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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현대편 -절애(대한민국, 1990)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작품등록일 :
2022.05.11 12:20
최근연재일 :
2022.07.07 12:01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529
추천수 :
108
글자수 :
164,208

작성
22.05.18 20:15
조회
65
추천
2
글자
12쪽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2)

DUMMY

5부 파국






벚꽃이 날리는

평화로운 봄날의

토요일 오후였다.


재성은

군청 앞 커더란 벚나무 아래에서

일이 끝나면

같이 밥을 먹기로 약속한

충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모부가 소개시켜준

시장의 주말아르바이트를

충식은 참 열심히 했고,


자신에게

학생신분으로 돈을 벌 수 있도록

일을 주선해준 이모부와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소중한 인연의 고리가 되어준

재성에게


충식은

마치 은인을 대하듯,

고마운 마음을 한가득 가지고

틈날 때마다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성은 그런 충식에게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마’

하면서,

심적인 부담을 줄여주려

언제나 노력했다.




작년에

자신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가 보여준 행동만으로도


이미 충식은

형제 같은 소중한 동생으로

재성의 마음속에

자리잡혀있었기 때문이다.


퇴원을 이틀 앞둔 병실로,

충식에게 얻어맞아

얼굴이 괴물처럼 망가진

김도철이 찾아왔었다.


김도철이 무릎을 꿇고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재성에게 용서를 빌었을 때,


재성의 마음속엔

'금메달대신

든든한 형제가 생겼구나'라는

한없는 뿌듯함이 밀려왔었다.




짜식,

동생이지만 참 멋진 놈이야...


오늘 이모한테

고기 좀 먹여달라고 해야지,


일하고 와서

충식이 배도 많이 고플 텐데...


뭐 그런 생각을 하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던

재성의 눈에

아름다운 풍경 하나가 들어왔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난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소녀가

재성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천사가 실제로 있다면

저렇게 생겼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아름다운 소녀가

재성의 옆으로 스쳐지나갔다.


재성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니 소녀를 쳐다보았다.


소녀가 재성의 옆을 지날 때

산뜻한 봄바람이 불어와

벚꽃 잎이 휘날렸고,


그 소녀는

꽃잎의 빗속을 천천히 지나갔다.


재성은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소녀의 움직임을 따라

멍하니 시선을 움직였다.


소녀는

재성의 옆을 지나

큰길 쪽으로 사라졌고


재성의 마음은

갑자기 조급해졌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19세 소년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마구 요동쳤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형님?"


바보처럼 입까지 벌리고,

소녀가 사라진 근처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재성의 귀에


마치 꿈에서 깨우듯,

현실로 돌아오게 만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성이 고개를 돌리니

웃는 얼굴의 충식이 서있었다.


재성이 자신을 보고도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아무런 말이 없자

충식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표정이 왜 그래요?


꼭 얼빠진 사람마냥..."


"충식아...

나 지금 천사를 본 거 같어..."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형님"


충식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물음에도


재성은 아무 대꾸도 없이,

그저 잠시 꿈을 꾼 듯한 얼굴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한참동안 가만히 서있었다.




한 시간 뒤,


시장에서 일하면서

땀을 많이 흘린 충식이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재성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이모네 식당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모와 이모부에게

정중하게 인사한

충식의 뒤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오던 재성이

갑자기 얼어붙은 듯

걸음을 멈추고

한쪽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그곳엔

아줌마 한 명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 하나,


그리고

아까 우연히 마주쳤던,

아름다운 그 소녀가 앉아있었다.


재성은

한 시간 만에 다시 만난

이름도 모르는 소녀에게

‘운명’ 같은 것을 느꼈다.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난생처음 느껴 본

뜨겁고 강렬한 감정이

재성의 가슴을

꽉 채웠기 때문이다.




재성이

이모와 이모부에게

인사도 잊은 채

또 멍하니 서있자

충식이 다가와 물었다.


"형님,

아까부터 도대체 왜 그래요?"


충식의 목소리를 들은 재성이

고개를 돌리자

이모가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재성이 너, 민희이모 모르니?


어렸을 때 몇 번 봤을 텐데...


그 왜,

시장에서 옷 장사하던..."


이모의 말이 끝나자

소녀와 함께 앉아있던 아줌마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재성이? 언니 조카 재성이?

숙자 언니 아들?


어머나...

못 보던 사이에 어른이 되었네."


주방에서 고기를 챙겨서

홀로 나오던 이모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재성이

이제 내년이믄 졸업이여...

어른 맞어"


민희이모가

반가운 표정으로

재성에게 다가와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말 많이 달라졌다...


이젠 길에서 마주쳐도

못 알아보겠네.


숙자언니 장례식 때만 해도

아직 어린애 같았는데...."


