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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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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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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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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10.3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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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모두 분발하세요.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마포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내내 류지호는 영화계 인사들을 만나고 다녔다.

올해 뜬금없이 영화계 내분이 일었다.

강은석 감독이 기자들에게 갈수록 높아지는 배우 출연료와 스타 파워에 대해 걱정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두 명의 배우 실명이 거론되면서 불거졌다.

이 논쟁에 60개 제작사가 회원으로 있는 영화제작가협회가 가담했다.


“스타 권력화가 건전한 영화산업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매니지먼트사의 공동제작 및 제작사 지분 요구, 영화 흥행과 상관없는 주연배우의 과도한 출연료 요구, 열악한 스태프 처우 현실에서 위화감 조성, 소위 ‘끼워팔기’식의 조연배우 캐스팅 독점 등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의했다.”


언론을 통해 실명이 거론되어 저격당한 두 배우가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게 한 동안 영화계가 배우와 제작사의 대립양상으로 흘렀다.


- 일본에서 작업 중이신 감독님 생각이요? 잘 모르겠는데요. 아마 헛짓거리 하지 말고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고 하시지 않을까요?


김재욱이 기자에게 지나가는 말로 한 말이었다.

그 말이 WaW 엔터테인먼트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이라면서 고스란히 기사화 되었다.

이후로 ‘기레기‘의 특성이 발현됐다.

김재욱이 하지도 않은 말들이 신문지면을 수놓았다.

마치 류지호의 말을 전하는 것처럼.

본래는 의장비서실 커뮤니케이션팀이 발끈하고 나서야 했다.

헌데 내버려두었다.

딱히 틀린 말을 기사로 쓴 것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의장님께서는 공식·비공식적으로 최근 영화계 사안에 대해 어떠한 말씀을 하신 바가 없습니다. 누군가 상상력을 동원해 쓴 기사입니다. 해당 신문사에서 정확한 취재 과정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고 봅니다.”


라고 공식적으로 주장하면 그만이니까.

류지호 역시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언제고 터질 문제였다.


“S-HQ는 말이지 톱스타 출연시키는 대가로 수익지분에서 적게는 15%, 많게는 50%까지 요구하고 있어. 누구라고 차마 실명은 못 까겠는데... 미니로 확 뜬 여자애가 있는데, 걔 출연시키는 조건으로 제작사가 수익 50%를 포기하는 계약을 했다더라고.”


제작자이자 감독인 박진택 감독의 말이었다.

다른 대형 매니지먼트 업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단다.


“한국 영화가 좀 된다싶으니까 주연급 스타라고 하는 애들이 출연료와 별도로 무리하게 지분을 요구하고 있거든.”


따로 보고를 받지 않아도 류지호는 이 시기 허파에 바람 들고 어깨에 벽돌 쌓고 다니는 일부 배우와 매니지먼트를 속속들이 꿰고 있었다.


“A-List... 원톱, 출연료가 어떻게 되는데요?”

“순제 30억짜리 영화의 경우 A급이 보통 4억~5억 불러. 여배우 최고 기록이 아마 3억에서 3억 5천 사이일 걸?”


시장 사이즈는 고려하지 않는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거나 하지 않거나 배우는 오로지 수익만 챙긴다.

차라리 러닝 개런티 옵션이라면 흥행 리스크를 함께 부담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으련만.


“류 감독이 여기 있는 우리보다 더 잘 알겠지만, 매니지먼트라는 사람들이 어디서 이상하게 배워 와서 자꾸 할리우드 방식이래. 웃긴 게 뭔 줄 알아. 실제 걔들이 하는 시스템은 또 일본식이야. 아주 지들 입맛에 맞는 대로 갖다 붙인다니까.”


대형 매니지먼트에 쌓인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친구>를 통해 친구가 된 동갑내기 배우와 법정다툼으로 우여곡절이 많았으니, 소위 톱스타의 매니지먼트의 갑질에 피를 토하듯 열변을 토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톱스타들의 티켓파워를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었다면 극한 대립까지 가진 않았을 텐데...”


전하영이 끼어들었다.


“안타깝지만, 저희도 티켓파워라는 것을 검증하는 것에 실패했어요. 계량화할 수 없다는 것만 확인 했죠.”


계량화 할 수 있다.

