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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현대편 -절애(대한민국, 1990)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작품등록일 :
2022.05.11 12:20
최근연재일 :
2022.07.07 12:01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525
추천수 :
108
글자수 :
164,208

작성
22.05.13 05:32
조회
87
추천
2
글자
9쪽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6)

DUMMY

3부 만남






바람에서 한기가 느껴지며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던

11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이었다.


재성은

일주일간의 힘든 훈련을 마치고

오랜만에 이모네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오랫동안 둘이서

열심히 모은 돈으로

돼지갈비를 주 메뉴 삼아

읍사무소 앞에 조그만 식당을 연,

이모와 이모부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았다.


이모와 이모부는

두 분 다 착한 사람이었고

둘의 사이도 무척 좋았다.


둘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지만,

재성보다 일곱 살이나 많았고,


사촌 누나는

서울의 어느 건설회사에

경리로 취직이 되어

고향을 떠난 지 5년도 넘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모네 부부는

재성을

자신의 친자식처럼 보살펴주며

본인들의 적적함을 달랬다.


그래서 재성은,


엄하고 고지식한 외삼촌과

자꾸만 눈칫밥을 주는 외숙모,


무려 네 명의 사촌 형제들에

정신도 가물가물한

팔순이 넘은 외할머니까지 계신,


복잡하고 불편한 외갓집으론

잘 가지 않았다.




그날 저녁도

이모가 끓여준 된장찌개에

밥 두 공기를 비우고

자취방으로 돌아와

잠시 누워 쉬던 재성은,


자신에게

‘꿈과 결심’을 상기시켜주는

그 가족의 산책시간에 맞추어

공원으로 산보를 나갔다.


오늘은 추워서 산책을 안 하나...

평상시보다 늦네...


중얼거리면서

공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재성의 눈에

낯선 소년 하나가 눈에 띠었다.


두꺼운 목에서부터 시작된

강인한 선이

넓은 어깨와 탄탄한 등으로 이어지는

뒷모습이 무척이나 보기 좋은,

또래의 소년이었다.


재성보다

키는 목 하나 정도 작았으나

무척이나 다부진 체격에

굵은 팔뚝을 가진 그 낯선 소년은,


한 달 전 아버지와 헤어져

동생들과 함께

할머니 댁으로 이사를 온,

충식이었다.




충식이 재성의 눈에 띠게 된 것은,

충식이 보여준

특이한 행동 때문이었다.


충식은 공원의 식수대에서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한참을,

정말 한참동안 물을 마셨다.


마치 물로 허기를 채우듯이,


과장을 좀 덧붙이자면

재성의 눈에 비친 충식은

물만 한 바께스는 마신 것 같았다.


뭐지? 나랑 비슷한 또래 같은데...

처음 보는 놈이네.


근데 웬 물을 저리도 많이 마시지...


그런 저런 의아함을

낯선 소년에게

재성이 느끼고 있을 무렵,


뒤쪽에서

형!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재성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국민 학교 6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애 하나가

물을 마시고 있던 소년에게

서둘러 뛰어갔다.


물을 마시고 있던 소년은

그 남자애를 보더니

자상한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그 남자애는

충식의 동생 충호였다.


“밥 다 먹었어? 할머니랑 영희는?”


“응, 지금 막 다 먹었어.


할머니가 형은 왜 안 먹냐고,

찾아서 데리고 오라고 하셔서...”


물을 마시던 소년이

남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형은 아까 학교에서 먹었다니까

자꾸 그러시네...


자, 들어가자.”




아...무슨 사정이 있나보군...


둘의 대화를

의도치 않게 듣게 된 재성은

한 가지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저 소년이

자기 동생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12월이 되었다.


한 달반 동안 충식은

저녁 먹을 시간이 되면

공원으로 나와

물로 허기를 채웠다.


한참 몸이 커나가는 시기에

식사 한 끼를,

그것도 물만 마신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충식에게는

나름 속사정이 있었다.




두 달 전

난생 처음 만난 할머니는,


시장에서 좌판을 펴놓고

채소를 파는 행상을 하셨고


공원 옆 단칸방에서

혼자 살고 계신

외로운 노인이었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충식의 아버지가

서울로 돈을 벌러 떠난 후


할아버지, 큰아버지, 큰어머니와

넷이서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할아버지가

친하게 지내던 농협직원에게

큰 사기를 당해서

논밭과 집이 날아갔다고 했다.


그때 받은 충격으로

할아버지는

일 년 정도 병석에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고,


큰아버지는

처갓집이 있는 신탄진으로

가족과 함께 거처를 옮겨

담배공장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 뒤로부터 십삼 년 동안

할머니는

혼자서 외롭게 살아오셨고,


큰아버지가 매달 조금씩

생활비를 보내주시곤 하지만,


‘자식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 돈을 쓰지 않고 모아두며

채소행상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충식도

그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앞으로 만든 통장 외에도

비록 조금이지만

할머니에게 매달

일정액의 돈을 송금하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아버지와 큰아버지 얘기를

하실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셨고,


몇 가지 안 되는 반찬에

쌀보다 보리가 많은 밥이었지만,

삼남매의 끼니를

꼬박꼬박 챙기셨다.


처음 열흘간은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맛있게 먹었지만,


허리가 많이 아프신 할머니가

당신의 병원비와 약값을 아껴

자신들의 식비를 충당하는 것을

충식은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 뒤부턴

적어도 자신만이라도

부담을 덜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학 온 학교에는

유도부가 없었고,


그래서 당연히 충식은

할머니 외에는

밥을 얻어먹을 수가 없었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충호와 영희의 도시락까지

챙겨주시는 할머니에게

너무 죄송하기만 했다.


