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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현대편 -절애(대한민국, 1990)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작품등록일 :
2022.05.11 12:20
최근연재일 :
2022.07.07 12:01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541
추천수 :
108
글자수 :
164,208

작성
22.05.11 13:41
조회
138
추천
12
글자
9쪽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2)

DUMMY

어머니와 형의 49제가 끝나던 날,


절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갑자기 톱을 들고 과수원으로 나갔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아버지의 얼굴을 붉게 깎아나가고,


아버지의 손을

시퍼런 동상에 걸리게 했지만,


아버지는

무언가 굳게 결심한 사람처럼

과수원의 사과나무를

하나씩 하나씩 베어나갔다.


한 열 그루쯤 베었을까,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자


아버지는

마을 입구의 점방에 가서

담배 두 갑과

정종 큰 병 하나를 사와

김치 한 그릇을 안주삼아

마시고 피우기 시작하더니,


결국 그 큰 병을 다 비우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술 취해 잠든 아버지의 머리맡에

재떨이가 무심하게 놓여 있었다.


거기엔

아버지가 피운 두 갑의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쌓여

그날 아버지의 처참한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재성은

재떨이에서 장초 하나를 집어

마당으로 나가 몰래 피워보았다.


연기를 들이마시자

목이 엄청나게 따갑고 매워서

기침이 마구 터져 나왔다.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재성은

손을 들어 연신 눈물을 훔치며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무슨 맛인지도 몰랐지만,

그것이 재성의 첫 담배였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버지는 사과나무를 베었다.


백 그루도 넘는 사과나무가

차츰차츰 사라질 무렵,

이제 아버지는

대낮에도 술을 마셨다.


겨울방학이라 집에만 있던 재성은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딱히 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심란해서인지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저

술 한 모금을 목으로 넘기고

톱질을 하고,


나무 하나가 쓰러지면

한참을 쭈그려 앉아 흐느끼다가

또 술을 마시고,


그러다가

또 다른 나무에 톱질을 시작하는...


그런

아버지의 슬픈 등을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열흘 후,


결국 아버지는

집안의 모든 사과나무를 베어버렸고

그날 이후론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흘 정도 혼자 집에만 있다가

아버지가 걱정된 재성은

동네 어른들에게 물어

아버지를 찾아다녔다.


아버지를 발견한 곳은,

읍내의 귀빈다방이란 곳의

내실이었다.


시퍼럴 정도로 진하게 눈 화장을 한

‘마담’아줌마가

문 앞 카운터에 앉아있고,


짧은 치마를 입은 레지 아가씨가

가끔씩 들락거리며

재떨이를 갈아주고

음료수를 가져다주는,


담배연기 자욱한 다방 내실 안에서

아버지는 몇몇의 중년사내들과

화투를 치고 있었다.


아버지는

실성한 사람처럼

막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패를 돌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엄청나게 크게 웃으며

기뻐하기도 했다.




난생 처음 보는 아버지의 모습에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재성이 그저 멍하니 서있자

누군가가 아버지에게

재성이 왔다고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재성을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노름판에서 집어 주며 말했다.


“이거 가지구 어디 가서 밥 사먹구,

얼른 집으루 가.


이 정도믄

달포는 넉넉하게 쓸 겨.


돈 떨어지믄 다시 여기로 오구....


상의할 거 있으믄

이모나 외삼촌허구 상의 혀.”


그 말을 끝으로

아버진 다시 등을 돌렸고,


재성은

그 뒤로도 한참을

거기에 서있었지만

아버지는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을 한 달 앞둔 겨울,


그렇게

재성의 외로움은 시작되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재성의 일탈은 본격적이 되었다.


아버지의 노름은

봄이 되어도 끝날 줄 몰랐고,


집에는

보름에 한 번 정도 들어와

옷만 갈아입고 바로 또 나갔다.


집에 들어올 때마다

아버지는

항상 벌겋게 술에 취한 얼굴이었다.