통합전산망과 빅데이터 분석이 자리를 잡게 되면.


“그렇다 보니까 다른 대기업들도 저희가 CHAN을 계열사로 두는 것처럼 매니지먼트 업계에 투자하거나 인수합병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어요.”


사실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과거 할리우드가 산업 생태계 안에서 모든 걸 다 해먹다가 탈이 났었다.

가까운 일본 연예계가 그렇게 돌아가면서 영화와 TV분야에서 국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고.


“매니지먼트가 제작비 부담은 전혀 지지 않고, 오로지 돈만 따먹을 수 있는 궁리만 하고 있어요. 심지어 공동 제작 크레디트까지 가져가고. 만만한 제작사와 일할 때는 저작권까지 일부 가져가는 모양이에요.”


한 마디로 군소 영화 제작사가 호구가 되어가고 있다.


“쯧. 부가시장이 멸망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 판국에.....”


이전 삶은 물론 이번 삶에서도 대형 매니지먼트들이 불법복제물 유통, 온라인 불법 다운로드 근절 캠페인을 벌이는 것을 류지호는 한 번도 본 적 없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제작사에 협조한다거나 충무로와 상생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떠든다.

어디서 많이 듣고 있는 말이다.

여의도 어딘가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표현이다.


“영화계의 어른이셨던 박건호 회장님 공백이 큰 것 같아요.”

“배급협회도 있고, 영진위도 있고... 한국 영화판에 어른이 그렇게 없습니까?”

“매니지먼트가 대기업에 인수되거나 투자 받으면서 협상력이 커졌어요.”


한국 연예계 빅투 매니지먼트는 S-HQ와 CHAN이다.

그 다음으로 TreeActors, 여름 기획, 레드드래곤, 아이스타제이, Players 등이 규모와 소속 연예인 숫자에서 뒤를 잇고 있다.


“S-HQ가 선경텔레콤에 지분 일부를 양도하고 140억 원대 투자를 받았어요. 오른손은 매니지먼트 본부를 가동시키면서 연예계에 진출했고요. 개그맨들이 주로 소속된 코미디패밀리는 올리브나인을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웠고 드라마 제작에도 관여하겠대요. 그 외에도 가수 중심이던 이씨기획은 코스닥에 우회상장에 성공했어요. 드라마 제작하던 도마뱀, 예당, KBM서울, 포보스 같은 곳들도 속속 코스닥 시장에 진입하고 있고요.”


매니지먼트 업계에 대기업과 코스닥 자본이 유입되면서 자신들이 뭐라도 된 듯 잔뜩 고무되어 있단다.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됐다.

할리우드 에이전트나 매니지먼트 빅 쓰리의 파워는 상당하다.

자체적인 힘이 센 것이 아니다.

그들의 협상력은 오로지 배우들로부터 나온다.

에이전시는 배우의 업무를 대행해주는 것뿐이다.

한국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은 전혀 서구적이지 않다.

소속 연예인을 돈벌이 도구로 여기는 일본식이다.

오로지 자기들 유리한 것만 갖다 붙이는 행태들.

할리우드 에이전트의 첫 번째 서비스는 법률서비스다.

개런티 협상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할리우드 A-List 배우들은 절대 에이전트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

본인들이 직접 협상을 지휘한다.

미국은 음반업계, 영화업계, 방송업계, 스포츠 업계 매니지먼트가 완전 다르다.

영역에서 활동하는 전문 변호사도 셀 수 없이 많다.

그에 대항하는 각 계약주체들의 법률팀 진용도 만만치 않고.

제작사나 투자사와 협상할 수 있는 배우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그들은 제작사보다 더 큰 발언권을 가질 때가 있다.


“실제 관중 동원력이 있는 배우들은 충분히 귀족 대접해줘야지 우리가. 근데 깜냥도 안 되는 것들이 까부니까, 영화계가 열이 받는 거야.”


박진택 감독이 문제되는 발언을 마무리할 즈음 젊은 남녀가 술자리에 합류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영화전문 기자들이었다.


“씨네마21 최선주에요.”

“잘 지냈어요?”

“기억하세요?”

“똑똑히 기억하죠. 까칠하던데요, 기사들이?”

“원래 바른 말이 아픈 법이랍니다.”

“박 기자 잘 지냈어?”

“예. 덕분에....”


