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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현대편 -절애(대한민국, 1990)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작품등록일 :
2022.05.11 12:20
최근연재일 :
2022.07.07 12:01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507
추천수 :
108
글자수 :
164,208

작성
22.05.16 17:05
조회
77
추천
3
글자
10쪽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9)

DUMMY

4부 예리한 소년






그는 예리한 소년이었다.


그의 꿈은,

자신이 어른이 되면

어머니와 누나를 데리고

함께 미국으로 가서

뉴욕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보는 것이었다.




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는

소년의 엄마 말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으로

일반 병사도 아닌

무려 ‘대위’라고 했다.


어릴 적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소년에게

‘미군 대위’라는 계급장을 가진,


한 번 만나보지도 못한

아버지의 존재는

그야말로 종교와도 같았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는

많이 다른,


초록색의 눈동자를 가진

잘생긴 혼혈 소년의 외모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신비했지만,


동네꼬마들의 놀이터인

‘시장 다리’ 근처 개울가에서는

따돌림의 대상이자

놀림의 대상밖엔 되지 못했다.


자신의 외모를 가지고

‘튀기새끼’라고 놀리는,


동네 꼬마들과

거의 매일 시비가 붙어

싸움이 일상이었던,


소년의 잘생긴 얼굴에선

항상 시퍼런 멍 자국이

가실 날이 없었다.




소년에겐

자신보다 세 살 위의

누나가 있었는데,


누나 역시 그처럼

초록색의 눈동자와

새하얀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혼혈 소녀였다.


그러나 그녀는

날 때부터 뇌에 장애가 있어

예쁘고 신비로운 외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바보 같은 행동’을 했고,


학교에 들어가서도

대소변을 잘 가리질 못해

젖은 속옷을 입은 채

울면서 집에 돌아오곤 했다.


소년의 누나도 소년처럼

항상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었고,


장애까지 있었던 관계로

소년보다

훨씬 더 많은 괴롭힘을 당했다.


소년이 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자신의 일에 누나의 일까지 겹쳐,

소년의 잘생긴 얼굴에는

상처가 계속 늘어갔다.




소년의 어머니는

‘시장 다리’ 옆 개울가에 있던

집 1층에서 옷가게를 했고,


2층의 살림집에서

소년과 누나와 함께

셋이서 살았다.


소년의 어머니는

무척 장사수완이 좋아서

소년의 가족은

나름 넉넉하게 살았지만,


‘시장 동네’의 그 누구도

소년의 가족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친하게 지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매우 싫어했다’라는 표현이

아마 더 정확할 것이다.


소년이 또래의 동네꼬마들과

매일 싸우고 오는 것처럼,


소년의 어머니도 장날만 되면

같은 동네의 장사하는 아줌마들과

매번 시비가 붙어


파장 무렵이면

머리끄덩이를 잡고 욕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소년은

장날이 무척 싫었다.


장날 저녁이면

엄마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맛있는 고기를 사주긴 했어도,


파장 무렵이면

옆집 아줌마나 뒷집 아줌마랑

꼭 시비가 붙어

이년 저년 쌍소리를 해가며

싸움을 했고,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바보’라고 놀림 받던 누나는

세 살 꼬마들 마냥

무섭다고 울며 오줌을 지렸으며,


소년은 엄마의 싸움을 말리거나

누나의 몸을 씻겨주는 일을

5일마다 반복해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심난한 절차가 끝나면,


엄마는

그 도시에서 유일하게

소년의 가족을 친절하게 대해주던,


엄마가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던

‘이모’가 하는 읍사무소 앞 식당에

소년과 누나를 데리고 가서

돼지갈비를 사주었다.


엄마의 말로는

식당을 하는 이모와 이모부는,

처녀 적 미군부대 앞에서

엄마가 일할 때부터

잘 알고 지낸 사이라고 했고,


이모부가 그때

엄마에게

이것저것 도움을 많이 받아서

지금의 이 식당을 차린 돈을

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5일에 한 번씩

가족의 외식이 있는 저녁이면,


소년의 엄마는

식당 이모와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소주를 마셨고,


술에 적당히 취한 엄마가

‘형부~ 담배 하나만’하고 부탁하면

이모부는 인자한 얼굴로 웃으며

담배와 라이터를

엄마에게 넘겨주었다.