군대 가기 전의

형의 모습이 연상되는,

그런 아버지의 망가진 모습에

동네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은

자식 귀신이 쓰였다’고

뒤에서 수군거렸다.




혼자만 있는 집에서

외로움에 지쳐가던 재성은

거리로 나가

매일매일 싸움을 하고 다녔다.


중학생 중엔 덤비는 사람이 없어서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앞에 나가

아무하고나 시비를 붙었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체격이 큰 사람한테만

시비를 걸었기에


때리는 날보다

맞는 날이 훨씬 더 많았지만,


재성의 주먹은 날로 매서워졌다.


누구하고 싸울 때만큼은,

누구한테 얻어터질 때만큼은,


엄마생각이 나서 외롭거나

형의 얼굴이 떠올라서 힘들지 않았다.

아버지 걱정 때문에 슬프지도 않았다.


그렇게 재성은 자연스럽게

싸움꾼이 되어가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무렵,

드디어 재성의 집이 빚으로 넘어갔다.


전날도

같이 몰려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옆 동네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한바탕 패싸움을 하고 온 재성은

낮 열한시가 넘도록

늦잠을 자던 중이었다.


갑자기 방문을 열고

무척이나 심각한 얼굴의

외삼촌이 들어와

재성을 흔들어 깨웠다.


반쯤 정신 나간 얼굴로

외삼촌을 맞이한 재성은

자신의 집안에

신발도 벗지 않고 들어와

여기저기 빨간 딱지를 붙이고 있는

낮선 남자들을 보았다.


이건 또 뭔가 싶어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재성에게 외삼촌이 말했다.


“니 옷가지 챙기구,

필요헌 니 물건두 얼릉 챙겨.


이제 여기선 못 살어. 삼춘 따라와.”


얼떨떨한 기분에

외삼촌 말대로

가방 하나를 챙겨 마당으로 나가니

대문 앞에서

울고 있는 이모가 보였다.




재성은

외삼촌과 이모를 따라

읍내의 어느 집으로 갔다.


재성이 다니는 중학교 근처에 있는

그 다세대주택은

집주인이 사는 안채를 제외한

바깥채에 7개의 셋방이 있었다.


가운데 우물이 있는 마당이 있고,

우물을 둘러싸고

7개의 방들이 있었다.


공동화장실 옆 가장 작은 방으로

재성을 데려간

이모와 외삼촌이 말했다.


“이제 앞으루 여기서 지내.


하숙은 너무 비싸니께

밥은 이모네랑 삼춘네서 먹구.”


“....아버지는유?”


외삼촌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담배를 하나 피웠고,


이모는

재성이가 불쌍하다는 듯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재성의 머릴 쓰다듬어주기만 했다.


담배를 피운 외삼촌이 말했다.


“....니 아버지는...이제 못 만나...


노름두 노름이지만,

알콜 중독 증세가 너무 심해져서

어제두 사고 크게 쳤어.


지금은 경찰서 유치장에 있는디...


다행히

어제 피해자가 크게 안 다치구...


그나마 예전에 삼촌허구

관계가 좀 있었던 사람이라

고소는 안한댜...


이제 니네 아버지는

징역은 안갈 지 몰라두...


용주사 옆에 있는

요양원에 들어가야 혀...”


“....절 옆에 요양원이믄...

그...정신병원유?”


놀란 재성이 외삼촌에게 물었다.


외삼촌이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군수님이랑 서장님이

오늘 아침에 결재허셨댜...


도립병원 의사덜이

니네 아버지는

도박중독에 알콜중독 중증이라고,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구

어젯밤에 판심 내렸어...


이제 너두 한 달에 한번밖에,

정해진 날밖에 아버지 못 만나...”


“.......”


너무 놀란 재성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외삼촌이

담배를 하나 더 피워 물고 말했다.