박민국 기자는 씨네필 소속 류지호 전담 기자다.

이전 삶에서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기자와 감독이 스스럼없이 술자리를 하는 것도 알고 보면 한국 영화계에만 있는 독특한 면이다.

좋은지 나쁜지는 류지호로서는 알쏭달쏭한 부분이다.


“요즘 핫 한 문제에 대해 말씀 나누시고 계셨나 봐요?‘


마무리하려던 이야기를 최선주가 다시 끄집어냈다.


“매니지먼트사가 직접 제작을 하면 될 일이에요.”


전하영에게 시선이 모였다.


“지분요구를 하려거든 스스로 작품을 개발하라는 뜻입니다. 제작사와 매니지먼트사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균형 있는 수익구조가 만들어지는 법입니다."

"한국영화는 지금 세계시장으로 무대를 넓히느냐, 아니면 이대로 주저앉느냐의 기로에 서 있단 말이지. 그런데 배우가 수익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영화산업이 균형을 잃어버릴 거야.“


배우가 영화수익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제작자들은 거듭 강조했다.

수익은 제작자와 스태프 등 관계자들이 골고루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류 감독님은 왜 아무 말씀도 없으세요?”


류지호는 그저 희미하게 웃어줄 뿐.


“헛짓거리 하지 말고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뭐 그렇게 말씀하시려나?”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그 기사 최 기자가 썼어요?”

“아니요. 그거 일간지 기자가 쓴 거예요. 근데 왠지 감독님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긴 해요. 아니면 그냥 까불지 말고 잘들 해라 그렇게 타일렀으라나...?”

“영화 기자라 그런가, 글이 세네요.”

“아직 안 썼는데요?”


류지호가 최선주 기자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말을 이었다.


“갈등이 없으면 합의도 없어요. 합의가 없으면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충무로는 힘든 사춘기를 겪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제 막 어른이 되었죠. 어른이라면... 성숙한 어른이라면... 우기거나 생떼를 쓰지 않죠. 대화를 하려고 할 겁니다. 그리면서 성숙해 지겠죠.”


최선주 기자가 툴툴거렸다.


“베니스 영화제 수상소감처럼 말씀하시지 말고. 쫌 적나라하게... 가뜩이나 씨네필에 판매부수가 밀리고 있고만.....”


류지호는 그녀의 입을 막아버릴 겸, 소주잔을 내밀었다.


“분발하세요. 자, 건배....!”


❉ ❉ ❉


WaW 전임회장 박건호는 영화인들 사이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현직에 있을 때는 영화판 이해당사자 간 의견들이 비교적 잘 조율됐다.

신임 CEO 정운규는 아직은 영화인들로부터 크게 신망을 얻고 있진 않았다.

다만 메이저 중의 메이저 WaW의 최고 책임자라는 상징성이 있다.

그의 말 한마디도 나름 무거웠다.

사안에 따라서 영화판이 요동칠 수도 있다.


“올해 통신사들의 충무로 진출이 영화 산업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초 선경이 S-HQ에 144억 원을 투자해 2대 주주가 되었고, 아스트로FNH는 한국통신으로부터 230억의 투자를 받아 최대 주주 지위를 잃었습니다.”


이전 삶에서는 S-HQ가 그 여세를 몰아 YNTV미디어를 인수해 영화·미디어계로 진출까지 했다.

이젠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가온웨딩 컴퍼니와 다울재단, 우리사주조합이 YNTV의 의사결정을 꽉 쥐고 있기 때문이다.


“선경텔레콤은 300억 원 규모의 영상펀드를 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한국통신 역시 콘텐츠 확보를 위해 770억 원 투자 방침을 공언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닐 걸요?“

“예. 충무로 준 메이저급 영화사 인수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 투자와 제휴도 진행 중입니다. 충무로가 복잡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통신사가 영화계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DMB, 와이브로, IPTV 콘텐츠 확보를 위해서다.

멀티플렉스 기반의 한계를 통신사가 극복할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WaW 엔터테인먼트가 긴장한 채 지켜보는 이유는 자칫 DMB, IPTV 등이 가뜩이나 고사 위기에 놓인 DVD 등 한국의 부가판권 시장을 냉각시킬 가능성 때문이다.


“양대 통신사의 영화계 진입이 득이 될 것인지 해가 될지... 내년에 가 봐야 드러나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신경 쓰지 말아요.”

