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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현대편 -절애(대한민국, 1990)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작품등록일 :
2022.05.11 12:20
최근연재일 :
2022.07.07 12:01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538
추천수 :
108
글자수 :
164,208

작성
22.05.11 13:09
조회
269
추천
19
글자
10쪽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1)

DUMMY

1부 외로운 소년






그는 외로운 소년이었다.


그의 꿈은,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동네를 산책하는

젊은 부부처럼 되는 것이었다.


그 부부는 아마도,

가족이 둘러앉은 식탁에서

소박하지만 맛있는 식사를 하고,


밖에 나가자고 보채는

아이들의 소망도 들어줄 겸,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보냈다는 마음으로

저렇게

평온한 저녁 산책을 하는 것이리라.


아빠의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하는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귀여운 소녀와


아직은 길에서

엄마의 손을 놓지 못하는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항상 부부의 사이에서

행복한 얼굴로 걷곤 했다.




예전에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저 부부끼리만 손을 잡고 걸었겠지...




그는

자신이 권투부 훈련을 끝내고

자취방으로 돌아올 무렵,


가끔씩 마주치는

그 가족의 모습을 보며

항상 무언가를 다짐하곤 했다.


귀여운 딸과 씩씩한 아들,

포근한 느낌의 엄마와

자상한 미소의 아빠,

마치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저녁노을 아래의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느껴지는

저 가족처럼 되리라.


언젠가는 자신도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저런 귀여운 남매를 낳고

‘아버지’가 되어,

저런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을

꼭 이루리라.


그것이

열일곱 외로운 소년이었던

재성의 고교시절 꿈이었다.




어릴 적 재성의 집은,

아주 큰 부자는 아니었어도

마을유지소리는 들었던

유복한 집이었다.


해방이 되고 전쟁을 겪는 동안에도

인구 5만이 조금 넘는

이 충청도의 소도시에는

큰 풍파가 불어 닥치진 않았다.


동네 어른들이

‘박영감이

빨갱이들한테 밥을 줬다고

군인들한테 끌려가 죽었다’라던가,


‘파출소에 근무하던 전순경이

공산당원들한테 끌려가

산에 묻혔다든가’ 하는,


뜬구름 같던 소문 몇 개만이

아홉 살 소년 재성의 귀를

스쳐지나갔을 뿐,


1958년 7월에 태어나

‘해방’이나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해맑은 소년 재성에게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어두운 이야기들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당시

재성이네 마을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이장님 댁 장남이

월남에 다녀와서

온몸에 심한 피부병을

앓고 있다거나,


월남에 파병된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라고

옆집 과부아줌마가

매일 뒷산에 올라가

기도를 드린다거나 하는,


‘남쪽나라의 전쟁’에 관한

일들이었다.




재성의 아버지는 과수원을 했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어머니의 말로는

‘왜정 때,

너희 아버지가

농촌지도소의 일본인에게

국광과 홍옥 나무 삼십 그루를 얻어

이 산에서 시작했단다.’가


재성이 알고 있는

아버지의 유일한 과거였다.


그의 가족은,


동네에서

‘삼십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하는 수재’

소리를 듣던,

공부 잘하는 7살 터울의 형과


억세지만 자상하신 어머니,


그리고 근엄하고 무뚝뚝한 아버지,


이렇게 넷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귀하다는 자전거를 타고

읍내의 중학교에 다니던

7살 위의 형 재민은,


그 도시의 수재들뿐만 아니라

충청도 각지에서 유학을 온다는

‘호서 지방에서 손꼽히는

명문 고등학교’에 시험을 쳐서

당당하게 수석장학생으로 합격했고,


교장 선생님까지 나서서

하숙집을 알아봐 줄 정도로

정말 똑똑하고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형이었기에

재성과 같이 놀거나 한 적은 없지만,


항상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해가 질 무렵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학생 형은,


동네 친구들한테 자랑할 만한

정말 멋진 형이었다.


재성에게 가장 좋았던 것은

저녁을 먹고 난 후 운동이나 하자며

자신에게

자전거타기를 매일매일 가르쳐 준

형의 자상함이었다.