“....그래두 매형이

누구 엄한 사람

몸 같은 거 상허게 해서

징역 가는 그런 거 아닌 게 어디여...


이렇게라두 마무리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


니네 집이랑 땅두

다 빚으루 넘어가는 거


어제 삼춘이

은행지점장님 바지가랭이 붙잡구

사정사정해서

이 방 전세금이라두 건진겨....


그러니께...재성아,

이제 정신 똑바루 차리야혀...


삼춘두 이모두

먹구 사느라구 바뻐서

매일매일 챙겨주진 못허니께...


맘 단단히 먹으야혀...


이제 너 돌봐줄 사람이 읍어....”


그렇게

재성의 가족은 완전히 몰락했다.


재성의 열여섯 여름이었다.




거처가 바뀐 것 말고는,

재성의 삶에

딱히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아버지가 집에 안 들어온 지도

1년 가까이 되었고,


어차피 밥은

작년 겨울부터

이모나 외삼촌 네서

먹어왔기 때문이다.


굳이 좀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한 달에 한 번

아버지를 면회 가기 전날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싸움을 하지 않았다.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은 아니지만,

재성의 어린 마음에도

왠지 그래선

안 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용돈은

동급생들 삥 뜯고

후배들한테 상납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만

재성의 마음을

가장 어둡게 만든 것은,


면회에 갈 때마다

어딘가 망가져가는,

바보처럼 변해가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외삼촌 말로는

치료약이 독해서라고 그랬지만,


간단한 의사소통도 어려워진

아버지의 망가진 모습은

사춘기의 재성에게

큰 충격이 되었다.




중학교 생활도 거의 끝나갈 무렵,

겨울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날 저녁도 패거리들과 어울려

기차역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나온 재성은

‘오늘 밤의 사냥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오늘은 누구로 할까...


저 노인네는

잘못 치면 죽을 거 같고,


저 군바리는 돈이 없을 거 같고...


그런 식으로

기차역 주변에

서성이는 사람들을 훑어보며


그날의 용돈과

욕망을 만족시켜줄 상대를

승냥이처럼 찾아다니던 재성에게,


마침 딱 좋은

사내 하나가 눈에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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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 2 장 악연 (15) 22.06.30 46 0 10쪽
31 제 2 장 악연 (14) 22.06.28 43 1 10쪽
30 제 2 장 악연 (13) +1 22.06.16 64 2 13쪽
29 제 2 장 악연 (12) +1 22.06.16 48 2 10쪽
28 제 2 장 악연 (11) +1 22.06.15 47 2 10쪽
27 제 2 장 악연 (10) +1 22.06.10 65 2 14쪽
26 제 2 장 악연 (9) +1 22.06.07 56 3 12쪽
25 제 2 장 악연 (8) +1 22.06.05 65 1 17쪽
24 제 2 장 악연 (7) 22.06.04 50 1 11쪽
23 제 2 장 악연 (6) 22.06.02 53 2 9쪽
22 제 2 장 악연 (5) 22.06.01 54 2 11쪽
21 제 2 장 악연 (4) 22.05.31 52 3 10쪽
20 제 2 장 악연 (3) 22.05.28 62 3 14쪽
19 제 2 장 악연 (2) 22.05.26 58 3 11쪽
18 제 2 장 악연 (1) 22.05.25 68 3 10쪽
1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7) +1 22.05.24 87 4 9쪽
1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6) 22.05.23 70 4 11쪽
15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5) +1 22.05.20 72 4 10쪽
14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4) 22.05.19 66 2 9쪽
13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3) 22.05.18 70 2 9쪽
12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2) 22.05.18 66 2 12쪽
11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1) 22.05.17 70 3 11쪽
10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0) 22.05.17 70 4 9쪽
9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9) 22.05.16 78 3 10쪽
8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8) 22.05.16 76 2 9쪽
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7) 22.05.13 83 2 10쪽
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6) 22.05.13 8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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