죄송한 이유는 딱 한 가지,

아버지가 자신에게 맡긴

통장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뜻은

자신이 감옥에 가있는 동안

그 돈을 쪼개서

할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살아가라고 한 것일 텐데,


왠지 모르게 충식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막연히,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오면

그 돈으로

같이 살 방이라도 하나

얻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열여섯 살 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충식은

할머니에게 통장의 존재를 숨겼고,


그래서 할머니를 볼 때마다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충식은 자신만이라도

저녁 한 끼는 먹지말자고 생각하고

매일매일 공원으로 나와

물로 배를 채웠다.




그날 저녁은 무척이나 추웠다.


학교선생님도

올해는

일찍 겨울이 시작된 것 같다고,


유난히 추운 것 같으니

집에 가서 연탄관리 잘 하라고

종례시간에 말씀하실 정도로

바람도 매서웠고,


날이 너무 추워서 그랬는지

다른 날보다 배가 훨씬 더 고팠다.




서둘러 뛰어간 충식은

공원식수대의 수도꼭지를 돌렸다.


그런데

수도밸브가 돌아가지를 않았다.


아무리 힘을 줘도 돌아가지 않았다.


왜 이러지? 고장 났나?


충식이

남은 힘을 모두 짜내어

밸브를 돌리자

아주 조금 돌아가긴 했지만,

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왜 이러지...배고프다...


그런 생각을 하며

충식이 속상해하고 있을 때였다.




“야, 이거 먹어라.

날이 추워서 꼭지가 얼은 거 같다.


동파여, 동파.”


충식의 눈앞에

공원에서 몇 번 마주쳤던

또래의 소년이

크림빵을 하나 내밀었다.


그 소년은 재성이었다.


재성이 충식의 눈앞에 내민 것은

아버지가 사주셨던

바로 그 크림빵이었다.




충식은

자신에게 빵을 내민 재성을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재성이 말했다.


“먹어. 임마, 괜찮어...


아까 권투부 간식으로 나온 건디

가방에 넣어놨다가

깜빡 잊고 안 먹은 거여...


그냥 먹어두 돼.

돈 달라고 안 할 거니께,


나 나쁜 사람 아녀. 임마.”


충식이 그냥 멍하니 서있자

재성은 약간 짜증나는 얼굴로

재촉하듯 말했다.


하지만 충식은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았고

빵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재성의 말투가 갑자기 차분해졌다.


“내가 너 요즘에 자주 봤는디...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두

여기서 맨날

물루 허기 때우는 것 같던디,

그것두 하루이틀이구...


더군다나 오늘은 물두 안 나오잖냐...

그래서 그냥 주는 거여.


널 무슨 그지새끼 취급해서

일부러 사다가 주는 것두 아니구,


난 아까 이모네서 저녁 먹었구,

어차피 권투부 간식으로 나온 거구.

난 지금 배불러서 먹기는 싫구,


그냥 안 먹구 놔두면 상할꺼 아녀...

그럼 아깝자너...


그러니께 너 먹으라구.”


재성의 말을 들은 충식에게

경계의 눈빛은 사라졌지만,

충식은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을 뿐

빵을 받지 않았다.


더 이상은 못 기다리겠다는 듯

재성은

우악스럽게 충식의 손을 잡고

빵을 쥐어주었다.


그리곤

휙 하고 몸을 돌려

돌아가며 말했다.


“앞으로 날 계속 추워지니께...


요 시간쯤 맞춰서

내일두 여기루 나와...


나두 매일 저녁밥

혼자 먹기 싫었는디...같이 먹자.


얼릉 들어가 임마. 감기 걸려.


증 먹기 싫으믄

니 동생 갖다 주던지...


암튼 내일 보자.”




재성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충식은

자신의 손에 들린 크림빵을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무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충식은

포장을 벗겨 빵을 입에 넣고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아주 오래전 느꼈던,

그리운 맛이 났다.


갑자기

아버지의 미소가 떠올랐다.


충식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충식은 눈물을 닦으며 빵을 먹었다.


행복했다.




이것이 둘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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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 2 장 악연 (15) 22.06.30 45 0 10쪽
31 제 2 장 악연 (14) 22.06.28 43 1 10쪽
30 제 2 장 악연 (13) +1 22.06.16 63 2 13쪽
29 제 2 장 악연 (12) +1 22.06.16 48 2 10쪽
28 제 2 장 악연 (11) +1 22.06.15 47 2 10쪽
27 제 2 장 악연 (10) +1 22.06.10 65 2 14쪽
26 제 2 장 악연 (9) +1 22.06.07 56 3 12쪽
25 제 2 장 악연 (8) +1 22.06.05 65 1 17쪽
24 제 2 장 악연 (7) 22.06.04 48 1 11쪽
23 제 2 장 악연 (6) 22.06.02 53 2 9쪽
22 제 2 장 악연 (5) 22.06.01 54 2 11쪽
21 제 2 장 악연 (4) 22.05.31 52 3 10쪽
20 제 2 장 악연 (3) 22.05.28 62 3 14쪽
19 제 2 장 악연 (2) 22.05.26 58 3 11쪽
18 제 2 장 악연 (1) 22.05.25 68 3 10쪽
1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7) +1 22.05.24 87 4 9쪽
1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6) 22.05.23 69 4 11쪽
15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5) +1 22.05.20 72 4 10쪽
14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4) 22.05.19 66 2 9쪽
13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3) 22.05.18 68 2 9쪽
12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2) 22.05.18 65 2 12쪽
11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1) 22.05.17 69 3 11쪽
10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0) 22.05.17 70 4 9쪽
9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9) 22.05.16 78 3 10쪽
8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8) 22.05.16 75 2 9쪽
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7) 22.05.13 81 2 10쪽
»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6) 22.05.13 8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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