"안..안녕하세요.


알아 뵙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당황한 재성이

고개 숙여 인사하자

민희이모는

자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어...그럴 수도 있지.


많이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멋지게 자라줘서

내가 다 고맙네..."


"네...고맙습니다..."


다시 고개를 숙인 재성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빨갛게 변했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소녀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모가 다가와

민희이모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 예약 손님있는데...


재성이랑 충식이랑

니네 자리서 같이 먹어도 되지?"


"응, 당연히 괜찮지.

이리와 얘들아"


민희이모는

재성의 손을 잡아 끌어

자신들의 자리로 데려갔고


쭈뼛거리는 재성의 뒤를

충식이 따라갔다.


자리에 앉자

민희이모가 인사를 시켰다.


"여기는 내 딸 종미,


얘는 내 아들 종규야.


너희랑 비슷한 또래니까

편하게 있어"


민희이모의 소개가 끝나자

종규라고 불린 잘생긴 소년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고,


종미라는 이름을 가진

그 소녀는

해맑게 웃으며 재성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박종미라고 합니다."


나이에 맞지 않는,

꼭 국민학생 같은

이상한 말투였지만,


이미

종미에게 첫눈에 반한 재성에게

그런 것 따윈

아무 위화감을 주지 못했다.


"안...안녕하세요.

김재성이라고 합니다."


재성은

빨개진 얼굴로 말을 더듬으며

얼른 고개를 숙였고,


그런 재성의 모습을 옆에서 본

눈치 빠른 충식은

평상시와 달랐던 재성의 행동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으며,


자기와 비슷한 또래의

낯선 소년들에게

종규는,

은근한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이것이

그들 셋이 처음으로 만난,

첫 자리였다.




그날,

재성과 충식까지 함께한

종규네 가족의 외식은

무척이나 화기애애한

기분 좋은 자리였다.


종규는

작년 가을에

1년간의 소년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이미 퇴학처분이 된 상태였고,


새로 이사한 전셋방은

예전 집에 비해 많이 작았다.


옛날에는

자신의 집에서 장사를 했던

엄마도


이젠 남의 건물에 가게를 차려

매월 꼬박꼬박

월세를 내고 있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과 있기 후의

종규네 집 경제사정은

어린 종규가 느끼기에도

확 달라졌을 정도로

많이 어려워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종규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했고,


종규도

그런 엄마의 마음에

부담을 주기 싫어서

겨울 내내

검정고시 공부에 몰두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종규는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고등학교에 입학할 자격을

드디어 얻게 되었다.


그날의 외식은 바로

종규의 축하자리였던 것이다.


이모와 이모부까지

종규의 경사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고,


재성과 충식은

초면이라 좀 어색했지만

종규에게 축하를 건넸다.


두어 시간쯤 지나

자리가 기분 좋게 무르익어

민희이모가

노래를 시작할 무렵,


화장실에 다녀오던

재성과 충식은

식당 문 앞에서 인상을 쓰며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종규와

어색하게 마주쳤다.


종미에게 첫눈에 반해

그날 먹은 밥과 고기가

무슨 맛인지도 모를 정도로

한참을 들떠있던 재성은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종규가

날선 목소리로

재성을 향해 말했다.


“너,

왜 우리 누나 흘끔거리면서

자꾸 쳐다보냐?


뒤지고 싶냐?”


자기보다 두 살이나 어린

종규의 도발에

어이가 없던 재성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거 아녀...그게 아니라...”




재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종규의 주먹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재성이 살짝 고개를 돌려

주먹을 흘려보내던 순간,


충식이 번개 같이 손을 뻗어

종규의 팔을 잡아채더니

순식간에 업어치기 기술로

종규의 몸을 공중으로 붕 띄웠다.


종규의 몸이

땅바닥에 충돌하기 직전,


재성의 입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충식아! 안 돼!”




재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충식은

찰나의 순간에 자세를 바꿔

종규가 다치지 않도록

급히 허리를 잡아

바닥에 살며시 눕혀놓았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종규는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자기가 날린 주먹을

고개만 살짝 돌려

흘려버린 재성도,


그 짧은 순간에 자기를 낚아채

공중으로 집어던지다가

순식간에 자세를 바꿔

살며시 바닥에 내려놓은 충식도,


종규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때까진

세상에 무서운 게 없었던

열일곱의 종규에게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거대한 공포를 심어준

두 사람의 존재였다.




재성이 자상하게 웃으며

종규에게 손을 내밀었다.


종규가 자신의 손을 잡자

재성은 팔에 힘을 주어

종규의 몸을 일으켜주더니


엉덩이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주며 말했다.


“종규라구 그랬나?