엄마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술이 많이 취했다는 뜻이고,


그리되면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며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누나에게


엄마를 대신하여

고기를 잘 구워 쌈에 싸주는 것이

소년의 일이었다.




그런 독특한 풍경의

가족의 외식에서

유일하게

소년이 좋아했던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엄마의 노래였다.


다른 손님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는

밤 아홉시쯤이 되면,

이모는 식당 문을 닫았고


술이 기분 좋게 취한 엄마는

담배 한 모금에

소주 한잔을 걸치고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엄마의 목소리는

여자치고는 저음에

다소 무겁고 거칠었지만,


‘뽕짝’도 참 잘 불렀고,


이모부가 신청하는

‘김추자’노래도 잘 불렀으며,


심지어

영어로 된 노래도 참 잘 불렀다.


조용하고 감미롭게

엄마가 첫 소절을 부르면


이모부가

식당 카운터 밑에서 기타를 꺼내

‘김추자한틴 신중현이 있으야지’

하며, 반주를 맞춰주곤 했다.


항상 엄마가 빼놓지 않고 부르던

레퍼토리가 두 세곡 있었는데,


뜻도 모를 영어로 된 그 노래를


이모부는

“빌리 할리데이”라는

미국 여자가수가 부른 노래라고

알려 주셨고,


엄마는

‘미군 대위’였던 아버지가

좋아했던 노래라고 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싸움에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

짜증만 가득하던

소년의 일상에서,


엄마가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는

그 시간만큼은


아름답고

행복하고

감미로운 시간이었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엄마의 노래에는

듣는 이의 마음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특히 영어로 된 노래를 부를 때,

그런 느낌이 더더욱 짙어졌는데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그 슬픈 곡조의 노래를

엄마의 목소리로 부를 때면


소년의 눈시울은

어느새 서서히 붉어졌고,


고개를 돌려

누나를 바라보면


누나 역시

바삐 고기를 먹는 것을 멈추고

멍하니 엄마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건,

가족인 그들뿐만 아니라

같이 듣고 있던

이모와 이모부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던 것으로 보아


엄마의 노래에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힘이

그 안에 담겨있었음이

아마 확실했으리라.




그렇게 몇 곡의 노래가

애잔하게 끝이 나면,


엄마는 항상

담배를 깊게 빨아들여

허공을 향해 길게 내뱉으며


슬픈 눈빛으로

어딘가 먼곳을 응시하듯

한참을 바라보다가


소주 한 잔을 들이키고는

소년과 누나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것이,

5일에 한 번씩 열리는

가족외식의 끝을 장식하는

마지막 풍경이었다.




소년이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겨우

엄마의 진짜 과거를 알게 되었다.


엄마는 처녀 적에

옆 도시에 있는

미군부대 근처에서

‘양공주’를 했다고 한다.




그날,

같은 동네에서

어릴 적부터 살았지만

사이는 매우 나빴던,

동급생 민국이와

점심시간에 시비가 붙었다.


민국이도 소년도

중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알게 된

같은 반 애들과 밥을 먹다가,

민국이가 소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튀기 새끼 누나도 튀긴디...

똥오줌도 못 가리는 바보여.


근디 씨바 졸라 이뻐...”


소년은

민국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책상을 밟고 뛰어가

얼굴을 걷어차 버렸다.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졌던

민국이가

벌떡 일어나 주먹을 날렸고


교실 안은

둘의 싸움으로 인해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서로 마구 치고받는 와중에

‘이 양공주 새끼’라는 말이

민국이 입에서 튀어나왔고,


싸움이 끝나고 끌려간 교무실에서

‘양공주’의 의미가

무언지 궁금했던 소년은


선생님께

그게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선생님은 매우 당황하여

대답을 해주지 않고 얼버무렸고,


너무 궁금했던 소년은


결국 그날 저녁,

동네에서 유일한

‘대학생’ 형한테까지 찾아가서야

그 단어의 뜻을 알게 되었다.