형이 고등학교에 합격하고 나서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읍내의 하숙집으로 들어가

집을 떠난 후,


재성에게 가장 기뻤던 일은

형이 타던 통학자전거가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재성이

국민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그의 가족은

아무런 사고도 없이

순탄한 삶을 살았다.




재성의 가족에게

불행이 시작된 것은,


그의 형 재민이

육군사관학교에

차석으로 합격하고도

입학을 허가받지 못했던

겨울부터였다.


어렸을 때부터

‘사관학교에 들어가 장군이 되어

나중에 꼭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해왔다던 재민은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입학이 불허가 된 이유가

자신의 잘못이 아닌,

뭘 어떻게 바로잡아볼 수도 없는,

불가항력 적인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재민의 입학을 불허한 이유는,


재민은 만나본 적도 없는

‘작은 아버지’때문이었다.


그의 작은 아버지는

일제시대 때에

경성제국대학을 다니던

지역에서 배출한 수재였는데,


어느 날 독립운동을 한다고

가족과 연을 끊었고

그 뒤로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의 거짓말이었고,


사실은

해방된 후

남로당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몇몇 동지들과 함께

‘자진 월북’했고,


전쟁 때는 고향에 들러

‘인민재판’을 주도하기도 했었으며,


나중엔 지리산에서

빨치산까지 하다가

다시 북한으로 올라갔다는

‘유명한 빨갱이’였다.


중앙정보부 리스트에도 올라있던

유명한 공산주의자였다고 하니,


당연히 그의 가까운 혈족인 재민은

연좌제에 걸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너무나 크게 상심한 재민에게


아버지는

그저 미안하다고

아무 잘못도 없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는

매일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으며,


철모르는 재성만

침울한 얼굴로 마루에 앉아있는

형의 손을 잡고

‘자전거 타고

형 좋아하는 냇가에 가자’며

어린아이다운 위로를 했다.


담임 선생님까지 나서서

서울대 법대에 시험을 쳐서

다른 좋은 길을 알아보자고

설득했지만,


형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어차피 사법고시에 붙어도

빨갱이 가족이라고

판검사는 안 시켜줄 거잖아요’


그런 형의 절망 앞에서

어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아무 것도 안하던 형은,


마치 그동안

일부러 꾹 참았던 것처럼

일탈을 시작했다.


재성이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형은 군대를 갔는데,


군대에 가기 전날까지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술을 마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 조금 못되는 시간 동안

집에서만 지낼 때,

형은 매일 술을 마셨다.


처음엔

걱정스런 얼굴로 말리던 어머니도,


그런 형의 모습을 보며

담배만 늘어가던 아버지도


결국 형의 일탈을 막지 못했다.


그저

형이 술에 취해 잠든

어느 가을밤,


방문 밖으로 세어 나오던

아버지의 말만이

재성의 머릿속에 남았다.


‘오죽 답답하믄

저 젊은 놈이 저러것어,,,,’




재성의 가족이

몰락하기 시작한 것은,


재성의 몸이 아버지만큼 커진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어릴 때부터 또래 애들보다

목 하나는 더 크고

힘도 가장 세서

동네 꼬마들 사이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재성은,


중학교에 들어간 첫 해에

학교 체육대회에서

1학년의 몸으로

씨름종목 우승을 했고,


그 이듬해에는

학교에서 가장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학생이 되었다.


1년 위의 선배들도 재성을 보면

슬슬 눈을 피할 정도로

힘도 셌고,

무엇보다 싸움을 참 잘했다.


어렸을 때부터

보스 기질이 있던 재성은

동급생하고는

싸울 필요조차 없었다.


2학년 여름방학 때 학교 옥상에서

‘오야’인 선배를

딱 주먹 두 방에 쓰러트리면서,


누구나 인정하는

‘그 도시의 가장 센 중학생’이 된

재성은


그야말로

‘초원의 사자’ 같은

학교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가을바람이 서서히 매서워지던

어느 날,


집으로 군인 두 명이 찾아와

부모님을 만났다.