내가 종미누나를

너무 바보 같이 쳐다봐서

먼가 오해한 거 같은디...


니 누나한티

무슨 나쁜 생각이나

이상한 생각 가지구

그렇게 쳐다본 게 아니구...


그냥...머랄까....”


“그럼 뭔데요?”


종규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그게....

니네 누나가...너무 이뻐서....


종미누나같이 이뿐 사람

난생 처음 봐서....”


재성이 너무 부끄러운 듯

얼굴이 빨개지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재성의 갑작스런 고백에

뒤에 서있던 충식이

갑자기 풋, 하고 웃었다.


재성은 그런 충식을 향해

‘웃지마 임마’ 핀잔을 주면서

얼른 자신이 내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 했지만,


이미 재성의 진심은

세상 밖으로 나와 버렸기에

뒤로 물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종규도

재성의 당황해하는 모습에

살짝 웃음이 나오려했지만,


자신의 누나와

관계된 일이었기에

꾹 참고서 다시 한 번 물었다.


“우리 누나...

날 때부터 머리가 좀 아파서...


몸만 크지 어린애 같은 거....

알고 있죠?”


종규의 말을 들은 재성은

의아한 눈빛으로

종규에게 되물었다.


“그거 하구...

누나가 이뿐 거 하구

무슨 상관여?


누나가 아픈걸 알믄,

나한티 뭐가 달라지나?”


어린 종규가 듣기에도

재성의 말에서는

한 점의 더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제야 종규는

재성과 충식에게

깊이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형님들.

제가 다짜고짜 주먹질을 해서...


제가 누나 일이라면

좀...많이 예민해요.”


느닷없이 주먹질을 했다가

또 느닷없이 사과를 했다가,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종규였지만,


재성과 충식은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사과를 받아주었다.


“괜찮어...그럴수두 있지 뭐...


앞으루

이 동네서 돌아댕기다가

뭐 상의할 거 있으믄

나나 얘헌티 얘기혀.


그렇게 너무 딱딱허게 굴지말구,

그냥 편허게 친형처럼 생각햐...


우리두

잘생긴 동생 하나 생겼다구

편허게 생각허께...”


자신이

먼저 사과를 한 것도

처음이었고,


자신의 주먹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용서해준 사람들도

처음이었던 종규는


‘친형처럼 생각하라’는

재성의 말에

실로 오랜만에

든든함과 따뜻함을 느꼈다.


종규가 고개를 들어보니


재성이 자신을 바라보며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충식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종규가 충식의 손을 맞잡자

충식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어디 다친데 없지?


형님이 아까 안 말렸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종규야.”




자신의 특이한 외모나

누나의 장애에 대해

아무런 선입견도 없이,


‘튀기새끼’같은

모욕적인 단어가 아닌,


‘종규’라는 자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두 형들에게


그는,

‘한 방’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렇게

셋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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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 2 장 악연 (17) 22.07.07 63 0 14쪽
33 제 2 장 악연 (16) 22.07.05 42 0 11쪽
32 제 2 장 악연 (15) 22.06.30 45 0 10쪽
31 제 2 장 악연 (14) 22.06.28 43 1 10쪽
30 제 2 장 악연 (13) +1 22.06.16 63 2 13쪽
29 제 2 장 악연 (12) +1 22.06.16 48 2 10쪽
28 제 2 장 악연 (11) +1 22.06.15 47 2 10쪽
27 제 2 장 악연 (10) +1 22.06.10 65 2 14쪽
26 제 2 장 악연 (9) +1 22.06.07 56 3 12쪽
25 제 2 장 악연 (8) +1 22.06.05 65 1 17쪽
24 제 2 장 악연 (7) 22.06.04 48 1 11쪽
23 제 2 장 악연 (6) 22.06.02 53 2 9쪽
22 제 2 장 악연 (5) 22.06.01 54 2 11쪽
21 제 2 장 악연 (4) 22.05.31 52 3 10쪽
20 제 2 장 악연 (3) 22.05.28 62 3 14쪽
19 제 2 장 악연 (2) 22.05.26 58 3 11쪽
18 제 2 장 악연 (1) 22.05.25 68 3 10쪽
1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7) +1 22.05.24 87 4 9쪽
1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6) 22.05.23 69 4 11쪽
15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5) +1 22.05.20 72 4 10쪽
14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4) 22.05.19 66 2 9쪽
13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3) 22.05.18 69 2 9쪽
»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2) 22.05.18 66 2 12쪽
11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1) 22.05.17 70 3 11쪽
10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0) 22.05.17 70 4 9쪽
9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9) 22.05.16 78 3 10쪽
8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8) 22.05.16 75 2 9쪽
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7) 22.05.13 82 2 10쪽
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6) 22.05.13 8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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