대학생 형은

왜 그런 걸 소년이 물어보는지

무척이나 의아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깜둥이든 흰둥이든 가리지 않구

몸을 파는 창녀라는 뜻인디...


엄청 수치스럽구 나쁜 말여.


세상에서

젤루 드럽다 생각허는

여자들한티,

사람들이 허는 말이라고

보믄 될껴.


근디,

너처럼 어린애가

그런 건 왜 물어?”


큰 충격을 받은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

난생처음으로 엄마에게 대들면서

마구 화를 냈다.


엄마는

그런 소년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며

담배만 피우다,


어느 순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엄마는

너랑 니 누나 아버지하고만

살림 차렸어...


아무하고나

자식 만들지 않았어.”




그 후 소년은

5일에 한번 돌아오는

가족의 외식에 참여하지 않았고,


엄마가

시장의 다른 아줌마들과 싸워도

달려가서 말리지 않았다.


한창 사춘기였던 소년에게는


엄마의 존재가

속된 말로 너무 쪽팔렸고,


자신의 종교와도 같았던

유일한 자부심인

‘미군 대위 아버지’의 위상이

가슴 속에서 모두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소년은

엄마가 서운함을 느낄 정도로

거리를 두었고,


엄마와의 거리감만큼

누나를 챙기는데 더 신경을 썼다.




그날 이후,


소년은

주위의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매우 거칠어졌다.


당시에 소년은

또래의 아이들에게

“면도칼”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누군가와 시비가 붙었을 때

힘으로 안 되면

가방에서 칼이라도 꺼내서

덤볐기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너무나 날카롭고 예민한

성질 때문이었다.


마치 손만 닿아도 베일 것만 같은

시퍼런 면도칼처럼,


소년의 내면에는

예리하게 날이 선

칼 한 자루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신비로운 눈동자와

잘생긴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사나운 별명을 가진

소년의 이름은 종규,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성을 딴

박종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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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 2 장 악연 (15) 22.06.30 45 0 10쪽
31 제 2 장 악연 (14) 22.06.28 42 1 10쪽
30 제 2 장 악연 (13) +1 22.06.16 63 2 13쪽
29 제 2 장 악연 (12) +1 22.06.16 47 2 10쪽
28 제 2 장 악연 (11) +1 22.06.15 45 2 10쪽
27 제 2 장 악연 (10) +1 22.06.10 65 2 14쪽
26 제 2 장 악연 (9) +1 22.06.07 56 3 12쪽
25 제 2 장 악연 (8) +1 22.06.05 64 1 17쪽
24 제 2 장 악연 (7) 22.06.04 48 1 11쪽
23 제 2 장 악연 (6) 22.06.02 52 2 9쪽
22 제 2 장 악연 (5) 22.06.01 54 2 11쪽
21 제 2 장 악연 (4) 22.05.31 51 3 10쪽
20 제 2 장 악연 (3) 22.05.28 61 3 14쪽
19 제 2 장 악연 (2) 22.05.26 57 3 11쪽
18 제 2 장 악연 (1) 22.05.25 67 3 10쪽
1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7) +1 22.05.24 86 4 9쪽
1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6) 22.05.23 69 4 11쪽
15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5) +1 22.05.20 71 4 10쪽
14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4) 22.05.19 65 2 9쪽
13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3) 22.05.18 68 2 9쪽
12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2) 22.05.18 65 2 12쪽
11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1) 22.05.17 69 3 11쪽
10 제 1 장 세 명의 소년 (10) 22.05.17 69 4 9쪽
»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9) 22.05.16 78 3 10쪽
8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8) 22.05.16 75 2 9쪽
7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7) 22.05.13 80 2 10쪽
6 제 1 장 세 명의 소년 (06) 22.05.13 86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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