“.....?”

“WaW의 길을 가면 됩니다. 그들은 국도를 달리는 것이고 WaW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겁니다. 그들은 얼마 안 가 다른 길로 우회할 겁니다.”


사실 WaW 엔터테인먼트가 남 생각할 처지가 아니다.

2000년 들어 조금 주춤했던 WaW 성장세가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업성, 독점 지위, 매출, 영업이익 성장률, 순이익 성장률 등 지표 대부분이 매해 큰 폭으로 점프하고 있다.


“내년 라인업도 만만치 않죠?”

“스크린이 꽤 늘어날 것으로 보여서 배급사 마다 눈치 싸움이 치열합니다.”

“올해 1,700개 찍었던가요?”


오동석이 얼른 자세를 고쳤다.

40대 중반 나이의 오동석이 이끌고 있는 G.O.M International은 분기 매출 5.5억 달러를 기록하는 세계 5위권의 극장체인이다.

류지호의 기대 이상으로 오동석은 잘하고 있다.


“전국 주요 도시는 거의 포화 상태에 근접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G.O.M 상황은 어때요?”

“일단 상영관 확대는 홀드 시켰습니다.”

“D-Cinema 때문에?”

“업계 간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잠정적으로 확장은 멈출 계획입니다.”

“북미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던데....?”

“예. 유럽이나 아시아보다 D-Cinema 전환속도가 더딜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남미는 어때요?”

“멕시코는 홀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시장은 면밀히 살피고 있습니다.”

“시장조사만 해두도록 해요. 내년부터 잠시 웅크립시다.”

“네!”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코미디가 벌어졌다죠?”


전하영 부사장이 씩씩거렸다.


“영화제를 WaW가 가져오고 싶은 심정이에요.”


정치인이란 사람들은 뭐든 잘되면 자기 치적으로 빼앗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모양이다.

부천 시장이 그간 영화제를 기획하고 출범시키고 잘 이끌어왔던 집행위원장을 일방적으로 해촉하는 일을 벌였다.

그것도 모자라 프로그래머들까지 해고했다.

자기들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영화제 운영 인력을 대체한 부천시는 영화제 자체 프로그램보다 이벤트 유치에 몰두했다.

그 결과 지난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0%대의 낮은 좌석점유율을 기록하고 말았다.

부천영화제가 시민과는 분리되어 마니아를 위한 잔치로 전락했다.


“웃기는 게. 부천영화제 집행위에서 쫓겨 난 사람들과 몇몇 영화인들이 리얼판타스틱영화제를 열었거든요. 짧은 준비 기간에도 60%대의 좌석점유율을 기록했대요.”


부산과 부천의 국제영화제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시샘하거나 싫어하는 쪽의 흔들기가 점차 노골화 되어가고 있다.

이전 삶에서 이선택 정부 시절은 군사독재 이후 가장 암울했던 영화계 암흑기였다.

대중들에게 영화계 블랙리스트만 알려졌지만, 국제영화제와 영진위 사태, 좌파척결 기치를 내세운 탄압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부산은 별 문제 없죠?”

“감독님이 뒷배로 계신데 누가 감히 밥숟가락을 얹으려 하겠어요.”

“세계 주요 영화제들이 어떻게 성공하고 있는지 눈이 있어도 보고 싶지 않은 거죠.”


충무로 비주류였던 많은 영화인들이 부산과 부천영화제를 통해 주류로 올라섰다.

그 모습을 보며 원로영화인들이 배가 아팠던 모양이다.

본래도 권력에 머슴을 자처하던 이들인지라 정치인들의 농간에 쉽게 놀아나고 있다.

올해 5회째 열린 광주영화제 역시 관객의 외면 속에서 초라하게 치러졌다.

집행위원장이라는 사람이 필름이 없다면 DVD를 틀어서라도 제이미 캐머론과 류지호 특별전을 열겠다는 어이없는 발언을 해서 영화계 안팎의 빈축을 샀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DVD 상영을 하겠다니.

기다렸다는 듯이 시의회가 내년 광주영화제 예산 전액 삭감 결정을 내려 존폐 위기에 처했다.


“성공적인 영화제 개최를 위해서는 자율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올해 사건들로 깨달았으면 좋겠지만...”