군인들을 따라

아버지가 어딘가로 가고,


어머니는

미친 사람처럼

저녁 내내 울부짖다가 혼절하여


재성은

급히 옆 동네의 외갓집으로 뛰어가

이모와 외삼촌을 불러왔다.


이틀 후,

영문을 몰랐던 재성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형이 죽었다는 소식이 도착한 것이다.


침통한 표정의 아버지로부터


‘철책근무를 스다가

실탄 넣은 총으루

지 턱에다 대구 쐈댜...’


라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그대로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놀란 외삼촌이

급히 어머니를 업고

도시에서 하나밖에 없는

기차역 옆의 도립병원으로 뛰었고,


아버지는

이를 악문 채 눈물을 훔치면서

그 뒤를 따랐으며,


재성은

통곡하는 이모와 함께

아버지의 뒤를 쫓았다.




형은 군대에서 자살했고,


어머니는

뇌의 혈관 어딘가가 터져

급히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뇌사상태에 빠졌다.


외삼촌이 어찌어찌 줄을 대어

서울의 큰 병원으로 응급차를 수배해

어머니를 모시고 갔고,


차에 자리가 없어

기차로 뒤따르기로 한 아버지는

엄마를 태운 응급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얼빠진 사람처럼

병원 후문 앞 담벼락에 쭈그리고 앉아

계속 담배만 피웠다.


그날

마치 폭풍처럼 밀어닥친

재성 일가의 불행은

모두 단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재성은

아버지가 서울에 간 사흘 동안

이모네 집에서 지냈고,


며칠 후 서울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입을 통해

어머니의 부고마저 듣게 되었다.




어머니와 형의 장례식 내내

재성은 꼭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바로 며칠 전까지

재성이 좋아하던 비빔국수를 해주며

겉절이를 손으로 찢어

자신의 밥그릇에 놔주시던

어머니의 웃는 얼굴과


자전거를 태워주며

아주 잘 탄다고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자상한 형의 얼굴이

영정사진으로 바뀌어

제단위에 놓여있었다.


집 마루에 차려진 빈소에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침울한 얼굴로 문상을 와서

아버지를 위로하며

한참을 울고 갔지만,


재성의 눈에선 눈물이 나지 않았다.

너무 현실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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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 2 장 악연 (16) 22.07.05 42 0 11쪽
32 제 2 장 악연 (15) 22.06.30 46 0 10쪽
31 제 2 장 악연 (14) 22.06.28 43 1 10쪽
30 제 2 장 악연 (13) +1 22.06.16 64 2 13쪽
29 제 2 장 악연 (12) +1 22.06.16 48 2 10쪽
28 제 2 장 악연 (11) +1 22.06.15 47 2 10쪽
27 제 2 장 악연 (10) +1 22.06.10 65 2 14쪽
26 제 2 장 악연 (9) +1 22.06.07 56 3 12쪽
25 제 2 장 악연 (8) +1 22.06.05 65 1 17쪽
24 제 2 장 악연 (7) 22.06.04 50 1 11쪽
23 제 2 장 악연 (6) 22.06.02 53 2 9쪽
22 제 2 장 악연 (5) 22.06.01 54 2 11쪽
21 제 2 장 악연 (4) 22.05.31 52 3 10쪽
20 제 2 장 악연 (3) 22.05.28 62 3 14쪽
19 제 2 장 악연 (2) 22.05.26 58 3 11쪽
18 제 2 장 악연 (1) 22.05.25 68 3 10쪽
1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7) +1 22.05.24 87 4 9쪽
1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6) 22.05.23 70 4 11쪽
15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5) +1 22.05.20 72 4 10쪽
14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4) 22.05.19 66 2 9쪽
13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3) 22.05.18 70 2 9쪽
12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2) 22.05.18 66 2 12쪽
11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1) 22.05.17 70 3 11쪽
10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0) 22.05.17 70 4 9쪽
9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9) 22.05.16 78 3 10쪽
8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8) 22.05.16 76 2 9쪽
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7) 22.05.13 82 2 10쪽
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6) 22.05.13 8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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