 온 장비들을 챙겨서 병실을 떠나자, 남아 있던 차동수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자, 이제 사장님도 안정을 취하셔야 하니까 차동수 씨도 귀가하셔도 좋습니다.“


”저, 정말 이 돈을 제게 주시는 겁니까?“


”하하하, 그럼요. 그 돈으로 따님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제가 이번에 수술을 받아 보니까, 수술받는 게 쉽지 않더군요. 차동수 씨가 옆에서 따님에게 용기를 주세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실장님.“


차동수가 정필모와 하민호를 향해서 연신 허리를 굽히고는 뒷걸음질로 병실을 나갔다.


”고생하셨습니다, 사장님. 이제 정말로 쉬십시오. 환자분이 편히 쉬셔야 하는데, 송구합니다.“


”자네 탓도 아닌 걸, 뭐. 그리고, 나도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어서 기쁘다네. 이건 진심이야. 자네가 일 처리를 깔끔하게 해줘서 고맙기도 하고.“


”제가 사장님 빈자리를 모두 채우기는 어렵습니다. 쾌차하셔서 얼른 출근하셔야 합니다.“


하민호 실장의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를 보며, 정필모 사장의 얼굴에도 미소가 한가득이었다.


* * *


1990년 4월 16일 월요일.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 국회의원회관 412호실.

윤근식 국회의원의 사무실은 조용했다.

아침 일찍 배달된 신문 한 부가 어색한 분위기의 발단이었다.

최근 들어 목포에서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인물인 정필모의 선행에 관한 기사가 크게 기사에 난 때문이었다.

고참 보좌관들은 담배를 피워물고 있었고, 낮은 직급의 직원들은 상사들의 눈치를 보면서 애먼 서류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윤근식 의원이 들어왔다.


”의원님 나오셨습니까?“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고, 선임 보좌관이 대표로 아침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 다들 주말 잘 쉬었어?“


주말 동안 기분이 좋았었는지 윤근식이 환한 얼굴로 보좌관의 인사를 받아주고는 의원실로 들어가자, 직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서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하는 직원들을 둘러본 선임 보좌관이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윤근식의 뒤를 따라서 의원실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분위기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봄가을 용의 얇은 코트를 벗어서 보좌관에게 건네주고 소파로 향하면서 윤근식이 가볍게 한마디를 건넸다.

윤근식의 옷을 받아 들어서 구석에 있는 옷걸이에 걸어놓은 선임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윤근식의 앞으로 다가왔다.


똑똑.

노크와 함께 막내 여직원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가지고 들어와서 윤근식이 앉아 있는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여직원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선임 보좌관이 침을 삼켰다.

보좌관의 행동이 평소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눈치를 채지 못한 윤근식이 담뱃갑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물고 불을 붙이고는 커피잔을 집어 들면서, 테이블에 올려진 신문으로 손을 내밀었다.


”뭐야? 무슨 할 얘기 있어? 이 사람이 왜 아침부터 분위기 잡고 이래?“


퉁명스러운 윤근식의 말에, 보좌관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면서 입을 열었다.


”저, 의원님. 송구스럽지만 보셔야 할 기사가 있습니다.“


보좌관이 빠른 동작으로 테이블에 올려진 많은 신문 중에 한 부를 집어 들더니, 페이지를 넘겨서 사회면을 펼쳐서 윤근식의 앞에 올려놓았다.

윤근식의 눈길이 신문을 향하는가 싶더니, 입가가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이....이런.....“


조간신문인 [행운 신문]의 사회면에 활짝 웃고 있는 정필모의 사진이 커다랗게 나와 있었다.


[장발장의 미리엘 주교, 한국에 현신(現身)하다-정필모. 당신의 이름은 나의 형제입니다.]


사진 하단의 기사에는 불의의 교통사고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로 만난 정필모와 차동수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가해 운전자가 병원에 입원해있는 피해자를 찾아와서, 사죄한 이야기, 가해 운전자의 어린 딸이 소아 심장병을 앓고 있는데 수술비가 없는 상황이라는 내용을 알게 된 피해자인 정필모 사장이 흔쾌히 수술비를 도와주기로 했다는 내용과, 정필모 사장은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기업가로 이미 여러 번 고향인 목포의 이웃들을 돕는 행사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는 이야기들이었다.


빠르게 기사를 훑어 내려간 윤근식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신문을 거칠게 우겨 잡았다.


”어떻게 된 일이야? 갑자기 이런 기사가 왜 나와?“


”해당 신문사에 연락을 취하는 중입니다. 아직 기자가 출근 전이라서, 상세한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중으로 확인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빌어먹을. 이놈이 내 지역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이런 기사가 나오면 어떻게 해? 미리 막았어야지!“


보좌관은 말없이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아무리 현직 국회의원의 힘이 세다고 하더라도, 모든 신문사의 모든 기사 내용을 검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의원 본인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기사도 아닌데, 어떻게 보좌관들이 기사 내용을 미리 알아낼 수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속으로일 뿐이었다.


”제기랄. 이거 목포 지역 신문에 나는 건 일단 막아봐. 괜히 지역에 정필모 이놈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최대한 막으라고, 알겠어?“


”알겠습니다, 의원님.“


”나가 봐. 밥만 축내는 버러지들 같으니라고. 꼴도 보기 싫어.“


선임 보좌관이 윤근식의 입에서 나오는 거친 호통을 듣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의원실을 나갔다.

혼자 남은 윤근식이 거친 호흡으로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테이블 위의 전화번호 수첩을 뒤적이던 윤근식이 화가 나는지 수첩을 집어 던지고는 옷걸이로 가서는 겉옷 안주머니에서 휴대용 전화번호 수첩을 꺼내 들었다.

외부로 흘러나가면 곤란한 번호라서 휴대용 수첩에만 기록해놓은 것을 깜박한 자신에게도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수첩을 뒤적여서 전화번호를 확인한 윤근식이 소파에 앉아서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Fortuna : 그 남자의 복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안내 22.02.04 179 0 -
공지 토,일 연재로 전환 20.05.24 2,115 0 -
256 11-6 22.01.30 226 7 11쪽
255 11-5 22.01.29 173 4 11쪽
254 11-4 22.01.23 180 7 11쪽
253 11-3 22.01.22 193 6 12쪽
252 11-2 22.01.16 203 7 11쪽
251 11-1 22.01.15 203 5 11쪽
250 10-25 22.01.09 232 7 11쪽
249 10-24 22.01.08 223 7 11쪽
248 10-23 22.01.02 222 6 11쪽
247 10-22 22.01.01 215 7 11쪽
246 10-21 21.12.26 238 6 11쪽
245 10-20 21.12.25 225 6 11쪽
244 10-19 21.12.19 267 7 11쪽
» 10-18 21.12.18 257 7 11쪽
242 10-17 21.12.12 288 8 11쪽
241 10-16 21.12.11 280 5 11쪽
240 10-15 21.12.05 294 6 11쪽
239 10-14 21.12.04 294 6 11쪽
238 10-13 21.11.28 316 7 11쪽
237 10-12 21.11.27 311 6 11쪽
236 10-11 21.11.21 331 7 11쪽
235 10-10 21.11.20 335 6 11쪽
234 10-9 +1 21.11.14 340 8 11쪽
233 10-8 21.11.13 343 6 11쪽
232 10-7 21.11.07 368 5 11쪽
231 10-6 21.11.06 365 5 11쪽
230 10-5 21.10.31 385 7 11쪽
229 10-4 21.10.30 381 6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