류지호가 말을 흐리자, 정운규가 말을 받았다.


“사실 국내 영화제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자체마다 너도 나도 영화제를 하겠다고 달려드니. 솔직히 부산을 빼고는 앞날이 그리 밝아 보이진 않습니다.”

“이장수 감독이 부천영화제 새로운 집행위원장이죠?”

“그렇습니다.”

“도와줄 수 있으면 조금 도와줘 봐요.”


전하영이 끼어들었다.


“충무로에서는 반성과 혁신 없이는 부천에 호의를 보이지 않을 태세에요.”

“숨만 붙여놓을 정도...”


정운규가 말을 받았다.


“서브 스폰서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국제영화제는 단순히 수준 높은 세계 각국의 영화들을 접할 수 있기에 영화관객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기회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처럼 할리우드 영화가 극장과 TV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국제영화제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영화인들은 세계영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기회다.

또한 산업적인 차원에서 한국영화를 외국에 집중적으로 소개할 수가 있다.

흔히 국제영화제라면 외국의 영화들을 초청해서 우리 관객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런 점이 국제영화제 개최의 중요한 목적이다.

또 다른 목적은 외국의 유력한 영화관계자들, 기자, 평론가들을 초청해 한국영화를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소개한다.

이 시기에는 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좋은 기회가 되어주고 있다.


“무비서비스는 버틸 만 해요?”

“위태위태합니다.”

“몇 편 밀어줬잖아요?”


정운규가 단언했다.


“기존 관행에 얽매이다보면 도태될 겁니다.”


이전 삶에서 멀티플렉스 체인을 소유한 대기업이 충무로에 완전 안착하기 시작한 시점이 이 즈음이다.

BS, 씨네박스, 광성시네마 빅3 체제가 자리 잡은 해였다.

토착 영화자본의 자존심을 지켜왔던 무비서비스가 BS그룹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면서 투자·배급이 대기업 중심의 구도로 완전 개편된 해였다.

류지호로 인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WaW 엔터테인먼트는 독보적인 업계 1위 기업이다.

류지호와 WaW의 투자로 무비서비스가 건재했다.

조금 고전을 하고 있지만, BS그룹 그늘로 들어가진 않았다.

무비서비스의 극장체인 프리씨네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의 ParaMax가 지분 27%를 인수하며 측면지원까지 했다.

거기에 류지호가 <민중의 적>을 가로챈(?)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150억 원을 투자해 주었다.

독자행보가 가능한 수준이다.

그동안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광성엔터테인먼트는 올해 <강력3반> 등 5편의 영화를 투자·배급하면서 한국영화계에 안착했다.


“차성재 대표를 아스트로FNH에서 빼다가 무비서비스에 앉히고 싶지만... 불가능하겠지요?”


정운규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하하.


충무로 라이벌이자 동지이기도 한 두 사람.

공과 과가 엇갈리기도 한다.


“두 양반이 한 팀으로 호흡을 맞출 수만 있다면 뭔가 그림이 그려질 것도 같은데.... 아쉽네요.”

“감독님께서 나서도 말입니까?”

“볼 때마다 제안을 하긴 했죠. 두 양반 다 보스 기질이 너무 세요. 당분간 두 양반이 힘을 합치는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작년 여름 한 상갓집에서 두 사람이 크게 다툰 일이 있었다.

주변에서 누가 강은석 감독을 욕해도 감싸주던 차성재였다.

당시 차성재가 작정하고 강은석 감독을 강하게 비판했다.

투자자와 프로덕션의 수익비율을 8대2로 한 것과, 한 작품에서 적자가 나면 다음 작품으로 연결시켜 패키지로 묶는 작품연동제를 실시한 것이 강은석이다.

당시에 군소제작사들이 처지를 차성재가 대변한 거침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벤처연방제에 참여하며 두 사람은 점점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해 현재는 소 닭 보듯 하는 관계로 냉랭했다.


"정 대표는 아스트로 쪽을 잘 지켜보세요. 한국통신 계열이 얼마 못 버티고 영화사업에서 발을 뺄 겁니다. 그때 접촉해 봐요.“

“아스트로 인수 말씀이십니까?”

“우노부터 꽤나 쏠쏠한 필름 라이브러리를 보유하고 있잖아요.”

“아, 알겠습니다.”

“검찰의 웹하드 수사는 잘 마무리 되었던가요?”


WaW를 비롯해 영화업계가 8개 대형 웹하드 업체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대대적인 단속과 처벌이 이루어졌다.


“서울중앙지검이 나우콤과 아이디스크 등 불법복제 영화의 주 무대가 되고 있는 8개 대형 웹하드 업체를 저작권 침해 혐의로 압수수색했습니다. 꽤 적극적으로 단속에 나섰습니다.”

“성과가 있습니까?”

“헤비 업로더 서른 명을 불구속 기소했고, 그들과 수익을 나눠 가진 것으로 판단되는 웹하드업체 역시 벌금형은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1,0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에 처해지면, 저희와 업계가 본격적으로 손해배상 금액을 두고 다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운로더들이요?”

“단순히 내려 받은 사람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입니다. 영리활동을 하지 않은 수백 만 명에 이르는 이용자를 처벌하는 것이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법다운로드에 대해 경종은 울릴 것 같습니까?”

“예. 악질적인 몇 곳의 웹하드 업체는 완전히 박살낼 예정입니다.”

“그러세요. 가능하면 한국통신 자회도 강하게 압박해 보세요. 영화인들이 만만하게 보이는 모양이에요. 한국영화계에 WaW가 있다는 걸 알려주세요. 항복할 때까지 2년이고 3년이고 물고 늘어지세요. 아마 선경텔레콤과의 치열한 통신사 경쟁 때문이라도 먼저 숙이고 들어올 겁니다.”

“확실하게 매듭짓겠습니다.”

“캠페인 광고에 돈 아끼지 마세요. 인식을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예!”


오동석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런데... 감독님?”

“왜요?

“저 오만방자한 매니지먼트 회사들 보고만 계실 겁니까?”


작가의말

10월도 이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마무리 잘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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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 하고 싶은 영화 다 합시다! (2) +8 23.10.28 2,081 100 25쪽
656 하고 싶은 영화 다 합시다! (1) +6 23.10.27 2,044 97 25쪽
655 기업가의 애국이 별 건가? (2) +5 23.10.26 2,110 95 26쪽
654 기업가의 애국이 별 건가? (1) +4 23.10.25 2,098 105 24쪽
653 세계적인 명사(名士)잖아요! (3) +7 23.10.24 2,174 112 25쪽
652 세계적인 명사(名士)잖아요! (2) +5 23.10.23 2,071 107 23쪽
651 세계적인 명사(名士)잖아요! (1) +6 23.10.21 2,175 112 26쪽
650 La fenice. +5 23.10.20 2,120 100 27쪽
649 이 정도인 줄 몰랐어. +2 23.10.19 2,142 100 23쪽
648 코리안필름 뉴에이지. (4) +8 23.10.18 2,041 103 25쪽
647 코리안필름 뉴에이지. (3) +7 23.10.18 1,897 90 23쪽
646 코리안필름 뉴에이지. (2) +5 23.10.17 2,037 91 26쪽
645 코리안필름 뉴에이지. (1) +4 23.10.16 2,169 94 23쪽
644 도대체 얼마나 갑부인 거냐? +4 23.10.14 2,265 104 25쪽
643 군계(軍鶏). (11) +4 23.10.13 1,955 102 26쪽
642 군계(軍鶏). (10) +3 23.10.12 1,933 92 24쪽
641 군계(軍鶏). (9) +6 23.10.11 1,907 100 25쪽
640 군계(軍鶏). (8) +5 23.10.10 1,920 95 26쪽
639 군계(軍鶏). (7) +5 23.10.09 1,902 91 24쪽
638 군계(軍鶏). (6) +6 23.10.07 2,032 91 25쪽
637 군계(軍鶏). (5) +4 23.10.06 2,042 91 25쪽
636 군계(軍鶏). (4) +6 23.10.05 2,036 91 25쪽
635 군계(軍鶏). (3) +7 23.10.04 2,070 89 24쪽
634 군계(軍鶏). (2) +5 23.10.03 2,082 87 27쪽
633 군계(軍鶏). (1) +4 23.10.02 2,368 100 26쪽
632 You are a holiday, Such a holiday.... +12 23.09.30 2,258 109 27쪽
631 재밌어 질 것 같네.... (2) +4 23.09.29 2,229 94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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